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인 정조시대 정치사를 읽었습니다.

본문 376쪽이니 딱 대중 역사서에 적합한 분량의 책입니다.
그래서 남인과 서학에 대한 글이나 대학자 정약용 관련 분량이 지나치게 소략한 것이 흠입니다.

다행히 서학관련해서 한양대 정민 교수님이 상세한 연구서 (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김영사,2022)를 출간하셔서 보충이 됩니다. 이책도 정민 교수님의 서학 연구서가 참조한 도서 중 한권입니다.

이 책의 중요한 또 한사람의 주인공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조선후기 보기 드믄 남인 출신 재상으로 사실상 정조가 외척세력인 서인 노론 벽파(僻派)를 견제하기 위해 기용한 인물로 사실상 정조의 정치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인물입니다.

채제공의 그늘 아래서 수많은 남인 사대부들이 출사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18세기 최대 천재 중 한명인 정약용입니다.

사실 이 책의 내용 자체는 정조시대사를 읽은 이들은 누구나 알 수 있을만한 내용으로 새로울 건 없습니다.

다만 책의 저자가 정조의 실책이 통치체제를 ‘제도화’해서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정조 개인 역량에 기대어 모든 통치체제를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즉, 정조가 승하한 이후 조선 멸망 때까지 외척들의 세도가 가능했던 이유가 정조 사후 정조를 대신할 후계자를 제대로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점은 정조시대 정치사를 읽으면서 늘 생각했던 점으로 조자의 평가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조선은 도그마적인 성리학적 윤리학에 빠져 실질적으로 국가운영을 하지 못했고, 사대부들이 경제활동은 하지 않고 모든 육체노동과 농사를 농민과 노비에게만 맡기는 경제적 수탈이 공공연하게 묵인되고 당연하게 생각되던 사회였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신분제 사회라도 지켜야 할 금도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천재적인 성리학자인 정조도 예를 들자면 국립대학인 성균관이 재정부족을 호소해 재정을 늘려달라고 해도 별 관심이 없었고 성균관의 재정은 소를 도축하는 업을 가진 성균관 소속 반인(泮人)들을 착취(搾取, exploitation)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대부들은 대체로 명분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말과 달리 백성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착취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 노비와 쇠고기,푸른역사,2023).

어느시대나 마찬가지이지만 결국 돈문제가 천하다고 돈문제 신경을 안쓰면 나라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겁니다.

정조가 그 선대의 임금보다 성리학적 측면에서 탁월한 임금인 것은 맞지만 그는 ‘소설체’문장도 용인하지 못할만큼 보수적인 군주였습니다. 그가 청나라의 학문인 북학을 용인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고, 그가 북학을 성리학을 대신하는 통치이론으로 삼은 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최소 혁신 군주는 아니었는데 과거 학계에서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을 극복하는 일환으로 정조의 통치를 강조하다보니 생겨난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의리와 명분에 집착하다보니 명이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고 청을 오랑캐 취급하고 무시하다가 청에게 공격당한 서건이 병자호란입니다. 지나친 명분론으로 나라를 망할 지경까지 만든게 바로 사대부입니다. 특히 노론(老論) 정치가들입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명나라에 대한 제사를 조선 멸망때까지 지속합니다 ( 정지된 시간, 서강대출판부,2011).

저는 조선사대부의 이런 지나친 사대는 병리적(病理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가 현실감각을 잊을 정도라면 병이죠. 조선이 왕권중심 전제국가이기는 하나 양인과 노비없이 어떤 경제적 생산도 불가능한 나라였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들을 착취만 했는지…

이해가 안되는 건 현재나 19세기에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착취를 당할대로 당한 노비들과 농민들 그리고 서북지방 사족들은 결국 19세기가 시작되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18세기까지 차곡차곡 쌓였던 착취에 대한 불만이 터진 겁니다. 그래서 19세기는 ‘민란의 세기’가 된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편집 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대중서라고 해도 역사기록에 대한 출처가 본문에만 언급되고 미주조차 없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독자를 무시하거나 김영사 편집부가 태만한 겁니다.

미주조차 정리가 안되어 있으니 참고도서 목록도 역시 없습니다. 이건 그냥 편집상 실수에요. 김영사같은 큰 출판사가 책을 이렇게 출판했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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