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연호탁 지음 / 글항아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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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관동대학교 연호탁 교수님이 2016년 쓰신 책으로 ‘기행문’의 형식을 취한 중앙아시아 고중세 역사서라고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이 산만하다고 평하신 분들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이 책이 저자의 2년간 55회에 걸쳐 진행한 연재물이 책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복되는 내용이 종종 나오지만 단순한 반복(redundancies)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중앙아시아의 각 민족간의 접촉과 교역, 전쟁을 살피는 역사서가 다소 독특하게도 각 명칭간의 관계를 따져보는 ‘사회언어학’적 접근방식을 취한 것도 저자가 기본적으로 ‘영어학’을 전공한 언어학자라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쉽지 않은 접근법이지만 유목민족과의 교류가 언어적 측면에서 어떤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러 실례와 추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신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술술 읽히지만 620여 페이지에 달하고 커버하는 지역도 중국의 신장, 내몽골, 몽골, 투르크메니스탄 ,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북인도, 이란, 러시아, 터키, 러시아, 스페인 등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아우르고 간간히 중국의 명, 청과 조선, 고려, 신라, 고조선, 고구려, 백제, 일본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폭넓은 문명교류의 흔적을 쫓다보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지 않은 건 이 책이 연재물의 결과이기 때문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은 또 다른 이유는 한국에서 오랑캐라는 이유로 거의 다루지 않은 월지(月氏)라는 미지의 유목민족의 이주사를 흥미롭게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월지가 서쪽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흉노(匈奴)’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동이( 東夷)’라고 부르며 중국의 속방임을 표방해온 나라에서 같은 오랑캐 부류인 월지와 흉노에 대해서도 아는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중국 주위의 민족은 이들만이 아니고 만주지역의 여진, 거란, 돌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오랑캐에 대해 편견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점만 지적하고 싶네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월지의 서쪽 이주에 따른 중앙아시아의 변화를 추적합니다.

월지가 서쪽으로 이주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는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월지는 흉노족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해 불가피하게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2. 월지는 원래 둔황 및 차렌산맥 사이에 거주하였으나 흉노의 공격으로 현 우즈베키스탄 아무다리아강 북단에 정착해 소무구성 아홉나라를 세우는데 흔히 소그다니아로 알려진 나라로 대월지 ( 大月氏)로 불립니다. 소그드인으로 알려진 이들이 대월지인으로 알려졌습니다.

3. 대월지이외 소월지(小月氏)도 있습니다. 월지족 중 서쪽으로 떠나지 못한 부류로 원 거주지인 둔황근처에 살면서 파미르 고원쪽 쿤룬산맥으로 이주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지역을 지배한 강족 (羌族)과 섞여살면서 강족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4. 월지는 서천이후 북인도에 쿠샨왕조(Kushan王朝)를 세우는데 간다라 문화로 유명한 이 왕조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질 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자는 쿠샨왕국을 세운 ‘쿠시’족이 월지의 한 분파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5. 월지족은 흉노의 침입으로 서쪽으로 이동했고 월지의 서천은 연쇄반응을 일으켜 텐산 및 파미르 고원에서 유목을 하던 색종 (索 種)으로 흔히 스키타이족 내지 사카족으로 알려진 이들입니다. 이들은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해 다시 다른 민족과의 접촉과 공생을 시작합니다.


책의 내용 중 월지족의 서천과 관련된 몇가지만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지만 복잡한 문명교류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 몽골이 원나라를 확장해 가면서 11-12세기 유럽에까지 그 영향력을 넓혔고 우리나라의 형제국으로 알려진 터키도 15세기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며 유럽을 경악시킵니다. 많은 서구의 역사가들은 서구중심적인 시각( Eurocentric perspective)에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을 서구문명이 최초로 비서구문명에 제압당한 치욕의 역사로 기억합니다.

비잔틴을 함락시킨 셀주크 투르크제국은 투르크족의 나라로 중앙아시아에 기원을 둔 돌궐족입니다. 돌궐은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과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유목민족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중앙아시아에는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국가로 더 서쪽으로는 터키라는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의 역사를 따라가는 길은 수많은 명칭과의 싸움으로 느껴집니다.

같은 지역이나 종족의 이름이 여러나라의 말로 기록되어 매우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이책에서는 주로 중국의 역사서를 많이 인용했고 저자는 언어학자의 특기를 살려 한자로 표시된 종족이나 지역명이 다른 언어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상당히 설득력있게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목민족이 미개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일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을 공감하며 정주문명과 유목문명이 어떻게 삶을 이루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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