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여쪽에 이르는 연구서입니다. 독일역사 전문가이신 부산교대 전진성 교수께서 2015년 저술하신 책입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고전적 건축미학을 계승했던 프로이센의 건축언어가 일본 제국의 도쿄와 그 일제의 식민지였던 서울 ( 경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합니다.
크게 3부분으로 나뉜 책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전주의적 건축언어를 받아들인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 - 베를린에 유학했던 필자의 개인경험과 함께 유럽의 후발주자였던 프로이센의 베를린이 중부유럽의 아테네를 내세우며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받아들였는지 고찰합니다.
2. 메이지 유신이후 프로이센의 법률체계를 받아들였던 일본의 초기 정치가들이 건축적으로 도쿄를 어떻게 발명하려고 했는지가 서술됩니다. 초기 독일의 영향을 받았던 일본의 건축언어는 이후 영국의 빅토리아풍이나 앤 여왕 스타일과 혼종이 되어 나타납니다.
여기에 독일의 식민지였던 중국 칭타오의 고전주의 건축의 영향도 같이 논의됩니다.
3.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수도 한양이 어떻게 경성으로 변화하며 프로이센 고전주의 건축의 영향을 받은 서양식 건물들이 어떻게 들어서게 되었는지 고찰합니다. 이미 헐려없어진 옛 조선총독부 건물과 경복궁의 수난의 역사, 그리고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던 혼마치(本町, 현재 명동부근)와 현 한국은행인 조선제일은행과 미쓰코시( 三越, 현 신세계)백화점 경성지점을 중심으로 한 상업지구 건축도 같이 고찰합니다.
프로이센의 영향을 받은 고전주의 및 역사주의적 건축물은 이후 1920년대 이후 일본의 문화통치 시기를 거치며 모더니즘과 식민성이 혼종되며 분열적 양상을 보입니다.
이책의 말미에 만주국과 깊은 연관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박정희 정권이 ‘개발독재’의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어떻게 여의도를 개발하고 국회의사당을 지었는지 정체불명의 거대하고 위협적인 세종문화회관이 박정희 정권의 소위 ‘문화민족주의’를 어떻게 체현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해방이후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중앙청으로 변모하고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전용되다가 극우친일세력과의 야합으로 생겨난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이 거대한 건축물을 없애버리는 스펙터클을 이야기합니다.
시대의 폭력성과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조선총독부 건물의 이야기처럼 명징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릴적 부모님과 놀러갔었던 ‘창경원’이 일제가 몰락한 조선의 궁궐을 ‘근대’의 이름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 새삼 상기됩니다. 1996년 문민정부가 시행한 조선총독부 건물해체는 당시 많은 논란에도 대통령이 거의 독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민주화투사였음에도 김종필로 대표되는 유신본류세력과 야합해서 정권을 얻었기에 무언가 정치적 명분이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책은 저자가 여러 학술잡지에 기고한 논문 5-6편 정도가 합쳐져 출판된 책으로 전체적으로 1800년대 유럽에서 1990년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그 공간적 시간적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이 책을 집어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메이지 일본이 전제주의적 군국주의 국가인 프로이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국체 개념을 형성했는지를 알기 위함이었고 이책의 2부는 메이지 헌법의 제정경위와 새로운 수도 도쿄가 프로이센및 독일 건축가들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소상하게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메이지 정부의 기틀을 잡았던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가 얼마나 프로이센과 비스마르크 수상을 동경했는지 이전에 읽었던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 (2015)’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또한 베를린에서 유학한 수많은 일본 건축가들이 이책에 언급됩니다. 이들은 일본 뿐만 아니라 식민지인 조선, 타이완, 만주국에서 그들이 이식하려 했던 근대의 표상으로서의 서양식 건축물을 설계했습니다. 당혹스럽게도 이 책에 언급한 거의 모든 건축가들은 도쿄 제국대학 건축학과 출신들로 다른 배경의 인사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국대학의 영향력을 다른면에서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대 일본 총리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대학령을 반포하여 메이지 일본의 엘리트 관료들을 양성했고 그 영향력은 일본은 물론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 타이완과 만주국에도 미쳤으며 분야를 막론했습니다. 이 책은 주로 도쿄제대 건축학과 출신들이 일본과 식민지에 어떤 건축유산을 남겼는지, 메이지 일본의 천황중심 통치체제를 어떻게 건축적으로 표현하고 근대의 이름으로 실행된 식민주의를 어떻게 건축과 도시계획으로 밀어붙였는지가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제국대학에 다니며 이중적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인 엘리트를 다룬 ‘제국대학의 조센징(2019)’은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교육을 통해 장기적 지속적으로 어떻게 영향력을 유지해 왔고 현재 한일관계가 왜 이렇게 답보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지, 일본이 천황제 전제국가로서 얼마나 표면적인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시행하고 있는지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대를 제외한 일본의 제국대학 출신 조선인에 대한 연구 전무하다는 충격적 사실도 같이 알려줍니다. 뿌리를 밝히기 꺼려하는 선학들 때문에 이런 중요한 연구가 지체되지 않았나 추정합니다. 아직도 한국은 일본을 극복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자괴감이 듭니다.
유럽의 20세기가 제1차세대전의 결과로 시작되었다면 한국의 20세기는 조선의 패망과 메이지일본의 국권침탈로 시작되었고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와 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이식한 식민주의 유산을 근대로 이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인지 고찰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행동과 태도를 거리낌없이 부끄러움없이 보여주는 소위 ‘보수’인사들과 이에 동조하는 이들을 보면서 한국은 아직도 근대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근본없는 행태의 뿌리는 무자비하게 이식된 서양숭배와 자신들의 체계를 아직까지 갖추지 못한 지성의 부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베를린에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서울 한복판에서 독일 (프로이센)식 고전주의 건축물을 만나는 경험은 분명 섬뜩합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환등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근대라는 미명하에 일본은 독일을 배끼려 했고 이들은 일본을 넘어 한국땅에도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한국은 이런 일방적 이식을 폭력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제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런 건축물들이 그 자리에 있게된 연유를 캐다보면 그 경험역시 섬뜩합니다.
책을 읽으며 제국주의는 역사책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마주치는 현실이라는 점을 직시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