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화이론(華夷論)에 대한 관심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홍승현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한 책입니다.
진(秦)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이후 중국의 황제는 천하를 지배하는 전제군주로서 한족이외의 이적(夷狄)을 직접 지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중국의 통일이전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한족과 한족이외의 오랑캐들은 분리의 대상이고 다른 세계일 뿐 지배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제국으로 최초의 모습을 드러내고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長城)을 쌓기 시작했고 중국의 영역이 오랑캐의 영역으로 확장되며 이적지배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그 이론을 정립하게 됩니다.
최초의 통일 제국 진(秦)나라의 경우 황제인 천자(天子)가 지배하는 천하(天下)는 온 세상이며 경계가 없으며 종족이 한족이든 오랑캐이든 모두 황제의 백성으로 ‘직접지배(直接支配)’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한(漢)나라로 넘어오며 이상적인 이적의 직접지배는 불가능하게 되고 이적의 간접지배의 방식으로 속국(屬國)을 통한 지배를 하게 됩니다.
황제(皇帝)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전제하에 속국의 제후 (諸侯)를 왕으로 책봉 (冊封)하고 조공(朝貢)관계를 맺는 것이죠. 속국의 제후는 자신의 영역을 직접 지배하지만 이론상 온 세상을 지배하는 천자인 황제는 속국을 그저 간접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과 오랑캐의 관계는 결국 황제의 정치적 군사적 힘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중국의 영역이 이적의 땅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거치며 직접적인 영향력을 얼마나 미치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중국이 진. 한 시대를 거쳐 위, 촉, 오 (魏, 觸, 吳)의 삼국시대에 이르면 중국의 한족이 이적의 땅에서 나라를 세우면서 과거 중국이 아닌 지역이 점차 중국화 되어갑니다.
이적과 한족은 분리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게되는 경우가 생기면서 중국이 어디인가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하게됩니다.
특히 오나라의 경우 중국의 삼국 중 하나이지만 제국 자체가 오랑캐의 땅에 세워졌기 때문에 황제의 정치력은 오나라 전체에 미치지 못했고 따라서 지역 맹주들이 황제권에 도전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즉 표면적으로는 책봉과 조공관계에 있었지만 변방지역을 ‘지배’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남북조시대로 넘어오며 이적에 대한 중국의 통치방법은 또 달라집니다.
남조의 경우 사실상 지방 제후들에게 자치권과 군사권을 준 간접지배의 통치방식을 취했습니다. 황제의 정치력이 토착세력과 이적의 힘을 억제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간접적인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반면 북위의 경우 직접통치를 위해 오랑캐인 토착민 부락을 해체하고 강제이주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강제적으로 오랑캐의 풍속을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반중국역사’라는 책에서 몽골 오이라트 지역 출신 저자는 중국의 한족들은 타민족과 구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영역에 이민족의 침범을 용납할 수가 없어 만리장성을 쌓고 장성안의 지역을 중국으로 장성 밖의 지역을 이적의 땅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중국이 중심이고 따라서 야만적인 이적들을 중국이 직접지배해야 한다는 것이 최초의 생각이고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춘추전국시대에서부터 남북조 시대까지의 실제 직접 지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론과는 달리 오랑캐 수장의 통치력과 군사력이 압도적이어서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사실상 지도 상 중국의 통치영역이었다해도 황제의 직접통치는 쉽지 않았고 오히려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며 공생을 도모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보여집니다.
여태까지 배운 중국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오랑캐의 입장보다 대체로 역사를 기록한 한족의 입장을 반영해 역사서술 이면에 있는 실제적 이야기를 접하지 못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난가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