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lo Effect : How Managers Let Themselves be Deceived (Paperback)
Rosenzweig, Phil / Simon & Schuster Ltd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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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자를 읽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에서 교재로 선택을 했고 과제도 제출해야 해서 읽게 된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Halo, 한국어로는 ‘후광’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것입니다.

경영학자들이 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왜 어떤 회사는 성과( performance) 가 좋은 반면 어떤회사는 성과가 좋지 않나?

저자는 이 질문이 모든 경영에 관한 질문의 어머니 ( Mother of All Business Questions) 라고 했습니다. 유머러스하지만 아주 중요한 질문이죠.

수많은 경영학 논문들, 잘 알려진 HBR (Harvard Business Review) 에 실려진 상당한 논문이 바로 이 성과와 성과측정에 대한 것들인데, 저자에 따르면 말이 되지 않는 논문들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 ( Harvard Business School)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 책 저술 당시 스위스의 IMD 경영대학원 교수로 있는 분이기 때문에 비록 학문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한 때 본인의 동료이거나 학문 선배였을 학자들의 논문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 왜 학문의 종주국이 될 수 밖에 없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후광효과 (The Halo Effect) 라는 것이 그럼 무엇인가?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경영자/경영학자들이 성과를 이야기할 때 어떤 이유로 성과가 생겼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그 성과에 영향을 받는 조직의 일원을 인터뷰를 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으로 이는 성과의 속성 (attribution)에 대한 설명이지 어떻게 성과를 냈는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영자들이 성과에 대해 성과측정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새겨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경영에서 성과측정 ( how to measure performance)이라는 주제는 꽤 고전적인 것으로 문제는 이 성과라는 것이 반드시 재정적으로 흑자나 적자로 표현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논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제조회사의 경우 생산량 대비 불량률을 체크할 수 있고, 영업의 경우 대체적으로 판매량으로 성과를 측정하지만 이런 나름 근거있는 기준들이 그 회사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증거가 될 수 없고 성과가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90년대 말까지 한국 기업들의 경우 매출액에 중점을 두고 성장위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이익률은 형편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산 명품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입니다.

반면 이책에서 보여주는 기업관련 기사 (Business Journalism)가 기업의 평판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1960-70년대 황금기를 구사하던 IBM의 경우 1980년대 초 최대 위기를 맞는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신흥 주자인 Apple 이 등장하고 PC가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은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 책에서는 FORTUNE을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IBM은 내부적으로 별로 바뀐 것이 없었고, 그렇다고 크게 잘못대처하도 않았습니다. 수많은 PC 업체들이 세워졌다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 공룡 기업은 건재합니다.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들을 현혹시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하는후광효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점만 더 이야기하고 이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성과에 대한 연구와 이야기( storytelling)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몇가지 정리하면,

1. 이야기는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는 사업입니다. 미국의 유명 경영저술가들은 독자들에게 명료하고 단순한 메세지를 가진 책을 저술해 실제 경영현장과 독자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 하지만 이야기가 주는 장점과 기쁨이 있어도 그 이야기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이라고 포장이 되어 있어도 사실 과학적인 저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학적 저술이라고 마케팅하는 것이 책판매에는 도움이 되죠.

3. 이것은 저술에 필요한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며 즉 결론을 도출한 자료가 얼마나 믿을만한 것 (reliable)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성과에 직접 영향받는 바로 그 회사의 직원에게 ‘당신이 소속된 회사가 성과가 좋은가?’라고 묻고 질문지를 수거해 분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점입니다. 자료수집을 얼마나 심각하게 하든 수집기간과 노력이 얼마이든 잘못된 자료수집을 통해 도출된 결론은 그 외양과 방식이 과학적으로 보여도 결국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수많은 경영관련 논문들이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시각이 참신하고 생각할꺼리를 던져주는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경영학을 떠나 학문의 방법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다면 상당히 유용한 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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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는 현재의 세계를 구성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기입니다. 한국에서도 중동에서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권보드래 교수의 ‘3월1일의 밤 (2019)’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났던 3.1만세운동이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와 1919년 열렸던 파리평화회의 (the Paris Peace Conference )’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일어났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중동지역의 국경선과 이로 인해 촉발되는 아랍세력들과 서방세력간의 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의 분쟁 역시 파리평화회의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에서 그 원인을 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중동지역이 성립하게 된 것은 발칸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 그리고 아나톨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대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제국이 제1차세계대전에서 독일과 함께 패전한 결과입니다.

독일의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승전국 보상문제 (reparation)는 독일이 전후 최악의 통화증발을 초래한 하이퍼인플레이션과 폐퇴적인 도시문화를 남긴 체 이후 제2차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고 떠라서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에 읽었던 ‘Lords of Finance (2009)’에서는 1920년대부터 불어닥친 독일의 피폐한 경제상황과 이를 극복해보려는 독일중앙은행의 정책을 다룹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제1차세계대전의 영향을 다룬 이 책은 독일의 전후배상금 문제와 이후 나타난 1929년 대공황과 이후의 금본위제도( Gold Standard)의 붕괴를 다루며 역시 지금 현재의 경제체제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이전에도 중동지역의 분쟁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모두 이스라엘이 성립된 이후의 역사이기 때문애 왜 이런 오랜 분쟁이 종교의 성지로 알려진 중동지역에서 일어나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중동지역의 분쟁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제시합니다.
전쟁 초기 전쟁참가를 꺼렸던 오스만제국은 동맹국 독일이 참전을 독촉해 이 참혹한 전쟁에 발을 들입니다.
전쟁 이전 이미 쇠퇴한 국력으로 오스만 제국은 발칸지역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었고 영국은 상당기간 이집트를 사실상 식민지배하에 두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영국은 처음 오스만 제국을 우습게 보고 쉽게 전쟁을 끝내려 했지만 갈리폴리 (Gallipoli)전투에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은체 패배해 전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스만 군대는 북쪽의 러시아를 힘겹게 막았지만 패배를 지속하고 있었고 오스만 제국내의 크리스천인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내통한 것으로 알고 이들을 대량학살(Armenian genocide)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발상지인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같이 살아온 민족들이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외세와의 전쟁으로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달아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된 것입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내의 아랍인들과 동맹을 맺고 오스만 제국을 내부적으로 붕괴시킬 계략을 세웁니다. 그래서 아랍인들의 반란 (the Arab revolt)을 통해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전기를 마련합니다. 영국은 아랍인들애개 그들만의 새로운 국가수립을 약속하고 이들을 동맹군으로 삼고 군사적으로 이용합니다.

당시 아랍 반란군은 시리아와 레바논을 포함한 시나이 반도와 팔레스타인 지역과 메카와 메디나 지역 등에 아랍왕국 (the Kingdom of Arab)을 세우기로 했지만 전쟁 전부터 시리아 지역은 프랑스가 자국의 이익을 주장하고 있었고 영국 정부는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전부터 국제금융계를 지배해온 유태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땅에 유태인들의 국가,즉 후일의 이스라엘을 세울 것을 선포합니다.

아랍인들이 영국과 협력해 세우려던 독립 아랍왕국은 결국 영국의 배반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걸려 좌절되고 맙니다.

이렇게 제1차세계대전 승전국들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 대한 분할계획을 전쟁에 참가한 순간부터 가지고 있었고 지속적인 외교적인 협상이 있었으며 이들은 결국 오스만 제국을 뜻대로 분할하게 됩니다.

가혹한 국토분할과 전쟁배상금 부과에 대해 오스만의 유명한 군인인 무스타파 캐말파샤는 승전국의 배상조건에 항의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1914년 전쟁 이전의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무력투쟁으로 이를 쟁취했습니다. 그리고 케말 파샤는 터키공화국을 설립해 결국 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게 됩니다.

영국인들은 식민지인 인도와의 교역선을 지키기 위해 이집트를 35년간 식민통치했으며 바스라지역의 유전을 이미 전쟁 이전 확보하고 있어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은 유럽전선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100여년 전에도 유럽열강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무력행사를 서슴지 않았고 이로인해 촉발된 전쟁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엇나간 참혹한 전쟁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참호전으로 기록된 제1차세계대전은 머신건을 비롯한 첨단 현대식 무기가 처음 소개되어 수많은 군인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시감( deja vu)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건 2020년 현재도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치를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고 지난 2010년대 내내 중동지역은 내전으로 쑥대밭이 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상황 자체가 100여년이란 시차가 있음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데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 등 국가들은 그들 나라가 아직 제국(Empire)이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그대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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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여쪽에 이르는 연구서입니다. 독일역사 전문가이신 부산교대 전진성 교수께서 2015년 저술하신 책입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고전적 건축미학을 계승했던 프로이센의 건축언어가 일본 제국의 도쿄와 그 일제의 식민지였던 서울 ( 경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합니다.

크게 3부분으로 나뉜 책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전주의적 건축언어를 받아들인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 - 베를린에 유학했던 필자의 개인경험과 함께 유럽의 후발주자였던 프로이센의 베를린이 중부유럽의 아테네를 내세우며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받아들였는지 고찰합니다.

2. 메이지 유신이후 프로이센의 법률체계를 받아들였던 일본의 초기 정치가들이 건축적으로 도쿄를 어떻게 발명하려고 했는지가 서술됩니다. 초기 독일의 영향을 받았던 일본의 건축언어는 이후 영국의 빅토리아풍이나 앤 여왕 스타일과 혼종이 되어 나타납니다.
여기에 독일의 식민지였던 중국 칭타오의 고전주의 건축의 영향도 같이 논의됩니다.

3.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수도 한양이 어떻게 경성으로 변화하며 프로이센 고전주의 건축의 영향을 받은 서양식 건물들이 어떻게 들어서게 되었는지 고찰합니다. 이미 헐려없어진 옛 조선총독부 건물과 경복궁의 수난의 역사, 그리고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던 혼마치(本町, 현재 명동부근)와 현 한국은행인 조선제일은행과 미쓰코시( 三越, 현 신세계)백화점 경성지점을 중심으로 한 상업지구 건축도 같이 고찰합니다.
프로이센의 영향을 받은 고전주의 및 역사주의적 건축물은 이후 1920년대 이후 일본의 문화통치 시기를 거치며 모더니즘과 식민성이 혼종되며 분열적 양상을 보입니다.

이책의 말미에 만주국과 깊은 연관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박정희 정권이 ‘개발독재’의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어떻게 여의도를 개발하고 국회의사당을 지었는지 정체불명의 거대하고 위협적인 세종문화회관이 박정희 정권의 소위 ‘문화민족주의’를 어떻게 체현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해방이후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중앙청으로 변모하고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전용되다가 극우친일세력과의 야합으로 생겨난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이 거대한 건축물을 없애버리는 스펙터클을 이야기합니다.
시대의 폭력성과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조선총독부 건물의 이야기처럼 명징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릴적 부모님과 놀러갔었던 ‘창경원’이 일제가 몰락한 조선의 궁궐을 ‘근대’의 이름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 새삼 상기됩니다. 1996년 문민정부가 시행한 조선총독부 건물해체는 당시 많은 논란에도 대통령이 거의 독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민주화투사였음에도 김종필로 대표되는 유신본류세력과 야합해서 정권을 얻었기에 무언가 정치적 명분이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책은 저자가 여러 학술잡지에 기고한 논문 5-6편 정도가 합쳐져 출판된 책으로 전체적으로 1800년대 유럽에서 1990년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그 공간적 시간적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이 책을 집어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메이지 일본이 전제주의적 군국주의 국가인 프로이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국체 개념을 형성했는지를 알기 위함이었고 이책의 2부는 메이지 헌법의 제정경위와 새로운 수도 도쿄가 프로이센및 독일 건축가들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소상하게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메이지 정부의 기틀을 잡았던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가 얼마나 프로이센과 비스마르크 수상을 동경했는지 이전에 읽었던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 (2015)’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또한 베를린에서 유학한 수많은 일본 건축가들이 이책에 언급됩니다. 이들은 일본 뿐만 아니라 식민지인 조선, 타이완, 만주국에서 그들이 이식하려 했던 근대의 표상으로서의 서양식 건축물을 설계했습니다. 당혹스럽게도 이 책에 언급한 거의 모든 건축가들은 도쿄 제국대학 건축학과 출신들로 다른 배경의 인사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국대학의 영향력을 다른면에서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대 일본 총리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대학령을 반포하여 메이지 일본의 엘리트 관료들을 양성했고 그 영향력은 일본은 물론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 타이완과 만주국에도 미쳤으며 분야를 막론했습니다. 이 책은 주로 도쿄제대 건축학과 출신들이 일본과 식민지에 어떤 건축유산을 남겼는지, 메이지 일본의 천황중심 통치체제를 어떻게 건축적으로 표현하고 근대의 이름으로 실행된 식민주의를 어떻게 건축과 도시계획으로 밀어붙였는지가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제국대학에 다니며 이중적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인 엘리트를 다룬 ‘제국대학의 조센징(2019)’은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교육을 통해 장기적 지속적으로 어떻게 영향력을 유지해 왔고 현재 한일관계가 왜 이렇게 답보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지, 일본이 천황제 전제국가로서 얼마나 표면적인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시행하고 있는지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대를 제외한 일본의 제국대학 출신 조선인에 대한 연구 전무하다는 충격적 사실도 같이 알려줍니다. 뿌리를 밝히기 꺼려하는 선학들 때문에 이런 중요한 연구가 지체되지 않았나 추정합니다. 아직도 한국은 일본을 극복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자괴감이 듭니다.

유럽의 20세기가 제1차세대전의 결과로 시작되었다면 한국의 20세기는 조선의 패망과 메이지일본의 국권침탈로 시작되었고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와 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이식한 식민주의 유산을 근대로 이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인지 고찰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행동과 태도를 거리낌없이 부끄러움없이 보여주는 소위 ‘보수’인사들과 이에 동조하는 이들을 보면서 한국은 아직도 근대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근본없는 행태의 뿌리는 무자비하게 이식된 서양숭배와 자신들의 체계를 아직까지 갖추지 못한 지성의 부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베를린에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서울 한복판에서 독일 (프로이센)식 고전주의 건축물을 만나는 경험은 분명 섬뜩합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환등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근대라는 미명하에 일본은 독일을 배끼려 했고 이들은 일본을 넘어 한국땅에도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한국은 이런 일방적 이식을 폭력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제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런 건축물들이 그 자리에 있게된 연유를 캐다보면 그 경험역시 섬뜩합니다.

책을 읽으며 제국주의는 역사책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마주치는 현실이라는 점을 직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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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 -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로마사 이야기
박홍규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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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박홍규 교수님이 해설해주신 15세기 피렌체 사람 마키아벨리 (Machiavelli) 정치사상 입문서 입니다.

흔히 ‘로마사 논고’로 알려진 ‘ 리비우스 강연( The Discourses on Livy)’에 대한 해설과 더불어 서로 연결되어진 대표저작 ‘군주론 (The Prince)’을 같이 설명하면서 마키아벨리가 추구했던 정치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기쉽게 설명했습니다.

저자의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마키아벨리는 한국에서 일본의 영향을 받은 선대 학자들에 위해 잘못이해된 대표적인 사상가입니다. 즉, 마키아벨리는 현실정치의 교활한 속성을 정당화하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공화정을 모델로 인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민주공화정’을 주장한 마키아벨리는 당시 피렌체를 통치한 메디치가의 독재적 통치가 피렌체의 인민들에게 결코 도움이 된 통치체제가 아니었다는 비판적 견지에서 이 ‘리비우스 강연 ‘을 저술했습니다. 이책은 로마의 제정( 帝政 )이 실시되기 이전의 역사인 리비우스의 ‘Early History of Rome’ 제 1권부터 10권까지만을 대상으로 마키아벨리가 15세기 당시 피렌체의 정치상황에 대한 정치비평을 한 책입니다.

학계에서는 군주론과 리비우스 강연 모두 비슷한 시기에 저술된 책으로 (16세기 초) 어떤 책이 먼저 저술되었는지에 대한 확인된 사실은 없다고 합니다.

박교수께서 이 책을 저술한 시점이 2017년 1월로 한국은 당시 촛불집회를 통해 대한민국 헌법 1조1항 ( 국민주권조항)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정농단과 기득권 세력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 12월 현재 적폐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개혁의 입법을 통한 제도화는 모두 실패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큰소리를 치는 황당한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원래 경제에 관심을 가지왔던 제가 정치관련서를 읽기 시작한 것도 ‘정치없는 경제’가 얼마나 공허한 말장난인가를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정치이고 정치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으면 승자독식사회에서 매장되기 일수인 현 상황에서 현재 서구의 민주주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는 것은 따라서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

아울러 지도자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제대로 다시 소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 입문서에 딱 맞게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별하면,
1. 마키아벨리는 어떤 사람인가? 그가 쓴 책과 르네상스 피렌체는 어떠했는가?
2. 리비우스는 어떤 사람인가? 리비우스 강연은 어떤 책인가? 로마공화정의 성격은 어떠한가?
3. 리비우스 강연의 내용은 무엇인가?
4. 리비우스의 강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따라서 이책을 읽고 번역본이든 영역본이든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기초 배경지식을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고전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의 삶에 무슨 의미를 가지는 지 생각해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 ‘상식’에 기반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 ‘상식’에 맞는 발언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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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패전론 - 전후 일본의 핵심
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이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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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에 출간되고 2017년 번역되어 한국에 나온  이 책은 최근 전후(戰後)  최장수 총리로 재임기록을 세운 아베신조 (安倍晋三)총리의 현 자민당 극우 정권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인 정치체제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비판하는 책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이후 이토 히로부미가 만들어놓은 천황제 입헌 정체가 사실상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미군의 일본 점령이후 천황의 절대적 권위와 군 통수권을 모두 몰수하고 상징천황제로 형식이 바뀌었지만 일본인들은 아직도 메이지 정부가 만들어 놓은 관료체제와 그 정신세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입헌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정치인들이 대를 이어 정치를 하고 있는 나라이고 더구나 근대이후 단 한번의 혁명도 없었던 정체된 나라이기도 하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쇼와의 요괴 (昭和の妖怪 )'로 불리웠던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이자 일본 보수 방계 (保守傍系)를 대표하는 기시 노부스케 (岸信介) 전 일본 총리가 아베 현 일본 총리의 외조부가 됩니다.

한마디로 이 보수 방계계열 일본 보수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천황제 중심의 일본으로의 회귀를 원하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주장하는 골수 정치인들입니다.

전후 일본은 전후 미국의 점령과 일본의 비무장화와 미군의 일본주둔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보수 본류 (保守本流)는 일본의 패전 직후 총리가 된 요시다 시게루 (吉田茂)가 대표적입니다.
일본은 패전이후 미국의 방위력 우산 아래 경제발전에 집중해 성공한 경제를 이루었지만 1990년대 일본경제의 거품 (Bubble)이 꺼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경기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이 보수본류의 정치인들의 입김이 점점 약해지고 결국 보수 방계인 아베신조 총리가 장기집권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최근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싸고 내정간섭에 상당하는 과격한 발언을 하며 한국에 무례한 공격을 했으며, 자신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전혀 사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을오 2019년 7월에는 한국에 대해 전략물자 수출규제를 자의적으로 시작했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자유무역 수호에 대한 자신들의 약속을 스스로 저버렸습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해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더이상 군사정보 교류를 할 수 없다며 2015년 체결되었던 한일간의 지소미아 (GISOMIA) 를 더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에 중국의 봉쇄를 위해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 일본과 한국을 포함하는 안보벨트를 구상하는 미국과 미국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일본이 한국을 외교적, 군사적으로 압박해 왔습니다.

지난 11월 22일 한국은 지소미아에 대한 연장불가 방침을 조건부 연장으로 바꾸었지만 아직도 지소미아협정이 연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아직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대해 입장을 전혀 바꾸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일본의 아베정부가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괘변을 늘어놓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책에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1.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 (敗戰)'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패전보다 '종전 (終戰)'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2. 이렇게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전쟁기간 저지를 수많은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일본이 공식적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이들이 패전을 인정하지 않기 떄문입니다.

3. 그리고 이런 일본의 패전 부인은 결국 일본을 '영속패전(永続敗戦)'의 체제로 이끌어와서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4. 일본은 패전을 부인하는 대신 모든 혁신적인 정치적인 개혁방안을 부인하고 미국에 종속되는 길을 택했으며,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경제번영을 가지고 왔지만 최근의 경제불황 (헤이세이 불황, 잃어버린 20년)을 통해 전후 미국의 방위력 우산아래 경제우선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5. 상징천황제로 상징되는 현재 일본의 평화헌법 체제는 미국의 군정당국이 일본에 적용하도록 요구하여 수용된 것으로 능동적으로 만들어진 정치체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본은 미국에 대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굴종적이면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 대해서는 고압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굳이 그 연원을 따진다면 메이지 초기 탈아입구(脱亜入欧)를 주장한 후쿠자야 유키치 (福澤諭吉)까지 올라갑니마만, 일본은 1860년대 이후 아시아에 위치하면서도 탈아시아를 지향하며 유럽을 추종하는 분열적 국가성격을 보여왔는데, 이런 전통적 경향이 현재에도 발현하는 것이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무시하는데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6. 현재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일본의 '패전'자체를 인정하지 않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일본인들에게 주입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른 반론이 나오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7. 또한 국체 (国体)라는 표현에 대해 주목하고 싶습니다. 국체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국가체제의 성격이나 원칙을 표현하는 용어이지만 메이지 일본에서 이 국체는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체계'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즉 전후 (戰後)의 새로운 국체란 일본적 입장에서 제2차세계대전이후 천황제 중심의 일본의 국가체제를 표현하는 용어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만든 이는 메이지 일본의 설계자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 )의 발명품으로서 일본의 정치인들은 맹목적으로 이를 지키려 애써왔다는 점입니다.

즉 세계대전이후 일본의 천황제 중심 정치체계가 바로 '영속패전'이라는 말은 일본이 '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이태리와 함께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에 패배했고, 1945년 미국의 나가사키, 히로시마 원폭투하 이후 연합국에 대해 무조건 항복했다' 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한다는 말로, 일본이 아직도 일본의 정치가들이 패전을 부인하고 은폐하면서 미국으로의 종속을 심화시키고 아울러 일본의 전후체제를 끝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8. 끝으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일본은 아직도 한국을 식민지 보듯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일본이 박근혜 정부에게 강제징용판결을 늦추어 줄것을 요구해서 결국 사법농단에 이르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그리고 이렇게 늦추어진 대법원 판결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로서 대응하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알게 됩니다.
아직도 일본어에 편한 한국의 고위관료와 원로들이 존재하고 일본은 이들을 통해 한국을 조종할 수 있는 나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한 불완전한 국교정상화의 원죄가 있습니다.

미국은 또한 일본과의 전후관계를 맺기 위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맺으면서 일본과만 조약을 맺었고, 한국과 중국, 소련은 당사자로 참여시키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일부였다는 이유로 조약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역시 미국의 권유에 의해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 체결한 것이 정설이며, 당연히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관계를 기반으로 체결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두 조약이 제2차 세계대전이후 한국의 모든 대외관계를 결정하게 된 것이고, 한국이 대외무대에서 여태껏 독립적 변수로 취급되지 못한 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미국은 제국이고, 미국이 냉전이래 지속해온 봉쇄정책(containment)는 지금도 지속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로 표방되는 유라시아의 대륙세력이 자신의 이익선인 태평양을 넘보는 것으로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충실한 부하 일본을 필두로 한국와 환태평양의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인도까지 포괄하여 중국을 더욱 더 압박하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부인해도 이건 미국이 대외적으로 제국 (Empire)의 성격을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전후 미국이 봉쇄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기득권 세력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현상유지 정책을 취했고, 이는 이책에 보여주듯 일본의 경우 전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영속패전 체제를 지속하게 되는 한 원인이 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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