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계획이 제 맛이라 다이어리를 탁 펼쳐서는
<2019년>이라고 호기롭게 적어본다. 올해의
말씀, 시편 18편 46절. 올해의 운동, 요가. 올해의
공부, 페미니즘. 올해의 외국어, 영어. 라고 쓰고 나니 너무 오랫동안 ‘영어’였던 나의 외국어 생활. 그럼에도
나아질 바 없는 나의 외국어 생활. 영어 옆의 마침표를 쉼표로 바꿔놓고 다음 외국어를 생각한다. 일본어책을 벌써 몇 권이나 샀던가. 내 책은 아니지만 이탈리아어
책도 두세 권. 스페인어가 쉽다는데 그게 낫지 않을까. 읽고
싶은 텍스트가 있어야 진도가 잘 나갈 거야. 그렇다면 프랑스어. 쉼표는
한없이 늘어지고 생각도 늘어진다.
대학교
다닐 때 초급 스페인어를 한 학기 들었다. … 그래도 스페인어는 재미있었다. 언어에서 전해지는 무작정 밝은 양지의 느낌, 그 특유의 명랑한 템포도
좋았다. 물음표도 느낌표도 괄호 열고 괄호 닫는 느낌으로, 심지어
거꾸로 세워둔 표시도 장난스러워서 재밌었다. (51/103)
『아무튼 외국어』의 저자는 전공인 불어를 포함해 유창하게 말하는 외국어가 없을지는 몰라도 도전정신만은 매우 유창하다. 그녀는 영어에, 일본어에, 중국어에, 스페인어에 그리고 독어에 도전한다. 쓸데 없는 일에 대한 동경, 지루한 일상의 마라톤을 버티게 해주는 외국어 배우기의 힘에 대해 말한다. 유창하게, 아주 유창하게 말한다.
『에디톨로지』의 마지막. 처음부터 끝까지 명랑하고 유쾌한 저자가 아주 조심스러운
조언을 하나 하겠다고 말한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저자를 따라왔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저자의 조언이 무엇일까
궁금할 것이다.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나도 그랬다.
자신의
생각을 풍요롭게 편집하려면 무엇보다도 언어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오십 넘어 새롭게 일본어를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 내가 성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이만큼이라도 성취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영어와 함께 독일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읽는 자료의 내용이 남들과 달랐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려면 영어 이외에 꼭 한 가지 언어를 더 배워야
한다. 두 개 이상의 외국어와 데이터베이스 관리 습관을 갖추면, 뭘
하든 그리 두려울 게 없다. 아,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372쪽)
구글 번역기의 성능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고 있는 이 시대, 통역사라는
직업이 앞으로도 의미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 이 시대에, 저자는 말한다.
영어 이외의 꼭 한 가지 언어를 더 배워야 합니다.
저번주 주말부터 『Born a Crime』을 읽고
있다. 책과의 인연은 사람과의 인연과 비슷해 만나야 할 때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다락방님 서재에서 <181004 데일리 쇼 with 트레버 노아 Between the Scenes 한국어 자막
“트럼프의 가장 큰 무기는 피해자성을 다룰 줄 안다는 것”> 동영상을 보고 난, Trevor Noah 트레버 노아를 알게 됐다. 유튜브에서 스탠딩업 코미디 몇 편을 보고 아이들을 불러서는 깔깔거리며 같이 보았다. 그제서야 그의 책이 출간된 걸 알게 되었고, 이미 이 책이 2017년 유부만두님 <올해의 책>에 포함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최근에
프시케님 리뷰를 읽고 나서 마음이 동해 따라 읽기 시작했다.
I learned to use language like my mother did. I would simulcast – give you
the program in your own tongue. I’d get suspicious looks from people just
walking down the street. “Where are you from?” they’d ask. I’d reply in
whatever language they’d addressed me in, using the same accent that they used.
There would be a brief moment of confusion, and then the suspicious look would
disappear. “Oh, okay. I thought you were a stranger. We’re good then.” (55)
노아에게 외국어란 생존 수단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피부색이 밝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 흑인에겐 백인으로, 백인에겐
유색인으로 인식되며 산다는 건 복잡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시작은 물론 영어다. 그의 엄마는 노아가 영어로 읽고 말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사는 ‘밝은 피부색의 흑인’인 그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해외 여행이 아니면 외국에 나갈 일이 없고, 해외 여행을
가더라도 외국어를 사용할 경우가 적은, 정확히는 외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는 여행을 선호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외국어는 어디까지나 먼 곳의 이야기다. 좁은 땅, 북쪽은 38선에 남쪽은 바다에 가로막혀 살고 있고, 평생을 여기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살 예정이며, 나와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내가, 2019년을
맞이하며 또 다시 이렇게 적는다.
올해의 외국어, 영어.
『아무튼 외국어』를, 『에디톨로지』를, 『Born a Crime』를 불러오지 않는다면, 나의 오랜 습관 “올해의 외국어,
영어”를 설명할 수 없기에. 그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작심삼일은 커녕 작심하루를 넘기지 못 하는 스스로를 알기에.
올해의 외국어, 영어 그리고 쩜쩜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