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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 개정판
민길호 지음 / 학고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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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다 모르는 아이에게 "얘, 너 그렇게 쉬엄쉬엄 달리면 오히려 살이 더 쪄."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했다. 날씬하지도 못하고, 그애에게 상관 말라고 대꾸도 못한 내 자신이 창피했다. 잘난 데가 하나도 없고 소심하기만 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게다가 그때 학교에는 내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거의 없었다. 


기분 전환을 하러 자주 들르던 동네 서점에 갔다. 그 때 눈에 띈 책이 이 책이었다. 고흐 관련 다른 책들과 달리 반 고흐의 자서전 형식으로 쓴 책이었다. 물론 반 고흐 자신이 쓴 자서전이 아니라 한국인 작가가 반 고흐 자신이 서술하는 방식으로 쓴 평전이었다. 반 고흐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어서 책에 빠져들어서 읽었다. 그러면서 반 고흐도 나처럼 자신이 못나게 느껴져서 힘들고, 외로웠구나, 하고 생각했다. 반 고흐와는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먼 나라의 아이가 반 고흐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반 고흐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반 고흐의 이야기가 듣고 싶고 그의 그림이 보고 싶을 때는 이 책을 펼쳤다. 반 고흐에 대한 다른 책들도 읽어보면서 이 책의 저자가 자기 상상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반 고흐에 대한 나름대로의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반 고흐의 삶을 촘촘히 재구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록들 사이의 비어 있는 부분은 "반 고흐라면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을 것이다"라는 가정으로 채워지지만, 저자가 반 고흐가 되어 그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헤아리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 유리잔에 꽂힌 활짝 핀 아몬드꽃 가지, 1888. 


봄기운을 담뿍 머금고 활기차게 뻗은 가지에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맺은 아몬드꽃. 저를 보며 희망의 손짓을 하는 듯, 활짝 핀 꽃송이들은 저의 미래를 약속하는 천사의 미소 같습니다.

푸른색으로 그 꽃이 담긴 유리잔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희망을 뜻하는 노란색이 잔을 받치고 있습니다. 또 저의 영혼의 움직임은 한 줄의 빨간색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제 저는 자유인입니다. 철창에 갇힌 새가 아닙니다. 

맘껏 날개를 펴고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렵니다. 어떠한 고통이 오더라도 제가 가고 싶은 그곳을 향하여 두 날개가 다 찢어져 바람에 날리는 그때까지 쉬지 않고 날아갈 겁니다.

서명은 왼쪽 윗부분에 했습니다. 빨간색으로 빈센트(Vincent)라고 썼습니다. 제 영혼의 약속입니다.

 저자는 반 고흐의 작품을 묘사할 때 미술적 기법에 대한 설명이나 단순한 작품 감상에 그치지 않고 그림을 그려나가듯이 그림을 이야기한다. 작가 자신이 반 고흐가 되어 그림을 그려가는 거니까. 사실은 저자의 목소리지만 반 고흐가 직접 자신의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묘사는 이 부분이다. 단순한 작품 묘사가 아니라 반 고흐의 설렘과 희망을 느낄 수 있고, 그 설렘과 희망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서. 


머리가 크고 나서 더 이성적으로 이 책을 보게 되면서, 이 책의 근본적인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반 고흐 자신이 이야기하는 반 고흐'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반 고흐'인 것이다. 반 고흐 자신이 남긴 기록들과 그에 대한 연구 결과를 충실히 반영했지만 결국은 작가 자신의 추측과 주관적인 의견으로 만들어낸 반 고흐의 모습이다. 지금 다시 보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부분들과 지나치게 반 고흐의 기독교 신앙을 강조한 부분들도 적지 않다. 거기에 거부감을 느끼고, 저자가 보여주는 반 고흐의 모습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 고흐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은 제3자인 저자가 반 고흐의 삶을 설명하는 형식보다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그래서 어린 나도 반 고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기분이 되어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반 고흐의 모습이 실제 반 고흐의 모습과 완벽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반 고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과 달리 감정적인 거리를 어느 정도 두고 보니 허점도 군데군데 보이지만, 반 고흐를 사랑하게 만든 책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아직도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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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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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인간의 가장 진한 체취를 담아내게 된다. 특히 미술은 사진이 없던 시대에서부터 인간사를 기록해 왔고, 사진이 발명된 이후에도 사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사를 기록해 왔다. 그래서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미술 작품에 담긴 격변의 역사도 함께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인간의 삶과 욕망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중세 후기부터 사람들이 인간성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던 1, 2차 세계대전까지의 역사를, 그 시대를 표현하는 미술 작품들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랭부르 형제, <베리 공작의 기도서> 중 5월. 귀족들이 사냥하러 떠나는 장면이다.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하는 작품은 중세 후기인 15세기의 네덜란드 출신 화가들인 랭부르 형제(Limbourg, Herman,PaulJohan)의 <베리 공작의 기도서>이다. 기도서는 달력과 함께 시간과 계절에 어울리는 기도문과 화려한 채색 삽화를 담은 책으로,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당대 사람들의 세시풍속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베리 공작의 기도서>는 종교의 영향 아래 엄격하고 금욕적이었던 중세 초기 미술과는 달리 세속적 취향, 세속적인 삶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림 속 맛있는 음식과 세련되고 화려한 옷, 즐거운 파티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귀족들과 농사를 지으면서 평화롭게 만족하며 사는 농민들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꿈꾸던 삶의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뜨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증표인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베누아의 성모>, 1478.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 누구보다도 자신들의 욕망을 치열하게 추구해 왔던 메디치 가문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후원해 문화적 발전을 이끌어냈다.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메디치 가의 후원을 기반으로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거대한 돔을 건축하는 데 성공한다. 돔을 건설하면서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을 발견해,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 자연을 재현한다는 미술의 과제에 시작점을 마련했다. 또 그의 후배인 파올로 토스카넬리는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에서 태양의 운동을 관측하는 실험을 했다. 인간이 자연을 호기심과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자연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는 이성과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성과 과학에 눈을 뜬 당대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베누아의 성모>를 든다. 그림 속 아기 예수는 자신이 들고 있는 꽃을 유심히 바라본다. 신인 예수가 자신의 피조물을 호기심을 품고 바라볼 리 없다. 그림 속 아기 예수는 자연을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


 세상 모든 것을 의문을 품고 바라보는 이성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사는 세상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신이 내렸다는 절대적인 왕권에도, 몇몇 상류 계급만이 부를 독점하는 현실에도 서서히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런 의문을 품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고, 그들의 사상을 바탕으로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는 더 큰 혼란이 일어났고, 혁명 세력 내부에는 분열이 생겼다. 혁명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들이 다시 권력을 잡고 혁명이 바꾸어 놓은 것들을 원상복구했다, 다시 혁명으로 쫓겨나고, 다시 보수 세력이 집권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수없이 회의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민주주의이다. 19세기 독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자유와 평등을 열망하는 인간의 초상이다. 이 그림 속 남자는 1817년 자유주의적 이상을 품고 결성된 독일의 대학생 단체 '부르셴샤프트'의 단복을 입고 있다. 당시는 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를 비롯한 보수 세력의 억압으로 자유주의 운동이 전 유럽에서 후퇴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부르셴샤프트의 자유주의적 이상은 독일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자욱한 안개 바다 앞에 두려움 없이 홀로 서 있는 청년의 모습은 현실 질서에 저항하며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케테 콜비츠,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1938.


 그러나 인간의 이성과 그를 통한 진보를 믿었던 사람들은 20세기에 들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발달한 과학 문명을 통해 부강해진 나라들은 팽창하며 서로 충돌했다. 이성에 근거한 과학 문명은 처절한 전쟁을 불러오게 되었다. 전쟁이 사회의 모든 모순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열광했던 예술가들조차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성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이성에 기반한 서구 문화 전반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 자신과 전쟁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아들과 손자를 전쟁으로 잃었던 독일의 예술가 케테 콜비츠는 조각 작품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를 통해 한 인간 어머니, 아들의 죽음에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느끼는 지상의 여인을 보여준다. 이런 예술가들이 있기에 인간은 역사와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중세부터 현대까지 그 시대가 낳은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볼 수 있다.종교의 영향 아래에서 살다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뜨고, 권력자들의 억압 아래에서 살다 스스로의 권리와 자유를 찾아가고, 때로는 인간이 저지른 잔혹한 행동에 회의를 느껴온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추구하고,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면서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는 현대의 사람들을. 지금은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이 책은 그런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싸우고 피 흘리면서 지금 우리의 삶을 만들었다. 그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담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만들어온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것이 이 책의 의의가 아닐까.

 

*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판들의 화질이다. 미술사 책이라기에는 도판의 화질이 아주 좋지는 않아, 작품의 디테일이 뭉개져서 보일 때가 있다.(특히 베네치오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예배>의 경우가 심하다.) 작품을 더 자세히 살펴보려면 구글에서 다시 작품 이미지 검색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서인 <민음 한국사> 시리즈의 도판들이 오히려 더 화질이 좋다. 미술사 책이니만큼 도판의 화질에 대해 더 신경 써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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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5-10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판의 화질‘부분은 절대 공감이요.^^ 그래서 저는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도판들을 참고하곤 해요.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바스티안 2018-05-10 17:44   좋아요 0 | URL
제가 미술사책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도판의 화질이에요. 저는 구글에서 화질 좋은 도판들을 검색해 봐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정말 도판들 화질이 좋더라고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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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이 책이 조선시대 미술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 책은 조선시대의 화가 신윤복부터 근대의 화가 이쾌대현대의 화가 신경호정연두까지 여러 시대의 화가들을 이야기하고 있다저자가 말하는 조선은 조선왕조가 아니라 한국보다 더 넓은 의미의 총칭인 것이다저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은 북한과 재외교포 등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포함하지 못하는 협소한 명칭이다한국미술사에 관한 책을 쓰는 다른 저자들은 한국미술이라는 명칭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왜 유독 그는 한국미술이라는 명칭에 이의를 제기했을까그것은 그가 한국 밖의 구성원인 재일교포라는 데서 기인한다한국 안의 구성원인 한국인 저자들로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 문제이다.


한국미술이라는 말 대신 우리 미술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저자는 우리’ 미술이라는 말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라는 범주를 고정시키고 그 범주에 맞지 않는 구성원들을 버리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범주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해외입양아 출신인 예술가 미희 이야기이다미희는 한국 국적도 아니고 한국어를 구사하지도 못하며 핏줄로 따져 봐도 반쪽은 일본인이다이런데도 미희를 우리라는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는 고정되어 있는 본질이 아니고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조건에 따라 규정되는 맥락이므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우리 역사의 흐름과 맥락을 공유하는 사람들 모두를 우리로 본다미희는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1960년대 말 한국에 들어왔던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버려져 해외에 입양되었다자신을 고도경제성장의 폐기물이라고 말하는 미희는 1960년대 급격한 경제개발과 그 뒤의 그림자라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우리와 공유한다그러므로 미희도 우리에 포함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오히려 미희를 우리에 포함시킴으로 인해 우리의 범위는 더 확장된다는 것이다.

 

미희를 포함한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우리 역사의 흐름문맥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신경호와 홍성담은 지금도 예술을 통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 증언하고 있다서양 화법과 조선 전통 화법 사이에서 방황했고월북 이후 남한에서는 금기시되는 존재가 되었던 이쾌대는 삶 자체가 전통과 서구의 새로운 문명 사이에서 방황하고전쟁으로 갈라졌던 민족의 문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송현숙은 1960년대 말 한국과 독일 정부 간의 협정에 따라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 중 한 명으로 독일에서 더 넓은 세상을 체험하면서 예술에 뜻을 품게 되었다저자 자신도 두 형이 197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다 수감되어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풀려나는 비극을 겪었다저자는 같은 역사와 문맥을 공유한 사람들을 모두 우리로 인정하고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저자가 조선미술’ 순례를 하면서 찾으려 한 것은 미술로 표현된 우리’ 안의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였다그는 화가들의 작품과 그것의 미술사적 의미보다는 화가들 자신과 그들이 가지고 있고 미술로 표현하려는 역사의 흐름맥락에 집중한다미술 순례라고 하면서 미술 작품보다는 그것을 만든 작가와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역사에 더 집중하는 것이 주객전도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한국이라는 고정된 범주 밖에 있었기에 저자는 고정된 범주 밖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범주를 더 넓혀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이것이 그의 조선미술 순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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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 / 예경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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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의『서양미술사』는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부터 20세기 현대 미술까지 수천 년 동안의 미술사를 다루는 통사다. 미술사를 통사로 쓰는 것은 예술가들과 작품들, 또는 미술 사조들의 나열에 그칠 위험이 크다. 곰브리치는 이 책에서 미술사를 연대와 미술 사조들, 예술가들에 따라 정리하고 있지만, '미술이 무엇으로 인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써 미술사를 전개하면서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

 

미술은 예술적 기교가 발전함에 따라 발전해 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곰브리치는 이런 통념을 깨고 미술은 문제를 의식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지 모색하면서 발전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대로'를 그리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원근법과 명암법을 통해 처음으로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르네상스 미술도 원근법과 명암법에 갇혀 이렇게 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다. 인상주의자들은 이렇게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지만, 눈에 보이는 것과 지식으로 아는 것은 뚜렷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 문제를 깨달으면서 이후의 예술가들은 보이는 것과 아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독창성을 추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여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곰브리치는 이야기한다.

 

곰브리치의 견해가 '미술은 무엇으로 인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단 하나의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교의 변화가 아닌 생각의 변화가 미술을 발전시켜 왔다는 그의 견해는 생각이 지닌 힘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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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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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이나 도서관의 예술 서적 코너를 살펴보면선사시대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시대 순으로 미술사를 살펴보는 미술 통사(通史)는 매우 흔하다그런데도 이 책의 제목에는 난생 처음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어떤 점에서 다른 미술 통사와 다르기에 난생 처음이라는 말을 자신 있게 제목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일까?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권의 두 페이지. 저자와 청자의 대사가 다른 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사진 출처: http://www.artinculture.kr/online/2781


 우선 이 책은 가상의 청자와 저자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기획되었다이러한 대화 형식은 저자 혼자 줄줄이 설명하는 형식과 달리독자가 청자의 입장에 이입해 저자와 대화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한다청자의 대사와 저자의 대사는 각각 다른 색으로 인쇄되어청자(에게 이입한 독자)와 저자의 대사를 구분하기 쉽게 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권에 실린 연대표. 책의 시각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사진 출처:

http://www.artinculture.kr/online/2781


그리고 텍스트의 흐름에 맞게 시각자료가 꼼꼼히 배치되어 있다저자는 오른쪽 페이지의 그림을 보시면’, ‘뒤쪽의 그림을 보시면’ 등 책의 판면 어디에 시각자료가 위치해 있는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실제로 저자가 가리키는 위치에 시각 자료가 배치되어 있다이것은 처음부터 텍스트와 시각자료의 위치를 고려해 기획과 집필편집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또한 작품 도판과 지도일러스트그래프연대표 등 다양한 시각자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독자들은 책의 시각적 흐름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또한 깔끔한 편집과 다채로운 시각 자료들은 독자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주고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또 하나의 독특한 요소는 한 소단원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요약정리 난처하 군의 필기 노트이다. ‘공부하는이라는 제목에 맞게 독자들은 한 소단원을 다 읽을 때마다 필기 노트를 보면서 그 단원에서 배운 것들을 머릿속에 정리하게 된다이 코너는 학생들의 필기 노트처럼 줄이 그어져 있는 공책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어그냥 미술사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강의를 듣고 필기하면서 공부하는 느낌을 더해준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황소를 그린 벽화. 약 1만 7천 년 전. 저자는 현생 인류가 다른 인류와 달리 정교한 의사소통을 통해 사회를 지속시키고 지식과 지혜를 축적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미술은 언어와 함께 정교한 의사 소통의 도구 역할을 해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생존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동굴 벽화는 그 의사소통의 가장 오래된 증거이다. 사진 출처: http://www.ancient-wisdom.com/francelascaux.htm


무엇보다 이 책은 미술에 대해 참신하고 깊이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미술사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미술 통사들은 서로 비슷비슷한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 책은 다른 미술 통사들이 지나쳤던 지점들을 짚어보면서  '미술은 삶의 부속이나 장식이 아닌 생존의 비결이다' 등의 참신한 시각을 제시한다청자가 (독자들이 던질 만한질문을 던지면 저자가 답하는 형식은 이 참신한 시각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청자(그리고 독자)는 기존의 시각이나 상식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질문을 하면저자는 청자와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며 대답한다질문과 대답을 통해 독자가 또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들 덕분에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는 1권이 21쇄까지 증쇄되고다음 권들도 계속해서 증쇄되고 있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이 시리즈의 인터넷 서평들은 대부분 지식과 재미 모두를 잡았다는 호평이다이제 중세 미술까지 다루었으니 앞으로 다룰 내용이 더 많을 것이다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가 지금의 참신함을 끝까지 잃지 않고계속해서 독자들을 미술 공부의 즐거움으로 이끌기를 바란다



"의사소통이 없으면 협력할 수 없으니,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언어라든지, 미술이야말로 생존의 비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맞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미술은 삶의 부속이나 장식이라는 편견이 있지요. 하지만 미술이야말로 두 발로 걷고 도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우리가 타고난 생존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p.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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