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에서 연구하시는 근현대 사상사 연구자 홍정완씨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본문 389쪽에 총 4부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1945년 해방이후부터 한국전쟁전까지의 시기와 한국전쟁이후 1961년 5.16 군사혁명과 그 이후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 당시까지의 시기를 다루며, 한국의 ‘근대화(modernization)’을 주로 다루었던 정치학과 경제학이 이책이 다루는 주요 사회과학 분과입니다. 1945년 해방과 미군정의 시기를 지나 1948년 남한에 정부가 수립된 이후 새로운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했던 당시에 가장 두드러지는 활동을 했던 분과이기 때문에 선택된 걸로 보입니다.

정치학분야의 특징을 보면 해방이후 새로운 정치체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현재 당연히 여기는 민주주의 체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한국천쟁이전까지 영미식 자유민주주의보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 체제와 심지어 나찌 독일의 파시즘적 독재체제까지 논의가 되었습니다.

1930년대 나찌 독일에서 공부했던 학자들이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어쩌면 당연한 경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점차 냉전( the Cold War)의 대결양상이 증대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 전쟁 이전의 사회민주주의적 논의는 줄어들고 미국의 행태주의적 정치학을 받아들이면서 자유민주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주류로 자리잡습니다.

해방이후 우파진영에서 파시즘에 기반한 전체주의적 국가주의를 체제대안으로 연구했고 공론장에서 논의된 건 이미 소개한 선행연구서에서 다루었습니다. 이 책에도 물론 이 책을 인용했습니다.

후지이 다케시 지음,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역사비평사, 2012)

경제학의 경우 한국전쟁 발발이전까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영향이 컸습니다. 상당한 수의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 계열인데다가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의 제헌헌법이 재정되었고 북한과 분단되기 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1929년 촉발된 대공황과 그결과 일어난 제2차세계대전을 겪었기에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불신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p381).
하지만 한국전쟁이후 남한에서 자본주의는 ‘객관적 필연’으로 받아들여졌고, 한국경제의 당시의 후진성은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전단계 (前段階)‘로 인식되었고 서구 선진국들의 근대화 산업화의 경험은 따라가야 할 본보기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경제학자들은 휴진국의 경제개발과 성장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후진적 사회에서 어떻게 경제 사회개발을 해서 근대화를 이루는지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확립하려 했습니다.
1950년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제개발이론은 넉시 (R Nurkse)의 이론으로 많은 경제학자들이 ‘균형발전’과 ‘수입개체산업화’를 주징했고 민간은 자본투입 부담이 적은 중소기업위주의 경공업에 국가는 기간산업 건설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60년 4.19 혁명이후 후진국인 한국은 시장가격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므로 국가가 장기적인 경제발전계획을 수립해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경제계획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습니다.

마르크스경제학자인 모리스 돕 (Maurice Dobb)의 사회주의 산업화전략과 허쉬먼(Albert O Hirschman)의 불균형발전론이 1950년대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주목을 받게됩니다.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경제학자 박희범은 체제와 상관없이 휴진국의 경우 계획에 다라 ‘속성공업화’가 가능하다고 보았고 농업의 잉여가치생성력이 그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p360). 속설공업화에 필요한 재원을 농업에서 얼마나 계속 공급가능한가가 포인트로 위에서 언급한 모리스 돕의 관점을 수용한 겁니다.

한국의 경우 불균형발전론을 채택해 경제개발을 시작했는데 균형발전론은 실현불가능하고 투입가능한 자원이 희소하고 기업의 경영의사결정능력이 한정적인 가운데 특정산업에 집중적으로 지원을 투입하는 곳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여기에는 경제학자 로스토우 (W W Rostow)가 역사적인 관점에서 경제성장을 설명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1-2개 산업의 성장이 빠르게 일어나 경제성장을 주도했다는 사실에 근거한 겁니다 (p351).

이런 상황에서 위의 박희범 교슈는 사회주의적 계회경제가 불가능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급속한 공업화를 위해서 유일한 방법은 국가에 의한 자본조달의 강제적 조직화밖에 옶어ㅛ다 (p361).

경제적 정치적으로 후진성을 극복하고 급속한 공업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식인들은 한국에서 ’독재적 권력형태’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습니다(p369).

서구의 민주주의 발전과정과 근대화과정의 전범으로 삼은 당시 지식인들은 사고방식이 현대기준으로 ‘유럽중심주의’레 치우쳐있고, 아시아가 ‘정체(停滯)’되어 있다는 서구의 주장을 주어진 사실(given fact)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들 입장에선 한국이 기독교적 전통도 없고 부르조아 계급도 없으며 근대화에 필수적인 중산층 (middle class)도 없어서 자유민주주의는 실현가능하지 않고, 엘리트층이 주도하는 것이 불가피하며 5.16 군사혁명을 민족적 사명감을 가진 엘리트층에 의해 수행된 혁명으로 긍정했습니다(p373).

이상으로 이책에서 정리한 1950-1960년대초까지 지식인들이 한국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어떤식으로 사고하고 어떤 이론적 군서로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어찌보면 2023년 현재 한국의 ‘반공보수’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현재 경제학분야에서 뉴라이트의 태두로 인정되는 안병직교수가 1960년 당시 후진국 경제개발과 관련하여 독재를 긍정하는 발언이 나옵니다(p329).

급속한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위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채제를 용인하는 건 현재 언론지면에서 볼 수 있는 친일성향 극우 정치세력의 주장과 판에 박힌 듯 닮았습니다. 역사에 우연이란 없고 역사는 반복된다고 느낍니다.

좀더 양보를 해서 사실상 전근대적 농업사회였던 1960년에 안병직 교수의 주장이 타당했다고 해도, 이미 불균등설정론에 잆각해 경제개발을 끝내고 중산층이 자리잡고 있는 세계6위 경제대국인 현재의 한국에서 아직도 1960년과 동일한 주장을 하는 극우는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은 30년이 넘은 대통령 직접선거의 전통이 있고 후진적인 정치권에 신물이 난 배울만큼 배운 중산층이 두텹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1960년대처럼 한줌도 안되는 엘리트층이 몽매한 국민을 ‘계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현재 한국의 엘리트가 엘리트가 맞는지도 의심이 되는 상황이고 배울만큼 배운 중산층이 엘리트의 말을 듣지도 않습니다. 고시출신들 무능하다는 게 오히려 솔직한 평가지요.

경제개발 시대에 적절했던 정치경제적 사고가 현재는 유효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제대로된 체제가 제대로 들어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면에서 대안으로 제헌헌법 당시의 사회민주주의적 체제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국은 서구와는 다른 경로로 민주주의에 도달했고, 경제개발에 따라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루었습니다. 중산층이 없고 민주주의 전통이 없다는 엘리트층의 주장은 더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민이 준 권력을 국회와 고위관료들이 ‘남용(abuse)’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대의민주주의만이 유일한 민주주의 형태라고 국민을 현혹하는 정치인들은 사라져야 합니다. 기술적으로 직접민주주의도 가능합니다. 네트워크가 없는것처럼 말하면 안됩니다. 가능하지만 국회의 이해관계때문에 못하고 있는 걸로 봅니다.

이책과 관련해 인용된 선행연구 몇건 더 소개하고 줄입니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과 로스토우의 영향에 대해서는

박태균 지음 , 원형과 변용 ( 서울대학교 출판부,2007)

을 참조바랍니다.


사상계에 관한 연구로는 아래를 참조바랍니다.

김건우 지음, 사상계와 1950년대 문학 (소명출판,2003)

제가 읽은 19050-60년대 보수지식인 동향에 대해서 김건우 교수의 다음 책이 유용합니다. 서북출신 지식인들이 5.16군사쿠데타에 동조하게 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김건우 지음,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느티나무 책방,2017)

그외 출판된 지 오래되었지만 언급해야 할 책으로 박희범 교수의 아래의 책입니다. 경제개발계획의 이론적 기반을 대표하는 연구서입니다.

박희범 지음, 한국경제성장론( 고려대학교출판부,1968)

한국이 추진한 경제개발개획의 이론적 기반인 불균형성장론은 아래의 책이 근거입니다.

W W Rostow, The Stage of Economic Growth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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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공부하시고 근대건축에 대해 탐구해 오신 최예선 작가의 한국의 오래된 집, 그중에서도 근현대시기에 지어진 오래된 집에 대한 책입니다.

건축적인 견지보다 미학적인 견지에서 감각적으로 집에대한 감상기를 쓰신 것입니다.

책의 모태가 잡지 <샘터>에 연재한 글을 기반으로 한 책이다보니 다른 건축비평서나 연구서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을 보면서 놀라운 건 이 책에 수록된 19세기 말부터 1950년대까지 지어진 고택들이 가지는 고유성( uniqueness)입니다. 1970년대 이후 주택이라고 하면 늘 아파트를 먼저 떠오르는 현재 과거의 다양한 살림집들을 보면 한국이 과연 주거생활에서 선진국이 된 것이 맞는지 회의하게 됩니다.

발전이란 것은 빨리 멀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다양한 개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게 아닌가하고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 일률적으로 10층에서 3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주위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것이 주거생활에서의 발전일까요? 건설회사의 마케팅에 너무 쉽게 포획된 것이 아닌가요?

단순히 편리함과 가격을 생각한다면 경제적으로 이성적 결정일 수 있으나, 단순히 낡고 오래되었으며 조선시대 왕궁이 아니고 사대부 집이 아니라고, 일제시대 지어진 일본식 주택이라고, 내지는 산업화시대 노동자들이 살던 사택이라고 다 밀어버리면 한국전쟁이전 그리고 산업화시대 이전 우리의 조부모들과 부모들이 사셨던 가까운 과거의 기억은 없어져도 되는건지 되묻고 싶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서울을 비롯한 도시공간에서 경제적 논리에 위해 가까운과거의 건물들이 무수히 사라졌습니다.

지나간 삶의 가장 구체적 증거인 근현대시기 옛 살림집들은 안타깝게도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책에 나온 사례에서처럼 보존되어야 할 근현대시기 옛집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특히 일제시대 건축물의 경우 일본이 전쟁범죄애 대한 사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식민통치의 직접적 증거물인 당시 건축물을 파괴하는 건 일종의 ‘증거 인멸’로 볼 수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물리적 증거가 남아 있어야 일본에 사과요구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분별한 일제시대 건축물 철거는 그 주도자가 혹시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의 후손이 아닌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증거가 없어야 본인들의 친일행적을 숨기는데 도움이 될테니까.

일본의 극우 전체주의자들은 지속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전범인 자신들이 미국의 원폭에 대한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팩트는 미국이 도쿄와 나고야 등에 폭격을 퍼부어 압도적 화력으로 일본이 항복하길 원했으나 일제 군국주의자들은 국민의 희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에 저항했고, 더이상 미군의 인명피해를 볼 수 없었던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겁니다. 즉 일본이 자초한 겁니다.

그리고 원폭이전에 일본군은 중국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대량학살하고 미군과도 오키나와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서구에 이런 일제의 만행은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난징대학살을 처음 안 서구인들은 대부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죠. 일본외교가 그만큼 철저히 그들의 과거 잔혹한 만행을 철저하게 숨긴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사를 빼고 원폭투하만 이야기하는 건 전형적인 역사왜곡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오해하기 쉽습니다. 일부러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끝으로 이 책의 저자 최예선 작가의 책 몇권을 더 소개합니다.

첫번째 책은 오래된 집의 인테리어에 촛점을 맞춘 책으로 미술사가의 입장이 잘 드러난 책입니다. 책 자체도 상당히 이쁩니다

두번째 책은 작가가 건축가인 남편과 같이 지은 책으로 책의 성격이 지금 소개하는 책과 유사합니다. 한국의 군대문화유선으로서의 근대건축물을 바라본 책으로 2000년대에 나온 선구적인 책이지만 지금은 절판상태입니다.

최예선 , 모던의 시대 우리 집 (모요사,2022)

최예선 정구원 지음,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모요사,2010)

끝으로 저자가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셔서 유럽에 남아있는 오래된 건축물을 보면서 한국은 왜 건물을 오래 보존하지 않는지 궁금하셨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저 역시도 유럽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과거가 잘 보존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었고, 서울에 와 보니 너무도 과거의 흔적을 쉽게 지워버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의문이 오래된 집을 찿아가 과거의 삶에 대해 반추하는 것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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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PD 인 이욱정씨가 본인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쓴 책입니다. 요리를 정식으로 배운 음식전문 PD 답게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인 닭에 대해 인류학적 접근으로 풀어쓴 책입니다.

유튜브에 보면 이 책의 기반이 된 다큐멘터리 영상이 있으니 책과 같이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역시 관심때문입니다. 프라이드 치킨과 오븐에 구운 닭은 저 자신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기도 하고 오래전 인도에서 먹은 탄두리 치킨의 맛을 다시 생각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류학을 공부한 방송인이 만든 책이라 음식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글로 풀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딱 음식문화의 입문용으로 적당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래전 읽었던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의 음식에 대한 금기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이 언급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p132).

한길사에서 오래전 번역된 마빈 해리스의 대표작 한권을 소개합니다.

마빈 해리스 지음, 서진영 옮김. 음식문화의 수수게끼 ( 한길사,1992)

한국의 근대 식문화와 관련해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님의 책도 재미있습니다. 민속학과 역사적 관점에서 아시아의 식생활을 추적하신 대표적인 학자이십니다.

중국서 공부하신 주교수께서 쓰신 책으로 오래전에 읽었던 중국인의 식생활에 대한 소책자인데, 얇지만 내용이 썩 괜찮았던 책입니다.

주영하 지음,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 책세상, 2000)

개인적으로 먹는 문제만큼 중요한 일이 세상에 없고 따라서 매일 접하는 일상의 음식에 대해 레시피뿐만 아니라 그
음식에 대한 의미와 기원을 따져보는 인문학적 탐구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 ( I am What I eat)라는 말처럼 음식은 한 개인의 정체성 ( identity)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사회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입니다.

닭의 경우 다른 식재료인 소나 돼지보다 종교적 금기에서 자유롭고, 소나 돼지보다 쉽게 기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많이 대중화된 식재료여서 많이 먹는 고기입니다.

다음에는 식재료로서의 닭에 대한 이야기보다 한국의 치킨산업에 대한 책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통닭이 치킨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일상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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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26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스타일이 본받을만 합니다.
 
서울 탄생기 - 1960~1970년대 문학으로 본 현대도시 서울의 사회사
송은영 지음 / 푸른역사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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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특한 책이 어디서도 소개가 되지 않은 것 같아 우선 놀랍습니다. 그 전에도 서울의 도시개발사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었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과 확연히 다른 사료를 파고듭니다. 일반적으로 건축사가들이나 도시학자들이 역사적인 사료나 도판을 근거로 도시의 경관변화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는 것이 도시사(Urban History)의 일반적 경향이라면, 이 책은 1961-1978년 발표된 한국의 문학작품을 통해 서울의 현대 도시의 역사를 되돌아 봅니다. 따라서 이 책의 강점은 논픽션의 도표나 수치 그리고 도판이 보여주지 못하는 당시 서울에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 의식구조 등 심리적인 측면을 문학텍스트를 통해 보여준다는 면에 있습니다.

즉 도시학자들이나 건축가들이 쓴 도시사들이 결여한 비공식적인 당시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이 책의 최대 미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만의 독특한 면은 이정도면 될 것 같고, 저자와 책의 외형적인 면을 볼까 합니다. 짐작하셨듯, 조지 송은영 교수는 국문학자이고 건축이나 역사를 전공하신 분은 아닙니다. 1970년대 강남과 강북울 오가며 사신 개인적 경험이 있으신 분이고 이 경험이 이 책을 쓴 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셨습니다. 책은 저자의 연세대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따라서 300여개가 넘는 각주가 빡빡합니다. 어마 가독성을 위해 각주를 후주로 넘긴 것으로 보이고 본문만 517쪽이니까 박사학위 논문 기반 책으로도 내용이 상당한 편입니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 이 책의 주 인용 근거가 문학작품이기는 하지만 서울의 발전에 대한 도시학, 건축학, 사회학, 지리학 등 각 분야의 책과 논문을 인용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현대도시 서울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서울이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도시이고, 이런 특징으로 서울사람들이 역사에 무감하며, 공간의 경제적 가치에 민감한 점을 들수 있으며, 서울의 도시개발 당시에도 의사결정을 할 위치에 있던 엘리트들과 고위 관료 그리고 위정자들이 서울에 살고 있는 보통의 시민들보다 외부의 시선, 즉 서구에서 바라본 서울 그리고 체제 경쟁의 라이벌로서 북한을 더 의식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역사적 몰이해와 살고 있는 주민들을 무시하고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고위층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으로 판자집에 사는 빈민들을 서울 밖으로 내모든 ‘야만’을 실행했습니다. 시민들의 ‘생활’을 무시한 체 단순히 ‘도시미관’을 위해 살 집을 무자비하게 무수는 일은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입니다.

군사독재시절아라고 해도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로서 국민을 보기를 우습게 본 위정자와 엘리트층의 오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1970년대 말에 일어난 이런 오만한 고위층의 태도는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2023년에도 그대로 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묘한 기시감(旣視感, Déjà Vu)를 느꼈습니다. 역사가 반복되는 듯 느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까지 일제시대 경성에서의 공간감각에 의지해 서울을 인식하던 성경민들과 월남한 피난민들은 하지만 1966년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되고 고도성장이 시작되면서 1970년대이후 강남개발이 시작되면서 서울을 공간을 더이상 과거의 역사와 연관짓지 않은체 철저하게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최초의 도시인이라고 부를만한 해방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은 발전된 서구의 문화를 동경하며 이를 실현하는 서구식 생활방식을 ‘편리한’ 아파트에 찿은 셈입니다.

지금 은퇴하신 해방 이후 출생하신 어르신들이나 일제시대 사셨던 분들은 서구를 선진국 모델로 살아오셔서 그런 인식이 1970년대 이후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대중화시킨 한 요인으로 보입니다.


이촌향도와 인구증가로 서울에 주택난이 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한세대만에 한국이 인구 절벽을 맞이하고 세계 최저 출생율을 달성하고 지방소멸의 위기를 맞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시대가 변해도 고위관료층과 위정자층이 1970년대식 사고에 머물러 전혀 사회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 우리세대가 솔직히 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울이 고향이고 저자가 살던 수유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더 이 책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공간(space) 이 아닌 장소 (place)가 개개인의 경험과 맞물린 정서적인 접점이기 때문에 다른 외국도시를 다룬 책보다 고향인 서울을 다룬 책이 더 감정적으로 가깝게 느껴지지 않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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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 한국사 연구자이신 마르티나 도이힐러 (Martina Deuchler) 런던대 명예교수의 연구서입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학자께서 경북 안동과 전북 남원의 출계집단의 변천을 추적해 어떻게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왔는지를 추적한 사회사입니다.

출계집단이란 부계와 모계를 통해 공통의 조상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초기에는 가계도에 부계와 모계를 모두 기록하다가 조선에 신유학이 도입된 이후 부계중심으로 바뀝니다.

조선의 부계중심 종족제도의 출현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16-17세기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었고, 조선에서는 유교식 부계종족과 토착적 기반의 문중을 동일한 제도로 담아내는 절충으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p715).

따라서 조선은 특히 지방의 경우 통치는 정부의 ‘공적’조직에 기반하지 않고 중앙정부는 지방을 종족제도를 통해 ‘사적 통치 (private governance)’를 하는 사족(士族)집단과 갈등관계에 있었고 지방의 사대부, 즉 사족들은 종족제도를 통해 자신들의 신분과 이익을 지켜냈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경우, 출생과 출계가 엘리트 신분을 상속 가능하게 했지만 , 중국은 이론상 엘리트 신분은 사회적 출신과 무관하게 오직 과거급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p721).

한국의 이런 출계 기준의 국가와 사회는 엘리트 신분과 비엘리트 신분의 구분을 확실하게 만들었고, 비엘리트 층의 상향이동이 극히 제한된 사회였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확대된 상태로 서울에 근거를 둔 소수의 경화사족(京華士族)만이 권력에 접근이 가능하고 지방의 사족들도 점점 과거급제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이들은 자신의 출계집단과 서원 그리고 유향소 등을 통해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들과 경쟁하고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족들 중에서도 서얼(庶孼)들은 적서차별의 벽에 막혀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고 향리(鄕吏)들고 출세길이 막혀 결국 지방정치 부패의 온상이 되고 맙니다.

이미 노비들이 실질적인 경제활동의 당사자인데도 사족들의 견고한 기득권에 막혀 착취당해온 내력은 다른 책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노비는 조선 조정이 필요에 따라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양인 여성과 노비의 결혼을 용인하기도 하고 농업과 가내 노동력의 필요에 따라 노비는 재산으로서 경제적 가치를 지니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조선은 노비들의 노동력 착취를 기반으로 한 경직적인 엘리트 양반위주의 견고한 신분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경직적 신분사회를 만든 엘리트 제도를 존속시킨 건 신유학이 아니라 ‘토착적 친족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합니다(p727).

그리고 조선의 신분제가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갑작스럽게 폐지되었으나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는 신분의식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현재의 한국사회에도 아직도 스멀스멀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아직도 학벌에 목매고 고시출신들 실력에 관계없이 실력이 있다고 믿는 세태가 신분제의 긴 그림자가 아직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끝으로 이 책의 외형적인 구성을 보려합니다.
본문만 총 729쪽의 벽돌책으로 총 14장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신라부터 조선말인 19세기까지 다루지만 주로 조선 중기가 중심으로 생각됩니다.

저자가 2015년 Harvard에서 출판한 영문본을 너머북스에서 2018년 번역한 책입니다.

책을 보면 저자가 안동과 남원 등지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저자가 오랜시간 한국을 탐구한 자료들이 집대성한 책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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