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전 중에 비가 와서 다른 소일거리가 없어도, 질척한 날씨에 저항이라도 하듯 한사코 만나 꼭 붙어 앉아 함께 소설을 읽었다. 그렇다. 소설 말이다. 나는 소설 작가들에게 너무도 흔히 보이는 저 옹졸하고 졸렬한 관습을 택하지 않을 생각이다. … (생략) …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상상력의 범람이니 하며 비난하는 일은 평론가들의 한가한 일거리로 남겨두자. 새로 나오는 소설마다 쓰레기 같으니 어쩌니 하면서 신문에다 대고 케케묵은 곡조로 왈왈거리게 내버려 두자. 우리끼리는 서로를 저버리지 말자. 우리는 상처 입은 몸이다. 우리의 작품들은 세상의 어떤 다른 문학 기관이 내놓은 작품보다 광범위하고 가식 없는 즐거움을주어 왔음에도, 어떤 종류의 글보다 폄하되었다. … (생략) … 오직 천재, 위트, 감식력으로만 승부하는 그런 작업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대세를 이룬 듯하다. "전 소설은 읽지 않아요…………. 소설은 들여다본 적도 거의 없는걸요………. 제가 종종 소설을 읽으리라는 상상은 하지 마세요.……. 소설치고는 꽤 좋네요." 이런 것이 판에 박힌 듯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아가씨, 뭘 읽고있어요?" "아이! 그냥 소설이에요!" 젊은 숙녀는 대답한다. … (생략) … 실은 여기서야말로 정신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 발휘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 그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가장 기막힌 묘사, 생생하게 넘쳐흐르는 위트와 유머가 선택된 최상의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이다. (42쪽)
이 책 저 책 돌려 읽다가 정신 차리니 아, 자고 있었다. 읽던 책 마저 읽어야 한다고 집중하고 있는데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시라. 아름다운 목소리의 성우와 배경음악이 도서관 가득 울려 퍼진다. S마트에 들려 양상추, 크래미, 가을 자두 사고, 한살림에서 부침가루, 부추, 계란 사고, G마트에서 파프리카 사려다가 너무 비싸서(4,890원) 못 사고, 라이스 페이퍼, 빠새 사 가지고 돌아왔다. (토요일 저녁 월남쌈 예정)
잠깐 좀 쉴게요, 하는 심정으로 자두랑 빠새 꺼내놓고 어제 두 챕터 읽은 제인 오스틴 다시 펼쳤는데 너무 웃겨서 빈 집에서 혼자 우렁차게 웃고 있다. 세상에, 어쩜. 이런 사람이 있나 몰라. 평생 제인 에어 과몰입 상태로 살아온 내가 제인 오스틴에게로 넘어가는 소중한 순간. 을 기록해둔다. 제인, 잠깐만요. 잠깐만 다녀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