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의 오랜 독자로서 읽어본 이 책은 2006년 출판된 오래된 책이지만 서울 강남지역을 본격적으로 고찰한 책으로 의의가 있습니다.
‘강남개발사 (江南開發史)’를 이야기할 때 이 책은 도시계획, 도시경제학, 도시사회학, 지리학 등 관련학자들이 글을 쓸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필독도서이기도 합니다.
강준만 교수께서 지난 30여년간 언론학자로서는 독특하게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사회비평과 정치비평을 해오시고 한국 근현대사관련 저술도 해오셔서 이런 저서도 출간하지 않으셨나 추정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강준만 교수의 초기 저서 중 기억에 남는 정치비평서 ‘ 김대중 죽이기 (개마고원,1995)’입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전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주장한 책으로 당시로서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강남 개발의 역사를 거의 처음 단독으로 다루어서 이후 나온 연구서들의 촉매제가 된 책으로 제가 이전에 다루었던 ‘ 강남의 탄생(미지북스,2016)’도 저자들이 직접 이책의 ‘도시계획적 관점’을 보완하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고, 논문집인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가기( 동녘, 2017)’도 수록된 논문이 거의 모두 이 책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강남 개발 당시에 언론에서 바라본 강남 개발의 모습이 수많은 신문, 잡지 기사들을 인용해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피상적이고 단편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신문기사는 현대사 연구의 일차적 사료라는 점에서 출처가 인용되지 않은 다른 저서보다 일단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제7장 2004-2006년 강남 죽이기 논쟁’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소위 보수 언론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이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 상당히 자세한 기사인용을 가지고 다루어져 있습니다.
이들 언론들은 당시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 강남을 목표로 한 것에 대해 ‘강남북 편가르기’ 니 ‘강남 죽이기’라며 과도하고 악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논란을 자초한 데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권 인사들의 거친 발언도 한몫 한 것이 분명하지만 보수 일간지 사설과 기사에서도 악의적 팩트 왜곡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통계왜곡 논쟁’으로 당시 정부가 국내 상위 1% 국민이 전체 국토의 60%이상을 소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일간지들이 이 통계가 과장 왜곡되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 당시 대기업들이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집해 사회문제가 된 전력이 있는데다 땅부자들이 차명이나 미성년자들에게 본인의 부동산을 등기하는 관행으로 미루엎보아 통계가 현실을 왜곡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1990년대 말 IMF 구제 금융 시기를 거치며 한국은 더이상 계층 상승 이동이 불가능한 일종의 ‘계급사회’로 굳어진 마당에 1%의 땅부자들이 국토 6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정부 통계발표가 어떻게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숨기고 싶은 사실을 드러나자 호들갑 떨며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소위 보수 언론들이 노무현 정권이 강남을 적대적으로 대하고 ‘편가르기’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별짓기’와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강남 주민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참여정부가 편가르기를 주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황당한 주장입니다.
2020년 현재도 상황이 별로 바뀌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책이 집필될 2005-2006년 당시에 이미 건설교통부 고위관료의 44%가 강남에 거주하고 있고 강남의 아파트 평균가격이 이미 강북지역의 2배가 넘는 상황인데도 역시 강남 거주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보수 일간지 논설의원은 노무현 정부가 강남과 강북,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나누어 국민을 분열시킨다고 주장하는데, 제가 보기에 이들의 주장은 ‘불안하니 있는 사실을 덮자’라는 것으로 들립니다.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하기’ 전략이라고 할까요?
보수언론인들의 저의를 의심하는 이유는 이들이 ‘부동산 투기’에 연루된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부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분양 당시부터 ‘특혜분양’스캔들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현대건설 사원용으로 건설된 일부 물량에 대해 정부 고위관료, 국회의원,군인, 공공기관 임원 그리고 상당수의 언론인들이 특혜분양을 받았고 이들의 명단을 언론에 공표합니다. 이 때가 1978년 6월 30일입니다. 총 600여명의 연루 ‘사회지도층 인사’ 중 언론인이 34명입니다(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p69-71)
유신 말기니까 너무 옛날 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2020년 현재 MBN같은 종편은 부동산 임대업을 하기 위한 법인 분할로 시끄럽고 다른 언론사들도 부동산 이권과 무관하지 않은 마당에 이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이전에 읽은 강남 관련 논문에서 강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강남이라는 지역과 사회를 굉장히 좁게 인식하고 ( 예를 들어 강남구만 강남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강남 내에서도 테헤란로 북쪽 비역과 남쪽지역을 나누어 구별하고, 강남사회를 자신과 일상을 공유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규정하여, 그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 ‘강남’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강남의 심상규모와 경계짓기의 논리, 이향아 & 이동헌).
이 논문에 따르면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히 ‘구별짓기’ 성향이 강하고 따라서 굳이 편가르기를 누가 주도하는가를 말한다면 강남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정권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압축성장과 압축도시화는 강남이라는 계획도시를 단 30여년 만에 만들어 놓았고, 투기적 도시성을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아파트 대단지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군사주의적 효율성을 모토로 이촌향도로 늘어나는 서울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파트라는 표준적인 공동거주공간을 만들고, 인구 분산수용이라는 안보적 이유와 자신들을 지지하는 계층을 의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아파트의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왜곡해 분양가를 낮춰 시가의 차액의 보전을 허용합니다. 이 차액으로 인해 강남불패의 부동산 폭등이 시작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지 40년이 넘은 지금도 이 매카니즘은 기본적으로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산업화의 시대가 끝났지만 부동산 시장은 아직도 산업화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죠.
분명히 주거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부동산 시장도 바뀌어야 할텐데 변화보다 충격이 먼저 오지 않을까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아직도 일제 시대를 살았던 원로들이 생존해 있고 이들이 일본식 제도를 이식해 넣은 상황에서 주택 시장이 일본의 버블 붕괴처럼 작동하지 않으리란 장담을 누구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