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는 현재의 세계를 구성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기입니다. 한국에서도 중동에서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권보드래 교수의 ‘3월1일의 밤 (2019)’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났던 3.1만세운동이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와 1919년 열렸던 파리평화회의 (the Paris Peace Conference )’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일어났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중동지역의 국경선과 이로 인해 촉발되는 아랍세력들과 서방세력간의 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의 분쟁 역시 파리평화회의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에서 그 원인을 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중동지역이 성립하게 된 것은 발칸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 그리고 아나톨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대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제국이 제1차세계대전에서 독일과 함께 패전한 결과입니다.
독일의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승전국 보상문제 (reparation)는 독일이 전후 최악의 통화증발을 초래한 하이퍼인플레이션과 폐퇴적인 도시문화를 남긴 체 이후 제2차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고 떠라서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에 읽었던 ‘Lords of Finance (2009)’에서는 1920년대부터 불어닥친 독일의 피폐한 경제상황과 이를 극복해보려는 독일중앙은행의 정책을 다룹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제1차세계대전의 영향을 다룬 이 책은 독일의 전후배상금 문제와 이후 나타난 1929년 대공황과 이후의 금본위제도( Gold Standard)의 붕괴를 다루며 역시 지금 현재의 경제체제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이전에도 중동지역의 분쟁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모두 이스라엘이 성립된 이후의 역사이기 때문애 왜 이런 오랜 분쟁이 종교의 성지로 알려진 중동지역에서 일어나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중동지역의 분쟁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제시합니다.
전쟁 초기 전쟁참가를 꺼렸던 오스만제국은 동맹국 독일이 참전을 독촉해 이 참혹한 전쟁에 발을 들입니다.
전쟁 이전 이미 쇠퇴한 국력으로 오스만 제국은 발칸지역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었고 영국은 상당기간 이집트를 사실상 식민지배하에 두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영국은 처음 오스만 제국을 우습게 보고 쉽게 전쟁을 끝내려 했지만 갈리폴리 (Gallipoli)전투에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은체 패배해 전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스만 군대는 북쪽의 러시아를 힘겹게 막았지만 패배를 지속하고 있었고 오스만 제국내의 크리스천인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내통한 것으로 알고 이들을 대량학살(Armenian genocide)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발상지인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같이 살아온 민족들이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외세와의 전쟁으로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달아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된 것입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내의 아랍인들과 동맹을 맺고 오스만 제국을 내부적으로 붕괴시킬 계략을 세웁니다. 그래서 아랍인들의 반란 (the Arab revolt)을 통해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전기를 마련합니다. 영국은 아랍인들애개 그들만의 새로운 국가수립을 약속하고 이들을 동맹군으로 삼고 군사적으로 이용합니다.
당시 아랍 반란군은 시리아와 레바논을 포함한 시나이 반도와 팔레스타인 지역과 메카와 메디나 지역 등에 아랍왕국 (the Kingdom of Arab)을 세우기로 했지만 전쟁 전부터 시리아 지역은 프랑스가 자국의 이익을 주장하고 있었고 영국 정부는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전부터 국제금융계를 지배해온 유태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땅에 유태인들의 국가,즉 후일의 이스라엘을 세울 것을 선포합니다.
아랍인들이 영국과 협력해 세우려던 독립 아랍왕국은 결국 영국의 배반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걸려 좌절되고 맙니다.
이렇게 제1차세계대전 승전국들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 대한 분할계획을 전쟁에 참가한 순간부터 가지고 있었고 지속적인 외교적인 협상이 있었으며 이들은 결국 오스만 제국을 뜻대로 분할하게 됩니다.
가혹한 국토분할과 전쟁배상금 부과에 대해 오스만의 유명한 군인인 무스타파 캐말파샤는 승전국의 배상조건에 항의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1914년 전쟁 이전의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무력투쟁으로 이를 쟁취했습니다. 그리고 케말 파샤는 터키공화국을 설립해 결국 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게 됩니다.
영국인들은 식민지인 인도와의 교역선을 지키기 위해 이집트를 35년간 식민통치했으며 바스라지역의 유전을 이미 전쟁 이전 확보하고 있어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은 유럽전선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100여년 전에도 유럽열강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무력행사를 서슴지 않았고 이로인해 촉발된 전쟁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엇나간 참혹한 전쟁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참호전으로 기록된 제1차세계대전은 머신건을 비롯한 첨단 현대식 무기가 처음 소개되어 수많은 군인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시감( deja vu)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건 2020년 현재도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치를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고 지난 2010년대 내내 중동지역은 내전으로 쑥대밭이 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상황 자체가 100여년이란 시차가 있음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데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 등 국가들은 그들 나라가 아직 제국(Empire)이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그대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