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의 오랜 독자로서 읽어본 이 책은 2006년 출판된 오래된 책이지만 서울 강남지역을 본격적으로 고찰한 책으로 의의가 있습니다.

‘강남개발사 (江南開發史)’를 이야기할 때 이 책은 도시계획, 도시경제학, 도시사회학, 지리학 등 관련학자들이 글을 쓸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필독도서이기도 합니다.

강준만 교수께서 지난 30여년간 언론학자로서는 독특하게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사회비평과 정치비평을 해오시고 한국 근현대사관련 저술도 해오셔서 이런 저서도 출간하지 않으셨나 추정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강준만 교수의 초기 저서 중 기억에 남는 정치비평서 ‘ 김대중 죽이기 (개마고원,1995)’입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전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주장한 책으로 당시로서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강남 개발의 역사를 거의 처음 단독으로 다루어서 이후 나온 연구서들의 촉매제가 된 책으로 제가 이전에 다루었던 ‘ 강남의 탄생(미지북스,2016)’도 저자들이 직접 이책의 ‘도시계획적 관점’을 보완하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고, 논문집인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가기( 동녘, 2017)’도 수록된 논문이 거의 모두 이 책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강남 개발 당시에 언론에서 바라본 강남 개발의 모습이 수많은 신문, 잡지 기사들을 인용해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피상적이고 단편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신문기사는 현대사 연구의 일차적 사료라는 점에서 출처가 인용되지 않은 다른 저서보다 일단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제7장 2004-2006년 강남 죽이기 논쟁’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소위 보수 언론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이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 상당히 자세한 기사인용을 가지고 다루어져 있습니다.

이들 언론들은 당시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 강남을 목표로 한 것에 대해 ‘강남북 편가르기’ 니 ‘강남 죽이기’라며 과도하고 악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논란을 자초한 데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권 인사들의 거친 발언도 한몫 한 것이 분명하지만 보수 일간지 사설과 기사에서도 악의적 팩트 왜곡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통계왜곡 논쟁’으로 당시 정부가 국내 상위 1% 국민이 전체 국토의 60%이상을 소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일간지들이 이 통계가 과장 왜곡되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 당시 대기업들이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집해 사회문제가 된 전력이 있는데다 땅부자들이 차명이나 미성년자들에게 본인의 부동산을 등기하는 관행으로 미루엎보아 통계가 현실을 왜곡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1990년대 말 IMF 구제 금융 시기를 거치며 한국은 더이상 계층 상승 이동이 불가능한 일종의 ‘계급사회’로 굳어진 마당에 1%의 땅부자들이 국토 6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정부 통계발표가 어떻게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숨기고 싶은 사실을 드러나자 호들갑 떨며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소위 보수 언론들이 노무현 정권이 강남을 적대적으로 대하고 ‘편가르기’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별짓기’와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강남 주민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참여정부가 편가르기를 주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황당한 주장입니다.

2020년 현재도 상황이 별로 바뀌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책이 집필될 2005-2006년 당시에 이미 건설교통부 고위관료의 44%가 강남에 거주하고 있고 강남의 아파트 평균가격이 이미 강북지역의 2배가 넘는 상황인데도 역시 강남 거주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보수 일간지 논설의원은 노무현 정부가 강남과 강북,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나누어 국민을 분열시킨다고 주장하는데, 제가 보기에 이들의 주장은 ‘불안하니 있는 사실을 덮자’라는 것으로 들립니다.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하기’ 전략이라고 할까요?

보수언론인들의 저의를 의심하는 이유는 이들이 ‘부동산 투기’에 연루된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부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분양 당시부터 ‘특혜분양’스캔들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현대건설 사원용으로 건설된 일부 물량에 대해 정부 고위관료, 국회의원,군인, 공공기관 임원 그리고 상당수의 언론인들이 특혜분양을 받았고 이들의 명단을 언론에 공표합니다. 이 때가 1978년 6월 30일입니다. 총 600여명의 연루 ‘사회지도층 인사’ 중 언론인이 34명입니다(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p69-71)

유신 말기니까 너무 옛날 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2020년 현재 MBN같은 종편은 부동산 임대업을 하기 위한 법인 분할로 시끄럽고 다른 언론사들도 부동산 이권과 무관하지 않은 마당에 이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이전에 읽은 강남 관련 논문에서 강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강남이라는 지역과 사회를 굉장히 좁게 인식하고 ( 예를 들어 강남구만 강남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강남 내에서도 테헤란로 북쪽 비역과 남쪽지역을 나누어 구별하고, 강남사회를 자신과 일상을 공유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규정하여, 그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 ‘강남’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강남의 심상규모와 경계짓기의 논리, 이향아 & 이동헌).

이 논문에 따르면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히 ‘구별짓기’ 성향이 강하고 따라서 굳이 편가르기를 누가 주도하는가를 말한다면 강남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정권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압축성장과 압축도시화는 강남이라는 계획도시를 단 30여년 만에 만들어 놓았고, 투기적 도시성을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아파트 대단지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군사주의적 효율성을 모토로 이촌향도로 늘어나는 서울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파트라는 표준적인 공동거주공간을 만들고, 인구 분산수용이라는 안보적 이유와 자신들을 지지하는 계층을 의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아파트의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왜곡해 분양가를 낮춰 시가의 차액의 보전을 허용합니다. 이 차액으로 인해 강남불패의 부동산 폭등이 시작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지 40년이 넘은 지금도 이 매카니즘은 기본적으로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산업화의 시대가 끝났지만 부동산 시장은 아직도 산업화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죠.

분명히 주거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부동산 시장도 바뀌어야 할텐데 변화보다 충격이 먼저 오지 않을까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아직도 일제 시대를 살았던 원로들이 생존해 있고 이들이 일본식 제도를 이식해 넣은 상황에서 주택 시장이 일본의 버블 붕괴처럼 작동하지 않으리란 장담을 누구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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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황정은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습니다.

출간된지 10년이나 된 소설을 이제야 읽었는데 내용을 떠나 문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독서가 대부분 논픽션이나 역사, 경제 관련이다 보니 소설을 상대적으로 덜 읽게 되는데 적당한 길이에 간결하지만 힘있는 문체를 경험하게 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각각의 소설들은 단문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대화를 이어가는데 군더더기가 없어 좋았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글은 97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오무사’ 입니다.
구도심의 사십여년 된 오래된 전자상가에서 전구를 팔고 있는 노인과 그 가게의 이미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전구를 판매하는 가게였으나 가게를 밝히는 전구라고는 벽에걸린 노랗고 푸른 알전구 다발뿐이었다.

빽빽하다.

라는 말을 사전에서 만든다면 아마 그런 광경일 것

이 틀림 없었다.

그야말로 빽빽하다.

라고 생각한 뒤엔 아무런 말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눈앞

이 빽빽했다

- p102


최근에 읽은 어떤 글보다 정확하고 명징한 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무대가 구도심에 자리한 오래된 전자상가이고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에 따라 그 장소의 역사적 두께와 지층이 같이 사라져버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처연하기도 하고 ‘개발’의 이름으로 역사와 삶을 밀어버리는 무식한 짓을 군사독재자가 죽은지 40여년이 지나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냉면집이 있는 을지로의 파헤쳐진 공사장이 생각났고, 소설에 묘사된 전자상가를 보며 종로의 낙원상가와 세운상가가 겹쳐보이기도 했습니다.

읽어보니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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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황두진 건축가가 제안하는 대안 건축 유형으로 매스컴에서 소개해 화제가 되었던 ‘무지개떡 건축 ‘ 유형에 대한 일종의 이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서라고 언급한 이유는 이 책이 ‘무지개떡 건축 ‘이라는 대안적 건축 유형에 대한 개념과 그 대안을 제시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무지개떡 건축’이란 주상복합 건축의 한 유형으로 저층, 중층, 상층부에 각각 다른 용도의 기능을 넣는 방식의 건축 방식을 말합니다. 복합이라는 개념은 주거와 짝을 이루는 다른 기능, 즉 상업 기능이나 공공시설 같은 가능이 한 건축물 안에 공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고 대부분 저층부에 위치한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상업 시설을 통해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현재 단일 용도로 구획지어진 현재 서울의 도시 형태는 결국 도시의 팽창 ( urban sprawl)을 유발해 도시 주변의 환경을 파괴하고 이런 수평적 팽창으로 에너지 비효율과 교통비용 증가, 그리고 출퇴근 시간의 증가로 삶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서울의 도시형태를 바꾸기 위해 본격적 주상복합건축물인 무지개떡 건축을 통해 도시의 밀도를 높이고 수평적 팽창이 아닌 수직적 팽창을 통해 적은 대지를 사용해 결국 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 편견일 수도 있고 사실( fact) 와 전혀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역사적 관점에서 서울이 어떻게 ‘수평적 팽창’- 강남으로 잠실로 그리고 목동과 상계동으로-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서울이 어떻게 세계에서 유래를 찿을 수 없이 빠르게 도시화되면서 ‘아파트 숲’이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준 것이라면, 이 책은 서울의 수평적 팽창을 막으면서 아파트의 대안으로 주상복합건축의 한 유형을 제안하는데 있습니다.

실제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그 제안 자체로서 출발점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책의 도입부에 한국에서 잘못 이해되고 있는 주상복합의 개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즉 한국에서는 건축회사의 돈벌이 수단으로 ‘주상복합’건축물이 지어지고 이름과 다르게 거주공간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책의 자매편인 ‘도시적인 삶(2017)’을 곧 읽을 예정이며, 고밀도의 도시가 더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을 담은 Edward Glaeser의 ‘Triumph of the City (2012)’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흔히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발전을 한국의 특징으로 자랑스러워 하는데 저는 시각을 조금 달리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거의 200년 가까이 걸린 도시화를 한세대, 즉 약 30여년에 걸쳐 이룬 것이 과연 자랑할만한 것인지 의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군사독재정권이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여 수용소처럼 주거지를 찍어낸 것이 서울의 도시화였고 이를 위해 농업을 버렸습나다. 모든 가치가 ‘속도’에만 집중된 상황은 절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효율적으로 건축물 짓는 방법을 몰라서 오랜 시간 도시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삶을 생각하고 각기 다른 건축물의 개성을 생각한다면 결코 ‘속도’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현 여부를 떠나 건축 전문가들이 획일적인 도시 경관을 바꿀 대안을 찿기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일단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주근접(職住近接)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책에서 언급한 직주근접, 즉 직장과 거주지가 가까워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은 코로나라는 돌발 변수로 인해 의외로 우리에게 빨리 다가왔습니다. 직주근접의 한 방식으로 거론된 ‘재택근무’는 코로나 발발을 계기로 꽤 심각하게 대안적 업무방식으로 거론되고 있고 주택의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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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김훈 작가의 문체를 편애하는 입장에서 유명한 에세이집인 ‘밥벌이의 괴로움’은 읽어보고 싶어 중고로 이 절판된 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2003년 출간된 에세이집이니 벌써 17년이나 지난 책이고 내용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내용도 있습니다. 아주 짧은 소픔들이 함께 묶인 책입니다.

초기의 글이라서 그런지 ‘남한산성’에서 보이던 농축된 단문의 담담한 문장보다 비유적인 표현들이 많이 보여 생각보다 실망스러웠습니다.

다만 몸으로 부대끼는 걸 중요하게 여기고, 밥을 먹어야 하는 기본적 인간조건에 집착하는 진정성은 작가의 색깔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에세이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좋은 글은 역설적으로 작가의 인터뷰, ‘사무라이, 예술가 그리고 김훈’으로 기자 남재일의 글입니다.

작가의 육성을 그대로 들을 수있어 좋았고 작가의 기자시절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이 가부장적인 사람이라는 이야기, 여성과 생명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노동을 싫어하고 노는 것이 좋지만 생존을 위해 일하지 않을 없다는 이야기는 그냥 인터뷰임에도 깊은 공감이 됩니다.

분명 후대 작가인 김영하나 김연수와는 차이가 나는 구식 작가이지만 본인이 할 수 없는 건 못한다고 하는 솔직함과 글을 대하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작가가 아직도 고된 노동이 될 수 밖에 없는 원고지 작업을 고집하는 것이 바로 이런 진정성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가 요즘 젊은 노동자들이 기업들의 안전불감증으로 죽어가는 사실을 안타까와하면서 사회에 대해 발언을 자꾸 하는 것도 작가가 기본적으로 날 것으로의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특히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를 철저히 무시하는 자본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어 몸소 행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작주의자처럼 한 작가의 책을 한꺼번에 모두 읽고싶지만 희망사항일 뿐이고 그냥 시간이 나는대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시간을 언제 만들지가 관건이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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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 교수의 책으로는 두번째 읽은 책입니다.
본문 200페이지 정도의 짧은 책으로 2008년 출판된 책입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Omnivore’s Dilemma, 2006)’에서 저자는 미국의 산업화된 축산업을 고발하면서 원래 풀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소들이 축산공장에서 사육되면서 잉여농산물인 옥수수를 먹게 되고 그로 인해 병에 걸리고 또 병을 치료하기 위해 대량의 항생제를 먹게 되는 악순환을 적나라하게 알렸습니다. 광우병 (Mad Cow Disease) 도 공장형 축산으로 생긴 부작용으로 광우병의 발병 메커니즘도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되었습니다 .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사그러들기 전에 그 발병원인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서술한 책을 보는 건 아무튼 공포 자체라고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학자로서 미국인으로서 자국의 치부라고 할수 있는 부분을 용기있게 들춘다는 건 상당히 용기있는 행동이라 생각됩니다.

전작이 산업화된 미국의 축산업과 농업 전반을 다룬 바 있기에 같은 저자가 2년 후 도대체 ‘음식’이 뭔지 질문을 하고 미국인들이 뭘 먹는지, 그리고 서양식 식단 ( Western Diet)의 병폐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첫번째는 소위 영양주의 ( Nutritionism)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번째는 서양식 식단 (Western Diet) 과 질병, 특히 대사질환 ( metabolic syndrome)과의 상관관계를 집중적으로 따집니다. 여기에서 식품산업계가 산업의 이익을 위해 미국인의 식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거론합니다.

세번째는 영양주의를 극복할 대안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입니다. 결론은 ‘음식을 먹고, 채식 위주로 그리고 적게 먹으라’는 겁니다.

이 결론을 뒤집으면 서양식 식단의 문제점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책 자체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미국식 식단에 맞추어져 있지만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 참고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 즉 가공되지 않은 진짜 음식을 먹지 않고 가공식품( processed foods)을 너무 많이 섭취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햄버거 가게에서 먹는 코크같은 청량음료는 가공된 옥수수시럽 ( corn syrup) 으로 단맛을 낸 것으로 음식처럼 보이지만 (foodlike) 음식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또한 다른 가공식품인 감자칩같은 스낵류는 사실 감자가 없고 감자맛을 내는 향 (flavor)가 인위적으로 첨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식품업체에서 가공한 이런 가공식품은 따라서 더이상 음식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는 이런 가공식품 말고 진짜 음식, 갑자칩이 아니라 감자를 먹으라는 겁니다. 신선하게 먹으려면 수퍼마켓보다 재배한 농민과 직거래를 하던가 아니면 직접 작물을 기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권유합니다.

다음 육식위주의 식단은 특히 미국식 식단의 큰 문제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쇠고기를 엄청 먹습니다. 대부분 스테이크로 먹는데 감자와 당근 같은 열매와 같은 부분을 먹지 의외로 잎채소를 많이 먹지 않습니다.

저자가 프랑스와 지중해식 식단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한국의 식단도 미국의 식단보다는 잎채소를 많이 먹고 육류소비가 적다는 면에서는 훨씬 좋은 식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한국의 식단이 독특한 것은 김치와 각종 나물류가 발달해서 식단 자체가 육류위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위에서 공장제 축산업의 폐해를 잠시 언급했는데 마볼링을 위해 과다하게 많은 옥수수를 섭취한 소들은 다량의 항생제를 투여받게 되고 이는 그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렇게 공장제 축산업에서 생산된 육류를 소비하는 식단은 같은 서양이라고 프랑스나 이태리 사람들보다 미국인들이 더 많은 대사질환과 고혈압 (hypertension), 심장질환( cardiovascular disease), 비만 (obesity), 당뇨 ( diabetes)를 앓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
그래서 저자는 미국인들이 채식을 좀더 많이 해야 하고 텃밭에서 간단한 채소를 길러먹거나 농부들과 채소를 직거래해서 먹거나 음식을 먹을 때 프랑스 사람들처럼 적당한 와인을 마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음식 자체에 좀 더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권유합니다. 값싼 음식을 많은 양 짧은 시간동안 먹기보다 질좋은 따라서 좀 더 비싼 음식을 좀 더 여유있게 먹기를 권합니다. 그래야 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하면서요.

마지막으로 좀 적게 먹으라는 이야기 입니다. 텃밭을 가꾸는 것은 먹거리를 위해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지만 별 투자 없이도 양질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또 질 좋은 음식은 경제적으로 봐도 비싸기 때문에 일단 대량으로 먹기 힘들기 때문에 그 자체로 건강을 위한 투자로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가 쓴 음식에 대한 르포식 논픽션이지만 현재 한국의 식생활에도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한국 사람들은 과거보다 얼마나 훌륭한 식생활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자도 언급했듯 좋은 식생활과 좋은 음식이라는 것이 단순히 비싼것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고 매너와 문화가 모두 녹아 있는 것이므로 단순하게 경제적 가치로만 재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첫번째 파트에서 언급한 영양학의 방법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영영학은 음식을 전체 (whole food)로서 다루지 않고 각 음식 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로 보는 것으로 예를 들어 쌀을 볼 때 쌀이라는작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탄수화물( carbohydrates)에 집중하는 설명방식입니다. 이들은 몸에 필요한 3대 영양소를 파악해 음식 자체보다 이 영양소의 섭취를 건강 증진의 한 방안으로 보았습니다.
어떤 영양소가 어떻게 몸에 작용하는지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의학계나 삭품업계에서 알고 싶어하는 설명 방식이지 일반 소비자에게는 별 의미없는 방식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런 사고 방식을 환원주의( reductionism)라고 하는데 1980년대 이후 미 영양학계를 지배합니다.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양소가 중요하고 영양소가 첨가되면 몸은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채소나 육류와 같은 여러 물질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데다 기존에 밝혀진 인과관계도 흔들리기 일수여서 별로 신뢰받을 수 있는 설명 방식은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우리 몸이 탄수화물과 지방과 단백질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데도 횐원주의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탄수화물, 지방과 단백질의 총합이 우리 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의 생화학과 통계가 만나 최악의 조합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자가 마지막에 권유하는 식생활 개선 방식은 당연히 생태적 생활방식을 따를 수 밖에 없고 좀 더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습니다.

먹거리를 연구하다가 사람도 동물이며 자연계의 일부로서 자연과 가깝게 먹거리를 얻어야 좀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이 책은 따라서 음식의 입장에서 지나친 공장식 생산과 이윤추구가 결국 인간들에게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작은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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