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ㅣ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황정은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습니다.
출간된지 10년이나 된 소설을 이제야 읽었는데 내용을 떠나 문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독서가 대부분 논픽션이나 역사, 경제 관련이다 보니 소설을 상대적으로 덜 읽게 되는데 적당한 길이에 간결하지만 힘있는 문체를 경험하게 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각각의 소설들은 단문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대화를 이어가는데 군더더기가 없어 좋았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글은 97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오무사’ 입니다.
구도심의 사십여년 된 오래된 전자상가에서 전구를 팔고 있는 노인과 그 가게의 이미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전구를 판매하는 가게였으나 가게를 밝히는 전구라고는 벽에걸린 노랗고 푸른 알전구 다발뿐이었다.
빽빽하다.
라는 말을 사전에서 만든다면 아마 그런 광경일 것
이 틀림 없었다.
그야말로 빽빽하다.
라고 생각한 뒤엔 아무런 말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눈앞
이 빽빽했다
- p102
최근에 읽은 어떤 글보다 정확하고 명징한 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무대가 구도심에 자리한 오래된 전자상가이고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에 따라 그 장소의 역사적 두께와 지층이 같이 사라져버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처연하기도 하고 ‘개발’의 이름으로 역사와 삶을 밀어버리는 무식한 짓을 군사독재자가 죽은지 40여년이 지나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냉면집이 있는 을지로의 파헤쳐진 공사장이 생각났고, 소설에 묘사된 전자상가를 보며 종로의 낙원상가와 세운상가가 겹쳐보이기도 했습니다.
읽어보니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