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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부끄러운 일이지만 시인 김수영 (金洙暎)에 관한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나이가 든 이후 문학작품보다 넌픽션을 더 많이 읽는 경향이 생긴 것도 변명이 되겠지만, 아무튼 이 대단한 시인에 대한 책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철학자 강신주씨의 이 시인 김수영에 대한 책 ( 평전으로 봐야할지, 그의 시에 대한 해설로 봐야할 지 난감합니다, 사실)을 보고 어렷풋이 이 시인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소개하는 이 책이 우선 ‘절판(絕版)‘된 책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좋은 책이 겨우 10여년 만에 절판되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현재 이 책은 중고로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 말고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글의 제목을 ’자유의 시인‘이라고 했는데, 이 책은 시를 통해 표출된 ‘자유주의 (Liberalism)’에 대한 책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자유’라는 말처럼 한국에서 오용(誤用)되고 잘못 사용되는 말은 없습니다.
제대로된 정통 보수 내지 중도 보수가 전무한 한국 사회에서 ‘자유’는 극우 전체주의자들의 전가의 보도(傳家 의 寶刀)처럼 남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수영이 말하는 자유는 개개인이 삶을 결정하는 의지이고 개개인이 다 각자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말로 개인주의 (individualism)이라고 봐도 됩니다.
개개인이 중요하니 개개인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중요하고, 나의 생활방식이 중요하니 다른 이의 생각과 생활방식도 중요합니다. 이런 ‘개인’의 인식에서 ‘관용(tolerance)’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다른 이의 ‘비판’이나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고 취재한 기자를 고발하거나, 언론사를 압수수색하는 정부는 결코 근대적 의미에서 ‘자유주의’정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의견이 설사 반대 의견이라고 해도 대화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의 ‘검찰정부’는 절대 그러지 못합니다.
강신주씨에 따르면 따라서 김수영의 ’자유‘는 근대적인 의미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김수영 시인은 그래서 ’자유의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맞지, 오해를 동반하는 모더니스트(Modernist) 시인이라는 호칭은 불명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50-60년대 친일에 부역한 서정주 시인이 ’순수문학‘을 온호한 사실이 자신의 과거를 가리기 위한 의도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삶과 동떨어진 체 형식미와 미의식만을 탐구하는 예술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지(無知)보다 위선(僞善)이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해악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조직 논리가 끼어들면 개인적인 자유는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보수적인 차원에서 ‘공동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이나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전체의 후생’을 위해 개인의 욕망이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나 모두 조직이 개인을 우선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것이지요.
저 개인적으로 김수영 시인이 놀라운 것은 시인이 처한 시대상황이었습니다.
시인의 주장이 민주화가 진행되고 개인의 가치를 자각하기 시작한 21세기가 아니라 한국전쟁이후 1950-1960년대 말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한국전쟁으로 북한 인민군에 징용당했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갖혀 있었고, 그의 시를 발표하던 시기는 이승민 독재시대, 4.19혁명, 5.16 군사 쿠데터, 그리고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를 관통하던 때입니다.
무자비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김수영 시인 같이 ‘개인의 절대적 자유와 주체성’을 주장하고 그런 시를 발표하는 시인과 대척점에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모든 것이 억압되던 시대가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입니다.
서글퍼런 독재권력이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도 김수영 시인이 ‘자유’를 외친 건 용기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참여문학을 하지 않는 소위 ‘부르조아’ 시인이었지만 개인이 사회나 공동체의 모든 것을 우선한다는 군대주의적 사고를 가진 지극히 상식적인 문학인이었기 때문에 홀로 자신희 길을 묵묵히 갔을 뿐입니다.
자유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반공주의자는 아닌 시인이어서 군사독재정권은 그가 못내 껄끄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김수영 시인의 평전이자 시 해설서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잘못 알려지고 온갖 오해를 받는 ‘자유’와 ‘자유주의’에 대한 명백한 개념과 실천적 삶의 양상을 관찰 수 있는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