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인권(人權, Human Right)에 대해 무관심한 한국에서 동물의 권리 (Animal Right)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우선순위가 맞는지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책을 보게 된 사실을 고백하는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육식을 포기하는 비거니즘(Veganism)에 대해 말하지만 여기서는 논평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할 뿐입니다. 다만 육류생산이 공장식 축산에 따라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좋지못한 영향을 끼치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육식주의자들 누구도 항생제에 쩔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을 것이고 솔직히 대량으로 가공된 고기가 품질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저 자신이 나름 합리적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동물의 권리는 너무나 낯선 주제입니다. 그리고 책에서 보여주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현실적인 실행가능성보다는 이상적 추상적 이론적 논의에 그치는 경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중도적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고 푸코의 생명정치를 일부 이해한다고 해도 솔직히 인간사회를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의 주체 내지 행위자로 동물을 집어넣는 게 맞는지 회의적입니다. 인간의 논리가 인간의 언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설령 동물들 나름대로의 의사소통체계와 인간과 다른 언어로 소통한다고 해도, 왜 인간의 규울체계인 법에 행위주체로 동물을 끌어들여야 하는지 회의적입니다. 억지로 끼워맞춘 인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너무 사변적(思辨的)입니다. 책에 나온 동물권 관련한 소송에서 예외없이 판사들이 동물이 법률의 행위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결한 경우도 아마 위의 이런 논리때문일 겁니다. 인간이 생태계에서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그들을 인간사회의 규율체계에 끌어들이는 건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생태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이면에서 동물이 착취되어 온 점, 그리고 소수자의 관점에서 여성과 아동 그리고 동물들이 자본주의 초기 수탈을 당했다는 관점은 수긍이 되는 지적입니다. 말하자면 실체가 있으나 ‘말하지 못하게 된 상태’로 잊혀진거죠. 자본축적의 역사는 대체로 남성위주로 기술된 것이 사실이고, 특히 자본주의 초기역사는 백인남성 위주로 기술되었다는데 이론을 제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자본주의 초기의 아동노동은 어쩌면 초기 자본주의의 치부이기 때문에 논의자체를 꺼린 것도 사실입니다. 역사서술의 주류를 이루는 정치외교사나 전쟁사의 주인공은 남성 그중에서도 왕이나 황제 또는 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사에서 농업이나 초기 산업발달에 있어 말이나 소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서 논의된 적은 있어도 이들이 어떻게 어떤상황에서 살았는지는 알려진바 없습니다. 서양의 고대전쟁사나 중국고대의 전쟁사를 봐도 몇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가 있었는지 어떤 전투대형을 이루어 어떤 전술로 싸웠는지는 있으나 얼마나 많은 말들이 희생되고 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보여지지 않았던 소수자로서 여성과 함께 동물을 호명하는 건 그래서 수긍할만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권보다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으로 고된 삶을 보내는 현실에서 우선순위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생을 위해 동물권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하지만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간이 애완견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경우는 최소 없어야 동물권을 위한 논의의 장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