지난 토요일에는 <오! 윌리엄!>을 읽었다. 하루 종일 그 책만 읽었고, 덕분에 다른 책은 하나도 못 읽었다. 내 인생의 모토가 ‘대충대충’인 줄 나도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느슨하게 읽었는지 몰랐다. 아니면 원서로 읽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자기 고백). 아무튼 다시 읽는 <오, 윌리엄>은 참 좋았다. 나는 루시를, 윌리엄을 좋아한다.
<오! 윌리엄!>을 읽고 썼던 페이퍼를 읽어봤는데, 여기 쓰려고 했던 말이 그대로 있었다. 아하.... 자기 복제의 시간.
I am 단발머리, a kind of replicant.
William is the only person I ever felt safe with. He is the only home I ever had. (<Oh, William!>, 38p)
나는 한 번도, 어떤 남자에게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없다. 안전하다고 느낀 적이 있고, 편안하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이런 표현이라니. 글쎄,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랬던 사람, 내게 집 같았던 사람과도 헤어질 수 있다.
이번에 <오, 윌리엄!>을 다시 읽으면서 왜 루시가 그렇게 말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그건 <오, 윌리엄!> 168쪽에 나오는데, 내가 이 책 <Lucy by the sea>에서 발견하는 윌리엄의 모습과 완전히 겹친다. 또한 윌리엄에 대한 이런 느낌과 생각, 감정이 어쩌면 허상일 수도 있다는 루시의 깨달음은 <오, 윌리엄!> 294쪽에서 그려지는데, 나는 그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고 허상일 수 있다는 점. 진실에 가깝지만, 진실은 아니라는 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결혼 이후 만들어지는 여성의 경험은 ‘이주 여성’의 그것과 아주 비슷하다. 최근에 알라딘 이웃님들이 함께 읽으셨던 <Story of the World Vol. 1 : History for the Classical Child : Ancient Times>를 통해 로마 초기 약탈혼에 대해 알게 됐다. 재생산이 부족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중요한 가치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저출산에 대한 이 호들갑을 보라!), 여성은 재생산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소중한 ‘재산’이었다. 여성은 교환과 무역의 대상이었고, 바로 그런 이유로 약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약탈혼을 통해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전혀 다른 민족 속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했던 여성의 경험은 ‘시댁(시월드)’라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여성의 경험과 비슷하다. 같은 민족이고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리 큰 차이가 아닐 수도 있다. 각 가정 안에는 그들만의 문화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 이방인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이방인의 세계에서 여성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남편뿐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를 그곳으로 안내한 사람. 여성은 오직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안전하다.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내게 설명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며, 현재 발생한 그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건 그가 ‘유능’해서가 아니라, 그가 바로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루시의 경험이 조금 더 강렬했던 이유는 그녀가 ‘식탁 위에 소금과 후추도 둘 수 없었던’ 가난한 가정의 출신이기 때문이다. 루시를 처음 레스토랑에 데리고 간 사람이 윌리엄이다. 루시를 처음 영화관에 데리고 간 사람도, 그녀에게 팝콘을 사 준 사람도 윌리엄이다. 루시는 이렇게 말한다.
This man had brought me into the world, is what I am saying. As much as I could brought into the world, William had done this for me. (<Lucy by the sea>, 286p)
복잡한 심경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결국 나는 노선을 정했다. (대통령 장모 집으로 통하는 노선 아님) 작은 여행 가방을 가지고 차를 몰아 내가 있는 곳으로 서둘러 오고 있는 그 사람을.
나는 안아준다.
나는 윌리엄을 안아준다.
나는 루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