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에서 연구하시는 이병한 교수께서 2019년 출판하신 동아시아의 냉전사 연구서입니다.

냉전사(The Cold War History)라는 분야 자체가 현대사 중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를 다루는 매우 특수한 분야이다보니, 그리고 그중 사회주의/ 공산주의권에 대한 분야이므로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저자의 연세대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한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권에 대한 20세기의 역사는 그 이념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서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의 중요한 한축으로 잊혀져야 할 이유도 정당성도 전혀 없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북한의 독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애초의 이들의 순수한 동기를 알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100년이 넘게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 바라보는게 처음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전을 흔히 보듯 미소 두 블럭간의 대결로 보는 서구적 시각 혹은 유럽적 시각(Eurocentric perspective)이 아니라 동아시아(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지역의 시각으로 냉전을 바라보려 했습니다.

유럽과 다른 동아시아의 냉전의 역사를 추적해보려고 했고, 미국과 동맹국인 일본이나 한국 등 자유주의 진영에서 본 냉전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북조선, 그리고 북베트남 등 소위 공산주의 국가들이 바라본 냉전을 다뤘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와 컴플렉스( Red complex)로 터부시했고 그래서 분명히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기록된 역사였으나 애써 무시하고자 한 역사의 한 부분을 복원한 점에 이 책에 의의가 있습니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잠시 언급하기도 한 중국의 부상(浮上)은 집필당시인 2014-2018년에 그 전조가 나타나기는 했으나 지난 2022-2023년 현재처럼 첨예해지기 전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물론 이 책이
나온 후의 상황이라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건 유의해서 볼 사항입니다.

근래에 접한 정치권의 논쟁 중 상식적인 면을 물고 늘어진 한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책을 소개하시면서 한국전쟁의 성격이 ‘국제전(International War)’ 이었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여당 정치인들이 북한의 남침 사실을 무시했다느니, 한국전쟁이 내전이었다고 날선 비판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언제나처럼 비판의 근거는 대지 못했습니다. 논쟁하는 법을 모르는 분들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서구의 냉전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미소대결을 본격화한 최초의 사례라고 나오고 냉전이 열전 (the Hot War)로 번진 사례로 언급됩니다. 한국전쟁의 국제전성격은 또한 휴전협정 당사국을 보면 됩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휴전협정은 북한의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의 팽덕회, 국제연합군의 미군 대장 마크 클라크 (Mark W Clark) 이 사인했고,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 국제연합군 수석대표 미군 대장 윌리엄 해리슨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국제전이 아니면 국제연합군이나 중국인민지원군 대장이 후정협정에 사인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조선인민군 사령관의 이름은 협정서이 올라있으나 당사자라던 이승만 대통령이나 백선엽 장군 이름은 없습니다.

이 해프닝은 한국전쟁의 휴전에 대한 역사적 사실조차 모르거나 아니면 왜곡해도 된다는 불순한 동기가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중국쪽의 인식을 일별할 수 있는 연구서가 한권 나왔습니다. 한국전쟁, 즉 중국에서는 항미원조(抗米援朝)라고 불리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서사가 어떻게 전유되고 있는지 살핀 문화사입니다.

항미원조, 백지운 지음( 창비,2023)

또한 중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휴전협정 체결이후 1958년까지 진행된 북한의 재건과정이 새로운 중국의 정체성만들기와 연결된다(p85)고 인식합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이후 첫 국제전이 한국전쟁이고 이 전쟁에서 마오쩌뚱의 아들이 전사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북중관계를 혈맹이라고 부르고 서로 형제라고 부르는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한국과 관련된 언급은 여기서 그치고 저자의 주장을 잠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통념과 달리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는 오랜기간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 나타난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영향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화의 주체가 명대의 한족(漢族)에서 청대의 만주족(滿洲族)으로 바뀌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화의변태(華夷變態)라는 용어가 생겨나고, 조선이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는 등 중화사상 자체가 분기하고 중심이 없어지는 듯 보이고, 과거 근세시대의 종주국인 중국과 종속국인 중국 주변국간의 조공(朝貢) 관계가 국제법적인 조약관계로 바뀌었어도 오랜기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관계에서 고래의 영향인 중화주의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일견 당연하고 당연한 주장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중국과 수천년간 관계를 맺어왔고, 그 관계가 근대적 외교관계로 바뀌었다고 해도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유교문화에 대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자명합니다. 문명개화가 무엇이든 서양의 법률체계를 배우고 더할 수는 있어서 서양적인 법과 정치개념들이 동아시아 전통의 관념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타이, 인도네시아 등 국가들과 중국과의 관계입니다. 이번에 처음 본 내용이고 새삼 무지를 깨닫게 되는 부분입니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구제국과 얽힌 근대이후 뿐만 아니라 근세이전 중국과 조공관계를 이루던 복잡한 역사가 있어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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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제, 일본의 봉건 - 전제국가사론 일본사 연구총서 1
아다치 게이지 지음, 박훈 옮김 / 빈서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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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자 아디치 게이지(足立啓二)가 1998년 출간한 책을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교수가 옮긴 책입니다.

크게 보면 중국과 일본의 근세사회구조를 비교한 사회사책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근세사회 혹은 근대이전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일반적인 사회의 발전과정에 비추어 두 사회의 특징적인 면이 무엇인지 비교합니다.

그리고 가 사회구성원들이 벌이는 경제활동과 정치참여 등의 형태와 국가의 개입여부 그리고 국가의 역할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집니다.

전반적으로 사회사의 틀안에서 경제사와 정치사가 같이 설멸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또한 근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과 중국의 사회가 어떻게 반응을 하고 변화를 해왔는지도 다룹니다.

간략하게 특징 몇가지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사회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전제정치의 유산을 현재의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도 이어받고 있으며, 중국사회는 사회전체를 대표하는 공권력을 사회 속에서 창출하기 어려웠고, 사회를 규율하는 임의단체로서 당(黨)이 권력을 집중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이다.

저자는 중국사회가 전제국가(專制國家)적 전통으로 자율성이 결여되고 근대적 통합을 위해 정당이라는 임의단체를 통해 정치권럭이 집중된 중국적 정치체제가 나타난다는 점입니다(p252). 이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공산당이라는 정당을 기반으로 국가와 군대가 만들어졌다는 팩트와 부합합니다. 중국은 공산당을 기반으로 한 당중심 국가체제인데도 합의에 따른 결정보다 지도자 1인의 결정을 따르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런면에서 전제주의 정치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정치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현재 이런 정치체제는 국가를 기반으로 군대가 무력을 독점한다는 전형적 서구적 국가론과는 그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반면 일본은 초기 중국의 전제주의 정치에 영향을 받았으나, 근세사회에 이르면 각기 완결적인 영주위주의 봉건제(封建制) 사회로 서구의 봉건제( Feudalism)사회와 유사한 방향으로 서구적 근대화를 이루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은 중국과 달리 사회조직이 아래로부터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실력에 따른 정치참여의 틀을 마련해왔다고 봅니다. 이렇게 봉건사회를 기반으로 한 국가는 사회통합의 어려움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쉽게 근대국가로의 이행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p227).

이 책 후반부에 나오는 중국과 일본 사회의 비교를 간략하게 발췌했습니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지은이는 일본이 서구의 사회발전방향을 따라갔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닌지 고려할 문젭니다. 책에서 서구식 단선적 사회발전론을 따라가지 않고 여러 경우를 살펴볼예정이라고 하였지만 , 서구의 봉건제와 일본의 봉건제의 비교논의를 여기서 고려 안하더라도, 결국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래로 일본이 추구하던 탈아입구(脫亞入歐)논의를 벗어나지 않는 현대적 해석이라는 의심이 듭니다.


책에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근세 사회통합을 이룬 일본의 봉건제는 일본이 사회적으로 아시아에서 제일먼저 근대화되어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바탕이 되었지만 오랜기간 전제주의 정치의 역사적 유산이 남아있는 중국은 근대화를 이루기 어려웠고 그래서 일본에 뒤쳐질 수 밖에 없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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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 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4
후지이 다케시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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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 대해 새로운 시각( Perspective)을 제공해주는 저술이라는 평을 들어서 한번 읽고 싶었는데 오늘 완독했습니다.

편견일수도 있지만 해방이후 한국전쟁이후 냉전이 도래하는 시기인 1945-1953년의 격동기를 한국 국내정치의 관점에서 서술한 이 책은 일본출신 한국현대사 연구자이신 후지이 다케시씨 이시고 한국어로 된 저술이어서 일단 매우 놀랐습니다. 이책은 저자께서 2010년 성균관대에 제출하신 박사논문을 기반으로 한 책이라고 서문에 소개해주셨습니다.

총 5부에 본문이 456쪽에 달하니까 분량이 어느정도 되는 책입니다.

우파의 입장에서 해방정국이 어떻게 이루어져 나갔는지, 중국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와 미국에서 활동한 이승만 그리고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의 태평양지역 진출을 막기 위해서 미국 외교/안보 당국과 미군정이 한반도 남쪽의 국내정치에 어떻게 개입하고 공작을 벌였는지 이 책은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광복군 출신 이범석(李範奭)이 중국에서 돌아온 후 국내에서 만든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 또는 족청(族靑)은 해방이후 이범석이 국내정치를 하기 위해 만든 청년단체로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총통의 파시즘적인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만든 단체입니다.

이는 중국이 독일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 중국 국민군을 조직하고 이들의 군국주의를 따라 청년교육단체를 만들었고 이범석 역시 장제스와 함께 중국 전구(戰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중국 국민당과 장제스의 영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장제스 총통(總統, generalissimo)로 알려진 그는 현재 알려진 영미식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군부독재정권을 중국에 세우고 일본군과 싸우고 중국공산당과 내전을 치룬 인물입니다.

거기다 족청의 두 이데올로그 중 한명인 안호상(安浩相)은 독일 나찌정권 시절 독일에서 헤겔과 칸트 등을 공부한 인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파시즘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나머지 또 한명의 이데올로그는 양우정(梁又正)으로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 전향한 정치인으로 후에 안호상과 함께 극단적 민족주의의 일종인 일민주의(一民主義)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이승만 정부의 사상적 뒷받침을 하는데 일조합니다.

이상에서 보면 이범석, 안호상, 그리고 양우정 세사람 모두 우파입장에서 이승만 정부의 출범을 도운 셈이지만 한반도 남쪽을 점령한 미군정이나 미국외교당국이 불편해할 사상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파시즘 국가인 나찌독일과 유럽전선에서 싸우고, 스탈린이 아시아와 유럽대륙에 공산주의를 전파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은 공산주의를 봉쇄(containment)해야 한다는 외교정책을 추구한 상태에서 한반도 남부는 미국입장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었습니다.

이미 공을 들인 중국대륙이 공산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간 마당에 한국의 우파 정부마저 파시즘적 성향을 보인다는 걸 미국은 용납할 수 없었을 겁니다.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입하기로 한 후 이승만이 초대 정부를 구성하는데 족청이 다른 우파 청년조직들과 함께 일조를 했지만 이범석이 파시즘을 긍정하고 있고 안호상이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인종주의적 파시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목격하고, 나찌독일과 유럽전선에서 싸운 미국으로서는 족청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기다 양우정은 일제시기 공산주의자였고 프로레타리아문학운동을 한 이력도 있어서 역시 요주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족청이 초기에 우파청년들 뿐만 아니라 과거 공산주의 운동을 한 이들도 대거 받아들여 한국전쟁이 휴전된 이후 이승만 정부와 여러 우익 정치인들로부터 ‘좌우합작’의 조직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사상적 탄압을 받아 결국 해체가 되는 수군을 밟게 됩니다.

다음은 이승만과 이범석 그리고 족청의 관계를 말하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승만은 족청을 이용하고 버렸습니다.

반자본주의와 반공산주의를 주장하고 자신이 초대에
이어 2대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한 공작에 철저하게 족청과 이범석을 이용했지만,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며 자신의 대통령 재당선을 위한 개헌을 위해 의회를 겁박하는데 족청계 정치인들을 이용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승만의 독재적이고 반민주적인 향태에 우려를 했지만 미국의 국익에 그가 한국의 대통령인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묵인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승만은 부산정치파동을 통해 개헌을 하고 2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족청출신 정치인들과 이범석을 숙청해 권력을 독점하고 자유당체제에서 분단을 고착시키며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구축합니다.

지금도 우익 정치권에서 이승만을 국부라고 떠받들고 ‘우상화’작업에 열중하는데 이 책을 통해 제가 본 이승만은 그냥 독재적으로 국가를 운영했고 국회에 대해 끊임없이 탄압을 가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일방적인 ‘유시’만 남발하고 제대로 정치인들과 대화도 잘안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남한 단독정부를 혼자서 좌지우지하려고 했죠.

국회가 삼권분립에 따라 이승만의 독단적 결정을 저지했는데도 이승만은 공권력을 동원해 국회의원들을 채포하고 구속하는 등 횡포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실상은 무자비한 독재였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그도 그럴것이 이 책에서 탄압받은 인사들은 일부 공산주의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우파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경도된 이들도 있었지만 나이들고 권력욕에 눈먼 이승만에게는 다음번 대선에서 권력을 빼앗기지 않는게 더 먼저였습니다.

이승만씨는 해방정국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인사이고 그가 한 국회탄압과 정치인 숙청을 보면 그가 민주주의와 별반 관계없는 정치인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승만씨는 국부라는 칭호를 받기에는 한일도 없고 권력욕만 센 정치인이었고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우파인 보수정치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뿐이 아닌 정말로 개인의 자유와 법에의한 통치를 이룩하지 않고는 우파를 액면 그대로 지지하기 힘듭니다. 수많은 ‘사이비 우파‘ 혹은 ’극우‘이면서 우파라고 속이는 이들이 지금 한국에는 너무 많습니다.

우파라고 하면서 사람따라 법률 적용 달리하고 그 기준이 검사와 얼마나 가까운 사람인가가 이면 그건 법치가 아니고 법치를 가장한 거짓말을 치는 것 뿐입니다. 정실주의(cronyism)일 뿐이죠. 아주 후진적인 태도죠. 공부잘하고 시험 합격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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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현대정치사 - 아데나워에서 메르켈까지, 기민련을 통해 본 정당국가 독일
문수현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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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 자신의 중요관심사가 한국과 아시아의 정치 사회문제 그리고 역사적 전개과정이지 멀리 떨어진 유럽의 독일의 정치 그 자체가 관심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하지만 주된 관심사가 아닐 뿐 독일의 정치, 경제체제의 운용방식은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영미식 자본주의 운용체제와 비교하여 대안체제로서 충분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분야입니다.

우선 한국과 독일 모두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열강에 의해 분단된 경험이 있는 나라이고, 독일은 한국보다 먼저 통일을 맞이했던 나라이기 때문에 지리적, 문화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 경제체제를 돌아보는데 그 대안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가지 더 부연하면, 독일은 제2차세계대전 패전국의 지위에 있었고, 한국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해방을 맞았으나, 일본이
패전국의 지위를 가진 것과 달리 한국은 전쟁에 따른 그 어떤 지위도 얻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패전이후 일본을 ‘점령(占領,occupied)’했으며 한반도의 남쪽도 점령해 미군정이 실시되었습니다.

이책은 기민련( 기독교 민주주의 연합)이라는 독일의 보수정당이 패전이후 어떻게 독일의 정당정치체제를 통해 권력을 쥐어 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합니다.

초대총리인 콘라드 아데나워부터 헬무트 콜 그리고 최근 퇴임한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 앙겔라 메르켈까지 주로 장기집권한 기민련 출신의 총리들과 그들이 어떻게 정당에서 권력을 잡고 연방의회에 진출하고 또 최종적으로 권력의 정점인 총리가 되었는지를 주로 독일측 자료를 인용해서 밝힙니다.

영미의 자유방임적 시장자유주의와 독일의 전치. 경제체제가 다른 것은 독일이 ‘사회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는 점이고 시장의 메커니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것만큼이나 국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시장은 그 자체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정하는 제도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국가는 자유시장경제에서 소외된 국민들, 노인이나 저소득층, 저임금 노동자, 성소수자, 여성 등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 인식을 전제로 경제제도와 정치제도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취급받을만한 이런 생각이 독일에서는 보수적인 기민련 정치가들 사이에서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세상에 본받아야 할 체제가 영미식 자본주의 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것은 보수정당인 기민련의 초대총리 아데나워머저도 이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아데나워의 통치는 그가 ‘가부장적 총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매우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정치를 해왔는데도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이책은 결론을 제외한 총7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본문이 430여쪽에 이르니까 보통의 양보다 조금 많은 분량의 책이지만, 책이 현대 독일의 정당정치를 다루는 만큼, 저자가 과거에 발표했던 논문을 일부 수정해서 포함시켰습니다.

하지만 현대 독일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다면 입문서로 적당할 것 같습니다. 반면 독일이나 정치에 대해 낯설다면 읽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일에 대해 무지한 저는 이 책을 보고 독일이 비록 신교(Protestant)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남쪽 지역과 북쪽지역의 종교적 차이가 상당하고 별도의 지역적 역사의 차이가 크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북쪽은 군국주의 국가인 프로이센(Königreich Preußen)의 지배를 받았던 신교 영향이 큰 지역이고 남쪽의 바이에른(Bayern)은 카톨릭의 영향이 지금도 상당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카톨릭이 우월한 지역출신 총리인 초대총리 아데나워는 미국보다 프랑스를 더 선호했다고 합니다.

유럽 한복판에 위치한 독일이 그리고 스위스를 포함한 독일어권이가톨릭에 저항한 신교세력이 등장하는 종교개혁의 진원지임을 생각하면 종교에 기반한 역사적 뿌리가 현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일단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끝으로 이책에서 기민련의 연정상대로 등장하는 사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일의 정강정치는 기민연과 사민당 사이의 연정(聯政, 연립정부)를 이루어온 역사가 상당하지만 이 책이 기민련의 정당사 위주로 쓰여져서 빠진 부분이 많습니다.

독일 특유의 연립정부 중심의 정부구성은 결국 그 전제가 양당정치가 아니라 다당제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독일 정당의 역사를 보고 한국의 경우에 적용하면 현재 한국의 대의정당정치를 발전시키려면 다양한 목소라를 아우르는 다당제와 군소정당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특정정당 출신 법조인에 50-70 대 남성 노인층으로 구성된 의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50-70대 남성 법률가만 국회의원 되는 건 한국의 민주주의를 퇴행으로 몰고가는 것일 뿐이죠.

특히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총리는 서독과 동독의 통일로 가는 초석을 닦은 정치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전후 서독정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추진한 동방정책(Ostpolitik)이 실제로 독일통일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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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 -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백지운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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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시기에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중국(中國)이라는 아시아 대륙의 대국은 한국의 역사를 통틀어 오랜기간 교류를 해온 이웃나라이자 관계의 부침을 수없이 겪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의 아시아 대륙침략에 맞서 같이 싸운 적도 있었고,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의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돕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여하면서 현재 한국에 여태까지 남아있는 중국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습니다.


이 책은 한국인들에게 동족상잔( 同族相殘)의 기억으로 각인되고 , 지금도 어르신들이 ‘6,25전쟁’으로 통칭하시는 한국전쟁을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인이 쓴 한국전쟁의 전쟁사(戰爭史)가 아니라 중국의 TV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재구성된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공산주의 국가로서 국가보다 당이 우위에 있는 중국의 정치체계 상 위에서 언급한 모든 영상창작물은 결국 국가기관에서 제작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허구가 섞여있는 드라마나 영화라 할지라도 제작전 사전검열을 이미 거친 것이기 때문에 중국공산당과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지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즉 이 책은 중국이 한국전쟁을 어떤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각 시기별 변천을 통해 대표작 위주로 평론을 하면서 그들이 각 작품을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중국 지도부의 지침을 같이 제시하면서 이해를 돕습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국전쟁, 즉 중국입장에서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으로 불린 이 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변화에 따라 소환되는 방식, 서술되는 방식, 심지어 이름까지 다르게 불렸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대까지 중국은 미국을 제국주의자로 인식했고, 한국전쟁을 미 제국주의자와의 전쟁으로 인식했고, 소련과 공조해 공산주의 블럭을 형성한 시기에 한국전쟁을 반미적 시각에서 보았습니다. 미국을 적으로 보고 있으니 반미(反美)적인 시각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소련의 후루시쵸프가 스탈린의 뒤를 이은 뒤 스탈린 격하운동을 하자, 중국은 소련을 ‘수정주의(修正主義)라고 비난했고 이에 따라 공산주의 블럭이 분화하기 시작합니다. 중고갈등이 터져나오던 시기입니다.

이후 1970년대 들어 중국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시도해 미국과 소련으로부터의 고립에서 탈출하려고 하면서 미국과 적으로 싸운 한국전쟁의 기억은 의도적인 삭제가 불가피해지고 어떤 중국의 공적인 문서(statement)에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지속되면 수많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데, 반미논조가 가득한 항미원조전쟁의 이야기를 공적으로 발표하거나 드라마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건 충분히 수긍되는 면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시기부터 노골적으로 중국을 적대하기 시작했고, 바이든 정부 들어 트럼프 정부의 중국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현재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역대 최고조로 올라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미국과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은 중국의 부상과 잠재력을 두려워하면서 심지어 일부 극렬극우주의자들이 인종주의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을 비롯한 서구인들은 아편전쟁(Opium War ,1840-1842)이후 세계를 이들의 물질문명으로 장악하면서 중국이 서구가 아시아에 모습을 드러낸 15-16세기 이전까지 세계최대규모의 경제력을 가졌었다는 과거를 애써 잊고 싶은 듯 합니다.

아무튼 현재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 Supply Chain) 재편이 진행되면서 미국은 특히 군사전략적인 이유로 반도체의 중국내 생산을 꺼려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의 삼성과 대만의 TSMC가 전세계 반도체 와이퍼의 거의 15% 정도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동맹을 내세워 한국 반도체 회사 공장을 미국에 유치하려고 해도 단순히 돈만 투자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한국회사들이 중국시장을 포기할 일도 없는데, 일단 중국을 배제한 세계경제 체제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아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실제 실현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시진핑주석이 최초로 3연임을 한 중국은 현재 미국과 불화를 겪고 있고, 일부 우파 학자들 중에는 신냉전( New Cold War)시대가 도래했다고 성급히 주장하기도 합니다.

미국을 적대해서 싸운 한국전쟁, 즉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이 전후 거의 70여년 만에 다시 중국의 공적인 레토릭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 전쟁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이런 현재의 미중갈등이 그 주요 배경입니다.

미국이 아직도 단일패권국가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후 지속되온 미국의 헤게모니에 균열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은 이런 미중갈등 상황에서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소재로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현재의 중국을 만들었는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이 마음에 안들어도 한국 옆에 있는 큰 나라고, 더구나 한국과 특별히 적대할 이유가 없는 나라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상대한 나라는 미국이지 한국이 아니라고 인식하는걸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 중국을 건드리고 스스로 알아서 적대하고 중국시장에 대한 경제적 이익도 챙기지 못하는 현재 윤석열 정부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다르다는 기본을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아무튼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역사는 한가지로만 쓸 수 없는것이죠. 불편해도 상대가 서술해온 한국전쟁의 역사를 최소 인지는 하고 있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을 가장해서 한가지 서술만 인정하는 건 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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渼沙_常水 2023-10-09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가치나 신념 또한 편향일 수 있기에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주입되어 알고 있는 그런 주관에서 벗어나 비록 적대했던 상대라는 사실을 감안하고라도 그들의 시점으로 바라보는건 흥미롭습니다.
사람이나 국가나 절대악이나 절대선은 없습니다. 불가근 불가원의 적절한 관계가 필요합니다. 일본, 미국, 중국 어떤나라도 자기들의 실리를 우선으로 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이며 그런 실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엎어지는것도 자빠지는 것도 안됩니다. 밀당은 연애에만 소용되는게 아닙니다. 적절한 관계설정이 필요합니다. 친일, 종북, 극일, 반중... 이런 극단적 관계가 아닌 저들을 잘 아는게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해 당근과 채찍 또는 매와 비둘기가 필요 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오월동주 할 수 있는 유연하고 노회한 대처가 필요 합니다

Dennis Kim 2023-10-0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국제관계에는 절대적인 적이나 우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국익이 유일한 판단기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