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그린블랫(Stephen Greenblatt)하버드대 교수의 2011년 저작입니다.

한국에는 2013년 까치출판사에서’1417년 근대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제가 읽은 2011년 출판된 영어판으로 총 11장 본문 26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입니다. 모두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책’On the Nature Of Thing’이라는 시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찿는 과정과 책의 내용 그리고 이책의 영향을 모두 포괄해 담았습니다.

15세기 초 교황청에서 각종 문서를 필사하는 교황의 수석비서인 포지오 브라치오리니(Poggio Bracciolini)가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잠자고 있던 루크레티우스의 책을 찿아내서 로마시대 이후 수천년간 잠들어있던 이단적인 내용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으로 퍼져나가고 그내용이 결국 유럽의 근대를 가져오게된다는 내용입니다.

이야기의 구조가 일단 돌아가신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미의 이름(열린책들,2009)’과 매우 유사해 놀랐습니다. 1980년대 소설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지의 책이 미스터리를 푸는 실마리가 되었다면,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이 책에서는 고대의 물리학을 기술한 루크레티우스의 신성부정의 내용의 책이 이후 중세 유럽의 카톨릭교회의 교리에 도전하게 되고 초기 르네상스 시기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이후 나타나는 르네상스 예술과 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철저하게 유럽 서구 중심적 이야기이고 따라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라틴어 고전이 강조됩니다. 고대라틴어로 쓰여진 고대로마의 물리학에 관한 시집을 찿는 이야기이며 15세기 로마 교황청내의 궁정 정치와 카톨릭신학과 이단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와 관련된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 영향에 대한 라틴어 문헌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21세기 한국 서울에서 이책을 제대로 읽는 일이 쉬운 일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철학적, 문헌학적 이야기이므로 전문적인 영역은 피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유일신으로서의 서양의 신이 기본적으로 얼마나 폭력적인 신인지 감안하고 읽어야 합니다. 독자로서 간단히 인상비평 정도를 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유럽의 중세가 생각보다 자연스럽지 않은 매우 억압된 사회였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가 정치적 그리고 신앙적으로 전 유럽을 지배하면서, 원죄를 당연시하고 후세(afterlife)의 영광을 기약하며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타락이 극에 달해 있었고, 예수의 수난을 따라한다는 명목으로 수도사들에게는 극한의 고통이 주어지는 걸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스스로 몸에 채찍질을 가하는 등 상상이 안되는 끔찍한 일들이 태연히 자행되었습니다.
15세기 문화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에서 수도원 도서관에서 발견된 이단적 문헌을 보는 건 카톨릭 교회에서 파문을 각오해야 할 뿐아니라 종교재판에 넘겨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어서 공개적 주장은 하기 힘들었습니다. 이 시기가 유럽의 종교개혁(the Reformation)시기와 겹쳐있고 스페인에서는 이슬람이 물러가고 이단재판(the inquisition)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던 참혹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둘째, 소수의 엘리트들이 모든 문서와 대화를 라틴어로만 소통했고 정치와 교회의 중심은 이탈리아 로마였고, 영국과 독일등 근대 서구국가들은 당시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지식인들은 모두 그리스 라틴어에 정통했고 이책의 주인공인 포지오는 교황청에서 필경사를 하고 교황을 보좌하던 측근으로 고대 라틴어에 정통한 라틴어고전 전문가였습니다. 이런 배경때문에 그는 독일 변방의 수도원 도서관에 잠들어있던 루크레티우스의 시집을 찿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루크레티우스의 시집은 그 내용이 결국 세상은 모두 원자 (atom)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물리학 내용으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카톨릭 교회에서 교리로서 주장하는 죽음 이후의 삶을 부정합니다. 또한 가톨릭 신학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생의 즐거움(pleasure; 여기에는 성적인 쾌락도 포함됩니다)을 삶의 목표라고 주장하는 내용도 이단으로 몰릴 수 있는 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쾌락주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로마에서 계승한 사람이 바로 루크레티우스 입니다. 이러니 카톨릭교회가 이 책을 이단시하고 공개적으로 책 내용을 거론한 이들을 종교재판에 넘겨 처형을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절대적 교황의 권력과 카톨릭 신앙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본 겁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교황의 최측근이던 라틴어 필경사 출신 포지오에게 발견되어 수천년 만에 다시 유통이 됩니다.

초기 소수의 지식인들이 라틴어 판본으로만 돌려보다가 점차 영어 불어본이 유통되어 17-18세기 유럽의 근대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보수적 카톨릭 교회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중세 유럽에 죽음이후의 다른 삶은 없으며 세상은 원자와 빈 공간(void)밖에 없다는 로마시대 철학자의 시는 매우 그 자체로 이미 너무 급진적이어서 카톨릭 교회의 수용한계를 넘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짧지만 서양의 인문학적 전통에 대해 상당한 배경지식이 없이는 읽어나가기 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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