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 전에 서평을 올렸던 ‘인정사정, 조선군대생홯사’의 후속편입니다.

여러명의 저자가 학제적으로 연구한 연구 결과물로서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훈련도감에 대한 전반적인 모습을 아우릅니다.

이 책은 제목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조건의 호환 (虎患)과 훈련도감의 역할에 대한 내용 (5장 호랑이 잡는 훈련도감)과 화폐를 주조했던 훈련도감 ( 6장 훈련도감 군인들의 동전 만들기) 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이 ‘조선 최정예 군대’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제목과의 관련성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위의 두 글에 앞서 훈련도감이 임진왜란이후 왜 세워졌는지, 어떤 병서의 이론적 기반을 두고 세워졌는지는 ‘ 1 장 훈련도감을 만든 두권의 책’에 개략적으로 나와있습니다.

1장의 내용은 ‘인정사정, 조선군대생활사’에도 마오는 내용이 일부 있습니다만 간략히 다시 이야기 하면 이렇습니다.
훈련도감은 1592-1598년의 임진왜란을 경험한 후 일본이 사용했던 조총의 위력을 실감하고 훈련도감을 설치해 조총을 사용할 수 있는 군인을 양성하고자 합니다.

이에 선조는 당시 잘알려진 명나라 무장 척계광(戚繼光)이 중국 남부 해안에서 왜구의 침략에 대응한 전투를 경험한 후 이들을 공략할 수 있는보병 운용에 대한 책인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저술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책을 구하도록 명합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훈련도감을 만듭니다. 훈련도감을 만든 또하나의 병서는 역시 척계광이 지은 것으로’연병실기 (練兵實紀)’로 주로 기마전술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이는 명나라가 북방의 여진족 등 기마민족들과의 전투경험에 따른 병법을 정리한 것으로 보병 위주의 훈련도감 편제에 전차를 더 추가해 전투력 증대에 기여하기 위함이었습나다.

위에서 언급한 조선의 호환에 대해 잠깐 소개합니다.

조선에 호랑이가 한양과 궁궐 주변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훈국등록 및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한반도가 큰 산들이 많아 야생동물이 많이 살았으리라 생각했지만 조선 왕조 전반에 걸쳐 호환이 국가재난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습니다.

궁궐과 가까운 북악산은 물론 궁궐 안에까지 호랑이가 나타났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렇게 호랑이의 출몰이 계속되자 임진왜란 이전 조선에서는 호랑이를 잡는 전담 군영이 설치되었습니다.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이름의 군사들로 오로지 활과 창을 이용해 호랑이만 전담으로 잡는 조직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군사제도가 개편된 이후 착호갑사의 임무가 훈련도감으로 넘어옵니다. 일단 훈련도감이 살상력이 뛰어난 조총을 운용하는 부대였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였을 것이고 호랑이가 궁궐 및 한양에 출몰하는 까닭에 이를 호위하고 방어하는 임무를 지닌 훈련도감으로서 호랑이를 잡으라는 명령을 받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훈련도감의 화폐주조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조선은 현재 한국처럼 화폐의 발행의 권리가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 왕조국가로 발행권한은 왕에게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처럼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가지고 조폐공사를 통해 독점적으로 화폐발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왕이 명령을 내려 화폐발행을 지시하면 화폐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주조화폐만 유통되는 경제 아니었습니다. 즉 화폐만으로 물품의교환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각종 면포 및 특산품 쌀 등이 화폐의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독점적으로 일정 규격의 화폐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훈련도감을 비롯해 어영청, 금위영 같은 군영이나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관아에서도 필요에 따라 화폐를 주조하게 됩니다.

한양에서 화폐를 주조해 다시 해당 지방까지 가져가는 비용이 크고 번거롭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방에서 화폐를 주조하도록 한것입니다. 특히 군영은 필요한 군사비를 왕명에 따라 직접 주조해 조달하는 독특한 체계를 갖춘것으로 보입니다.

군영에서 화폐를 만든 것도 유사한 이유가 있겠지만 조선 후기 훈련도감이 직접 장인들을 고용해 필요한 무기를 만들던 곳이라 화폐의 주조가 용이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상 제가 관심을 가졌던 글 몇가지 소개를 마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조선의 천문과 관련된 ‘7장 천문과 우주를 품은 군기’ 와 ‘9 장 조선 거동 음악의 미학’ 두개의 글입니다.

천문이라는 생경한 분야에 동양적 천문사상이 들어가니 읽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악학궤범’등을 비롯한 조선의 음악서적을 인용한 조선의 거동음악도 이해 안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두 글은 용어와 배경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들어가야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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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조선 군대 생활사 고전탐독 1
원창애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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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대표적 궁궐 경비 조직이자 최고의 군영인 훈련도감에 대한 입문서입니다.

그동안 역사책에서 들어본 이름인 ‘훈련도감’이 어떻게 설립되어 운영되어 왔는지 소속 군인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본의 신무기 조총을 경험한 조선은 그 위력을 실감하고 조총을 사용할 수 있는 부대의 양성에 나섭니다. 중국의 남부 해안에서 일본의 왜구를 물리쳤던 명나라 의 무장 척계광( 戚繼光)의 ‘기효신서 ( 紀效新書)‘를 기반으로 한 군부대 양성에 나선 것입니다. 전쟁으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져 훈련도감은 하층민과 천민도 모두 군인으로 받아들입니다. 조선 전기의 의무병제는 임진왜란 이후 사실상 모병제로 바뀌게 됩니다.

여러명의 저자가 정치, 경제, 건축, 복식, 법률 등 분야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쳐 가볍게 읽기에 좋습니다.

경제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훈련도감의 직업 군인들이 나라에서 받은 급료로 생활을 할 수 없어 서울의 장터에 나와 장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관심이 갔습니다.

문인의 나라 조선에서 하급 무관일 뿐인 훈련도감 병졸들의 생계를 모두 책임지지 못했고 이는 당국의 묵인하에 이들의 상행위를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서울의 상권을 가지고 있던 상인들과의 마찰을 불가피하게 일으켰고 상대가 무관인지라 상인들 역시 조정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조선의 무인계층에 대한 책을 보기 어려운 실정에 임진왜란 이후 조선을 대표하는 훈련도감의 입문서가 발간된 것은 반갑다고 생각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수장된 국내 유일본인 군영등록인 ‘훈국등록 ( 訓局謄錄)’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 작은 책자를 발간했다고 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내용을 좀 더 전문적으로 보완해서 좀더 내실있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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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화이론(華夷論)에 대한 관심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홍승현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한 책입니다.

진(秦)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이후 중국의 황제는 천하를 지배하는 전제군주로서 한족이외의 이적(夷狄)을 직접 지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중국의 통일이전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한족과 한족이외의 오랑캐들은 분리의 대상이고 다른 세계일 뿐 지배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제국으로 최초의 모습을 드러내고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長城)을 쌓기 시작했고 중국의 영역이 오랑캐의 영역으로 확장되며 이적지배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그 이론을 정립하게 됩니다.

최초의 통일 제국 진(秦)나라의 경우 황제인 천자(天子)가 지배하는 천하(天下)는 온 세상이며 경계가 없으며 종족이 한족이든 오랑캐이든 모두 황제의 백성으로 ‘직접지배(直接支配)’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한(漢)나라로 넘어오며 이상적인 이적의 직접지배는 불가능하게 되고 이적의 간접지배의 방식으로 속국(屬國)을 통한 지배를 하게 됩니다.

황제(皇帝)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전제하에 속국의 제후 (諸侯)를 왕으로 책봉 (冊封)하고 조공(朝貢)관계를 맺는 것이죠. 속국의 제후는 자신의 영역을 직접 지배하지만 이론상 온 세상을 지배하는 천자인 황제는 속국을 그저 간접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과 오랑캐의 관계는 결국 황제의 정치적 군사적 힘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중국의 영역이 이적의 땅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거치며 직접적인 영향력을 얼마나 미치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중국이 진. 한 시대를 거쳐 위, 촉, 오 (魏, 觸, 吳)의 삼국시대에 이르면 중국의 한족이 이적의 땅에서 나라를 세우면서 과거 중국이 아닌 지역이 점차 중국화 되어갑니다.

이적과 한족은 분리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게되는 경우가 생기면서 중국이 어디인가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하게됩니다.

특히 오나라의 경우 중국의 삼국 중 하나이지만 제국 자체가 오랑캐의 땅에 세워졌기 때문에 황제의 정치력은 오나라 전체에 미치지 못했고 따라서 지역 맹주들이 황제권에 도전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즉 표면적으로는 책봉과 조공관계에 있었지만 변방지역을 ‘지배’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남북조시대로 넘어오며 이적에 대한 중국의 통치방법은 또 달라집니다.

남조의 경우 사실상 지방 제후들에게 자치권과 군사권을 준 간접지배의 통치방식을 취했습니다. 황제의 정치력이 토착세력과 이적의 힘을 억제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간접적인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반면 북위의 경우 직접통치를 위해 오랑캐인 토착민 부락을 해체하고 강제이주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강제적으로 오랑캐의 풍속을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반중국역사’라는 책에서 몽골 오이라트 지역 출신 저자는 중국의 한족들은 타민족과 구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영역에 이민족의 침범을 용납할 수가 없어 만리장성을 쌓고 장성안의 지역을 중국으로 장성 밖의 지역을 이적의 땅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중국이 중심이고 따라서 야만적인 이적들을 중국이 직접지배해야 한다는 것이 최초의 생각이고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춘추전국시대에서부터 남북조 시대까지의 실제 직접 지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론과는 달리 오랑캐 수장의 통치력과 군사력이 압도적이어서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사실상 지도 상 중국의 통치영역이었다해도 황제의 직접통치는 쉽지 않았고 오히려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며 공생을 도모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보여집니다.


여태까지 배운 중국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오랑캐의 입장보다 대체로 역사를 기록한 한족의 입장을 반영해 역사서술 이면에 있는 실제적 이야기를 접하지 못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난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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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연호탁 지음 / 글항아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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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관동대학교 연호탁 교수님이 2016년 쓰신 책으로 ‘기행문’의 형식을 취한 중앙아시아 고중세 역사서라고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이 산만하다고 평하신 분들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이 책이 저자의 2년간 55회에 걸쳐 진행한 연재물이 책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복되는 내용이 종종 나오지만 단순한 반복(redundancies)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중앙아시아의 각 민족간의 접촉과 교역, 전쟁을 살피는 역사서가 다소 독특하게도 각 명칭간의 관계를 따져보는 ‘사회언어학’적 접근방식을 취한 것도 저자가 기본적으로 ‘영어학’을 전공한 언어학자라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쉽지 않은 접근법이지만 유목민족과의 교류가 언어적 측면에서 어떤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러 실례와 추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신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술술 읽히지만 620여 페이지에 달하고 커버하는 지역도 중국의 신장, 내몽골, 몽골, 투르크메니스탄 ,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북인도, 이란, 러시아, 터키, 러시아, 스페인 등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아우르고 간간히 중국의 명, 청과 조선, 고려, 신라, 고조선, 고구려, 백제, 일본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폭넓은 문명교류의 흔적을 쫓다보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지 않은 건 이 책이 연재물의 결과이기 때문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은 또 다른 이유는 한국에서 오랑캐라는 이유로 거의 다루지 않은 월지(月氏)라는 미지의 유목민족의 이주사를 흥미롭게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월지가 서쪽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흉노(匈奴)’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동이( 東夷)’라고 부르며 중국의 속방임을 표방해온 나라에서 같은 오랑캐 부류인 월지와 흉노에 대해서도 아는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중국 주위의 민족은 이들만이 아니고 만주지역의 여진, 거란, 돌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오랑캐에 대해 편견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점만 지적하고 싶네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월지의 서쪽 이주에 따른 중앙아시아의 변화를 추적합니다.

월지가 서쪽으로 이주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는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월지는 흉노족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해 불가피하게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2. 월지는 원래 둔황 및 차렌산맥 사이에 거주하였으나 흉노의 공격으로 현 우즈베키스탄 아무다리아강 북단에 정착해 소무구성 아홉나라를 세우는데 흔히 소그다니아로 알려진 나라로 대월지 ( 大月氏)로 불립니다. 소그드인으로 알려진 이들이 대월지인으로 알려졌습니다.

3. 대월지이외 소월지(小月氏)도 있습니다. 월지족 중 서쪽으로 떠나지 못한 부류로 원 거주지인 둔황근처에 살면서 파미르 고원쪽 쿤룬산맥으로 이주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지역을 지배한 강족 (羌族)과 섞여살면서 강족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4. 월지는 서천이후 북인도에 쿠샨왕조(Kushan王朝)를 세우는데 간다라 문화로 유명한 이 왕조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질 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자는 쿠샨왕국을 세운 ‘쿠시’족이 월지의 한 분파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5. 월지족은 흉노의 침입으로 서쪽으로 이동했고 월지의 서천은 연쇄반응을 일으켜 텐산 및 파미르 고원에서 유목을 하던 색종 (索 種)으로 흔히 스키타이족 내지 사카족으로 알려진 이들입니다. 이들은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해 다시 다른 민족과의 접촉과 공생을 시작합니다.


책의 내용 중 월지족의 서천과 관련된 몇가지만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지만 복잡한 문명교류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 몽골이 원나라를 확장해 가면서 11-12세기 유럽에까지 그 영향력을 넓혔고 우리나라의 형제국으로 알려진 터키도 15세기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며 유럽을 경악시킵니다. 많은 서구의 역사가들은 서구중심적인 시각( Eurocentric perspective)에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을 서구문명이 최초로 비서구문명에 제압당한 치욕의 역사로 기억합니다.

비잔틴을 함락시킨 셀주크 투르크제국은 투르크족의 나라로 중앙아시아에 기원을 둔 돌궐족입니다. 돌궐은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과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유목민족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중앙아시아에는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국가로 더 서쪽으로는 터키라는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의 역사를 따라가는 길은 수많은 명칭과의 싸움으로 느껴집니다.

같은 지역이나 종족의 이름이 여러나라의 말로 기록되어 매우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이책에서는 주로 중국의 역사서를 많이 인용했고 저자는 언어학자의 특기를 살려 한자로 표시된 종족이나 지역명이 다른 언어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상당히 설득력있게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목민족이 미개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일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을 공감하며 정주문명과 유목문명이 어떻게 삶을 이루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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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 -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 너머의 역사담론 6
미야지마 히로시 외 지음, 김현영 외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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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사회 경제사 전문가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교수와 명청시대사 전문의 기시모토 미오(岸本美緖)교수의 저작으로 본서는 2008년 발행된 주오고론(中央公論)문고판의 번역서입니다

조선사의 경우 14세기 초 조선초부터 19세기 세도정치기와 흥선대원군의 집권시기를 다루며 중국사의 경우 명과 청의 정치경제사를 아우릅니다.

제가 읽고 느낀 이 책만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료를 직접 인용해 설명하는 편인데도 내용이 편하게 전달될만큼 읽기 쉽습니다( readable)

2. 1장과 5/10장을 제외하고 조선과 중국의 각 주제에 대한 서술은 공동 저자 두분이 번갈아가면서 진행했습니다.

3. 조선사의 경우 족보에 대한 사료를 기준으로 서술했으며 15세기 이후 초기 족보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다르게 부계혈통과 모계혈통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가 17-18세기의 사회변화를 거쳐 부계혈통만 기록되는 것으로 변천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4. 조선의 양반의 경우 양반임을 입증하는 문서가 향안 (鄕案)으로 기본적으로 향안에 이름이 올라야 양반노릇울 할 수 있었다는 점 입니다. 양반이 되는 경우는 양인 중에 과거(科擧)에 합격하고 향안에 이름이 올라있어야 하는 조건으로 조선 초 사회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였으나 조선 중기를 넘기며 권문세족이 확립된 이후 과거의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그 지위를 유지하게 됩니다.

5. 명의 경제는 도심과 농촌의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하여 명나라 말기 왕조의 몰락을 제촉하는요인이 됩니다.
동남해안을 중심으로 무역을 활발히 행해 그 영향력이 말레이시아와 류큐 일본에까지 이르지만 명의 상업은 오로지 도시를 중심으로만 영향을 미쳐 농촌의 빈곤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6. 청은 중원을 정복한 이후 청의 황제는 중국의 황제로서의 지위와 여진/몽골/티벳의 유목민족을 통치하는 칸(Khan)으로서의 지위를 모두 가집니다.
명나라가 북방의 몽골을 제압하고 중원을 안정시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으며 저항해 왔다면 청은 동북 출신의 유목민족으로서 몽골을 먼저 제압한 이후 산해관(山海關)을 넘어 중원을 통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7. 청은 따라서 한족 중심의 중원을 통치하는 것과 자신들의 출신지인 동북 및 서북의 이슬람(주로 투르크 계통의) 지역인 신장(新疆)은 자치권을 보장하는 이중 통치체제를 이루었는데 어찌보면 이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으로 보건데 당연한 통치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8. 조선의 양반 중심 사회체제는 16세기에 그 전성기를 이루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사대부들은 병자호란을 통해 그동안 오랑캐라고 업신여겼던 여진에 무릅을 끓으며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며 이 치욕의 결과 청에 볼모로 심양에서 18년이나 잡혀 지내야만 했던 후대의 효종은 북벌을 주장하고 추진하지만 청의 현실적 힘에 밀려 실제 북벌은 행하지 못합니다. 청과 조공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조선이 망해버린 명을 섬겨야 한다는 자가당착적 명분론에 집착한 결과입니다. 송자 (宋子)로 일컬어지는 당대의 대유 송시열이 이런 주장을 했고 실제 조선의 외교가 그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명분론을 따랐습니다.

18세기 이후 경제력의 향상으로 힘을 가지게 된 양인과 향리 계층은 점차 양반과 동일한 특권을 누리고자 향안에 본인들 이름을 올리게 되고 이런 현상은 누적되어 19세기에는 양반의 인구수가 양인을 압도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개론서라 한 사건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없고 그저 에피소드만 소개한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입니다.

하지만 조선의 족보와 문중/향안을 통해 양반 계층을 고찰한 점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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