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명은 ‘뽄내미’였다. 한평생 뜻을 몰랐는데 혹시나 하고, 방금 네이버에 물어보니 1) 멋쟁이의 전라도 방언이며 2) 얌체처럼 좋은 것만 골라 취하는 행위나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이라고 한다. 먹을 것들 중 좋은 것을 '고기'라고 생각하면, 별명은 적당하다. 명절에 큰댁에 모일 때면, 나는 여자상이 아니라(그런 구별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남자상에서 밥을 먹었다. 서열 1위 큰어머니와 큰아버지께서 “**이는 이리로 와!” 하시면 자연스레 남자상 앞에 자리를 잡았고,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 역시 큰어머니께서 고기반찬을 내 앞으로 옮겨 주셨다. 아이고, 뽄내미. 이거 뽄내미 앞에 놔 줘야지. 얼른 먹어라. 나는 고기만 먹는 육식 인간이었다.
결혼했는데 남편은 채식 인간이었다. 뷔페에 가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담아 자리에 마주 앉으면, 네 접시가 내 접시고, 내 접시가 네 접시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니, 하는 의문을 우리 둘 다 가졌다. 샐러드에 올리브 절임, 버섯볶음과 가지구이를 담아오는 남편과 소갈비에 육회, 치킨과 깐풍새우를 담아오는 아내였다. 고기를 좋아했지만, 남편이 고기를 즐기지 않으니 아무래도 고기 먹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뽄내미는 잡식 인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큰아이는 무엇이든 잘 먹어 쑥쑥 자랐고 사람들은(아이가 키가 작아 걱정이 많은 엄마들은) 쑥쑥 자라는 큰아이에게 무얼 먹이느냐 간절하게 묻곤 했는데, 뭔가를 특별히 먹이지는 않았다. 큰아이는 가까이 사시는 엄마가 해주시는 반찬을 맛있게 잘 먹었다. 가리지 않고 먹다 보니, 내가 해주는 실험정신 가득한 음식들도 맛에 상관없이 잘 먹었다. 그랬던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책을 두 권 정도 읽고 나서 ‘오늘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고기와 생선, 우유와 달걀. 나는 엄마니까, 먹여야 하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하든 아이와 타협을 해야 했다. 쉽지 않았다.
작은 아이는 나를 쏙 빼닮은 육식 인간이어서 스테이크, 갈비, 장조림, 삼겹살 구이, 치킨, 닭도리탕, 훈제오리, 햄버거, 치킨버거, 치킨너겟, 소시지, 햄, 스팸 그리고 스시를 모두 좋아한다. 나는, 내가 물려준 식성과 매일 싸운다. 다행히(?) 작은 아이가 열네 살이 되자 ‘여드름’이라는 지원군이 나타났고, ‘여드름’을 핑계로 아이의 육식 섭취를 조정하는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역시나 쉽지 않다.
『육식의 성정치』를 읽고 나서, 소고기에 거부감이 생겼다. 아예 못 먹는 건 아니지만, 즐겁지 않다. 스테이크 종류는 더 심하다. 채식을 실천하려고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단번에 육식을 끊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있다. 치킨을 먹고 햄버거를 먹고 우유도, 달걀도 먹고 있으니까, 실제로는 아직 육식 인간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고기’ 그 자체로는 구입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육식인간 작은아이가 먹을 것만 최소한으로 구입하고 있다. 다른 식구들은 그런 식단에 큰 반항이 있는 건 아니어서,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더 다양한 채식 식단이 가능할 텐데, 그게 또 쉽지가 않다. 더 자주 시장에 가야 하고, 틈틈이 냉장고를 살펴봐야 하고, 냉동식품을 사지 말아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요리에 할애해야 한다. 전부, 내가 싫어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채식 실천은 이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보다 효율성이 높다. 피할 수 없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전통식 식사라면 굳이 채식 위주 식단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고기반찬 한 가지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채식이다. 문제는 우리네 식단이 이미 전통식에서 상당히 벗어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
눈이 많이 내렸다. 토요일에 도착한다는 『육식의 성정치』가 제때 올 수 없을 것 같다. 눈이 많이 내렸으니 어쩔 수 없다. 기다리면 책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