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 단톡방은 DDD이다. 책 이야기부터 시작해 늦은 퇴근의 애로사항과 짬뽕사진이 오가는 정겨운 곳인데, 얼마전에는 추억의 영화 열전이 펼쳐졌다. 좋아하는 배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됐다. <토탈 이클립스>에서는 랭보의 시보다 아름다운 그의 꽃미모가 20여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선명하게 피어나는데, 관련 동영상을 한 편 보고나니 영리한 유튜브는 디카프리오의 다른 영상도 재빠르게 찾아준다. <로미오와 줄리엣>, 기절의 어항신을 감상하고 나니, 이번엔 <타이타닉>. 20분짜리 클립을 감상하는데 로즈와 그녀의 어머니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영화를 봤지만 기억나지 않는 장면이다.
로즈의 어머니가 딸에게 요구하는 건 신사(로 보이는) 칼과 결혼하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넌 내가 하녀로 일했으면 좋겠니?라는 물음은 그런 전제하에서 나온다. 어머니의 협박에 로즈가 답한다. 불공평해요. 당연히 불공평하지. 여자로 태어났잖니. 애정없는 결혼보다 자유롭게 숨쉬게 하는 진정한 사랑의 선택으로 귀결시키기 위한 설정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농경문화의 정착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여성은 정치적, 경제적 교환의 수단 중에 하나였음을 이 평범한 대사가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는 여성의 이러한 공통된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일부 여성들의 ‘푸념’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여성의 신체, 지적인 능력, 지구력, 판단력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왔기에 여성 스스로도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스스로의 판단에 대해 항상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개인으로서의 자기 자신,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찾으려 했던 여성은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기적인 여자의 다른 말은 ‘미친 여자’이다.
여성이 이미 너무 많은 권리를 갖고 있는 미국에서는 근본주의자들이 우리 사회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공유산 시술 병원과 의사에 대한 테러 공격에서 볼 수 있듯이 인공유산권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은 종교 전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1장에서 지적했듯이, 인공유산 반대 운동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수사들은 여성이 태어날 아이의 욕구보다 자신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결정을 하는 데 대한 분노가 바탕이 되고 있다. (279쪽)
암컷 종으로서의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에게 ‘이기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도 대부분은 개인적이라는 이유를 붙인다. 그래도 걔는 좀 심해. 아이를 싫어하는 여자라니, 그게 말이 돼? 이런 식의 생각, 이런 표현이 여성을 어머니로 혹은 어머니로만 묶어 두는데 공공연히 작동한다.
I say this because I‘m still working out that accusation, which was leveled against me many times by my husband as our marriage was collapsing -selfishness. Every time he said it, I agreed completely, accepted the guilt, bought everything in the store. My God, I hadn‘t even had the babies yet, and I was already neglecting them, already choosing myself over them. I was already a bad mother. These babies-these phantom babies—came up a lot in our arguments. Who would take care of the babies? Who would stay home with the babies? Who would finally support the babies? Who would feed the babies in the middle of the night? (102)
아이를 낳은 후 나쁜 엄마가 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아이를 너무 사랑해도 너무 사랑하지 않아도 나쁜 엄마다. 길버트는 아이를 낳지도 않았는데 나쁜 엄마가 되었다. 그녀의 전남편에 따르면 그랬다.
일상이 그리워 돌아온 한국은 일상적이지 않았다. 허가를 받고 출국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하거나 내려서 바로 호텔 격리를 당한 한국인에 대한 뉴스를 듣고 본 사람들이 잘 다녀왔다고 얼마나 다행이냐고 인사를 건네주었다. 네~ 하고 웃기는 했는데 사실 우리는 예정보다 4일 먼저 출국했다. 우리 가족이 속했던 월요팀 출발이 취소되어서 그 앞주 목요팀 빈자리에 가게 되었는데, 코로나가 두려워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가지 않기로 했다면 그 팀도 출발 취소되었을 것이다. 4명이 더해져 그 팀이 출발할 수 있었고, 우리를 기다린 14명이 있어 우리도 고대하던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캐리어를 찾은 뒤 인사를 나누러 다가갔을 때, 송파 둘째 언니(6자매 2째 언니)는 함께해서 기뻤다고, 덕분에 즐거웠다고 손을 꼭 잡고 말씀해주셨다. 고마운 마음, 내가 언니를 좋아하는 마음도 언니에게 전해졌으리라.
지나친 걱정과 불안이 우리 속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언론을 탓하고 싶다. 불안과 괴로움의 자기복제가 바이러스의 창궐보다 더 무섭다. 두려워하는 사람들 마음 속의 불안이 한없이 안타깝다. 쉽게 희망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모두 희망을, 내일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4명 더해 양가 부모님들, 검사 받으러 가지 않게 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포화 상태의 업무를 간신히 감당하고 있는 질본에게 도와달라 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로 지친 의료진들에게 나 좀 봐 달라 하지 않는 것. 그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다.
2월 28일 저녁. 저녁을 먹었고 설거지를 마쳤다. 내일은 선물 같은 날, 2월 29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