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책에 적어둔 바로는 작년 8월에 이 책을 읽었고 이번에 다시 읽었다. 선생님의 책은 내게 경전과 같아서 나는 밤마다 선생님의 글을 두 꼭지씩 읽는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든, 바로 전에 무슨 생각을 했었든, 선생님의 책을 펼치면, 펼치기만 하면 오직 그 생각만 하게 된다. 이번에 밑줄을 그은 부분은 여기.
분단(分斷) 체제의 기반은 이분법이고, 이분법은 문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논리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의 문해력이 낮은 근본 원인은 분단과 식민주의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남한 사회의 문해력은 외부의 기준에 따라 좌우됐다. 반미, 반북, 친일……… 이와 관련한 언설이 그 자체로 '생명 줄이거나 '반(反)국가'인 사회에서 어떻게 문해력을 논하겠는가. 국가보안법은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지식 모두를 압살해 왔다. 그러나 색깔론도 국가보안법도 여전히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 (94쪽)
우리(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우리)의 정치 현실, 모 아니면 도의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이분법의 결과이고, 이에 대한 궁극적인 원인은 당연히 분단이다. 상대편이 빨갱이인데 어떻게 말을 나눌 수 있겠는가. 상대편이 ‘반국가세력’인데, 어떻게 마주 앉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두 손 놓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면, 중동의 저 비극이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해 두어야 한다. 핵우산, 핵공조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말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하며,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2. A politically Incorrect Feminist
원래 계획은 차근히 읽으면서 한글책과 비교하면서 미국 여성사, 여성 운동사를 일부라도 정리하는 거였는데, 그랬는데, 그러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끝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디오북도 미뤄두고(오디오북 구입한 사람) 가열차게 읽어나갔고, 그래서 오늘 완독의 기쁨을 누리는 뜻깊은 날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이 부분을 여러 번 인용하기는 했는데, 굳이 다시 한번 인용해보면.
베티는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자주 썼다. 우리가 전부 눈을 아래로 깔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당황하거나 기분이 더러워진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베티는 본인 모습 그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었다. 역사를 바꾼 수많은 남자들이 그랬듯, 베티 역시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성미가 고약하고 난폭하며 거칠고 말도 안 되게 집요했다. 그리고 통제 불능의 술꾼이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220쪽)
그러니까 베티 프리단만 그랬다는 게 아니다. 케이트 밀렛도, 안드레아 드워킨도, 그 밖의 위대한 모든 여성들도 모두 다 인간이‘었’다.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지적인 연구 및 탐구의 성과로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각성의 자리로 이끌었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었으므로, 질투하고, 시기하고, 원망하고,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으로 의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니, 천재로서의 위대함과 감출 수 없는 약점을 동시에 가진 그런 인간. 때로는 실수하고, 오해하고, 관계를 끊어버리고, 그리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그런 인간. 흔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여성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여자도 인간이니까.
3. Unfortunately yours
무려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날아온, 내 진정 사랑하는 나만의 그대여. 이제 로맨스 그만,이라고 외쳤던 사람은 누구인가. 첫 챕터가 어려워 고심하던 1인은 읽던 책을 직장에 두고 와 무심히 책을 펼친 어느 날 밤, 무려 80쪽의 폭풍 리딩을 감행하고야 마는데... 네이비 실 출신의 남주와 사업가 여주의 강렬한 만남, 만날 때마다 폭발하는 육체적 매력과 가짜 연애를 충족시키기 위한 여러 장치들의 합작이 발랄하고 재미있는 로맨스 한 편을 완성해 간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주는 아닌데, 건장한 남성의 근육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더더욱 즐거운 독서가 될 듯하다. 줄거리 위주로 빠르게 읽어나간 나로서는, 근육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하였다. 참, 많이도 부족하였다.
내가 좋아했던 장면은 여기.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두 사람은 크게 싸우게 된다. 여주는 너무 화가 나서 남주에게 방에서 나가라고 말하는데, 방에서 나가지 않은 채 버티던 남주가 말한다. 나 지금 질투하는 거야! 이런 사랑 싸움을 원래 이렇게 하는 건지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문을 쿵 닫고 나가버려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거나, 오해가 더 커지도록 방관하는 게 아니라, 나 지금 질투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거. 그 질투가 잘못된 판단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하는 거.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전이라면 입 좀 다물고 있어! 라고 말하는 거. 그런 게 좋았다. 그거 말고도 좋은 거는 많은데,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큰애가 근사한 커피숍에 데려간다고 해서 따라나섰던 어느 날, ‘읽고 있지’ 않은 책을 부러 들고 나갔다. 오늘을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4. 504 Words : 우리 시대 지성들이 매일 쓰는 바로 그 단어
영어에 대한 사연은 항상 슬프게 끝나니까, 그만두기로 하고. ‘300 워드’에 ‘읽고 싶어요’ 한 것을 보시고 친절한 라파엘님이 이 책을 추천해 주셨다. 기대가 매우 컸었는데, 레슨 1부터 하기 싫은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후회가 쓰나미처럼 몰려왔으나. 이미 구입한 책, 게다가 스프링 분철까지 했던 터라, 1과를 시작했다. 1과 다음에 2과, 그다음에 3과,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한 과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공부를 마치고는 1줄 감상을 썼다.
20231011 : 완전!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했다.
20231012 : 반만 하려다가 겨우 반을 더 했다.
20231013 : 까불면서 풀다가 그림 퀴즈 틀렸다.
20231017 : 어제 못 해서 2개 하려 했는데. 할까말까 고민 중이다. (결국 못 함)
20231018 : 아침에 해야겠다, 는 건설적인 생각을...
20231019 : 그림 퀴즈가 제일 어려운 건가? 아니면 센스 부족?
5. Edible Economics
이 책을 왜 샀냐면, 장하준 박사의 인터뷰를 읽다가, 아, 그 책은 영어로 썼겠구나, 하면서 책을 찾아보다가, 13,580원짜리 저렴한 버전이 있어 아, 이거 하나 살까 하다가, 더 큰 사이즈의 페이퍼백(17,800원)이 있어서 이거다 싶어, 구입한 게 아니고. 사실은 알라딘에서 적립금 만료일이라고 해서 부랴부랴 샀다. 아마존에서 미리보기를 읽어봤는데, 읽을 수 있을 거 같다는 희망이 생겼고. 1페이지 읽고 싶으신 분은 여기로.
다 읽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는데, 일단 시작은 했다. <504 Words> 사놓고 할까말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1인으로서 느낀 건. 역시, 시작이 반이다. 시작하면 하게 되고, 중단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마친다. 언젠가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