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여쪽 분량의 이 책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2010년에 나온 책이고 미술사와 건축을 공부하신 두 분 저자께서 함께 쓴 책입니다.
근대시기(1883-1945)에 지어진 건축물 중 문화재청이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관청, 은행, 세관,영사관, 학교, 병원,성당, 교회와 국영회사(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소위 ‘주요 건축물’위주의 답사기입니다.
전국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이 망라되어서 서울 뿐만 아니라 개항지인 인천, 부산,군산, 목포를 비롯해서 대구와 강화도, 김제, 영산포, 구룡포, 그리고 강경까지 국토 곳곳에 남겨진 개항기-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물을 살펴봅니다.
대구와 영산포, 구룡포 등지의 일부 적산가옥 (敵産家屋)을 제외하고 이책에서 다루는 건축물들은 근대시기에 살았던 일반 국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은 아닙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한정되지만 이런 오래된 보통의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는 문헌학자이신 김시덕 선생의 도시 답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기 전 잠시 이 책의 평을 보니 일제가 남긴 건축물을 답사했다고 친일답사기라고 평하시는 독자가 계신 걸 보고 놀랐습니다.
일제의 통치가 억울하고 분하면 그들이 남긴 흔적을 악착같이 보존하면서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극단적으로 말해 그들이 조선을 착취한 ‘증거’로 남겨진 것이 건축물입니다. 일본인 지주들이 조선 땅의 쌀을 일본우로 가져가 얼마나 부유하게 살았는지 그가 살던 집이 있어야 그걸보고 당시 일반 조선인들의 생활과 비교를 해야 얼마나 착취를 했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호불호를 떠나 한국의 근대건축가들은 일본을 통해 건축을 배웠습니다.
역사적 사실이죠.
현재 서울대 공대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에서교육받은 소수의 조선인들이 최초의 조선인 근대건축가들입니다.
일본인들이 경성고공의 학생이었고, 조선인들은 한두명 밖에 없던 시절입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 조선인들은 처음 일을 한 곳은 대체로 조선총독부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일본의 민간건설회사는 일본인만 뽑고 조선인은 뽑지도 않았죠.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친일을 한 근대 건축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시 서양식 건축물을 조선에 지을 수 있는 건축가는 경성고공 출신 조선인 또는 일본인 건축가이거나 일본에서 교육받은 일본인 또는 조선인 건축가이거나 아예 유럽이나 미국 출신 건축가들 뿐입니다.
실제로 구한말인 19세기 말 지어진 경운궁의 서양식 건물이나 성공회 서울 대성당, 러시아 영사관과 같은 건물들은 모두 서양인들이 지었습니다.
따라서 근대건축가들이 지은 건축물이 모두 친일건축물이라고 재단하는 건 지나칩니다.
이책이 발행된 지 10여년이 지나 솔직히 사진에서 보이는 건축물 중 아직까지 남아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경복궁 옆 기무사 건물은 이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개관했고 기무사로 사용되기 전 서울의대 부속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하더군요. 화신백화점을 설계했던 최초의 조선인 근대건축가 박길룡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건축관련 책마다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재개발구역에 대한 개발압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것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니 말이죠.
도시계획사나 도시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는 건 오래된 건축물이나 생활지역을 보존하는 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세계 어느 도시를 가나 볼 수 있는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형태의 건물 안에 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 매장이 입점해 있는 걸 ‘발전’이라고 부르는 건 민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유의 분위기와 장소의 고유성이 없어진 상태로 덩그라니 최신의 하드웨어만 남은 곳에서 어떻게 발전이 일어나고 문화의 감각이 생길 수 있을까요?
생활의 편리도 무시할 수 없으니 다시 건물을 올리거나 리노베이션을 할 수는 있지만 최소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힙하다는 을지로나 익선동이 왜 지금 사랑받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세월의 흔적이 남은 건물과 그 분위기는 빈티지 인테리어를 시공한 건물과는 다릅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래된 건물을 답사하거나 이런 답사기를 읽는 건 삶의 공간과 장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애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