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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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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1503.


 르네상스 미술사 강의를 들을 때 교수님은 우리에게 매주마다 그림 하나씩을 지정해 주시고, 그 그림을 자기 눈에 보이는 그대로 설명하라는 과제를 내 주셨다.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과제 주제로 나왔을 때, 나는 그림 속 여인은 초록색, 갈색 등 여러 가지 색 옷을 입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수님은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이 상복이라는 학자들의 해석대로 보지 않고,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본 것을 칭찬해 주셨다. 교수님은 아무리 권위 있는 학자의 작품 해석이라도 그대로 믿지 말고, 스스로 작품을 보고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 또한 기존의 권위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번역된 제목이나 원제 '보는 방식들(Ways of Seeing)'이나 미술 작품을 보는 하나의 표준 방식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들도 공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John Berger)가 40여 년 전인 1972년 BBC TV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이 책은, 미술 작품을 신성시하고 예술은 어떤 다른 것과도 구별되는 특별한 영역으로 보는 기존의 시각에 도전한다.

  버거는 1장에서부터 이전의 미술사학자들이 미술 작품에 대해 늘어놓았던 미사여구를 걷어내려고 한다. 그는 소득이 낮을수록 미술관을 교회 같은 신성한 장소로 생각하게 된다는 통계 결과를 제시하면서, 작품이 감동적이고 신비스러워진 것은 비싼 가격 덕분이라고 말한다. 복제 기술의 발달로 어디서나 작품의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미술 작품의 진품은 부자들의 것으로 인식되고, 불평등을 고상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고 지적한다. 미술 작품이 지닌 권위 덕분에 미술 작품 진품을 가질 수 있는 계층의 사람들은 자기 권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진품 자체의 가치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진품에 남은 화가의 흔적이, 화가가 그 그림을 그렸던 순간과 우리가 그 그림을 보는 순간을 이어준다고 이야기한다. 미술 작품 진품은 그 작품이 그려졌던 당시의 역사적 순간을 간직해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위) 한스 폰 아헨(1552-1615), <바쿠스, 케레스, 큐피드> (아래) 현대의 향수 광고


  그는 또한 미술 작품들뿐 아니라 사진, 광고 등 현대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들까지 시야를 넓힌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응시의 대상이 되는지 포착한다. 남성이 다른 사람에게 행사하는 능력으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여성은 자신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성 자신조차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버거는 벌거벗은(naked) 몸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누드(nude)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전시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한스 폰 아헨의 작품 <바쿠스, 케레스, 큐피드>에서 케레스는 연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연인이 아닌 그림 밖의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그 관객은 자신이야말로 그녀의 진짜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즉 그림의 소유주이다. 현대의 광고 이미지 속 여성도 이미지 밖의 관객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이와 같이 누드 이미지에서 관객은 보통 남자이고 응시의 대상이 되는 이미지 속 인물은 보통 여자이다. 버거는 이런 불평등한 관계가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의식을 형성한다고 말했는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그가 말한 모습 그대로다.


(위)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아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패러디한 배달 앱 광고


  버거는 또한 다른 회화 형식과 달리 그림 속 대상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해 내는 유화의 특성 덕분에 유화는 자신이 지닌 재산을 과시하는 형식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지 속 대상의 물질적인 특성을 생생히 전달한다는 공통점으로 유화와 광고를 연결시킨다. 물론 광고는 종종 사람들에게 익숙한 명화 작품의 언어를 빌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을 각인시킨다. 하지만 단순히 유화 작품의 언어를 빌리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이미지 속 물건들을 얻은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광고는 유화와 연결된다. 유화가 자신의 현재 상태를 과시한다면, 광고는 광고 속 물건을 얻으면 더 나아질 미래의 상태를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화가 현재 시제로 그려져 있다면, 광고 이미지는 언제나 미래 시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버거는 이전의 미술사 논의에서 배제되었던 젠더 문제, 경제적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하며 다른 방식으로 미술 작품을 보자고 제안한다. 그는 서구 유화의 전통을 현대 소비 사회의 광고와 연결짓는 등, 미술 작품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이미지들을 포함한 시각 문화를 살펴본다. 미술사, 미학이라는 범주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 속 다양한 시각적 체험과 요소들을 살펴보는 시각 문화 연구가 시작된 지 이미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권위를 지닌 기존의 해석과 미술 작품이 지닌 권위에서 벗어나 새롭게 보는 방식의 단초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는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이다. 

* 이 책의 도판은 모두 흑백으로 되어 있다. 열화당 쪽에서는 컬러 도판으로 교체할 수 있었지만 이곳저곳에서 컬러 도판을 가져오다 보면 도판들의 톤이 통일되지 않고 들쭉날쭉해져서 흑백 도판으로 통일하는 쪽을 택했다고 답변했다. 인쇄 기술을 사용해 도판들의 톤을 서로 비슷하게 조절할 수도 있지만, 모두 흑백 도판을 쓰는 쪽이 더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도판들의 톤이 서로 맞도록 조절하면서 컬러 도판을 싣는 쪽을 더 좋아하지만,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독자들 각자의 생각과 취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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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 피카소의 전쟁 -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거장의 반전 메시지
레셀 마틴 지음, 이종인 옮김 / 무우수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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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국립 소피아 왕비 미술관, 마드리드.


저 오래된 비극을 묘사하는 흑백 캔버스 위에서 피카소는 인간의 암울한 운명을 알리는 편지를 쓴다그 운명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한다우리는 그 운명에 맞서기 위해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모두 모아 영원의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한다마치 숭고한 작별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초현실주의 시인 미셸 레리스(Michel Leiris)는 <게르니카>에 대해 이렇게 썼다. <게르니카>가 그려진 지 8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로서는 시인이 느꼈던 절박함과 비통함을 느끼기 어렵다나치군이 스페인의 게르니카 마을을 공습했고피카소는 그에 분노해 게르니카를 그렸다이 단편적인 사실만으로는 이 그림에 대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이 책 게르니카피카소의 전쟁은 <게르니카한 작품에 집중하면서, <게르니카>가 그려지게 된 이야기와 <게르니카>라는 그림이 겪어온 이야기들을 풀어낸다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시인이 <게르니카>를 통해 느꼈던 비통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게르니카 사건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36년 2스페인 총선에서 인민전선은 승리를 거두고 공화 정부를 세웠다민주적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무정부주의자들의 연합 세력인 인민전선은 스페인이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하지만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파시스트 세력은 스페인을 인민전선의 손에서 빼앗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프랑코는 스페인을 차지하기 위해 외세인 독일의 나치 세력과 협력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나치 군은 프랑코의 반군을 도와 스페인의 여러 지역을 인민전선의 공화국 정부에게서 빼앗았고게르니카가 있는 바스크 지역도 반군에게 포위되었다바스크 사람들은 포위되었지만 반군에게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고프랑코는 그런 바스크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게르니카에 공습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1937년 4월 26프랑코의 사주를 받은 나치 공군은 7천여 명이 사는 산골 마을 게르니카를 폭격했다


폐허가 된 게르니카와 주민들의 시신


  평화로웠던 마을은 불길에 휩싸였고사람들은 폭격이나 나치 공군이 난사하는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시신들이 폭발의 충격으로 지붕으로 날아가거나 벽에 달라붙었다대피소에 숨은 사람들은 숨죽여 이 모든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렸고살아남은 사람들은 실종된 가족을 찾아다니며 울부짖었다며칠 되지 않아 피카소가 머물고 있는 파리의 언론들도 이 참혹한 사건을 보도했다그럼에도 프랑코 측은 범인은 자신들이 아니라 인민전선의 공산주의자들이라며 뻔뻔스럽게 발뺌했다마침 얼마 뒤 파리에서 개최되는 세계박람회의 스페인관에 들어갈 벽화를 제작하려 했던 피카소는 그 벽화 속에 게르니카의 비극을 담기로 했다피카소는 인민전선의 공화국을 지지하고 있었고스페인을 파시스트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자국 국민의 생명도 가볍게 여기는 프랑코를 증오했다.

 

 <게르니카>에는 잔혹한 나치 군의 모습비행기폭탄폭격을 당하는 집들 대신 황소와 말전구 등 알 수 없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나치와 프랑코의 만행을 직접적으로 가리키지도참상을 사실적으로 전하지도 않았다며 <게르니카>를 이해하지 못했다지금도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이 작품이 게르니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피카소가 그리려 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이 아닌사람들이 겪은 폭력과 고통죽음 그 자체였다특히 투우장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인 황소와 말은 이 그림 속에서 투우장 안에 예정되어 있는 죽음처럼 스페인 내전 안에 예정된 끔찍한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그리고 <게르니카>가 주는 시각적 충격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잔인함으로 인해 죽어가는 존재들의 절망과 고통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게르니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조차 그림을 볼 때 "자신이 푸줏간의 고기처럼 토막쳐지는 기분이 든다."고 말할 정도였다


  피카소는 <게르니카>로 얻은 수익을 스페인 구호 모금에 내는 등 공화국을 돕기 위해 애썼지만결국 스페인은 1939년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부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다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공화국 정부에 팔았기 때문에프랑코가 지배하는 스페인으로 <게르니카>를 돌려보내는 것을 거부했다프랑코의 독재는 수십 년 동안 이어졌고, 1943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보내진 <게르니카>는 수십 년 동안 스페인에 돌아오지 못했다


당신은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합니까화가라면 눈만으로음악가라면 귀로시인이라면 마음의 모든 방의 운율로권투선수라면 근육으로만뭐 이런 것들을 가지고 벌어먹는 멍청이라고 생각합니까아닙니다그것은 아닙니다예술가라면 마땅히 정치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그가 속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가슴 아픈 일정열적인 일기쁘고 즐거운 일을 늘 의식하면서 그런 일들의 이미지에 따라 자신을 형성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다른 사람의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니 그게 될 법이나 한 말입니까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져다 준 저 풍성한 생활로부터 초연히 이탈해 구름 위의 존재처럼 노닐 수 있단 말입니까아닙니다그림은 그런 게 아닙니다아파트의 거실을 장식하기 위한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그림은 투쟁의 수단입니다."

 1945년 인터뷰에서 했던 이 말과 같이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통해 불의와 맞섰다피카소는 프랑코보다 2년 앞서 세상을 떠났고프랑코가 197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프랑코의 독재 정부는 건재했다그러나 프랑코가 후계자로 지목했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프랑코의 꼭두각시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민주주의를 지지했다프랑코의 뒤를 이어 철권 정치를 계속하려던 프랑코의 심복 블랑코 총리는 바스크 지하 단체 조직원에게 살해당했다드디어 프랑코의 독재 정치가 끝난 것이다그리고 6년 뒤, <게르니카>는 그려진 지 44년만에 처음으로 스페인에 돌아오게 되었다. <게르니카>는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했다하지만 독재 정권보다도 오래 살아 남아 독재 정권의 악행을 지금까지도 증언하고 있다. <게르니카>를 통해 피카소는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이다이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피카소와 게르니카가 겪어 온 이야기들을 읽으며독자들은 게르니카라는 그림 하나에 얼마나 많은 슬픔과 피눈물이 담겨 있는지 조금이나마 실감하게 될 것이다이 모든 일들을 지켜 본 사람들만큼 깊은 감정과 의미를 느끼지 못하더라도그것은 책 속의 한 스페인 사람의 말처럼 더 좋은 일일 수 있다.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서 <게르니카>가 거대한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배열해 놓은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으니"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게르니카>를 통해 인간의 잔혹성을 기억하고 이런 일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절대 사라질 것 같지 않는 불의는 언젠가 사라지고무력해 보이는 예술은 언제까지나 살아남아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것도.


P. S. 이 책은 <게르니카>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 제작 과정, 전시 당시의 비평과 대중들의 반응들까지 꼼꼼하게 전달하지만, 아쉽게도 <게르니카> 외의 다른 도판이나 사진 자료는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특히 <게르니카>를 위해 어떤 모습의 습작들을 그렸는지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그 습작들의 도판 하나 없다. 이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이었다. 그래서 책에서는 설명되었지만 도판이 실리지 않은 <게르니카>의 습작들의 도판 몇 점을 여기에 함께 올린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를 위한 습작, 1937년 5월 2일.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를 위한 습작, 이 습작 또한 1937년 5월 2일에 그려졌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를 위한 습작, 1937년 5월 8일


도판 출처:  Rachel Wischnitzer, "Picasso's "Guernica", A Matter of Metaphor", Artibus et Historiae, Vol. 6, No. 12 (1985), pp. 15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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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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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고통』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는 미국의 예술 비평가 수전 손택의 책이다. 『타인의 고통』처럼 이 책도 사진에 관한 생각들을 담은 책인데, 『타인의 고통』(2003)보다 26년 전에 쓴(1977년) 책이다. 디지털 사진과 포토샵이 나오기 전에 쓴 책이고 거의 40여 년 전에 쓴 책이라 디지털 사진에 대한 논의는 없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내세웠던 주장이 『타인의 고통』에서 뒤집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 속 사진에 대한 손택의 비평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진의 특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1887)의 도판. 이 작품의 실물은 반 고흐가 썼던 물감의 특성 때문에 점점 색이 바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도판이 작품 실물보다 반 고흐의 색채를 더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손택은 사진 덕분에 우리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이미지를 소모한다 이야기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가 널리 보급된 데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요즘은, 손택이 이 글을 썼던 40여 년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미지가 소모되고 있을 것이다. 사진이 얼마나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지 오히려 현실이 그 현실을 찍은 사진에 충실한지 검토될 정도다. 에펠탑이나 만리장성 같은 유명 관광지에 갔을 때, 그곳을 찍은 사진과 비교하면서 사진과 똑같은지 아닌지 비교해 보는 것,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 실물이 사진과 같은지 비교해 보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실물이 사진과 같지 않다며 감동을 느끼기는커녕 실망하기까지 한다. 또한 이제는 물감이 바랜 명화의 실물보다는, 예전의 생생한 색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명화의 도판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이미지가 오히려 현실을 압도해 버리는 것이다. 사진 이미지에 압도되는 현실을 손택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면 저녁놀조차 진부해져 보이는 법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저녁놀은 사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스테판 기자르드가 찍은 이스터 섬의 풍경. 우리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직접 접하지 못하는 현실들 대신 그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SNS에서 우리가 가 보지 않은 멋진 여행지와 우리가 키우지 않는 귀여운 애완동물들,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멋지고 예쁜 연예인들의 사진을 다운받고 소장할 수 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접하지 못한 현실 대신 그 이미지들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된 소유일 뿐이라고 손택은 말한다. 현실은 사진에 담겨 일종의 스펙터클(볼거리)이 되어버렸다. 이런 사진 이미지들, 볼거리들의 홍수 속에서 살다 보면, 정작 그 이미지들이 나타내는 현실을 봤을 때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지가 현실을 소모해 버리는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한 장면. 손택은 이미지로만 이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지가 아닌 현실로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은 실제로 고통당하고 있다고 27년 뒤의 저서『타인의 고통』에서 주장한다.


  손택은 30여 년 뒤에 쓴 『타인의 고통』에서 현실은 위신을 잃어버렸고, 재현만이 남게 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과장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사진, 이미지가 현실을 소모하고 압도한다고 말했던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그 이유는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는 현상은 지구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테러나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볼거리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테러와 전쟁을 현실로 겪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등 우리가 가는 곳마다 구매를 촉진하거나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이미지가 넘쳐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구매를 촉진하고 계급, 인종, 성의 갈등이 빚은 고통을 마비시키는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미지에 기반한 문화를 필요로 한다는 손택의 주장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또 자본주의 사회가 카메라를 통해 자원 개발, 생산성 증가, 질서 유지, 전쟁을 위한 정보를 무한정 수집하기에, 손택은 카메라를 잠재적인 통제의 도구로 본다. 카메라는 대중에게 스펙터클(구경거리)을 제공해 주면서 통치자들에게 감시 대상을 포착해 줌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오히려 디지털 카메라와 이미지 처리,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이런 현상은 손탁이 이 책을 썼던 40여 년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특히 "다양한 이미지와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자유가 자유 자체와 동일시될 것이다."라는 문장은 소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느라 자신이 통제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어딜 가도 넘쳐나는 사진과 이미지들에 지칠 때가 있다. 손택의 표현처럼 지금의 나 자신도 "경험을 일종의 이미지, 일종의 기념품"과 맞바꾸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택은 이후에 『타인의 고통』에서 현실이 이미지에 압도되는 것은 안전한 곳에서 사진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일부 지역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이 책과 『타인의 고통』 은 현실은 사진 이미지 밖에 있고, 사진 이미지에 매몰되어 현실을 잊지 말라는 관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손택이 이 책을 쓴 지 40여 년이 되었는데도 우리가 사진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 또는 거기에 담긴 현실을 소비하는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40여 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너무 일상적이어서 지나쳐 버렸던 사진과 이미지의 소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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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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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한 살짜리 아이의 시신을 들고 울부짖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아버지.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런 사진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미지를 보고 연민을 느끼는 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수전 손택은 말한다.


  2천여 년 전에 쓰인 책인 플라톤의 국가론』에는, 처형된 범죄자들의 시신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과 시신에 대한 혐오감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시신을 보고 마는 아테네 시민이 등장한다. 또한 기독교 미술은 수백 년 동안 수난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나 지옥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이렇게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욕망이었다. 사진 기술의 발달로 훨씬 더 쉽게 이미지를 대량생산하고 널리 유포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는, 폭력적이고 잔혹한 이미지, 타인의 고통을 담고 있는 이미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가 일종의 스펙터클(볼거리)로 소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미국의 미술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이 책 『타인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런 우리의 반응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지구의 다른 한 쪽에서는 전쟁과 테러 같은 고통을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우리는 사진 이미지로만 접하게 된다. 전쟁, 빈곤, 대량 학살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의 배경은 보통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이런 사진들은 전쟁, 테러, 빈곤 같은 비극은 우리와는 먼 가난한 나라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우리는 자신이 그런 비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한 곳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관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물론 이런 이미지들이 없으면 우리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연민을 자아내고 그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지는 우리에게 최초의 자극을 줄 뿐이고, 연민과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손택은 말한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 자체는 선한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다. 하지만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금방 시들해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연민만을 베푸는 데 그치지 말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연민의 감정을 일으킨다. 하지만 타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지 밖에 있다. 이미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을 합리화하는 권력자들에게 눈길을 돌려보자고, 그 합리화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깨닫고 꼼꼼히 검토해 보자고 권유하는 것 이상을 해낼 수는 없다고 손택은 말한다. 이미지는 그것을 본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행동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손택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 밖의 현실이라고, 현실을 지키기 위한 실천은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손택이 이 책을 쓴 지 10년도 더 넘은 지금도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봐서 앞서 본 이미지는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세상 속에서, 이미지에서 배제된 현실, 이미지로는 다 알 수 없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그 현실을 지켜야 한다는 손택의 주장은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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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마지막 70일
바우터르 반 데르 베인.페터르 크나프 지음, 유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가난뱅이, 우울증 환자, 알콜 중독자, 사회 부적응자, 인정받지 못했던 천재. 이 책은 지금까지도 반 고흐에게 붙는 수식어들을 부정하며 시작한다. 그는 미치광이도, 사회부적응자도 아니며,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고 그의 그림 역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를에서 살던 시절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우체부 룰랭이 한 달 월급으로 135프랑을 받을 때 그는 동생 테오에게서 200프랑을 생활비로 받았다. 아내와 세 아이를 둔 가장보다 더 많은 생활비를 혼자 사용하며 여유로운 환경에서 작업했던 것이다. 테오를 통해 그의 그림을 접한 몇몇 사람들은 이전의 미술과는 다른 그의 신선한 그림에 감탄했고, 『메르퀴르 드 프랑스』 지에는 그의 그림에 찬사를 보내는 비평이 실렸다. 또한 반 고흐는 자신의 그림에 믿음이 생긴 뒤로는 오히려 그림을 파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의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진정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생전에 단 한 점의 작품이 아니라 모든 작품을 팔았다. 화상인 동생 테오에게. 

  동생에게서 생활비를 넉넉히 받아서 생활이 여유로웠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마음은 무거웠을 것이다. 먹여살릴 처자식이 있는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데 생활비가 부족하든 넉넉하든 마음이 가벼울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동생에게 보낸 그의 편지들에서 죽을 때까지 그가 자신의 그림이 팔릴 수 있을지,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해했던 모습을 보았다. 또 동생에게 모든 작품을 판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작품을 인정 받고 판매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들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 고흐에 대한 편견들을 걷어내고 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저자들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오로지 증명된 사실들만을 다룬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를 비롯한 가족들, 친지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그가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 오베르에서 생애 마지막 70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촘촘하게 복원한다. 저자들은 이전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반 고흐의 네덜란드어로 쓴 편지까지 새롭게 소개한다. 날짜를 적지 않은 편지들을 내용에 따라 순서대로 정리하고 그 편지를 쓴 날짜를 추정했다. 70일 동안 그가 그린 그림들도 모두 이 책에 도판으로 실었는데, 그림에 표현된 자연 풍경의 모습을 분석해 그 그림이 그려진 날짜를 추정하는 수고까지 해냈다. 



반 고흐가 오베르에서 그린 <별 하나가 빛나는 하얀 집(1890)>(위)과 생레미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1889)>. 저자들은 반 고흐가 알퐁스 도데, 월트 휘트먼, 빅토르 위고가 쓴 글들 중에서 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글을 읽으며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밤 하늘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지게 표현됐다며 정작 빈센트와 테오 형제는 생레미의 <별이 빛나는 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저자들은 오베르의 별이 생레미의 별들보다 생기 있지만 동시에 정적이며 한층 더 평온하게 빛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 실린 편지들 속에서는 오베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의욕적으로 작업을 시작해, 끊임없이 그림에 대해 고민하고 그림을 그렸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과로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중압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테오와 건강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더 이상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은 그가 가난하거나 미치광이이거나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았다고 여겨 자살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요소들이 그의 죽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반 고흐가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불안해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의견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의견이다. 하지만 마지막 70일 동안의 그의 행동과 생각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꼼꼼하게 복원하려는 시도는 성공적이다. 또한 마지막 70일 동안 그린 모든 작품의 도판을 싣고, 작품 하나 하나마다 사용된 기법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 작품의 배경 지식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덕분에 그의 마지막 70일 동안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살펴볼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를 평생 경제적으로 지원해준 동생 테오 반 고흐(왼쪽)와 그의 아내 요안나 반 고흐, 조카 빈센트(오른쪽).


  이 책의 또 한 가지 장점은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이후의 동생 테오와 제수 요안나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준다는 점이다.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세 달 후인 1890년 10월, 테오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이성을 잃었다.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세 달 뒤인 1891년 1월 세상을 떠난다. 테오의 주치의가 남긴 의료 기록도 이 책에 함께 실었다. 감정적인 묘사는 전혀 없는 진찰 기록이지만, 이성을 잃고 자신의 아내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읽는 사람을 슬프게 한다. 

1890년 11월 28일, 이등실에 입원.
1891년 1월 25일, 84번 환자 사망.
테오도러스 반 고흐.
원인: 유전, 만성질환, 과로, 슬픔.

  테오의 사망 일시와 사인을 적은 이 짧은 기록 중, 사인 중 하나가 '슬픔'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더 슬프게 한다. 


소녀였을 때 나는 완벽하게 행복한 1년을 보내는 것이 같은 양의 행복을 평생에 걸쳐 나누어 느끼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곤 했다. 이제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내 몫의 행복을 만끽한 이상 이제 책임만이 남아 있다.
  테오가 세상을 떠난 뒤, 어린 아들 빈센트(큰아버지 빈센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과 단 둘이 남겨진 아내 요안나. 요안나는 테오와 함께 보냈던 날들이 완벽하게 행복한 날들이었고 이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면서, 평생 동안 반 고흐의 그림들을 지킨다. 요안나는 반 고흐의 그림들을 활발하게 사람들에게 선보였고, 반 고흐의 편지들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그리고 자비를 들여 반 고흐가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정리한 책을 출간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반 고흐의 그림을 만지는 것을 내버려 둘 정도로 그림에 무지했었던 그녀였지만, 그녀의 노력 덕분에 사람들은 반 고흐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반 고흐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그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우리는 빈센트와 테오, 그리고 남겨진 요안나의 더 생생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까지 많이 알려진 빈센트와 테오의 편지 외에도 테오가 오베르의 시골 의사 가셰 박사에게 형을 부탁하는 편지, 아내 요안나에게 보낸 러브레터, 입원 당시 테오의 진료 기록, 요안나가 빈센트를 칭찬했던 평론가 알베르 오리에에게 보낸 편지까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기록들, 잘 알려지지 않은 오베르에서의 빈센트의 작품들까지 만날 수 있다. 반 고흐 관련 책들을 많이 읽어서 이제 반 고흐에 대한 웬만한 사실들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새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알아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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