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근대건축물에 대한 보존문제가 제기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1990년대까지도 일제시대나 군사정권 시절의 건축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모두 어두운, 기억하기 싫은 역사와 연관되어 그런 경향이 생긴 것이고, 결국 왕조의 유산인 조선시대 궁궐은 보존할 가치가 있어도 일제시대 관청건물이나 수탈기구들은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일본 근세 전문가이신 김시덕 교수가 처음으로 낸 서울의 근대건축과 도시계획에 관 책 ‘서울선언(열린책들,2018)’에서 처음 일제시대 지어진 보통사람들의 집, 흔히 말하는 일제식 적산가옥의 흔적을 찿고 , 일제의 신도시인 영등포와 노량진을 답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 근대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오래전 서울경관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왜 서울은 도시의 건물을 무조건 다 부수고 새로 지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였습니다.
역사는 흔적과 함께 기억되는 법인데, 왜 멀쩡한 건물을 모두 때려부수고 몰역사적이고 개성도 없는 천편일률적인 건물로 무미건조하게 공간을 채울까 하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천박하게 돈만 밝힌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과거의 흔적을 없애버려야 하는 긴박한 이유라도 있나?
지금은 위의 두가지가 모두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중앙정보부 남산 예장동 청사의 철거와 옛 조선총독부인 ‘중앙청’철거가 대표적인 예라고 봅니다.
한국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일제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건물(중앙청)과 군사정권의 국가폭력의 상징( 중앙정보부 예장동 본관)이 그 실체를 현재 알 수 없습니다.
건물의 흔적을 지운다고 사라지지 않는 역사의 기록을 건물을 없애서 자위를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일제시대에 관심을 가진 독자로서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인 건물을 보전해야 일본의 사죄를 받을 때 더 효과적일 것일텐데, 그리고 후세의 역사교육에도 도움이 될텐데, 현재까지 한국의 위정자로 군림해온 친일세력이나 그 후예들은 선조들의 죄를 묻어버리려고 식민통치의 유산인 건축물을 없애버리고싶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드는 건 합리적 추정이죠. 조국근대화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가지고 말이죠.
박근혜 정부 당시 위안부 협상을 위해 일본에서 특사가 청와대로 직행해 소위 한국의 정계원로들과 일본어로 밀담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하며 과연 역대 한국정부의 성격은 무엇인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상하던 일과 실제로 난 기사를 보는 입장은 완전히 다르죠. 친일세력이 권력에 없어도 일본이 저렇게 무례하게 행동할까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일 외교 정상화를 이룬 고 김종필 전 총리 역시 일본에서 교육받은 정치군인으로 일본과 불완전한 상태로 외교를 정상화해 이후 모든 한일관계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정치인이니까요.
해방이후 한국전쟁이 나서 일제 때 지어진 많은 건물들이 부서지고 철거되어 시야에서 사라진 것도 정치적인 이유와 패권적인 이유에서 일본에게 전쟁 범죄를 묻지 않은 미국이 한국땅에서 일제의 잔재가 사라지도록 방치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1945년 이후 남한에서 정부가 수립하기까지 자그마치 3년의 혼란기를 미군정이 통치했고, 한국전쟁 중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일제의 군사기지였던 용산구와 중구를 집중 폭격한 것도 미국에 대한 이런 의혹이 드는 이유입니다.
한일관계가 꼬이게 된 근본원인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공산주의 봉쇄정책이었기 때문이고 유감스럽게도 2023년 현재도 미국은 영향력이 커진 ‘중국의 부상’을 정치적, 인종주의적으로 봉쇄하려 합니다.
다소 비약이 있긴 해도, 저는 흔적을 없애는 이들은 그들이 그래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의심합니다.
건물의 물리적 구체성때문에라도, 서구의 경우 건물을 모두 흔적도 없이 파괴하는 경우가 더더욱 드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단순히 돈을 더 벌겠다는 것이상이라고 의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