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이여,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으시길.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 말할 수 없이 간단히 – 빨리, 더 빨리,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리 –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곱게 바느질하는 데 쓰자. 자연과 대화하고, 테니스를 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자.(31쪽)
읽고 싶었던 책은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 개정판』이고, 실제로 내가 읽은 책은 구판이며, 이 책을 읽게 된 건 『육식의 성정치』 때문이다.
나는 모든 페미니스트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페미니스트라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맞닥뜨릴 순간이 한 번쯤은 찾아올 거라는 걸 안다. 오랜 시간, 나는 그 순간을 회피해왔고, 결전의 순간을 애써 외면해왔지만, 육식 vs 채식의 외나무다리에서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육식의 성정치』가 내게는 그런 책이다. 『육식의 성정치』는 『여성성의 신화』만큼, 『혁명의 영점』만큼, 『여자는 인질이다』만큼 충격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하루에 세 번씩 남편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자기야, 스테이크나 삼겹살, 삼계탕 없이는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야. 맥스파이시 상하이버거랑 닭강정, 김치만두는 포기 못 할 거 같아. 나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지금 당장 채식주의를 실천해도 식단의 변화가 전혀 필요 없는 1인은 한 마디 말이 없다.
맘에 쏙 드는 구절은 바로 여기.
어떤 사람에게 음식은 생활에서 가장 흥미롭고 흥분되며 마음을 사로잡는 주제이다. 그런 사람들은 음식 중독자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음식이 사소한 부분이다. 나도 그 부류에 속한다. 가끔 다른 이들처럼 좋은 것을 먹으며 즐거워할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12쪽)
나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생활에서 음식이 사소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 나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좋아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며, 잘 만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헬렌 니어링이, 나도 그런 부류다,고 말할 때 나는 반갑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내 요리책에 포함될 조리법은 가능한 한 밭에서 딴 재료를 그대로 쓰고, 비타민과 효소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낮은 온도에서 짧게 요리하고, 가능한 한 양념을 치지 않고, 접시나 팬 등의 기구를 최소한 사용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기로 결심했다. 음식은 소박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또 날것일수록 좋고, 섞지 않을수록 좋다. 이런 식으로 먹으면 준비가 간단해지고, 조리가 간단해지며, 소화가 쉬우면서 영양가는 더 높고, 건강에 더 좋고, 돈도 많이 절약된다. (19쪽)
나는 이런 식의 소박한 밥상을 추구한다. 원하지 않지만, 그런 스타일을 추구하게 되었다. 내가 개선할 지점은 조리법에 관한 것인데, 프라이팬을 이용해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이들은 기름기 가득한 요리에 길들여지고 말았다. 날것으로, 섞지 않고 조리하는 밥상을 추구하고 싶으나, 아이들은 ‘나를 챙기는 한 끼 식사– 햇반/컵반’과 친해지고 말았으니, 한 달 동안 엄마가 병원으로 내달렸기 때문이다. 메뉴 다각화는 선택의 기쁨으로 이어져 큰아이는 육개장국밥, 고추장나물 비빔밥, 강된장보리 비빔밥, 버섯곤드레 비빔밥을, 작은아이는 치킨마요덮밥, 스팸마요덮밥, 버터장조림 비빔밥, 고추장 제육덮밥, 옐로우크림 커리덮밥을 좋아하는 청소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날것으로 섞지 않고 조리하는 밥상이 햇반/컵반을 이길 수 있을까. 이겨야 할텐데. 이길 수 있을까.
라떼를 좋아하는 나에게 특히 마음 아픈 구절은 68쪽. “젖은 동물 새끼가 먹을 음식이다. 알 속의 양분은 부화할 새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젖과 알 모두 인간 어른이 먹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을 포함하는 챕터 전체. 인간 어른으로서, 나는 이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완벽한 실천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성의를 표시하는 차원에서 라떼의 우유 선택을 두유로 변경하기는 했다. 작은 시작이다. 매우 작지만 일단 시작이기는 하다. 작은 시작, 작은 실천.
흔히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이라고 한다(혹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요리하는 여성이 아니다. 나와 생각이 같은 다른 여성들을 위해 한마디하자면, 나는 여성이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화덕 앞에 머물며 음식을 만들고 가사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지금 당신이 다른 어떤 것을 하는 것이 더 나은데도 그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은 바로 ‘고역’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요리보다는 좋은 책 읽기 (혹은 쓰기), 좋은 음악 연주, 벽 세우기, 정원 가꾸기, 수영, 스케이트, 산책 등 활동적이고 지성적이거나 정신을 고양시켜 주는 일을 하고 싶다. 음식 만들기에는 시간을 최소한 투자하고, 밖으로 나가든지 음악이나 책에 몰두하고 싶다.(24쪽)
독자들이여,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으시길.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 말할 수 없이 간단히 – 빨리, 더 빨리,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리 –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곱게 바느질하는 데 쓰자. 자연과 대화하고, 테니스를 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자. 생활에서 힘들고 지겨운 일은 몰아내자. 요리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요리가 힘들고 지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좋다. 가서 요리의 즐거움을 만끽하면 된다. 하지만 식사 준비가 고역인 사람이라면 그 지겨운 일을 그만두거나 노동량을 줄이자. 그러면서도 잘 먹을 수 있고 자기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1쪽)
지금 고기를 안 먹는 남녀를 보면 기이하듯, 고기를 먹는 남녀를 보면 기이하게 여기는 때가 올 것이다. 랠프 왈도 트라인, 살아 있는 모든 것 Every Living Creature, 1899 (75쪽)
언젠가 동물 살해를 인간 살해와 똑같이 보는 때가 올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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