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에서 연구하시는 이병한 교수께서 2019년 출판하신 동아시아의 냉전사 연구서입니다.

냉전사(The Cold War History)라는 분야 자체가 현대사 중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를 다루는 매우 특수한 분야이다보니, 그리고 그중 사회주의/ 공산주의권에 대한 분야이므로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저자의 연세대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한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권에 대한 20세기의 역사는 그 이념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서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의 중요한 한축으로 잊혀져야 할 이유도 정당성도 전혀 없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북한의 독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애초의 이들의 순수한 동기를 알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100년이 넘게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 바라보는게 처음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전을 흔히 보듯 미소 두 블럭간의 대결로 보는 서구적 시각 혹은 유럽적 시각(Eurocentric perspective)이 아니라 동아시아(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지역의 시각으로 냉전을 바라보려 했습니다.

유럽과 다른 동아시아의 냉전의 역사를 추적해보려고 했고, 미국과 동맹국인 일본이나 한국 등 자유주의 진영에서 본 냉전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북조선, 그리고 북베트남 등 소위 공산주의 국가들이 바라본 냉전을 다뤘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와 컴플렉스( Red complex)로 터부시했고 그래서 분명히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기록된 역사였으나 애써 무시하고자 한 역사의 한 부분을 복원한 점에 이 책에 의의가 있습니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잠시 언급하기도 한 중국의 부상(浮上)은 집필당시인 2014-2018년에 그 전조가 나타나기는 했으나 지난 2022-2023년 현재처럼 첨예해지기 전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물론 이 책이
나온 후의 상황이라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건 유의해서 볼 사항입니다.

근래에 접한 정치권의 논쟁 중 상식적인 면을 물고 늘어진 한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책을 소개하시면서 한국전쟁의 성격이 ‘국제전(International War)’ 이었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여당 정치인들이 북한의 남침 사실을 무시했다느니, 한국전쟁이 내전이었다고 날선 비판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언제나처럼 비판의 근거는 대지 못했습니다. 논쟁하는 법을 모르는 분들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서구의 냉전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미소대결을 본격화한 최초의 사례라고 나오고 냉전이 열전 (the Hot War)로 번진 사례로 언급됩니다. 한국전쟁의 국제전성격은 또한 휴전협정 당사국을 보면 됩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휴전협정은 북한의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의 팽덕회, 국제연합군의 미군 대장 마크 클라크 (Mark W Clark) 이 사인했고,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 국제연합군 수석대표 미군 대장 윌리엄 해리슨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국제전이 아니면 국제연합군이나 중국인민지원군 대장이 후정협정에 사인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조선인민군 사령관의 이름은 협정서이 올라있으나 당사자라던 이승만 대통령이나 백선엽 장군 이름은 없습니다.

이 해프닝은 한국전쟁의 휴전에 대한 역사적 사실조차 모르거나 아니면 왜곡해도 된다는 불순한 동기가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중국쪽의 인식을 일별할 수 있는 연구서가 한권 나왔습니다. 한국전쟁, 즉 중국에서는 항미원조(抗米援朝)라고 불리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서사가 어떻게 전유되고 있는지 살핀 문화사입니다.

항미원조, 백지운 지음( 창비,2023)

또한 중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휴전협정 체결이후 1958년까지 진행된 북한의 재건과정이 새로운 중국의 정체성만들기와 연결된다(p85)고 인식합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이후 첫 국제전이 한국전쟁이고 이 전쟁에서 마오쩌뚱의 아들이 전사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북중관계를 혈맹이라고 부르고 서로 형제라고 부르는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한국과 관련된 언급은 여기서 그치고 저자의 주장을 잠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통념과 달리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는 오랜기간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 나타난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영향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화의 주체가 명대의 한족(漢族)에서 청대의 만주족(滿洲族)으로 바뀌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화의변태(華夷變態)라는 용어가 생겨나고, 조선이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는 등 중화사상 자체가 분기하고 중심이 없어지는 듯 보이고, 과거 근세시대의 종주국인 중국과 종속국인 중국 주변국간의 조공(朝貢) 관계가 국제법적인 조약관계로 바뀌었어도 오랜기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관계에서 고래의 영향인 중화주의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일견 당연하고 당연한 주장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중국과 수천년간 관계를 맺어왔고, 그 관계가 근대적 외교관계로 바뀌었다고 해도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유교문화에 대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자명합니다. 문명개화가 무엇이든 서양의 법률체계를 배우고 더할 수는 있어서 서양적인 법과 정치개념들이 동아시아 전통의 관념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타이, 인도네시아 등 국가들과 중국과의 관계입니다. 이번에 처음 본 내용이고 새삼 무지를 깨닫게 되는 부분입니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구제국과 얽힌 근대이후 뿐만 아니라 근세이전 중국과 조공관계를 이루던 복잡한 역사가 있어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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