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세상을 남녀로만 보냐고, 여자들의 지나친 피해의식이 모든 걸 망치고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여성주의,를 말하는 여자들은 별난 여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하나의 계급으로 존재하며 그것이 실제로 내 삶을 옥죄어왔다는 사실을, 여성주의책을 이만큼이나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됐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반전(反戰)과 자유와 평등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1968년 5월, 남성들과 나란히 바리게이트를 치고 함께 싸웠던 여성들은 그들의 투쟁 속에서 성차별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것이 제2물결 페미니즘을 형성한 동력이 되었다. 투쟁의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이 청년문화 속에서조차 ‘동지인 줄 알았던’ 남성들의 성적 대상에 불과하거나, 비서 혹은 요리사의 역할을 요구받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평등과 진보를 외쳤던 남성 동료들이 자신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285쪽)
투쟁의 과정에서 함께한 남성들이 자신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던 평등과 진보의 자장에 여성들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여성들은 절망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출간되었을 때, 좌우의 지식인들은 책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과 공격에 한 목소리로 임했다. 이 때 지식인이란 말의 뜻은 남성이라는 의미다.
2019년 7월 20일자 <"내 인생에 행복하고 바쁜 시간" ...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 토요판 인터뷰 기사에서 최영미 시인은 성폭력을 고발하며, "운동권도, 문단도 다 똑같아"라고 말했다.
최 시인은 운동권 시절 합숙을 하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새벽까지 회의하고 한방에서 다 같이 자고 다음날 새벽부터 포스터 붙이러 나가고 그랬거든요. 게다가 그 시절에는 그런 일이 흔했고요. 그래도 문단 사람들은 안 그럴 줄 알았어요. 고상한 사람들일 거라는 환상이 있었어요. 근데 다 똑같더라고요. 제가 불쾌함을 표하면 다들 나보고 까칠하다고, 그런 것도 못 받아주냐고, 그러면서 무슨 시를 쓰냐고. 저도 처음엔 그들의 말이 맞나, 반신반의할 정도였어요.”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02602.html#csidx4480cae20ddff9b947be4a7c554f242
모두 다 똑같아, 라고 말하면 너무 나이 들어 보일 것 같아 싫은데, 현실은 모두 다 똑같은것 같아 마음이 울적하다. 성추행하려는 손을 거부하는 시인에게, 여성 시인에게, 그러면서 무슨 시를 쓰냐고 말했던 그런 감성의 남성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마음이 울적할 때는 책 구입. 최영미 시집 사러 가야겠다. 현재까지 4쇄에 8천부.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해 최영미 시인이 직접 출판 등록을 하고 만들어낸 첫번째 책이다. 『다시 오지 않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