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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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레 케르테스는 운명 4부작’ 『운명』, 『좌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청산』의 저자다. 『운명』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나이트』(엘리 위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프리모 레비)에 이어 네 번째로 읽는 홀로코스트 이야기다.

 


열네 살 소년 죄르지 쾨베시는 노동 봉사 명령에 따라 체펠 섬으로 일하러 가던 중, 유대인은 내리라는 명령에 따라 버스에서 내린다. 이 곳, 저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큰 도로에서 만나게 되고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보내진다. 그들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를 지나 부헨발트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다시 차이츠 수용소로 보내져 노역을 하게 된다. 쾨베시는 그날의 노동 뒤 점호 전까지 잠깐의 휴식 시간을 온종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뎌낸다. 독일 나치군의 패전으로 일 년 만에 부다페스트로 돌아오지만, 강제 동원된 아버지가 죽은 것 같다는 소문과 새어머니가 가게 일을 돌봐주던 쉬퇴 아저씨와 재혼했다는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쾨베시에게 비극이 찾아왔던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유대인이라는 공동체에게도 너무나 가혹했던 비극은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 일어난다. 일상적이고 평범했던 어느 날, 삶을 송두리채 휘몰아치는 거대한 비극이 시작된다. 세월호 아이들이 생각났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도 생각났다. 엄마아빠가 따로 챙겨준 용돈을 지갑에 넣고 친구들과 셀카를 찍으며 즐겁게 떠났던 3 4일 제주도 수학 여행길에서 아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 했다. 어른보다 습도에 민감한 아기를 위해 일부러 구입한 가습기 살균제가 예쁜 아기의 폐를, 몸이 약해진 산모의 폐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다시는 눈 뜨지 못했다. 쾨베시에게도 비극은 그렇게 찾아온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 유대인들만 버스에서 잠깐 내리라는 경찰의 안내. 한없이 착해 보이는, 약간은 어리숙한 경찰관. 경찰관의 손짓에 그를 남겨두고 출발하는 버스. 그렇게 지옥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또 한 가지는 비극이 완성되어 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강제 노역에 처해지는 혹은 그대로 가스실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비극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떻게 참아냈을까.

 


나는 그에게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수긍할 수 있고 깨끗하고 멋진 역에 도착하는 것이 정말 생소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단계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이해된다. 하나의 단계를 거치면 다음 단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단계를 거치고 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일을 처리하고 살아가고 행동하고 움직이고 새로운 단계마다 새로운 요구 사항을 완수해 나간다. (269)

 

 

유대인임을 확인하는 노란별을 외투에 달고, 통행 허가서를 발급받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자신 명의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다. 강제 노역 동원령에 따라 집합 장소에 모이고, 기차를 타고 수용소에 도착한다. 화장터로 향하는 길에서도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신발끈을 묶어 신발이 따로 돌아다니지 않게 한다. 나중에 찾기 편하도록 옷을 걸어둔 옷걸이 번호를 입으로 소리 내어 외우고, 비누를 받아 샤워실로 들어간다. 그 곳은 샤워실 일수도 가스실 일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진다. 하나의 단계를 거치면 다음 단계가 이루어지고, 각 단계마다 해야하는 일을 하다 보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렇게 비극이 한 걸음씩 다가올 때 사람들은 최후까지 알아차리지 못 한다. 되돌이킬 수 없는 항구적인 정지 상태,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극은 완성된다.

 

 


옮긴이는 <해설>에서, 수용소 생활에 대한 차분하고 객관적인 묘사, 독일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후반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행복에 대한 고백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이 대신 화내게 하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분석한다(295). 내 생각은 다르다. 임레 케르케스가 의도적으로 유대인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온전한희생자가 되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절대악에 희생당한 완벽하게 순수한 피해자. 스스로를 그렇게 이해한 유대인들에게 극악무도한 독일 나치군의 범죄와 행복이라는 단어는 절대 공존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아들과 딸을 화장터 굴뚝 아래에서 잃어야했던 유대인들이 엄혹한 수용소 시절에도 작은 행복을 느꼈다고 말하는 임레 케르케스에게 분노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남겨진 사람은 또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고, 때가 되면 밥을 먹게 된다. 미안하게도, 너무 사치스럽게도 커피가 마시고 싶다. 그리고는 커피를 마시게 된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견뎌야 하고 버텨야 한다.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 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284)

 


참혹한 과거를 잊으라는 사람들에게, 잊어야만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사람들에게 임레 케르테스가 말한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경험한 일들, 나의 과거가 내 운명입니다. 우리 자신이 곧 운명입니다.

 

그의 말을 따라해본다. 내 과거가 바로 나에요. 내 인생이 내 운명이구요.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된 거에요. 나 자신이, 바로 나의 운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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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9-24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서는 숭고한 것이지만 과거를 잊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말에서 성숙한 영혼을 봅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0-09-25 20:09   좋아요 1 | URL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이 있어야겠지요. 작가는 자신에게 다가온 절망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다시 밤이 되었네요. 파이버님도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다락방 2020-09-25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을 한 이십년 전에 읽은것 같거든요. 물론 다른 판형이었죠. 홀로코스트에 대해 다뤘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응당 분노가 타올라야 할것 같은데, 덤덤한 분위기라서 책장을 덮고 나서도 흐음, 뭘까, 뭘까 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읽는다면 제가 어떤 느낌을 받을지 모르겠어요.

단발머리 2020-09-25 20:14   좋아요 0 | URL
20년 전이라면!?! 정말 아주 예전이네요.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거 같아요. 먼저는 저자의 담담한 어조 때문인 것 같고요. 그런 구절도 있거든요. 독일인들은 유대인에 대해 적대적인것 빼고는 참 사람들이 깔끔하고 정직하고 괜찮다....
이런 부분에서 사람들이 다락방님처럼 이거 뭐지? 라고 반응하거나 유대인처럼 아니, 이게 뭐야!! 하면서 분노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그때와는 다른 게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Falstaff 2020-09-25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르테스의 작품 중에서 읽기에 제일 수월했습니다. 작가가 어떻게 썼든지간에 그냥 종이에 적혀 있는대로 읽었는데요, 세상에 하도 많은 사람이 있어서, 이런 소년도 있었구나, 뭐 그런 식으로요.
사실 당시, 1944년도에 10개월 동안 부헨발트에서 소년이 살아남았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케르테스는 기적이었던 걸로 압니다. 당시 부헨발트의 코흐 소장의 아내 ‘일제 코흐‘는, 유대인의 가죽을 무두질해서 책의 장정을 하고, 전등 갓을 만들고 하는 엽기적 취미가 있던 여자로, 2차 대전 이후에 ‘아돌프‘란 남자와 함께 ‘일제‘라는 여자 이름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게 했을 정도니까요.
저는 그런 상처를 지닌 작가가 소년 시절을 되돌아보며 될 수 있는대로 딱 본 것, 느낀 것만 솔직하게 쓰지 않았을까, 했었나봅니다.

단발머리 2020-09-25 21:31   좋아요 0 | URL
Falstaff님은 케르테스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셨군요! 이 책이 비교적 쉽게 읽히는데 그 점이 사람들을 좀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좀 담담하고 무미건조하다고 할까요?
전 ‘일제 코흐‘에 대한 이야기는 언뜻 들었는데, 그녀가 부헨발트의 코흐 소장의 아내인줄은 몰랐어요. 케르테스는 기적적으로 살아났군요. 제가 읽었을 때는, 그래도 아우슈비츠보다는 나았구나, 라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사람들이 내게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라는 작가의 말이 전 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딱 본 것, 느낀 것만 솔직하게 쓴게 아닐까, 라는 Falstaff님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Falstaff 2020-09-25 21:17   좋아요 0 | URL
오, 단발머리 님, 이왕 홀로코스트 소설 읽으신 목록에 아쉽게도 <소피의 선택>이 빠졌습니다. ^^;;
그냥 한 번 읽어보세요. 읽고 난 다음에 괜히 읽었다, 라고 생각하시면 즉각 저한테 말씀하세요, 책값 물어드릴께요.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9-25 21:31   좋아요 0 | URL
오홋!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대로 <소피의 선택>을 꼭 찾아 읽어볼께요.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은 <안네의 일기>와 비슷하네요.
괜히 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지만 혹여 그런 일이 생긴다면.... 결단코, 반드시, 꼭 Falstaff님께 말씀드리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9-25 22:50   좋아요 0 | URL
그럼요, 책 읽는 작자들한테 책에 관해 농담은 없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정말? 이라고 묻지 마세요. ㅋㅋ

단발머리 2020-09-26 15:54   좋아요 0 | URL
<소피의 선택> 표지에서부터 아주 인상적이네요. 작가 이름도 처음 들어봤어요. 윌리엄 스타이런이 또 올해의 선택이 될까 기대됩니다. 즐거운 추석 명절 되시기 바래요, Falstaff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