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겠지만 이 책의 내용이 2023년 현재 한국의 상황과 너무 유사한 기시감 ( déjà vu)이 들어 소름이 돋았습니다.
글 제목에도 언급했지만 이 책은 주로 1960년대 당시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으며, 국문학을 전공하신 연구자가 쓴 또 한권의 현대사 연구서입니다.
근현대사 역사분야에서 역사학 전공하신 분들 뿐만 아니라 한문학 또는 국문학 연구하시분들의 양서가 많은데, 아마 연구 텍스트가 불가피하게 걉쳐지는 것도 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문학연구자께서 집필하신 역사서 몇권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한양대 국문학과 정민 교수님의 조선 천주교 연구서인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김영사,2022)‘입니다. 한문학자이자 정약용 전문가이신데, 18세기 조선에 어떻게 천주교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살핀 책입니다.
두번째는 한문학자이신 강명관 작가가 쓰신 ‘노비와 쇠고기( 푸른역사,2023)’ 입니다. 조선에서 최고 관립교육기관인 성균관이 한양에 어떻게 쇠고기를 도축하는 일을 맡아하며 예산을 충당했는지 고찰한 매우 낯선 주제의 책입니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泮人)이 성균관과 국가로부터 얼마나 착취를 당했는지, 한편 조선이라는 유교국가의 국가재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쇠고기를 둘러싼 조선의 사회경제사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려대 국문학과 권보드래 교수의 ‘3월1일의 밤(돌베개,2019)‘ 입니다. 정치사적 맥락이 아니라 각 지역별 3.1운동에 참가한 일반 조선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독특한 연구서로 매우 인상깊었던 책입니다. 3.1운동 백주년을 기념해서 2019년 3월1일 출간된 책이기도 합니다.
이상으로 국문학 연구자가 집필하신 주요 역사서 소개는 간단히 마칩니다.
이 책이 놀라운 건 1960년대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책을 읽는데 너무도 뚜렷하게 2023년 5월 현재의 상황이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7장 한일협정반대운동과 관련한 부분을 그대로 전제합니다.
항일회담에 쏠린 전 국민적인 공분(公憤)은 그것이 민족적인 자긍심을 얼마되지 않은 달러와 교환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군사정부가 자신의 실정(失政)으로 고갈된 국고를 메우기 위해 일본의 자본을 서둘러 받으려는 것, 그 대가로 식민 통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나 그에 합당한 배상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 골자였다 (p293)
실제로, 당시 미국이 한일회담을 무리하게 강행한 것은 자신의 약할을 일본에 넘기려는 동아시아 구상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p303)
위의 글은 1964년 박정희 군사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시작한 한일외교정상화 합의에 대한 당시 비판을 서술한 일부입니다.
이 글을 일고 2023년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진행한 ‘굴욕 외교’와 너무나 유사해 소름이 끼쳤습니다. 심지어 이 무도한 검찰정부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마저 인정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한일관계 정상화에 매달리는데, 미국이 일본을 자신들의 꼭두각시( puppet)로 삼아 동아시아 안보를 리드하게 하고 한일간의 식민지 문제를 불문에 붙이는 식으로 관계 정상화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2023년은 1964년과 판박이처럼 닮았습니다.
1964년은 가진 것이 없어 일본에 손을 벌린 걸로 변명이라도 했지만 2023년 현재 산업적으로 반도체, 군수 등 분야에서 일본보다 전략적 경쟁력이 강한 한국이 왜 일본에 굴욕외교를 감행했는지 납득이 안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관이 문제라는 생각말고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이 일을 추진한 한국 정부가 무력을 직접 사용하는 군사정부에서 ‘압수수색’을 전가의 보도록 사용하는 검찰정부로 바뀐 것으로 수단이 바뀐 것이지 독재라는 성격이 바뀐 건 아닙니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외에 몇가지 이 책에서 짚은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합니다.
6장 라이샤워와 미국의 지역연구는 미국의 유명한 일본사 연구자이자 동어시아정책통이었던 에드윈 라이샤워( Edwin O. Reischauer)에 대한 글입니다. 미국 동아시아학 초기의 권위자로서 지금도 그의 책이 일종의 경전처럼 읽히지만 그는 한국과 일본을 중국문명의 ‘변형’으로 보면서 일본은 서구문화에 잘 적응한 긍정적 중국문명이고 중국은 이에 실패한 부정적 중국문명이며 한국은 ‘타락한 관료국가’로서 ‘슬픈 변이형’ (p254)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평가는 식민사학자였던 서울대 이병도(李丙燾)교수와의 감수로 집필되어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라이샤워의 영향력은 그가 중국 한국 일본 삼국에 대해 집필한 두권의 책이 한국의 동양사학계에서 한 때 기본 텍스트로 쓰여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9년 한국에서 번역출판된 ‘동양문화사(상/하) ( 을유문화사,1989)’ 가 그 책이고 제가 아는 한 조너던 스펜스의 새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 이 책은 동양사를 전공하려면 반드시 읽어야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라이샤워가 중국사 전문의 페어뱅크스와 집필한 것으로 원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East Asia: the Great Tradition ( Hougthton Mifflin,1960)
East Asia : the Great Transformation (Houghton Mifflin,1965)
마지막으로 작가 최인훈(崔仁勳,1936-2018)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인이 되신 평론가 김현, 김윤식으로부터 전후최대의 작가라고 평가를 받았던 분으로 저 개인적으로도 고등학교 재학시 국어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스무살 어린 나이에 읽고 또 읽었던 ‘ 광장( 문학과지성사, 초판 1960)’의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길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최인훈을 다시 읽는 건 어쩌면 문학을 통해 1960년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