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가 지적했듯이 노동윤리는 개인화의 담론이다.(90) 





우리는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청교도 윤리에 근거한 답을 내놓는다. 일하지 않는 먹지도 말라.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혜택과 권리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노동이 담당했다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 





다시 말해, 도덕적 책임은 이제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에게 놓인다. 부자든 빈자든 똑같이일하지 않고서는 먹어서는 된다”.(159-160) 명제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임금노동이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널리 적용되었다. 또한 명제는 먹고사는 일의 규범이 가장 아니라 모든 성인 시민에게 요구되는 점점 보편적인 규범이 되면서 더욱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합당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의존의 사례가 점점 들어들면서남아 있는 의존은 무엇이든 개인의 잘못으로 해석될 있었다.”(Fraser and Gordon 1994, 325) 독립은 사람이 처한 관계의 유형에 달린 것이라기보다는 개인 인품의 자질에 달린 것이 된다.(322) 따라서탈산업화 시대의 의존 점점 합당치 못한 것이 되면서, 동시에점점 개인화되었다.(325) (90)  





위에 따르면 일하지 않고 먹는 자들은 비난 받아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난은 종국적으로 그들 자신의책임이라는 일부 부자들의 주장이 더욱 힘을 받게 된다. 



2016, 기본 소득에 대한 스위스 국민투표는 76.9% 반대로 부결되었다. 국민의 근로의욕 저하와 국가경제 잠식, 높은 금액의 기본소득으로 이민자들의 스위스 유입에 대한 우려, 세금 증가 등의 이유가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일하지 않고 지급받는공짜 대한 저항감이 컸다. 핀란드,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혹은 지방 정부를 통해기본 소득 대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해야만, 일한 후에야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 그것도 아주적은 만을 원하고 있다.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임금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인간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활동들이 존재한다. 모든 활동을 의무, 여가활동 또는 없는 사람들의 소일거리로 규정했을 , 모든활동 결과물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일례로 4 가족, 남성 외벌이의 경우, 가정의 주된 수입원은 일하는 남성이다. 가정의 생성, 존속 또는 유지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오로지 가정, 개인이 감당한다. 성실한 노동자가 다음날 직장에 출근해 맡겨진 일을 있기 위해 필요한 정서적, 물질적 지원은 그의 월급에 포함되지 않는다. 회사는 오로지 그가 직장에서 노동한 시간, 일한 시간만을 계산해 지급할 뿐이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돌보고,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모두 개인의선택으로만 단정하는 극단의 현실은존속과 유전자 전달 숙명을 가진 유전자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인류 출현 최초로 가장 강력한 비율의 저출산 현상이 대두되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람과 기쁨을 얻는 근간이 오로지’, ‘직업뿐이라고 단정할 , 우리의 많은활동 쓸데 없는 일이 된다. 병원에 입원하신 큰어머니를 방문하거나 5 조카와 놀아주는 .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는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아이 손을 잡고 함께 공원을 거니는 . 새로 생긴 맛집에 가족과 함께 가거나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 처음으로 악기 연주를 시작해보는 .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소중하고 멋진 일들은월급 받을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이라고 정의하는활동 범위를 극단적으로 확대하지 않는 , 이전의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 많이 일하고, 열심히 일해서, 내가 돈으로 생활하겠다, 소박한 소망은 장시간 노동, 위험한 근로환경, 저임금으로 되돌아올 밖에 없다. 




가사노동은 젠더화되어 있다. 여성이 주로 맡고 있는 영역의 직업군에 저임금이 흔한 이유다. 영유아 어린이집 교사, 간호사, 전문 간병인 등의 돌봄 노동자, 가사 노동자들의 일이 중요하지 않거나 힘이 적게 들어서가 아니라, 주로 여성들이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노동 강도에 비해 저임금이 지급된다. 사랑과 희생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가사노동은 말할 것도 없다. 




기본소득은 가사임금 요구를 계승하는 기획(229)으로서 의미가 있다. 





기본소득은 개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가족이나 가구 구성, 다른 소득 여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소득이다.(van Parijs 1992, 3) 기본소득은 소득이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게끔 바닥 수준을 정립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임금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더라도 지금의 조건과 상태에 의존할 있게 것이다. (217)  





만약 오늘 당장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어떤 사람들이 가장 먼저 혜택을 받게 될까. 성인을 기준으로 경우, ‘남편 돈으로 편하게 놀고 먹는다 전업주부와 이미 십여 전에 자식과의 모든 연락이 끊겼지만 복지혜택 사각지대에 엄연히 존재하는 독거노인과 가족 사람이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어 그를 돌봐줘야 하는 사람, 취업 준비생, 휴직 상태에서 이직을 꿈꾸는 사람, 원치 않은 권고사직을 당한 새로운 인생후반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무상 급식,이라는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에도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국민들을 갖가지 말로 위협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흐름은 확고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고등학교 3학년 무상 급식이 시행되고 있고, 올해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확대된다. 고교 무상 교육은 지원자가 적어 운영이 어려운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델라 코스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매점도, 보육시설과 세탁기, 식기세척기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권을 원하기도 한다. 우리가 원할 소수의 사람들과 사적으로 식사하는 , 아이들과 어르신들과 아픈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언제 어디에서 할지 선택할 있기를 원한다.” 선택권을 가지려면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갖는 적게 일하는 것을 뜻한다.(Dalla Costa and James 1973, 38) (199) 






완벽한 외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삶에 연결되어 있다. 예상할 없는 일들로 인해 삶이 총체적 위기에 처했을 돕는 손길이 필요하다. 친구의 불행은, 친척의 슬픔은 내게도 영향을 미칠 밖에 없다. 일을 개인의 일로만 남겨두어서는 된다. 4 혁명으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로봇이 우리가 했던 많은 일들을 대신하게 , 남겨진 간에 우리는 무엇을 것인가. 생산만 소비하지 않는 로봇이 경제에 어떠한 활력도 제공할 없을 , 인간 이외에 누가 소비의 주체가 것인가. 때에 가서야 노동과 생산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상의 정립을 시작한다면 그건 너무 늦은 아닐까. 



노동 시간 축소, 일자리 확대 그리고 기본 소득. 그에 더해 일하지 않아도, 당장 버는 일을 하지 않아도먹어도 된다 생각. 이렇게나 오래, 열심히 일하는 사회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있게 하는 열쇠가 바로 이것들이다.  






정치 이론에서 일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로 짚어 둘 만한 것은 최소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내가 ‘일의 사유화"라고 부르는 현상 때문이다. 서두의 두 인용구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일과 가정 모두에서 그 권력관계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데 대체로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흔히 고용관계를 - 결혼관계에서처럼 - 사회제도로서가 아니라 독특한 개별 관계로서 경험하고 상상한다. 이는 결혼관계와 마찬가지로 고용관계의 사적 측면을 보장하는 사유재산 제도를 통해 일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을 사유화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 역시 짚어 보아야 한다. 13

노동윤리가 설파하는 노동신화에 기대지 않고, 페미니즘은 무급 형태로 이뤄지는 재생산노동이 폄훼되고 주변화되는 것에 어떤 식으로 맞설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는 단순히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혹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여성화된 무급노동의 가치를 재고하는 데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런 노력 탓에 여성의 무급노동이 신성화되는 것에도 반기를 들어야 한다. 29

노동 거부의 결정적 핵심이자 본질적 연결 고리는 사유재산도, 시장도, 공장도, 창조적 역량의 소외도 아닌, 바로 노동을 자본주의적 관계의 제1의 기초로, 시스템을 지탱하는 접착제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어떤 의미 있는 전환도 노동의 조직화와 사회적 가치에 대폭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159

라파르그는 "유용함이라는 자본주의 강령"을 멸시하고 노동시간이 3시간으로 단축되면 그제야 노동자는 "게으름의 미덕을 실천하기 시작할 수 있을것이라고 주장한다.(41, 32) "오, 게으름이여, 예술과 고귀한 미덕의 어머니여"(41)라는 열정에 찬 라파르그의 헌사는 말할 것도 없이 콜라코브스키와 같은 겉보기에 보다 진지한 마르크스 연구자들과는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161

이 책에서 더 많은 일보다 더 적은 일을 선호하는것이야 명백할 것이다. 더 많은 일에 대한 요구는 개인이 생계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 일일 때에는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적은 일에 대한 요구 역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더 적은 일과 더 나은 일에 대한 요구 사이의 관계, 그리고 어째서 적어도 상대적으로 후자를 무시하면서 전자에 초점을 맞추는지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이 긴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168

페미니즘에 대한 학술 연구의 영역에서 보자면, 하나의 페미니스트가 다른 페미니스트에게 물려주는 유산은 쌓아 놓은 저술이라기보다는 일생의 작업이다. 이런 주체화된 틀에서 저자는 저술에 우선한다. 유산은 정치적이며 동시에 개인적인 것이며, 개인적 저술의 패러다임을 상회하는 이론과 전략, 전망이 아니라 의식과 경 험, 욕망, 특정 개인의 헌신으로부터 생겨난다. 변증법 모델이 과거를 현재로 이끄는 단계 또는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취급한다면, 가족 모델은 과거에 경의를 바친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존경해야 할 어른,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여기는 것이다. 186

가사임금 관점이 호소력을 주는 주된 요인 중 하나는 말할 것도없이 그 탈자연화 효과에 있다. 여성의 본성에 뿌리 내린 자발적 욕망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여성이 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낳는다. 가사임금 요구의 가치를 이런 측면에서 강조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 요구로 우리 본성이 끝나고 우리 투쟁이 시작된다. 205

그저 가사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 본성의 표출로서의 일을거부하는 것을 가리키며, 그리하여 자본이 발명한 바로 그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Federici 1995, 190) "여성성과 동일시되는 행위에 대해 가사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탈동일시의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가사임금을 요청하는 것조차 이미 우리가 곧 그 일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Edmond and Fleming 1975, 6) 그리하여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적 동일시를 깨뜨리는 힘을 얻는 만큼" 여성들은 적어도 "우리가 누군가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다.(1976, 8, 강조는 저자 추가) 206

노동 거부의 정치와 연결되려면, 가사임금 요구에서도 그랬듯이, 보장되는 소득이 충분히 커서 임금노동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일 가능성에 가까워질 수 있어야 한다.(다음을 참조. McKay 2001, 99) 기본적 필요를 채울만큼 충분한 소득이 보장된다면, 임금노동을 완전히 거부할 수 있거나, 추가 소득을 원할 대부분에게는 더 나은 고용 조건을 협상할 수있는 더 우세한 지위가 주어질 것이다. 보장되는 소득이 임금에 더해지는 소액에 그친다면, 불안정 고용을 지원하고 현재의 임금 시스템을 정당화해 줄 위험이 있다. 기본생활소득으로서 그 돈으로 생활하기에 적절한 수준일 때, 기본소득은 현재 노동사회의 조건에 실질적인 파열을 일으킬 것이다. 218

페미니스트들은 매일의, 그리고 다음 세대의 유급 "생산"노동을 가능케 하는 대체로 무급인 "재생산"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노동임을, 고로 이 노동을 둘러싼 관계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적 일부임을 주장했다. 여가eisure라고 분류되어 왔던 것이 실은 일이었다. 그리고 여성의 본성이 자연스럽게표출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 실은 숙련된 활동이었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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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22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짝 (기립박수)

멋진 글 적어주셔 감사합니다, 단발머리님.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을 얼른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짐작하신대로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어지나요??(초롱초롱)

그리고 인용하신 부분들의 페이지수를 보니, 제가 오늘 소설책을 들고 나온게 살짝 민망해지는군요. 흐음...
저도 이 소설책만 다 보는대로 다시 1월의 도서로 돌아가, 단발머리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글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곧 2장,3장에 대해 글을 적겠다던 겟타님은 왜 소식이 없으실까요?

단발머리 2020-01-22 15:07   좋아요 1 | URL
멋지지는 않지만 아무튼 하나의 페이퍼를 완성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짐작한대로 뒤로 갈수록 재미있어지고 읽기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정확히는 <3장 일하기의 요구 : 가사임금부터 기본소득까지> 179쪽부터입니다. 전 아무래도 전업주부다 보니 가사노동, 부불노동에 대한 부분이 관심이 많아서 더 쉽게 느껴지는 것 같구요.

다락방님의 글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겟타님은.... 흐흠.... 일단 제가 그 방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블랙겟타 2020-01-22 15:41   좋아요 0 | URL
갑자기 제가..언급이.. ㅋㅋㅋ
저의 시간 속의 ‘곧’이랑 여러분이 생각하는 ‘곧’의 차이가 조금은 있어요..(변명 아닌 변명...)
근데 결국은 이렇게 언급된 관계로 제 생각보다는 빨리 쓸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20-01-2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어요. 지금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요. ㅋㅋ
그래서 이 책에서도 기본소득이 언급이 되는게 반가웠어요.
잘 읽었습니다. 단발머리님 :)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생각을 좀....(・-・))

단발머리 2020-01-22 16:39   좋아요 1 | URL
잘 이해한 건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글을 썼네요.
겟타님 글을 기다리면서 이제 좀 쉬어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부담은 갖지 마시구요^^

공쟝쟝 2020-01-2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8페이지!! (64페이지 읽고 신났던 저를 반성합니다) 달라코스타가 너무 반가워요!!

단발머리 2020-01-24 11:55   좋아요 1 | URL
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어서 오세요~~~~~!!!!

서니데이 2020-01-2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단발머리 2020-01-24 14:37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기 바래요.

syo 2020-01-2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치고 간 글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리고 그런 글들은 또 왜 이렇게 잘 쓰신 거야.....

반성의 시간입니다.

단발머리 2020-01-29 17:35   좋아요 0 | URL
반성하지 마시고요~~~ 아니지, 반성의 의미로 페이퍼를 내놓으신다면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