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읽고 쓴다.
1. 사이보그
사이보그는 에테르이며 정수다(21쪽). 포스트모던 집합체의 일종인 동시에 개인적 자아이다(49쪽). 나는, 사이보그를 ‘현대인’으로 읽었다. 유기체와 기계의 결합. 가장 쉬운 예로서, 나처럼 ‘안경 쓴 사람’을 상상해 보았다. 이건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일전에 알쓸신잡에서 김상욱 교수가 말했던 것인데, 기계인 ‘안경’이 인간의 ‘일부’가 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우리 몸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곧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게 될 ‘작은 컴퓨터’는 우리의 ‘확장된’ 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되 기계를 차용했던 존재에서 기계가 유기체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 인간이며 기계로 새롭게 탄생하게 될 사이보그.
2. 가사 경제
노동은 남성이 하든 여성이 하든, 말 그대로 여성적이며 여성화된 것으로 다시 정의되고 있다. 여성화된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취약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곧, 해체되고 재조립되며 예비 노동력으로 착취될 수 있다는 것, 노동자보다는 서비스 제공자로 여겨진다는 것, 노동일 제한을 비웃기라도 하듯 급여가 지급되다 말았다 하는 노동 시간 배치에 종속되다는 것, 언제나 외설적이고 부적절한, 성으로 환원되는 실존의 경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54쪽)
육아와 유아교육, 노인 케어 등의 돌봄 노동은 ‘여성화’된 노동으로 여겨져 가치가 폄하되고 저임금이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노동의 여성화는 노동자의 불안한 위치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서의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3. 이원론
요약하자면 서구 전통에서는 특정 이원론들이 유지되어왔다. 이 이원론 모두는 여성, 유색인, 자연, 노동자, 동물 간단히 말해 자아를 비추는 거울 노릇을 하라고 동원된 타자로 이루어진 모든 이들을 지배하는 논리 및 실천 체계를 제공해왔다. 이 골치 아픈 이원론에서는 자아/타자, 정신/육체, 문화/자연, 남성/여성, 문명/원시, 실재/외양, 전체/부분, 행위자/자원, 제작자/생산물, 능동/수동, 옳음/그름, 진실/환상, 총체/부분, 신/인간과 같은 것이 중요하다. 지배되지 않는 주체the One이며, 타자의 섬김에 의해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자아다. 미래를 쥐고 있으며 지배의 경험을 통해 자아의 자율성이 거짓임을 알려주는 이가 타자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율성을 확보하고 막강해지며 신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주체됨은 환상이며 그 때문에 타자와 함께 종말의 변증법에 들어가게 된다. 반면 타자됨은 다양해지는 것,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 너덜너덜해지는 것,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는 너무 적지만 둘은 너무 많다. (77쪽)
이원론의 한계를 넘어서 여성 범주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피해자됨(victimhood)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띈다. 심오한 역사적 폭과 깊이를 지녔어도, 결국에는 보편적인 정체성이 아닐 수 있다는 ‘젠더’(84쪽)에 대한 이해가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와 페미니즘>에서 정희진이 말했던 ‘정체성을 피해자로 본질화할 때’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고찰 역시 필요하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217쪽) 가부장제가 원하는 ‘피해자다움’의 성 역할을 거부하고(224쪽), ‘정체성’의 신화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모색해야만 하는 페미니즘의 앞날(?)에 주목하게 된다. 변신하고 변이해야만 하는 페미니즘의 미래.
4. 어린이날
북플에는 페이스북과 비슷하게 작년의 기록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는데, 오늘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지난 어린이날의 기록이 보였다. 나는 지난 어린이날에 파주 지혜의 숲에 갔고, 아이들이 늦잠 잘 때 도서관에 연체한 책을 반납하러 갔고,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었더랜다. 오늘은 어린이들 없이 어버이날 행사 1건을 마쳤고, 집에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공짜 커피 쿠폰 쓴다는 핑계로 외출했다. 책 읽을 시간이 없을 게 뻔한데도 굳이 책을 챙겨가는 자세.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모임에 대한 진지한 마음. 어제 조나단 글에 대한 댓글에서, moonnight님이 조나단을 선물로 주셔서 더욱 뜻깊은 어린이날이 되었다. 꼭 5월 5일에 올리고 싶어 급하게 썼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어린이날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