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merican Bride in Kabul』을 읽고 있다.
저자 필리스 체슬러는 1940년 미국 브루클린의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바드 대학 재학 시절 만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남성과 결혼해 카불에 갔다가 여권을 빼앗기고 억류되었으며, 카불에서 돌아온 후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운 이들의 뒤를 이어 2세대 페미니즘의 문을 열었다. 뉴욕 사회과학대학원을 거쳐 뉴욕 의과대학에서 신경생리학 펠로우십을 취득했으며,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후 1969년에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에 뉴욕시립대학 리치먼드 칼리지에 최초로 여성학 과정을 개설했다. 『여성과 광기』는 그녀의 첫 책으로, 1972년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 북 리뷰> 첫 페이지에 실린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품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후 전 세계적으로 3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페미니즘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뉴욕시립대 산하 스테튼 아일랜드 칼리지 심리학 및 여성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명예살인’으로 위협받는 이슬람 여성들을 대신해 법정 진술서를 제출하고 있다. (알라딘 책소개)
『여성과 광기』는 작년 12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눈 밝은 페미니즘 선배님들이 2000년에 번역해 놓았던 책이 대한민국의 페미니즘 열풍을 타고 작년 9월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읽는 내내 뜨거웠다.
올 초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읽었다. 페미니즘의 선구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자료로써, 자매애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것이 파괴되는 과정의 기록으로서 정말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과 광기』의 탄생과 영광에 관련된 이 부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 달쯤 지날 무렵, 《여성과 광기》에 대한 에이드리언 리치의 극찬이 담긴 긴 서평이 《뉴욕 타임스 북 리뷰》 표지에 실렸다. 내 세대에 그토록 화려한 칭찬을 받은 페미니즘 작품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판매 부수가 급증했고 담당 편집자는 승리의 냄새를 맡았다. 그렇다. 신문 하나가 그 정도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에이드리언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에이드리언,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는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삶이 변화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그렇듯이요. 당신이 쓴 서평 때문에 그들은 내 책을 읽게 됐을 테니까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163쪽)
열여덟의 체슬러는 미지의 나라에서 온 왕자님(실제로 체슬러의 첫 번째 남편은 자신이 왕자인 것처럼 행동했다)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그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으로 간다. 물론 그곳에서 살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유럽을 여행하는 도중에 가족들에게 인사하는 차원에서 가지게 된 ‘일시적’인 방문이었다. 하지만, 공항 직원에게 여권을 빼앗기고, 체슬러는 ‘감옥’ 아닌 곳에서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부유한 체슬러의 시아버지는 아내 셋과 자녀들과 함께 신혼부부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제 체슬러는 이 곳에서 Abdul-Karrem의 아내로서’만’ 살아야 한다. 시아버지의 손을 잡으려고 애쓰는 가족들. 그가 바로 가부장, 그들의 리더이며, 아버지이고, 족장이다. 잘못이 없는 사람. 실수하지 않는 사람. 그들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사람.
체슬러의 회고를 따라 읽으며 ‘문화’와 ‘법’에 대해 생각한다. 당시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경제력 있는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것이 능력 있는 남성의 당연한 권리라고 여겨졌다. 여자 혼자 외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장보기는 남자 하인의 일이었다. 피부를 보이는 모든 옷이 여자들에게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여자들은 평생을 집과 살고 있는 동네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문화’는 비록 그것이 강압적 형태가 아니더라도 ‘법’처럼 강력하게 사람들의 삶을 규제한다. 하지만 ‘문화’는 고정적이지 않다. 사람들의 생각은 바뀐다. 아들을 낳으면 좋아하고 딸을 낳으면 눈물 흘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딸인데 무슨 대학까지 보내려 하냐, 는 말을 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 상관없이 일부일처제에 반하는 로맨스는 이유와 상황이 어찌 되었든 ‘불륜’이라고 불린다. 아프가니스탄의 문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 인식, 통념, 고정 관념은 바뀔 수 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문제는 법이다. 사람들의 인식은 큰 폭으로 변화했는데도 법은 사람들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친딸을 성폭행하고도 10년 남짓의 처벌을 받을 뿐이고, 초범이라는 것이 양형의 이유가 되는 법 환경. 판사들은 소극적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판결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법이 우리의 인식, 상식에 수준에 맞춰질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입법 기관은 국회. 국회가 일해야 한다. 일할 수 있도록 압박을 넣어야 한다. 물론 여론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대중의 관심, 여론의 향방은 그 자체만으로도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챕터 2까지 읽고 말이 많았다. 더 읽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