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 -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백지운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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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시기에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중국(中國)이라는 아시아 대륙의 대국은 한국의 역사를 통틀어 오랜기간 교류를 해온 이웃나라이자 관계의 부침을 수없이 겪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의 아시아 대륙침략에 맞서 같이 싸운 적도 있었고,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의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돕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여하면서 현재 한국에 여태까지 남아있는 중국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습니다.


이 책은 한국인들에게 동족상잔( 同族相殘)의 기억으로 각인되고 , 지금도 어르신들이 ‘6,25전쟁’으로 통칭하시는 한국전쟁을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인이 쓴 한국전쟁의 전쟁사(戰爭史)가 아니라 중국의 TV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재구성된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공산주의 국가로서 국가보다 당이 우위에 있는 중국의 정치체계 상 위에서 언급한 모든 영상창작물은 결국 국가기관에서 제작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허구가 섞여있는 드라마나 영화라 할지라도 제작전 사전검열을 이미 거친 것이기 때문에 중국공산당과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지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즉 이 책은 중국이 한국전쟁을 어떤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각 시기별 변천을 통해 대표작 위주로 평론을 하면서 그들이 각 작품을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중국 지도부의 지침을 같이 제시하면서 이해를 돕습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국전쟁, 즉 중국입장에서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으로 불린 이 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변화에 따라 소환되는 방식, 서술되는 방식, 심지어 이름까지 다르게 불렸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대까지 중국은 미국을 제국주의자로 인식했고, 한국전쟁을 미 제국주의자와의 전쟁으로 인식했고, 소련과 공조해 공산주의 블럭을 형성한 시기에 한국전쟁을 반미적 시각에서 보았습니다. 미국을 적으로 보고 있으니 반미(反美)적인 시각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소련의 후루시쵸프가 스탈린의 뒤를 이은 뒤 스탈린 격하운동을 하자, 중국은 소련을 ‘수정주의(修正主義)라고 비난했고 이에 따라 공산주의 블럭이 분화하기 시작합니다. 중고갈등이 터져나오던 시기입니다.

이후 1970년대 들어 중국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시도해 미국과 소련으로부터의 고립에서 탈출하려고 하면서 미국과 적으로 싸운 한국전쟁의 기억은 의도적인 삭제가 불가피해지고 어떤 중국의 공적인 문서(statement)에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지속되면 수많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데, 반미논조가 가득한 항미원조전쟁의 이야기를 공적으로 발표하거나 드라마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건 충분히 수긍되는 면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시기부터 노골적으로 중국을 적대하기 시작했고, 바이든 정부 들어 트럼프 정부의 중국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현재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역대 최고조로 올라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미국과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은 중국의 부상과 잠재력을 두려워하면서 심지어 일부 극렬극우주의자들이 인종주의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을 비롯한 서구인들은 아편전쟁(Opium War ,1840-1842)이후 세계를 이들의 물질문명으로 장악하면서 중국이 서구가 아시아에 모습을 드러낸 15-16세기 이전까지 세계최대규모의 경제력을 가졌었다는 과거를 애써 잊고 싶은 듯 합니다.

아무튼 현재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 Supply Chain) 재편이 진행되면서 미국은 특히 군사전략적인 이유로 반도체의 중국내 생산을 꺼려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의 삼성과 대만의 TSMC가 전세계 반도체 와이퍼의 거의 15% 정도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동맹을 내세워 한국 반도체 회사 공장을 미국에 유치하려고 해도 단순히 돈만 투자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한국회사들이 중국시장을 포기할 일도 없는데, 일단 중국을 배제한 세계경제 체제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아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실제 실현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시진핑주석이 최초로 3연임을 한 중국은 현재 미국과 불화를 겪고 있고, 일부 우파 학자들 중에는 신냉전( New Cold War)시대가 도래했다고 성급히 주장하기도 합니다.

미국을 적대해서 싸운 한국전쟁, 즉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이 전후 거의 70여년 만에 다시 중국의 공적인 레토릭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 전쟁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이런 현재의 미중갈등이 그 주요 배경입니다.

미국이 아직도 단일패권국가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후 지속되온 미국의 헤게모니에 균열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은 이런 미중갈등 상황에서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소재로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현재의 중국을 만들었는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이 마음에 안들어도 한국 옆에 있는 큰 나라고, 더구나 한국과 특별히 적대할 이유가 없는 나라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상대한 나라는 미국이지 한국이 아니라고 인식하는걸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 중국을 건드리고 스스로 알아서 적대하고 중국시장에 대한 경제적 이익도 챙기지 못하는 현재 윤석열 정부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다르다는 기본을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아무튼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역사는 한가지로만 쓸 수 없는것이죠. 불편해도 상대가 서술해온 한국전쟁의 역사를 최소 인지는 하고 있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을 가장해서 한가지 서술만 인정하는 건 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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渼沙_常水 2023-10-09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가치나 신념 또한 편향일 수 있기에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주입되어 알고 있는 그런 주관에서 벗어나 비록 적대했던 상대라는 사실을 감안하고라도 그들의 시점으로 바라보는건 흥미롭습니다.
사람이나 국가나 절대악이나 절대선은 없습니다. 불가근 불가원의 적절한 관계가 필요합니다. 일본, 미국, 중국 어떤나라도 자기들의 실리를 우선으로 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이며 그런 실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엎어지는것도 자빠지는 것도 안됩니다. 밀당은 연애에만 소용되는게 아닙니다. 적절한 관계설정이 필요합니다. 친일, 종북, 극일, 반중... 이런 극단적 관계가 아닌 저들을 잘 아는게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해 당근과 채찍 또는 매와 비둘기가 필요 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오월동주 할 수 있는 유연하고 노회한 대처가 필요 합니다

Dennis Kim 2023-10-0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국제관계에는 절대적인 적이나 우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국익이 유일한 판단기준이죠.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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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끄러운 일이지만 시인 김수영 (金洙暎)에 관한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나이가 든 이후 문학작품보다 넌픽션을 더 많이 읽는 경향이 생긴 것도 변명이 되겠지만, 아무튼 이 대단한 시인에 대한 책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철학자 강신주씨의 이 시인 김수영에 대한 책 ( 평전으로 봐야할지, 그의 시에 대한 해설로 봐야할 지 난감합니다, 사실)을 보고 어렷풋이 이 시인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소개하는 이 책이 우선 ‘절판(絕版)‘된 책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좋은 책이 겨우 10여년 만에 절판되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현재 이 책은 중고로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 말고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글의 제목을 ’자유의 시인‘이라고 했는데, 이 책은 시를 통해 표출된 ‘자유주의 (Liberalism)’에 대한 책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자유’라는 말처럼 한국에서 오용(誤用)되고 잘못 사용되는 말은 없습니다.

제대로된 정통 보수 내지 중도 보수가 전무한 한국 사회에서 ‘자유’는 극우 전체주의자들의 전가의 보도(傳家 의 寶刀)처럼 남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수영이 말하는 자유는 개개인이 삶을 결정하는 의지이고 개개인이 다 각자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말로 개인주의 (individualism)이라고 봐도 됩니다.

개개인이 중요하니 개개인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중요하고, 나의 생활방식이 중요하니 다른 이의 생각과 생활방식도 중요합니다. 이런 ‘개인’의 인식에서 ‘관용(tolerance)’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다른 이의 ‘비판’이나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고 취재한 기자를 고발하거나, 언론사를 압수수색하는 정부는 결코 근대적 의미에서 ‘자유주의’정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의견이 설사 반대 의견이라고 해도 대화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의 ‘검찰정부’는 절대 그러지 못합니다.

강신주씨에 따르면 따라서 김수영의 ’자유‘는 근대적인 의미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김수영 시인은 그래서 ’자유의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맞지, 오해를 동반하는 모더니스트(Modernist) 시인이라는 호칭은 불명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50-60년대 친일에 부역한 서정주 시인이 ’순수문학‘을 온호한 사실이 자신의 과거를 가리기 위한 의도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삶과 동떨어진 체 형식미와 미의식만을 탐구하는 예술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지(無知)보다 위선(僞善)이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해악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조직 논리가 끼어들면 개인적인 자유는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보수적인 차원에서 ‘공동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이나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전체의 후생’을 위해 개인의 욕망이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나 모두 조직이 개인을 우선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것이지요.

저 개인적으로 김수영 시인이 놀라운 것은 시인이 처한 시대상황이었습니다.

시인의 주장이 민주화가 진행되고 개인의 가치를 자각하기 시작한 21세기가 아니라 한국전쟁이후 1950-1960년대 말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한국전쟁으로 북한 인민군에 징용당했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갖혀 있었고, 그의 시를 발표하던 시기는 이승민 독재시대, 4.19혁명, 5.16 군사 쿠데터, 그리고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를 관통하던 때입니다.

무자비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김수영 시인 같이 ‘개인의 절대적 자유와 주체성’을 주장하고 그런 시를 발표하는 시인과 대척점에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모든 것이 억압되던 시대가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입니다.

서글퍼런 독재권력이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도 김수영 시인이 ‘자유’를 외친 건 용기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참여문학을 하지 않는 소위 ‘부르조아’ 시인이었지만 개인이 사회나 공동체의 모든 것을 우선한다는 군대주의적 사고를 가진 지극히 상식적인 문학인이었기 때문에 홀로 자신희 길을 묵묵히 갔을 뿐입니다.

자유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반공주의자는 아닌 시인이어서 군사독재정권은 그가 못내 껄끄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김수영 시인의 평전이자 시 해설서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잘못 알려지고 온갖 오해를 받는 ‘자유’와 ‘자유주의’에 대한 명백한 개념과 실천적 삶의 양상을 관찰 수 있는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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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1910년 ‘강제합병’을 한 이후 그들은 그들의 침략이 ‘ 정당한 행위’라는 주장을 포장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합니다.

조선총독부가 일차적으로 평양과 한반도 남부에서 고분 발굴울 시작한 이유도, 그리고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세운 이유도 일차적으로 ‘식민통치의 정당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란 늘 누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쓰는가에 따라 내용과 해석이 바뀌는 지식체계입니다. 일본과 한국은 이미 지난 19세기 말 구한말부터 일제시기를 거쳐 2023년 현재에 이기까지 일본과 ‘역사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처음 소개되는 두 인물, 오다 쇼고(小田省吾,1871-1953)와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는 경제제대를 기반으로 조선의’ 식민사학‘을 성립한 학자로 꼽힙니다. 한사람은 총독부 관리출신으로 또 한사람은 일본 최초의 ’조선사‘연구자입니다.

이 두사람 이외에 동양철학자 두사람, 그리고 식민정책학자 한 사람이 이 책에서 소개되지만 일단 식민사학의 ’논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합니다.

일본인 학자들이 말하는 조선사라는 학문체계는 그들이 보기에 서양의 역사이론인 실증사학(實證史學) 혹은 문헌고증사학이라는 방법론으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마치 그 이전 조건에 역사가 없었던 것처럼 주장하지만 저자도 지적했듯 조선은 역사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 역사가 ‘과잉‘된 나라였습니다.

실증사학의 방법론을 채용하지 않았을 뿐 중국식 편년체의 사서들은 넘쳐난 걸로 압니다. 아무튼 일본인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후 조선의 수많은 전적을 조사했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조선은 일본에 ‘ 종속될 수 밖에 없다’라는 근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일은 조선고대사를 연구했던 이마니시 류가 고대사를 통해 추구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이 400 여년간 한반도 북쪽에 있으면서 조선을 ’ 식민통치‘했다고 보았고, 그래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옛날부터 중국에 종속적이었는데 일본에 복속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건 일본인 입장의 해석일 뿐이고 본인들이 취사선택한 자료로 주장하는 것 뿐입니다.

당장 이마니시 류는 동양의 문명인 중국의 문화가 일본으로 직접 전해지는 경로를 찿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중국문화가 조선을 거치지 않고 오는 경우가 드무니 ‘일부러’ 찿아다닌 겁니다.

당장 조선만 해도 에도시대 봉건영주들의 집합체인 일본 중 오직 쓰시마 번과만 교역을 했고, 현재 오키나와인 류큐국(琉球國)은 죠슈번(長州藩)과 청 모두에 복속하던 해상왕국이었습니다.

16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일본이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길은 중국과 직접 외교관계를 맺거나 조선을 통해 접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은 극복대상으로 본 것이고 메이지 유신이후 ‘근대국가’가 된 일본이 중국문명을 넘어서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국가가 되었다는 말은 서구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이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말이고 별 뜻이 아니라 일본이 유럽 즉 독일과 영국과 유사한 제도를 많이 만들어놓아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쉬웠다‘는 말입니다.

기독교 문명권의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중국과 조선은 이해할 수가 없는 미지의 나라였을 겁니다. 모르니까 미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한문을 해독할 줄 모르고 유교에 대해 아는바가 전혀 없는 유럽인들에게 아시아는 자신들이 모르니 미개하다고 여겼고,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를 알아야 문명화가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혼란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사를 일본인들이 어떤 범주에 넣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같은 시리즈 중 한권인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사회평론 아카데미,2022)‘에서 저자 이태진 교수는 조선사가 ’일본사‘에 편제되어 있어 매우 놀랐다고 하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조선사가 마치 동양사의 일부인 것으로 서술됩니다.

어느 주장이 맞는거죠?

이 책은 동양사에 대해서도 이런 설명을 합니다: 동양사는 서양사의 방법론을 차용해 특히 중국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라고요. 이태진 교수의 책에서는 ’동양사‘의 지리적 범위가 결국 일본이 대륙침략의 대상으로 삼은 지리적 범위와 겹치고 결국 ’대동아 공영권‘에 대한 이론적인 틀을 제공하는 지식체계라고 합니다.


이 책은 범주로 보아 지식사회학 또는 지식체계의 역사, 대학사 등으로 불릴 수 있는 분야입니다.

이렇게 특정 학문분야의 발전과정을 볼 수도 있지만 대학 구성원인 대학생에 대해서도 서술된 책이 있습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지음 (휴머니스트,2019)

사회적 경제적 차별이 일상이었던 일제시대 소수만이 허락된 으 제국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졸업생들이 한일 양국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추적한 책입니다. 한국 엘리트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은 읽으면서 매우 놀랍다가 읽은 후에 일본이 왜 한국을 그렇게 우습게 보는지 그 심층적인 원인을 알게 해줍니다.

대를 이어 일본과 연결된 파워엘리트들이 생각보다 저변에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의 상당수는 미국 대학 출신 엘리트로 전신(轉身)하여 알아보기는 어렵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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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정조시대 정치사를 읽었습니다.

본문 376쪽이니 딱 대중 역사서에 적합한 분량의 책입니다.
그래서 남인과 서학에 대한 글이나 대학자 정약용 관련 분량이 지나치게 소략한 것이 흠입니다.

다행히 서학관련해서 한양대 정민 교수님이 상세한 연구서 (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김영사,2022)를 출간하셔서 보충이 됩니다. 이책도 정민 교수님의 서학 연구서가 참조한 도서 중 한권입니다.

이 책의 중요한 또 한사람의 주인공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조선후기 보기 드믄 남인 출신 재상으로 사실상 정조가 외척세력인 서인 노론 벽파(僻派)를 견제하기 위해 기용한 인물로 사실상 정조의 정치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인물입니다.

채제공의 그늘 아래서 수많은 남인 사대부들이 출사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18세기 최대 천재 중 한명인 정약용입니다.

사실 이 책의 내용 자체는 정조시대사를 읽은 이들은 누구나 알 수 있을만한 내용으로 새로울 건 없습니다.

다만 책의 저자가 정조의 실책이 통치체제를 ‘제도화’해서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정조 개인 역량에 기대어 모든 통치체제를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즉, 정조가 승하한 이후 조선 멸망 때까지 외척들의 세도가 가능했던 이유가 정조 사후 정조를 대신할 후계자를 제대로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점은 정조시대 정치사를 읽으면서 늘 생각했던 점으로 조자의 평가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조선은 도그마적인 성리학적 윤리학에 빠져 실질적으로 국가운영을 하지 못했고, 사대부들이 경제활동은 하지 않고 모든 육체노동과 농사를 농민과 노비에게만 맡기는 경제적 수탈이 공공연하게 묵인되고 당연하게 생각되던 사회였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신분제 사회라도 지켜야 할 금도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천재적인 성리학자인 정조도 예를 들자면 국립대학인 성균관이 재정부족을 호소해 재정을 늘려달라고 해도 별 관심이 없었고 성균관의 재정은 소를 도축하는 업을 가진 성균관 소속 반인(泮人)들을 착취(搾取, exploitation)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대부들은 대체로 명분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말과 달리 백성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착취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 노비와 쇠고기,푸른역사,2023).

어느시대나 마찬가지이지만 결국 돈문제가 천하다고 돈문제 신경을 안쓰면 나라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겁니다.

정조가 그 선대의 임금보다 성리학적 측면에서 탁월한 임금인 것은 맞지만 그는 ‘소설체’문장도 용인하지 못할만큼 보수적인 군주였습니다. 그가 청나라의 학문인 북학을 용인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고, 그가 북학을 성리학을 대신하는 통치이론으로 삼은 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최소 혁신 군주는 아니었는데 과거 학계에서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을 극복하는 일환으로 정조의 통치를 강조하다보니 생겨난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의리와 명분에 집착하다보니 명이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고 청을 오랑캐 취급하고 무시하다가 청에게 공격당한 서건이 병자호란입니다. 지나친 명분론으로 나라를 망할 지경까지 만든게 바로 사대부입니다. 특히 노론(老論) 정치가들입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명나라에 대한 제사를 조선 멸망때까지 지속합니다 ( 정지된 시간, 서강대출판부,2011).

저는 조선사대부의 이런 지나친 사대는 병리적(病理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가 현실감각을 잊을 정도라면 병이죠. 조선이 왕권중심 전제국가이기는 하나 양인과 노비없이 어떤 경제적 생산도 불가능한 나라였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들을 착취만 했는지…

이해가 안되는 건 현재나 19세기에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착취를 당할대로 당한 노비들과 농민들 그리고 서북지방 사족들은 결국 19세기가 시작되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18세기까지 차곡차곡 쌓였던 착취에 대한 불만이 터진 겁니다. 그래서 19세기는 ‘민란의 세기’가 된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편집 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대중서라고 해도 역사기록에 대한 출처가 본문에만 언급되고 미주조차 없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독자를 무시하거나 김영사 편집부가 태만한 겁니다.

미주조차 정리가 안되어 있으니 참고도서 목록도 역시 없습니다. 이건 그냥 편집상 실수에요. 김영사같은 큰 출판사가 책을 이렇게 출판했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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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겠지만 이 책의 내용이 2023년 현재 한국의 상황과 너무 유사한 기시감 ( déjà vu)이 들어 소름이 돋았습니다.

글 제목에도 언급했지만 이 책은 주로 1960년대 당시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으며, 국문학을 전공하신 연구자가 쓴 또 한권의 현대사 연구서입니다.

근현대사 역사분야에서 역사학 전공하신 분들 뿐만 아니라 한문학 또는 국문학 연구하시분들의 양서가 많은데, 아마 연구 텍스트가 불가피하게 걉쳐지는 것도 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문학연구자께서 집필하신 역사서 몇권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한양대 국문학과 정민 교수님의 조선 천주교 연구서인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김영사,2022)‘입니다. 한문학자이자 정약용 전문가이신데, 18세기 조선에 어떻게 천주교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살핀 책입니다.

두번째는 한문학자이신 강명관 작가가 쓰신 ‘노비와 쇠고기( 푸른역사,2023)’ 입니다. 조선에서 최고 관립교육기관인 성균관이 한양에 어떻게 쇠고기를 도축하는 일을 맡아하며 예산을 충당했는지 고찰한 매우 낯선 주제의 책입니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泮人)이 성균관과 국가로부터 얼마나 착취를 당했는지, 한편 조선이라는 유교국가의 국가재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쇠고기를 둘러싼 조선의 사회경제사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려대 국문학과 권보드래 교수의 ‘3월1일의 밤(돌베개,2019)‘ 입니다. 정치사적 맥락이 아니라 각 지역별 3.1운동에 참가한 일반 조선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독특한 연구서로 매우 인상깊었던 책입니다. 3.1운동 백주년을 기념해서 2019년 3월1일 출간된 책이기도 합니다.

이상으로 국문학 연구자가 집필하신 주요 역사서 소개는 간단히 마칩니다.

이 책이 놀라운 건 1960년대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책을 읽는데 너무도 뚜렷하게 2023년 5월 현재의 상황이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7장 한일협정반대운동과 관련한 부분을 그대로 전제합니다.

항일회담에 쏠린 전 국민적인 공분(公憤)은 그것이 민족적인 자긍심을 얼마되지 않은 달러와 교환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군사정부가 자신의 실정(失政)으로 고갈된 국고를 메우기 위해 일본의 자본을 서둘러 받으려는 것, 그 대가로 식민 통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나 그에 합당한 배상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 골자였다 (p293)

실제로, 당시 미국이 한일회담을 무리하게 강행한 것은 자신의 약할을 일본에 넘기려는 동아시아 구상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p303)

위의 글은 1964년 박정희 군사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시작한 한일외교정상화 합의에 대한 당시 비판을 서술한 일부입니다.

이 글을 일고 2023년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진행한 ‘굴욕 외교’와 너무나 유사해 소름이 끼쳤습니다. 심지어 이 무도한 검찰정부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마저 인정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한일관계 정상화에 매달리는데, 미국이 일본을 자신들의 꼭두각시( puppet)로 삼아 동아시아 안보를 리드하게 하고 한일간의 식민지 문제를 불문에 붙이는 식으로 관계 정상화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2023년은 1964년과 판박이처럼 닮았습니다.

1964년은 가진 것이 없어 일본에 손을 벌린 걸로 변명이라도 했지만 2023년 현재 산업적으로 반도체, 군수 등 분야에서 일본보다 전략적 경쟁력이 강한 한국이 왜 일본에 굴욕외교를 감행했는지 납득이 안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관이 문제라는 생각말고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이 일을 추진한 한국 정부가 무력을 직접 사용하는 군사정부에서 ‘압수수색’을 전가의 보도록 사용하는 검찰정부로 바뀐 것으로 수단이 바뀐 것이지 독재라는 성격이 바뀐 건 아닙니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외에 몇가지 이 책에서 짚은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합니다.

6장 라이샤워와 미국의 지역연구는 미국의 유명한 일본사 연구자이자 동어시아정책통이었던 에드윈 라이샤워( Edwin O. Reischauer)에 대한 글입니다. 미국 동아시아학 초기의 권위자로서 지금도 그의 책이 일종의 경전처럼 읽히지만 그는 한국과 일본을 중국문명의 ‘변형’으로 보면서 일본은 서구문화에 잘 적응한 긍정적 중국문명이고 중국은 이에 실패한 부정적 중국문명이며 한국은 ‘타락한 관료국가’로서 ‘슬픈 변이형’ (p254)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평가는 식민사학자였던 서울대 이병도(李丙燾)교수와의 감수로 집필되어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라이샤워의 영향력은 그가 중국 한국 일본 삼국에 대해 집필한 두권의 책이 한국의 동양사학계에서 한 때 기본 텍스트로 쓰여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9년 한국에서 번역출판된 ‘동양문화사(상/하) ( 을유문화사,1989)’ 가 그 책이고 제가 아는 한 조너던 스펜스의 새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 이 책은 동양사를 전공하려면 반드시 읽어야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라이샤워가 중국사 전문의 페어뱅크스와 집필한 것으로 원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East Asia: the Great Tradition ( Hougthton Mifflin,1960)

East Asia : the Great Transformation (Houghton Mifflin,1965)

마지막으로 작가 최인훈(崔仁勳,1936-2018)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인이 되신 평론가 김현, 김윤식으로부터 전후최대의 작가라고 평가를 받았던 분으로 저 개인적으로도 고등학교 재학시 국어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스무살 어린 나이에 읽고 또 읽었던 ‘ 광장( 문학과지성사, 초판 1960)’의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길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최인훈을 다시 읽는 건 어쩌면 문학을 통해 1960년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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