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쟁이었다. 『페미사이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제로서의 16~17세기 잉글랜드 마녀광풍>에서 매리앤 헤스터는 마녀로 고발당한 사람들이 거의 모두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마녀광풍은 고발당한 사람들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었다. 한 명의 남성이나 남성 집단이 여성에게 성적으로 폭행을 가하는 강간과 달리, 마녀광풍에서 남성 폭력이 구현된 방식은 더욱 복잡하다. 마녀광풍의 핵심 요소였던 법률 기구는 전적으로 상위계층 남성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매슈 홉킨스같이 마녀사냥을 업으로 삼은 개인들 또한 남자들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마녀광풍의 일반적 맥락이다. 마녀광풍은 여성이 열등하며 죄가 많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던 시기에 발생했다. 또한 이 시기의 사회구조는 여성의 열등성을 가정하고 반영한 구조였으며, 당시 여자들은 사회 권력의 중요한 영역(예를 들어 교회와 국가의 위계구조)에서 늘 배제되었다. 이러한 맥락이 없었더라면, 마을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비난받은 이들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일 만큼 높았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일반적 차원에서 마녀광풍은 개별 남성이 여성에게 행한 폭력이기보다 남성 지배적 사회관계의 맥락 속에서 발생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었다. (『페미사이드』, 86쪽)
즉,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며 죄를 짓기 쉬운 존재로서, 남성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존재라는 사회적 통념이 남성보다 여성을 더 쉽게 악마와 연관시켰으며, 일상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의 원인으로 여성을 지목했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에 퍼져있는 잘못된 생각들은 주변의 가난하고 거칠고 공격적인 여성들을 ‘마녀’로 고발하는데 거리낌이 없도록 만들었고, 마녀의 처형으로 공포와 불안, 사회적 동요 등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마녀에 대한 의심과 고발, 체포와 처형은 모두 적법한 법률 기구에 의해 시행되었으며, 지금으로서는 감히 용납될 수 없는 가학적이고 잔인한 마녀 고문 역시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마녀 재판 심문관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에 시달려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한 마녀로 고발당한 여성들, 성적인 위업을 달성한 지 한참 지난 ‘나이 많은’ 여성들에게, ‘첫 관계 때의 느낌이 어떠했는지’, ‘어떤 쾌락을 경험했는지’를 강박적으로 물었다.(284쪽) 인간 한계를 넘어선 고문을 통해 형틀에서 고통받던 여성들은 자신의 실제 ‘경험’과 상상 속의 일들을 하나로 만들어내어 거친 언어로 토해냈으며, 여성들의 ‘악마와의 성교’ 고백이 마녀 감별 및 유죄 판단의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되었다.
분명 마녀사냥의 언어는 여성을 본성적으로 변태적이고 육욕이 더 강한 다른 종으로 “생산”했다. 또한 “여성변태”의 생산은 에로틱한 얼굴을 가진 여성에서 노동하는 얼굴을 가진 여성으로 여성을 탈바꿈시키기 위한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노동으로 변형하기 위한 첫 단추였다. (284쪽)
마녀사냥을 통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전 사회적 공격이 성공함에 따라, 마녀사냥이 종료된 후에는 여성 신체에 대한 국가적 통제가 강화되었다. 여성의 신체는 ‘출산 기계’로 제한되었고, 한편으로는 ‘검사’와 ‘검시’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여성들만의 협동 과정으로 인식되었던 출산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산파들은 모두 쫓겨났고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남자 의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모든 형태의 피임 그리고 출산과 무관한 성관계는 문자 그대로 악마화(144쪽) 되었으며, ‘성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멸시 받는 여성은 자신의 ‘성’에 속박당했다.
성적인 존재인 여성은 ‘성’에 무력해졌다. 무력해져야만 했다. 마녀사냥을 통해 ‘여성의 신체’는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 가정과 남성의 몫으로 배당되었으며, 이는 여성의 정치, 사회, 경제적 지위의 몰락을 의미했다.
마녀 사냥은 성공했다. 성공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