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조각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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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32-1883 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칭송 받는다. 하지만 <풀밭 위의 점심식사>, <올랭피아> 같은 그의 작품들을 보면 이전의 회화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린 평범한 구상 회화로 보인다. 그런데도 현대의 저명한 철학자들과 미학자들은 그의 작품에서 현대 미술의 씨앗을 보았다. 도대체 어떤 점에서 마네가 현대 미술을 시작했다고 하는 걸까?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 조각』 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와 조르주 바타이유, 미국의 미술 비평가 마이클 프리드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마네론(論)을  소개하면서, 마네가 어떻게 서양 회화의 전통에서 벗어나 현대 미술을 시작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푸코는 마네가 공간 처리, 조명, 관객의 자리, 이 세 가지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었고, 그것이 20세기 현대 미술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인 '13개 퍼즐 조각'은 푸코가 마네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기 위해 선택한 13개의 작품 <튈르리 공원의 음악회>, <오페라 극장의 가면무도회>,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보르도 항구>, <아르장퇴유>, <온실에서>, <맥주홀의 종업원>, <철도>, <풀밭 위의 점심식사>, <올랭피아>, <피리 부는 소년>, <발코니>, <폴리 베르제르 바>를 말한다. 


에두아르 마네, <오페라 극장의 가면 무도회>, 1873-1874.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이 발명된 이후로 서양 회화에서는 원근법을 이용해 2차원의 캔버스 위에 3차원의 공간을 그렸다. 하지만 그림 속 공간은 환영이고 속임수일 뿐이고, 그림의 진실은 그림이 물감을 바른 평면이라는 것이다. 마네의 <오페라 극장의 가면 무도회>에서는 사람들이 벽처럼 그림을 가득 메우고 있어, 공간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두 개의 커다란 기둥이 그리는 수직선과 그림을 가로지르는 발코니가 그리는 수평선이 직사각형 캔버스의 형태를 반복하고 있다. 마네는 이렇게 그림 속 깊이는 실제가 아니고, 그림은 직사각형 캔버스라는 평면 위에 그려졌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헤라르트 판 혼토르스트(1590-1656), <중매쟁이>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마네는 조명을 통해서도 그림이 물감을 칠한 평면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서양 회화에는 두 가지 조명이 있다. 내적 조명은 그림 안에 그려진 빛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헤라르트 판 혼토르스트의 그림 <중매쟁이>에서 그림 속 촛불은 사람들의 얼굴에 명암을 만들어 인물에 볼륨감을 주고, 장면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명암 또한 작품에 입체감을 주는 수단이었다. 반면 외적 조명은 그림이 걸린 전시실의 조명 등 화폭 밖의 실제 빛이다. 그러나 얇은 헝겊인 캔버스 안에 실제 빛이 들어 있을 리 없으므로, 그림 속의 빛 또한 환영, 거짓말에 불과하다. 마네의 <올랭피아>에서는 배경이 어둡게 처리되어, 내적 조명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랭피아의 몸은 명암 처리가 거의 되지 않아 납작하게 보인다. 마네는 그림 속 공간의 깊이와 인물의 입체감을 지워버림으로써, 그림이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물감과 캔버스로 이루어진 물질, 그림 그 자체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림이 현실을 재현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벗어나 그림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 것, 미술 그 자체를 위한 미술이 된 것이 현대 미술의 시작이었다.

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 바>, 1881-1882.


  그리고 관객의 자리에 있어서도 마네는 서양 회화의 전통을 깨뜨렸다.관객은 어느 자리에서 마네의 작품 <폴리 베르제르 바>를 보는 것이 좋을까? 당연히 그림 속 종업원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그림 한가운데 앞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종업원의 뒷모습과 종업원과 대화하는 남자의 앞모습이 그림 오른쪽에 있다. 이 그림의 배경은 거울인 것이다. 그런데 관객이 그림 속 종업원을 바라보는 위치가 그림 한가운데라면, 종업원의 그림자는 종업원 바로 뒤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림 속 종업원의 그림자는 종업원이 서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한참 떨어진 자리에 있다. 종업원을 정면으로 보는 시점과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보는 시점, 이 두 시점이 한 화면 안에 있는 것이다. 원근법이 발명된 이후로 서양 회화는 한 시점에서 본 장면을 담고 있었고, 관객의 자리는 원근법에 따라 최적의 장면을 볼 수 있는 정확한 한 지점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마네는 원근법의 고정된 한 시점이라는 전통을 깨뜨리고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담는 방법을 통해, 그림은 관객이 자유롭게 자리를 옮기면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사물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도 마네가 그림의 물질성과 평면성을 강조한 것이 현대 미술, 모더니즘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모더니즘이 한 분야가 자신의 정체성, 순수성을 찾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근대 이전 미술은 문학처럼 성경이나 신화 속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뛰어난 기교로 조각과 같은 입체감을 표현했다. 마네는 그림의 물질성 평면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림이 문학에 종속되지 않고 그림만의 특징인 평면성을 인정해서 회화만의 정체성, 순수성을 보여준 것이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카드로 만든 성>, 1734-1735.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푸코와 그린버그가 마네의 그림을 르네상스 이래로 수백 년 동안 이어졌던 원근법이라는 전통을 깬 것으로 생각한 반면, 마이클 프리드는 프랑스의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의 회화론을 깬 것으로 보았다. 디드로는 연극에서 배우가 관객을 의식하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없기에, 배우는 관객과 무대 사이의 가상의 벽, 즉 제4의 벽이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에 몰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회화 속 인물들이 관객에게 보이기 위해 부자연스럽고 과장된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 또한 과장된 연극성이라고 비판했다. 프리드는 디드로의 회화론 이후 프랑스 회화에서는 그림 속 인물들이 관객의 존재를 잊어버린 척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화가 샤르댕의 그림 <카드로 만든 성> 속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카드로 성을 쌓는 데 열중하고 있는 소년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연극이든 그림이든 엄연히 관객들이 바라보는 대상이다. 마네는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 관객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림 속 인물들을 통해, 관객의 존재와 그들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림이 누군가가 바라보는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림이 누군가가 바라보는 가상의 장면이라는 것을 숨기려 했던 디드로 이후 회화의 전통을 깬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 <늙은 악사>, 1862.


  한편 바타이유는 마네가 미술을 지식에서 해방시켜 미술의 본질을 회복시켰다고 보았다. 원시인들은 단지 즐거움을 위해 생계를 유지하는 데 전혀 필요 없는 동굴 벽화를 그렸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서양 미술은 성경이나 신화, 과거의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었고, 배경 지식이 있어야 그 그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나열되어 있는 <늙은 악사>처럼, 마네의 그림은 어떤 이야기도 교훈도 전달하지 않는다. 예술은 원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는데, 아무런 의미도 지식도 전달하지 않는 마네의 그림은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그로 인해 황홀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이 네 명의 학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마네는 성경이나 신화, 역사 속 이야기를 재현하고 교훈을 전달해야 하는 목적에서 미술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실제처럼 어떤 공간과 장면을 재현한 그림이 단지 평면 위에 물감으로 그려진 허구, 하나의 사물이라는 것을 자신의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어떤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미술 그 자체를 위한 미술, 현대 미술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을 과대평가한 감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키요에를 접하기 이전 서양 회화들은 어두운 색뿐이었고, 우키요에가 밝고 순수한 색채를 일깨워 주었다고 했는데, 빛과 어두움의 대비를 강조시켰던 바로크 회화 이전, 사물의 색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이전의 서양 회화들은 화려한 색채로 채워졌었다. 우키요에가 서양 회화에 밝은 색채를 가져왔다기보다는 잊혀져 있던 밝은 색채를 다시 불러왔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우키요에가 유행하던 시기 조선의 화가들은 중국의 산하와 풍속을 그렸고, 풍속화가 있어도 크기가 너무 작고 수적으로도 빈약하며 색채가 단조롭다고 말했다. 조선의 풍속화가 우키요에만큼 서민들에게 널리 퍼지지는 못했지만, 중국이 아닌 우리의 현실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림의 크기와 색채만으로 그 그림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역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표상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 기억이 없다고 했는데,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는 당시 조선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김준근의 풍속화 1500여 점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조선의 모습을 세계에 알렸다. 우키요에가 서양 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은 잘 알지만, 우키요에와 우리 미술을 비교하다 보니 우리 미술을 다소 폄하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단점이 있지만 이 책은 마네의 일생, 마네의 작품으로 인해 일어난 스캔들 같은 단순한 배경지식을 넘어 마네의 그림이 어떻게 서양 미술사의 전통을 깨고 현대 미술의 기틀을 이루었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이 네 명의 마네론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도 함께 썼다면 더 좋았겠지만, 대중 독자들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론들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미술이 너무나 난해하게 느껴지는 지금, 마네를 통해 현대 미술이 이전의 미술과 어떤 면에서 다른 것인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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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의 빛을 따라서 아우름 30
엄정순 지음 / 샘터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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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코끼리의 어느 한 부분만 만져보고 코끼리가 이렇게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시각장애인들처럼,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아는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오랜 시간을 두고 코끼리의 전체를 만져보고, 다른 사람이 만진 부분과 자신이 만진 부분을 합친다면 코끼리의 전체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화가 엄정순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이런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보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고, 이 의문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맹학교에서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미술 교육을 맡게 되었다. 빛조차 인식할 수 없는 전맹(全盲)부터 빛과 어둠만을 구별하는 눈, 시야의 주변은 흐릿하고 가운데만 선명하게 보이는 눈, 시야의 반만 보이는 눈까지 다양한 눈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다.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시야와 시력, 방식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미술을 매개체로 서로의 보는 방식을 알아가는 프로젝트 <우리들의 눈 Another way of seeing>을 진행해 오고 있다. 미술은 시각예술이니, 보이지 않는 사람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 보이는 아이들이 어떻게 미술을 하냐,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는 핀잔도 들었지만, 미술 교육에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녀는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은 시각이 없는 대신 다른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고 경험하고,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어느 날 그녀는 캄보디아의 들판을 걸어가는 코끼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최초로 우리나라에 왔던 코끼리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코끼리는 조선 태종 때 일본에서 진상된 인도네시아 코끼리였다. 기후도 먹이도 맞지 않으니 코끼리는 조선 땅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사람을 두 번이나 밟아 죽였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세종은 코끼리를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보내어 병들고 굶어 죽지 않게 하여라."라는 교지를 내렸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떠돌며 외롭게 살았던 코끼리에게서 외롭고 소수자인 존재를 만났을 때의 교감을 느꼈다. 그 교감은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직접 코끼리를 만지며, 커다란 대상을 통해 상상력과 크기 감각을 키우고 다른 생명체와 정서적으로 교감한다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사육사의 도움으로 코끼리를 만지는 맹학교 아이들 출처: https://www.saveelephant.org/news/the-art-of-touching-an-elephant/

 

  하지만 프로젝트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러 동물원 관계자들이 여러 사람들의 낯선 손길에 코끼리가 당황해서 아이들에게 부상을 입히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나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는 좋은 경험이겠지만 코끼리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코끼리가 스트레스를 받아 아이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러나 이미 코끼리 체험 프로그램이 있으니 와서 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도움을 준 동물원 사람들이 있었다. 수의사들과 조련사들의 도움과 배려로 아이들은 코끼리를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전에 전시된 맹학교 학생의 작품, 코끼리의 긴 코가 강조되어 있다. 출처: https://blog.naver.com/openkaab/20113302004

 

 

  코끼리를 만져본 뒤 아이들은 자신이 느낀 대로 코끼리의 모습을 표현했다. 코끼리의 긴 코만을 강조한 아이도 있었고, 자기가 만진 순서대로 코끼리의 각 부위를 수평으로 늘어놓은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만든 코끼리들은 코끼리의 실제 모습과는 다르지만, 코끼리의 기존 이미지에 의지하지 않았기에 코끼리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보이는 나로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고, 각자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표현함으로써 좀 더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소통에 미술이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데서 미술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함께 코끼리를 만지고 느끼고 상상하고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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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창작 - 동시대 미술의 형식과 의미
테리 바렛 지음, 이지연.강주희 옮김 / 미진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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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늘 염려되었던 것은 내가 조형적인 측면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나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술 작품의 조형적인 측면보다는 작품과 관련된 배경 지식에 더 강했고명도와 채도도 구분하지 못했을 정도로 조형적인 측면에 무지했다미술가는 조형적인 요소들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데 이렇게 조형적인 면에 소홀해서야 미술사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그 미술가가 어떻게왜 이러저러한 조형 요소들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그래서 미술 창작의 지침서인미술 창작을 읽게 되었다이 책은 미술을 창작하는 학생들을 위한 책이지만미술가의 창작 과정을 이해하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비아 곤잘레스, <어린 천사>, 1995.

 "인물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가상의 선은 양쪽을 정확히 대칭하여 나눈다. ... 인물의 내리뜬 눈과 은은한 색조는 대칭 구성과 어우러지며 명상에 잠긴 고요한 느낌을 강조한다."(p. 187-188.) 이렇게 이 책은 작품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조형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실제 작품들을 예시로 들면서 설명한다.


  내가 바랐던 대로 이 책은 미술 작품의 조형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이 책의 열세 개 챕터 중 여덟 개가 조형 요소를 다루고 있을 정도로 이 책은 조형 요소에 많은 비중을 쏟고 있다작품의 소재와 물감돌 같은 재료와 회화조각 같은 미술 형식 모두를 포함하는 매체, 작품의 물리적 구조인 형식, 미술가에게 영향을 미친 개인적 경험시대적 배경 등을 뜻하는 맥락이 합쳐져 작품의 의미를 형성하는데이 요소들은 작품 속 조형 요소를 통해 표현되거나 조형 요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조형 이론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양감질감 같은 조형 요소들이 실제 작품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고 표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직접 보여주고 있다덕분에 미술 작품의 조형적인 면을 보는 눈을 좀 더 키웠다.


마틴 퓨리어, <부커 T. 워싱턴을 위한 사다리>, 1996. 부커 T. 워싱턴은 노예로 태어나 사회적 평등 운동의 지도자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시민권을 요구하기보다 교육을 통해 흑인들을 진보시키려고 했다. 워싱턴의 이러한 전략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보기에도 위태로운 사다리와 같다고 퓨리어는 비판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워싱턴의 의지를 찬양하는 의도일 수도 있다. 이렇게 미술 작품의 해석은 다양한 방향으로 열려 있다.

  그리고 미술가들이 어떤 태도로 창작과 비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들을 읽으면서미술가들과 미술 작품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미술가는 작품의 구성 요소들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만감상자 스스로 작품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해석의 폭을 열어놓아야 한다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자신이 말하려는 것과 정반대로 해석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해석의 범위를 좁히지만아예 닫아두어서는 안 된다미술가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설명을 뒤집어보면 감상자인 내가 어떻게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된다그리고 학생들이 만든 실제 작품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비평을 보면서내 눈에는 그저 사물들의 집합처럼 보이는 미술 작품이 얼마나 많은 해석들을 낳을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론적인 팁 외에도 선배 미술가들이 남긴 조언들을 한 챕터에 모아 놓았다이들의 조언은 미술 창작에 대한 것이지만 나에게도 동기를 부여하고 용기를 주었다. “여러분의 작품과 소통하는 사람이 단 두 명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불쾌해하지 마세요.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았는지얼마나 많은 리뷰를 받았는지로 인해 맘 상해하지 마세요여러분의 작품은 계속 존재할 것이고세상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또한 여러분의 작품이 주목을 받든 받지 못하든끊임없이 세상이 변화하는 데 영향을 줄 겁니다.” 오노 요코의 이 말은 미술 작품뿐 아니라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람들각자의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그러니 내 자신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물론 미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고그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하지만 미술 창작자가 아닌 감상자인 내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미술에 대한 내 눈을 조금은 더 넓혀주었으니. ‘이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책이야라고 생각되는 책들도 이렇게 종종 뜻하지 않은 선물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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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꼴라쥬 시네마 톡 - 영화가 끝난 뒤 시작되는 진짜 영화 이야기
김영진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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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인도 영화 한 편을 같이 보고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에 나가고 있다. 그 모임의 호스트 분은 영화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해 블로그 포스트로 올리신다. 그렇게 정리된 이야기들을 엮어서 단행본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단행본을 만드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책들을 찾아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시네마톡'은 2009년부터 CGV에서 진행해 온 행사로, 영화평론가와 관객들이 영화를 함께 관람한 뒤 영화평론가가 그 영화에 대해 해설하고, 관객들과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이 책은 그 중 30개의 시네마톡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30편의 영화 중 내가 본 영화는 세 편밖에 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영화들도 있다. 물론 내가 본 영화들의 시네마톡이 가장 이해하기 쉽고 읽기 즐거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남아 있던 의문점들이 해결되고,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보지도 않은 영화나 내 취향이 아닌 영화들의 시네마톡을 읽으면서도 즐거웠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던 현장을 텍스트로 전해 듣는 것 또한 알차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관객들과 함께 하는 자리이다 보니 영화 이야기가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는 점이 좋았다. 영화알못인 나도 시네마톡들의 내용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었다.(마지막 시네마톡인 <까페 느와르> 편만 빼고. 이건 감독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됐다. 운동권 출신 몰락한 지식인(윤희석)이 왜 비가 오면 서울대공원에서 만난 여자(김혜나)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부조리극인가.)

  1장 '시네마톡'에 실린 시네마톡들의 길이가 짧은 것은 아쉽다. 시네마톡에서 영화 관람 시간을 빼도 보통 한 시간 20분 정도 해설을 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시간 20분 동안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각 시네마톡의 내용이 너무 짧다. 관객들과 나눈 질의응답도 생각보다 적어서, 단행본에 싣기 적당한 내용만 추린 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의 의자> 편이나 <소라닌> 편의 경우 영화의 소재가 된 인물(법정 스님)이나 게스트(가수 이상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에 치중되고,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런 단점들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보지 못했던, 내 취향이 아니어서 관심이 없었던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롭고 풍성한지 몰랐다. 

  김영진 평론가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시네마톡은 영화에게 손을 잡아주는 시간'이라고 했다. 화제작에만 관심이 쏠리는 지금, 세상에는 외로워서 손을 잡고 싶어하는 영화들이 너무 많다고, 그런 영화들은 진심을 품고 누군가 손만 잡아주면 감동으로 응답할 영화들이라고. 내가 지금 참여하는 모임도, 모임의 호스트 분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포스트도, 내가 만들고 싶어하는 책도 대규모 흥행작이 아닌 외로운 영화들에게 내미는 손이라고 생각한다. 시네마톡이나 내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 계속해서 그런 영화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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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미술관 -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
김태권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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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크룩생크의 풍자화 <뉴 유니언 클럽>(1819). 클럽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흑인들의 모습을 통해, 흑인들의 인권이 신장되면 흑인과 백인이 맞먹게 될 것이라는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몸의 왼쪽 절반은 하얀색, 오른쪽 절반은 검은색인 흑백 혼혈 아기의 모습은 끔찍한 혐오표현이다. 이 그림을 통해 고민하게 된다. 혐오표현과 풍자의 정확한 경계선은 어디일까?(p. 174-176.)


  인권 문제를 다룬 미술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책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구상만 한 게 아니라 기획안도 만들었었는데, 지난 달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 책 또한 미술 작품을 통해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니, 내가 기획안을 만들기 이전부터 기획된 책이었다. 운 나쁘게도 기본 컨셉트가 겹쳐 내 기획안 하나가 날아갔지만, 내 기획안이 책이 되었다면 이 책과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미리보기로 몇 페이지를 봤을 때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이 책을 사게 되었다.

  내 기획안이 프란시스코 고야, 에드가 드가, 페르난도 보테로 등 각 화가별로 챕터를 나눈 반면, 이 책은 여성혐오 문제, 장애인 인권, 이주민의 인권, 성소수자의 인권 등 각 이슈별로 챕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미술'에 방점을 두었다면 이 책은 '인권'에 방점을 둔 셈이다. 아무래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책이니 그랬을 것이다.(기획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하고, 집필은 김태권 작가가 했다.)  인권 안에서의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기에는 이 책의 구성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의 저자가 미술사학자가 아니라 만화가 김태권 작가라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김태권 작가는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한겨레, 2009)라는 미술사 만화를 출간한 적이 있지만 미술사 전공자는 아니고, 이 책도 만화가 아니다. 이 책은 그가 처음으로 만화가 아닌 줄글 형태로 쓴 책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문장 중에는 줄글보다는 만화 지문에 가까운 짧은 호흡의 문장들이나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꽤 야해 보인다.", "크룩생크(헤르미온느의 고양이가 아니라 19세기 영국의 캐리커처 작가)를 만난다면, (영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치고) 어떻게 그를 설득해야 할까?" 등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듯 장난스러운 부분들도 많다. 김태권 작가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허술하거나 진지하지 못한 건 아니다. 김태권 작가는 머리말에서부터 자신 또한 인권 문제에 있어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는 여러 모로 잠재적 가해자다. 남성이고 중산층이고 비장애인이며 이성애자다.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니 국적 때문에 차별을 겪을 일도 없다. 이런 내가 조심하는 마음 없이 산다면, 여성이나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나 북한이탈주민 앞에서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내 언행도 주위 사람의 언행도 불편하다. 하나하나 고민하고 검토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p. 6.) 그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 , 『십자군 이야기』  속 무거운 주제와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만화 사이의 균형 감각을 줄글에서도 발휘한다. "왜 여성인권이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자기가 피해자라고 느끼는 남성들이 나타날까. 피해는 원래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해서 그럴까. 여성이 희생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피해가 자기한테 떠넘겨진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p. 209.) 그는 장난스러운 듯하면서도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한다.

  3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인데다, 각각의 주제만 하더라도 깊이 파고들면 책 한 권은 쓸 수 있는 주제인데 한 챕터만으로 다루다 보니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한다. 특히 하나의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인권 이슈들에 대해 그는 문제 제기만 한다. 혐오표현과 풍자의 정확한 경계선은 어디일까? 히잡을 쓰자는 사람은 여성혐오에 빠진 근본주의자인가, 아니면 인종주의에 저항하는 무슬림 당사자인가? 히잡을 벗기려는 사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여성주의자인가? 아니면 이슬라모포비아에 찌든 인종주의자인가? 이러한 그의 '치고 빠지기'가 못마땅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문제 제기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다했다. 정답이 없는 인권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서로 다른 답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합의점을 찾아내고 선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미술 작품들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인권 이슈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저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싶을 뿐인데 눈앞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미술 작품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 자신이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권리들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기울인다면 우리가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상처를 주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작가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누구나 인권 문제에 있어서 잠재적 가해자다. 깊이 있는 분석까지 들어가지 못한다 해도, 이 책은 "불편함의 아주 작은 불씨'를 남겼다. 나는 기획안 하나를 잃은 대신 좋은 책 한 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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