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공부한 여성 영화학자와 그의 프랑스인 남편이 서울과 파리라는 두 도시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점을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300여쪽에 달하는 책으로 분석보다는 ‘장소(place)’에 대한 감각과 인상 그리고 저자들의 생각이 주로 담긴 글들의 모음입니다. 전반부는 프랑스인인 남편 티에리 배제쿠르씨가 썼고, 후반부는 아내인 이나라씨가 썼습니다. 특히 후반부는 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한 글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서울과 한국의 도시에 흩어진 각종 근대건축’유산(legacy)’에 대한 미시적 관찰기 혹은 분석기 그리고 왜 그 건물이 세워졌을까에 대한 의문에 답을 하던 책이라면, 이 책은 서울과 파리에서 접하는 일상적인 도시의 환경과 장소에 대한 두 저자의 느낌입니다. 프랑스인인 남편은 파리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한국 ‘카페’의 편리함에 대한 소감을 적었고, 빠르게 진행되는 웨딩홀의 놀라운 결혼식 진행속도와 서구의 영향을 받은 괴이한 건물형태에 대해 썼습니다. 관악산 등산기에서는 파리에서는 볼 수 없는 큰 바위산이 서울 근처에 있고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등산문화에 대해 외국인의 시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매일 철거되고 새로 올라가는 서울을 경관에 따라 마음대로 건물을 짓거나 철거될 수 없는 파리와 비교해 ‘재조립되는’도시로 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서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유럽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너무도 달라 보였던 겁니다. 후반부 이나라씨의 글은 특정한 지역이나 건물과는 자체보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서 장소를 다룹니다. 예를 들어 파리에 살고 있는 거주자로서 한국사람들이 ‘파리(Paris)’라는 도시에 대한 판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파리여행에 대한 이런 판타지가 만들어진 판타지 공간, 즉 테마파크와 비슷한 모방이 아닌지 묻습니다. 해외의 도시에 사는 것과 같은 도시를 예를 들어 2주 일정으로 여행가는 건 분명 다른 상황입니다. 떠날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는 그 자체가 벌써 현지의 삶에 들어오는 과정으로 파리건 서울이건 사람 사는 방식이 어디나 비슷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 책에서 프랑스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장면은 국가가 노동자의 쉴 권리를 인정해 연간 유급 15일 휴가를 보장해 주었다는 점. 그리고 법으로 해변을 국가소유로 정해 모든 국민들이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해변을 즐길 수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이웃나라인 이태리만 해도 일광욕을 즐기기 위한 파라솔을 임대하지 않고는 해변에서 즐길 방법이 없다는 걸 보면 프랑스의 해변 국유화는 지극히 프랑스적입니다. 장소와 공간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이 책을 하나의 ‘휴식’으로 읽었습니다. 사는 곳이 서울이니 서울이 제일 관심이 많이 가고 다른 한국의 도시들도 관심이 가지만 파리는 제가 오래전에 방문했던 곳이라 관심이 갔습니다. 파리처럼 오래된 유럽의 도시는 도시 규모도 서울보다 작고 아직도 오래된 골목과 좁은 길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최소 제가 본 파리의 중심가애서 에펠탑을 제외하고 큰 고층 빌딩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여행자의 눈으로 봤을 때 파리의 인상은 잘 ‘보존’된 도시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만 잘 보존된 것이 아니라 일반사람들 사는 건물들도 잘 보존된 도시라는 것입니다. 이건 분명 ‘첨단’을 위해 ‘철거’도 서슴지 않는 서울과 다른 점입니다. 현재 서울 도심에서 외국의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있는 ‘정동’지역만이 구한말 이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건물의 역사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한때 서울의 극장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최초의 극장인 ‘단성사(團成社)’가 없어졌고 명동의 중앙극장도 사라졌습니다. 힙지로라고 부르는 ‘을지로’는 현재 수많은 고층건물이 올라가고 과거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을지로가 힙한 이유는 을지로의 오래된 식당들과 오래된 건물들이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지 그 장소 옆에 생긴 최첨단 고층빌딩 덕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십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화상 중국집과 냉면집, 그리고 호프집과 을지로 공구상가가 을지로의 분위기를 만드는 주요 장소입니다. 여기에 을지로 개발과 함께 들어온 청년사업가등이 을지로 본래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힙한 가게를 낸 것도 큰 몫을 했지요.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시간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빈티지 인테리어를 시공하는 것은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중요한 차이입니다. 하지만 일제시대부터 ‘황금정 (黃金町)’으로 불린 이 곳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각 시대의 흔적이 겹겹으로 남아 있지만 최근에 또 재개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과거 세대의 흔적을 일부만이라도 남겨 놓는 것이 그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의 형태와 구역 내 건물의 모습을 이미 모든 지역이 철거되고 재개발되면 오직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요행이도 사진으로 남겨진 경우에만 볼 수 있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