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의 서사 - 독일 통일을 다시 본다
김영희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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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서 국제문제를 주로 다루어 오셨던 김영희 대기자께서 2016년 쓰신 책입니다.

총 9장으로 이루어진 본문과 부록으로 저자가 독일과 소련 정치인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영미권의 시각 (perspective)을 거치지 않고서 한국의 입장에서 독일과 소련의 지도자 의견을 물은 것이어서 꽤 의미있는 글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언론인이 유럽정치 그중에서도 독일정치에 대해 집필한 건 매우 드믄 사례인 것 같습니다.

저자에 대해 알아보니 2020년 세상을 떠나시고 고인이 되셨습니다.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 패전의 결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되고 특히 수도 베를린은 동서로 나뉘어 서베를린은 공산주의 국가 동독에 섬처럼 떠 있는 자본주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동베를린을 탈출해 서독으로 망명하는 이야기는 냉전시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되었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서독 초대총리 콘래드 아데나워의 서방정책 (West Policy)이 이후 빌리 브란트총리의 동방정책( East Policy)의 토대가 되고 이후 통일당시 헬무트 콜 총리의 통일정책의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보수적 입장의 언론인이지만 객관적으로 독일의 정치사를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세계대전 4대 승전국에 의해 분할점령되어 있는 상태에서 동서독간의 교류가 지속되고 동독의 경우 동유럽 지역과 교류가 지속될 수 있었던 사실이 독일통일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남북관계는 동서독관계보다 더 적대적이고 독일과 소련처럼 어떤 특정강대국의 영향력으로 한국의 미래가 결정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이해가 첨예하게 엮인데다 남북한간의 교류의 역사도 미미합니다.

이 책은 현재 윤석열정부에서 악화된 남북관계, 대중, 대 러시아관계를 포함하지 않고 있고, 미국의 대중적대정책에 대한 상황도 물론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일 통일의 과정을 살펴보는게 한반도의ㅡ미래를 생각하는데 분명 좋은 선혜인 건 변함이 없습니다.

책에 잠깐 스치듯 언급이 되었지만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있었던 동유럽국가들이 미국주도로 성립한 NATO에 가입하고 통일독일이 NATO의 추요국이 되었던 점은 이미 통일 당시에도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현재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이 결국 NATO의 동진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에도 NATO가입을 희망했었고, 전쟁이 일어난 2022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시카고 대학의 머시마이어(John Mearsheimer)교수는 전쟁초기부터 서방의 잘못 , 즉 NATO의 지속적인 동진이 러시아의 실존적 위험을 느끼게 하고 그래서 전쟁이 촉발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수적인 대학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가 전쟁을 러시아탓으로 돌리지 않고 서구와 미국의 탓으로 돌려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현실주의 정치학(Realpolitik)을 추구하는 분의 분석이라 저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분단에 대한 역사를 보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일본은 왜 분할점령되지 않았는가입니다.

독일이 먼저 분할점령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 분할점령은 논리적으로 정당한 결정일 수 있는데, 오히려 한반도가 분할되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패전 직후 한반도의 국제법적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서구와 열강이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글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해방이후 현대사는 미국의 공산주의 봉쇄정책(containment)와 떼어넣고 생각하기 힘들고,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은 항상 중국과 러시아를 경계해온 역사가 있습니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소련의 적군(red army)은 일본의 홋카이도 침공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사할린과 그 부속열도들만 침공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국내정치적 사건들과 미국/ 소련의 입장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면 사건의 발생경위를 파악할 길이 없습니다. 패전후 일본이 미국의 점령정책에 어떻게 대응해갔는지를 알아야 한국이 미일과 어떤방식으로 대응해야할지 보일겁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아무튼 의문이 계속 듭니다.

한국의 해방직후의 상황에 대해 한반도뿐만 아니라 주변열강들을 포함해 좀 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연구서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분단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이해당사국들과 현안을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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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동물 - 동물은 왜 죽여도 되는 존재가 되었나
김도희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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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권(人權, Human Right)에 대해 무관심한 한국에서 동물의 권리 (Animal Right)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우선순위가 맞는지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책을 보게 된 사실을 고백하는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육식을 포기하는 비거니즘(Veganism)에 대해 말하지만 여기서는 논평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할 뿐입니다.

다만 육류생산이 공장식 축산에 따라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좋지못한 영향을 끼치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육식주의자들 누구도 항생제에 쩔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을 것이고 솔직히 대량으로 가공된 고기가 품질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저 자신이 나름 합리적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동물의 권리는 너무나 낯선 주제입니다.

그리고 책에서 보여주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현실적인 실행가능성보다는 이상적 추상적 이론적 논의에 그치는 경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중도적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고 푸코의 생명정치를 일부 이해한다고 해도 솔직히 인간사회를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의 주체 내지 행위자로 동물을 집어넣는 게 맞는지 회의적입니다.

인간의 논리가 인간의 언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설령 동물들 나름대로의 의사소통체계와 인간과 다른 언어로 소통한다고 해도, 왜 인간의 규울체계인 법에 행위주체로 동물을 끌어들여야 하는지 회의적입니다. 억지로 끼워맞춘 인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너무 사변적(思辨的)입니다.

책에 나온 동물권 관련한 소송에서 예외없이 판사들이 동물이 법률의 행위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결한 경우도 아마 위의 이런 논리때문일 겁니다.

인간이 생태계에서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그들을 인간사회의 규율체계에 끌어들이는 건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생태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이면에서 동물이 착취되어 온 점, 그리고 소수자의 관점에서 여성과 아동 그리고 동물들이 자본주의 초기 수탈을 당했다는 관점은 수긍이 되는 지적입니다. 말하자면 실체가 있으나 ‘말하지 못하게 된 상태’로 잊혀진거죠.

자본축적의 역사는 대체로 남성위주로 기술된 것이 사실이고, 특히 자본주의 초기역사는 백인남성 위주로 기술되었다는데 이론을 제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자본주의 초기의 아동노동은 어쩌면 초기 자본주의의 치부이기 때문에 논의자체를 꺼린 것도 사실입니다.

역사서술의 주류를 이루는 정치외교사나 전쟁사의 주인공은 남성 그중에서도 왕이나 황제 또는 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사에서 농업이나 초기 산업발달에 있어 말이나 소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서 논의된 적은 있어도 이들이 어떻게 어떤상황에서 살았는지는 알려진바 없습니다.

서양의 고대전쟁사나 중국고대의 전쟁사를 봐도 몇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가 있었는지 어떤 전투대형을 이루어 어떤 전술로 싸웠는지는 있으나 얼마나 많은 말들이 희생되고 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보여지지 않았던 소수자로서 여성과 함께 동물을 호명하는 건 그래서 수긍할만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권보다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으로 고된 삶을 보내는 현실에서 우선순위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생을 위해 동물권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하지만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간이 애완견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경우는 최소 없어야 동물권을 위한 논의의 장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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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의 청일전쟁 - 전쟁과 휴머니즘
조재곤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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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에서 한국근대사를 연구하시는 조재곤 교수님이 2024년 출판하신 청일전쟁 연구서입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사료수집에만 10년이 걸렸다고 따로 언급하시기도 했습니다.

책은 총 3부로 본문만 633쪽에 달합니다. 그리고 각국 사료들로부터 인용된 전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뒤따릅니다.

우선 이 책이 제가 처음 읽은 ‘청일전쟁사’라는 걸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에 대한 평가와 제가 전에 읽은 고종(高宗) 당시의 정치사와의 비교만 가능할 뿐 다른 저자가 쓴 청일전쟁사와 조재곤 교수의 책이 어떠한지 판단할 능력은 없습니다.

이책은 매우 흥미롭게도 청일전쟁당시 조선땅에서 벌어진 전쟁의 양상과 함께 조선에서의 보급상황 ( mobilization)을 중점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시대에 대해 잘몰라서 그렇지만 아무튼 제가 아는 한 청일전쟁당시 매이지 일본의 한국 병참기지화와 전쟁보급상황을 이런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의 병참기지화를 생각하면 흔히 제2차세계대전 말 일제의 학병징집과 병참기지화만을 먼저 떠오르는데 일제는 이미 메이지 당시부터 조선을 중국침략의 통로로 생각하고 경부선과 경인선 그리고 경의선 철도를 부설하며 대규모로 조선인들을 청나라와의 전쟁에 동원하고 있었습니다.

1894년에 일어난 전쟁이라 2024년 시점에선 오래된 잊혀진 전쟁일 수 있겠지만 조선땅에서 일어난 청국과 일본과의 전쟁에서 왜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소거되고 일본이 승리했다는 전황만 남은 건지 미스터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인들의 전쟁동원, 조건이 전쟁터가 되서 일어난 참상, 조선인들이 일본군에게 군수조달 방해혐의로 살해되는 사실 등이 역사기술에서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청일전쟁의 이미지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는 사진정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 책의 내용으로 보건데 저는 일본의 역사가들이 청일전쟁을 기술하면서 의도적으로 당시 호전적이고 잔인했던 일본군의 민간인 참살(斬殺)을 의도적으로 은패(隱蔽)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으로 의심됩니다.

아직도 서구에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westernize)된 근대국가로 알려져 있고, 일제가 중일전쟁 당시 저지른 난징대학살(Nanjing massacre )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과거의 전쟁범죄를 은폐하려고 서구국가들을 향해서도 공작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고 의심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난징 대학살보다 무려 40여년 전에 조선에서 벌였던 평양의 학살과 조선을 거쳐 만주로 이동한 후 일본이 뤼순(旅顺)애서 벌인 대학살이 알려질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합니다.

난징에서 일본군인들이 중국인들을 일본도로 참수하는 걸 신문에 내서보도하고 심지어 머리자르기 내기까지 하는 극악무도함을 보였는데 이들은 갑자기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청일전쟁 당시에도 일본군들은 포로로 잡혀온 중국인들과 조선인들의 머리를 일본도로 자르는 참수형(斬首刑)을 시행했고 심지어 참수한 머리를 효시(梟示)하기까지 했습니다.

청일전쟁 당시 매이지 일본은 말로는 군대국가가 되었다고 했으나 일본군의 잔학행위는 전혀 문명적이지 않은 전근대적 사무라이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말로는 군 수뇌부가 포로이 대한 제네바협정를 준수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 일선에서 적용된 건 아닌겁니다.

더구나 일본은 갑신정변(甲申政變 1884)의 주역 김옥균이 홍종우에 의해 살해되고 이후 그의 시신이 양화진(楊花津)에서 능지처참(陵(凌)遲處斬)을 당해 머리가 효수되었을 당시 조선을 미개한 나라라고 했던 나라입니다. 친일파인 김옥균이 벌을 받아 그런 면도 있겠지만 10여년 이후 일본군이 조선인과 중국인에게 향한 수많은 참형(斬刑)사례를 보자면일본이 근대국가라고 서장을 향해 떠드는 건 전부 프로파간다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일본군은 머리자르기와 같은 참혹한 형벌을 지속해 10여년 후 러일전쟁과 이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서도 계속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일본인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잠시 언급했듯이 일본이 메이지 시대이후 서구적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알려져 왔고, 그렇게 배워왔지만 이미 메이지 당시에도 제도가 서구화되었고 외교관들이나 정부고위관료들이 서구화되었을지 몰라도 군부와 군인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이 서구화된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군인들은 아직도 막부시대의 사무라이처럼 칼로 상대를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걸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거의 봉건적인 수준의 이런 군인들의 처단방식을 저는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아미 겉과 속이 다르고 근대적인 외영과 봉건적이고 중세적인 실질과 정신의 이중적 모습이 청일전쟁 당시에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현대일본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입헌군주제 국가로 선거로 국민의 대표를 뽑지만 일본의회는 사실상 자민당 독주체제이고 의원들은 대를 이어 국회의원이 됩니다. 특히 메이지 유신 당시 주요 번벌이 나왔던 죠슈번 (長州藩)운 현재 야마구치현(山口縣)이고 이곳 출신 총리가 얼마전 암살당했던 아베신죠(安倍晋三)입니다. 제가 알기로 1945년 이후로 봐도 3대째 정치인 집안입니다.

한국도 최근 대를 이어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결코 한국정치에 긍정적 영향을 준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일본은 아베 전총리의 경우에서 보듯 3대째 국회의원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특히 극우화하고 있는 현재 일본은 전근대적인 신정일치체제인 패전이전의 천황제 복구를 계속 염원하고 그방향으로 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저는 일본은 근대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건 일본인들이 상습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중국과 한국 포로에 대한 참살은 일본의 공식청일전쟁사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입니다.

외교적으로 일본은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의 지위에서 해방시켜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조선땅에 군대를 보낸 것이고 ‘미개한’조선을 깨워 근대화 대열에 동참시키기 위해 ‘시정개선(施政改善)‘을 하겠다는 겁니다.

어디에도 조선의 주권(sovereignty)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미 역사왜곡은 시작된거죠.

책에 일본군들이 조선을 병참기지화해서 전쟁물자를 조달하는 경우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마치 처음부터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군하는 지점에 있는 촌락에 들어가 식량과 소 말 등을 징발하고 조선인들을 안부로 대려갑니다. 정당한 급료를 주고 채용한 것도 아니어서 사실상 동원되는 겁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피난을 떠나 텅빈마을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특히 평안도 평양지방은 일본군의 징발로 더욱더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새삼 한국이 20세기에 들어 지금 이야기하는 청일전쟁 이외에 러일전쟁,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 마지막으로 한국전쟁까지 치루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국전쟁은 2024년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휴전(cease fire)상태이지 아직 종결된 전쟁이 아닙니다.

한국의 상황은 사실 어찌보면 연이은 전쟁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아 중진국 이상으로 도약한 유일한 사례인데도 우리는 그걸 그저 당연하게 여겨 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아무튼 저는 일본이 청일전쟁기부터 역사왜곡을 지속해 현재도 그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비효율적이지만 지나치게 세밀한 일본의 관료조직이 있기 때문이고 현실정치에선 아직도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삿초 번벌의 후세들이( 이들은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용인하에 아직도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 역사서술과 다른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저자가 발굴한 여러 사료적 증거가 이 책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의 뿌리가 무척 오래되고 깊다는데 매우 무력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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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출판된 이래 개정판이 2015년 출판되어 2024년 현재 출판이력만 10년이 넘은 책입니다.

동양철학자 임건순 작가의 책으로 제가 읽은 2015년 개정판은 본문만 558쪽에 이릅니다.

잘알려진 유가책도 아닌데다 560쪽에 이르는 분량이기 때문에 중국 고대사상에 처음 접하는 분들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책에는 작가가 선정한 중요 문구가 해석과 원문이 병기되어 나옵니다. 책의 일부는 분명 일반적인 중국 고전 강설(講說)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묵자(墨子)라는 중국 전국시대 초기 사상가에 대해 이 책으로 처음 접해 솔직히 임건순 작가의 해석에 대한 판단은 내릴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느낀점과 생각한 것을 위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책은 논어(論語), 맹자(孟子) 등 전통적인 유학의 전통과 묵사의 관계를 비교 설명합니다. 따라서 논어 맹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편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둘째, 묵자라는 사상가는 사회전체의 이익증대에 관심이 많았던 사상가로 계급의 고하와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이 제몫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을 추구했던 사상가입니다. 따라서 사회에 대한 분배정책을 중시했으며 소수의 엘리트가 기득권과 물질적 부를 장악하는 불평등을 용납하지 못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명분조차 없이 이익을 위해 죽고 죽이던 살벌한 전국시대에 이런 식으로 사회전체의 복리증진을 강조하는 사회정책(social policy)를 강조하는 사상가가 나왔다는 건 매우 놀랍습니다.

셋째, 민주주의와의 유사성입니다.

군주가 통치하는 수직적인 전제왕권을 인정하지만 민중의 의지(즉 민의, 民意)로 대변되는 하늘의 의지( 천지, 天志)가 통치를 정당화합니다. 유교가 하늘의 며, 즉 천명(天命)으류받은 군자의 통치정당성을 주장한 사실과 대조됩니다.

천명이 일종의 숙명 (destiny)혹은 이미 정해진 삶을 의미하는 매우 수동적인 개념이라면 천지는 의지가 들어가 있는 능동적 주체적 개념인 것도 인상적입니다.

민중의 의지가 최고 권력자에게 올라간다는 아라로부터의 하향식 의지 천명이라는 점에서 놀랍게도 민주주의와의 유사성이 발견됩니다.

셋째, 기독교와의 유사성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하늘의 의지가 정치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통치정당화와 매우 유사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히 추정컨데, 기독교의 지식인들이 일찍부터 묵자에 주목했던 건 이런 유사성에 기인한 걸로 추정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추후 읽어볼만한 책 한권을 찿았습니다. 재야 한학자 기세춘 선생과 돌아가신 문익환 목사께서 묵자와 예수에 대해 쓰신 책입니다.

예수와 묵자, 문익환 기세춘 홍근수 지음 (바이북스,2016)

이 책은 기회가 되면 읽고 다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다른 모든 걸 떠나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이것입니다

義, 利也

의로움은 즉 이익이다. 즉 ‘사회구성원에게 경제적 실질적으로 이롭지 않으면 의로운게 아니다’라는 주장입니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꺼리고 멀리한 공맹의 유학 그리고 조선 성리학과는 대척점에 있는 주장입니다.

묵자를 잘 알지 못하지만 이 문장은 묵자의 경제적인 사고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공맹유학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지나치게 윤리와 당위만 강조하고 실질적인 생활의 기반인 농업과 상업을 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묵자처럼 이익을 중시하고 그 이익이 사회전체에 배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봅니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소수에 의한 경제력 독점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더욱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그 주장이 당시를 넘어 현재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이고 묵자의 경우 사회정책( social policy)자체에 대한 개념도 논의도 결여된 2024년 현재 좋은 가이드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서구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오류를 인정하고 폐기한 신자유주의 경제학( neoliberal economics)를 아직도 고수한체 낙수효과 (trickle down impact)만을 종교적으로 숭상하는 고위공직자 집단과 집권층은 본인들의 이익 수호를 위해 정책을 이용하는게 아닌지 의심됩니다.

특히 경제의 세 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 중 사실상 현재 정부는 경제개입의 의무를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 정부는 경제에 대한 보도에서 전부의 역할을 은폐하고 잇다고 의심합니다.

묵자가 오랫동안 중국사상계에서 잊혀졌던 이유도 국가의 사회정책을 강조하고 계급보다 능력을 강조하는 급진성때문에 전제정치 체제였던 중국에서 특히 기득권세력들에 의해 경원시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묵자라는 텍스트 원문 전체에 대한 주해를 읽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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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4, 지식책 읽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 아이의 지식 격차가 벌어지는 결정적 시기
전병규(콩나물쌤) 지음 / 클랩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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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국어 영어 문해력에 관심이 많아 읽은 책입니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신 저자께서 쓰셔서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는 지도방법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수능에서 비문학 지문이 많아져서 이렇게 비문학 독서교육울 위한 가이드북도 출산되었다고 봅니다만 수능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비문학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전문서적을 봐야하기 때문에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전문용어가 나오고 이해가 되지 않는 문단을 분석적으로 읽고 문장과 문장사이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비문학 독서는 결국 저자의 의도와 논리를 찿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성적 비판적 사고를 하는 법을 배우기위해서라도 비문학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비문학 책을 보면서 논리(Logic)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논리적 사고를 하기 시작할 때 비문학책 독서법을 알려주는 건 그래서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교육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책을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궁극적 목적인 ‘논리적 추론’과 책에 대한 아이들의 의견제시의 중요성을 지적하십니다.

책에 나온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 사실들이 책의 어느부분에 쓰여있는지 그리고 그 사실관계로 알수 있눈 것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책내용이 실생활과 어떤관련이 있는지 책을 일고 나서 아이들의 느낀점과 의견이 무엇인지 그리고 책에 나온 내용이외에도 관련해서 할 수있는 이야기가 없는지를 부모와 아이가 서로 물어보고 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내용은 비단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비문학 혹은 논픽션 독서 일반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책은 생각의 도구로서 책에서 알게된 사실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불 알아야 하고 독자는 각기 다른 의견이 있고 받아들이는 정도도 달라 여러 다른 시각이 충돌할 수 있습이다. 이래서 성인들도 독서모임에서 각기 의견을 말하고 다른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공부라는 것이 자신만의 독창적 시각(perspective)를 갖은 것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책내용을 본인의 말로 정리하고 그 내용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내보고 다른 이의 의견을 들여보는 과정을 거친다는 건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하고 결국 이런 과정은 나이가 먹어도 변치않게 계속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공부와 독서의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독서의 목적과 지식을 배우는 목적 역시 배운 지식을 완전히 소화해서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책을 읽은 후 읽은 내용을 정리하고 질문을 해보고 대답을 하는 대화과정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비록 초등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쓰신 책이지만 일반적인 비문학 논픽션 독서가이드로도 손색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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