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님의 오디오 매거진이 매달 5일에 올라오는 걸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밤에 마지막 설거지를 시작하기 전에 팟빵에 들어가 보았다. 선생님의 매거진은 아직 올라오지 않아서 김혜리의 <조용한 생활>에 들어갔는데, 이런 에피소드를 발견했다. 더구나 무료!
나는 김혜리씨의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목소리는 아닌데... 그 판단은 어디까지나 지난번 정희진 선생님과의 <교토 에피소드>를 듣고 나서의 결론이었다. 이번에 정보라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느낀 건, 여전히 나는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지만, 문제는 목소리가 아니라 질문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뭐랄까.
나는, 인터뷰이든 대담이든 취재든 질문하는 사람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에게 ‘답할 수 있는 여지’를 넓게 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작가들을 좋아하니까, 인터뷰집을 읽게 되고. 또 직관적으로 이해가 쉬우니 대담집 이런 류도 좋아하는데.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안해질 때가 있다. 작가들은 워낙에 까칠하고 예민하고 정확한 의미에 천착하는 사람들이니까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겠지만, 암튼 뭐라든 질문을 하면, 다들 그렇게 ‘아니라’고 하는 거다. 아, 그건 아닙니다. 아, 그건 사회자님이 잘못 이해하신 겁니다. 아,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내가 기억하기에 가장 까칠한 사람은 푸코였고, 그리고 영국 작가인데 기억이 안 나는 1인. 그리고 필립 로스도 만만치 않게 까칠하다. 아, 마거릿 애트우드도 아... 아닙니다,를 많이 사용하셨던 듯 하고.
<“고통과 쾌락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져요”>, 이 에피소드에서 작가와 그의 일상에 대한 질문들이 먼저 있고, 소설 <고통에 관하여>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는데, 전체적으로는 좀 그런 느낌이 강했다. 나는 김혜리씨가 이 시간을 잘 준비했다는 걸 알겠다. 이 작품 뿐 아니라, 정보라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정리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질문이다. 질문은 날카로울 필요도 없고, 너무 진지할 필요도 없고, 너무 ‘깊을’ 필요도 없다. 그냥 작가가 말할 수 있게 해주면 되는데. 그러니까 총평이라 한다면, 나는 김혜리씨의 질문에 좀 ‘힘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을 빼고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음성으로만 들어도 김혜리씨가 정보라 작가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느껴졌고, 정보라 작가는 솔직함과 자연스러움 그 자체여서 듣는 시간 내내 즐겁고도 막막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대학 강의를 그만두게 된 사연, 즉 전업작가로서 활동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편의 투병 생활을 돌봐야 하고, 코로나 강의 때 대학의 막무가내 행정으로 장애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정보라 작가가 말했다.
... 한 이주 삼주 정도 고민하다가 학기 끝나고 나서 학교에 얘기를 했기 때문에, 학생들한테 작별 인사를 제대로 못한 것도 굉장히 미안하고요. 여러가지로 좀 회한이 많이 남는데요. 근데 그러고 나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 때문에..... 한국의 대학이나 대학 정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그냥, 저의 전공은 망했어요.
중간중간 김혜리씨가 소리 죽여 웃어서 나도 같이 웃었다. 정보라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