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도시연구자 조이담씨가 새롭게 해제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구보(仇甫) 박태원 선생의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1일’에 대한 책입니다.
1부는 조이담씨가 소설로 재구성한 박태원 선생의 전기로 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이라는 소설이 탄생하게 되는 전사를 기록합니다.
2부는 저자가 1920-30년대 경성에 대한 도시공간 연구와 여러 근대 문헌을 기반으로 해제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입니다.
이 책은 이후 2009년에 다시 한번 개정된 것으로 압니다만 저는 2005년 초판으로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지만 소설 자체보다 사실 저는 이 시대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1부의 시작도 1919년으로 박태원 선생이 초등학교 입학 전 일어났던 3.1운동의 영향과 미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언급, 그리고 조선에서 일어났던 공산주의운동이 박태원 선생의 집안에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꽤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상해임시정부 관련 인사들이나 박태원 선생 주위의 일본 유학생들의 이야기도 같이 나오게 됩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약 1930년대 중반 정도를 커버하는 이 시기에 일본 제국주의는 경성 한복판인 육조거리를 광화문통으로 변모시키면서 광화문을 동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조선 총독부 건물을 올렸으며 경성역을 새로 지었고 경성부청과 조선은행 그리고 미스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을 세워서 경성의 경관을 근대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창경궁은 창경원이 되어 조선인들의 놀이공원이 되었고 장충단에도 공원을 세웠습니다.
구보 박태원은 일본 호세이 대학 (法政大學) 영문과에 다니다 신경쇠약 증세로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고 친구 이상과 함께 매일 경성 도심을 산책합니다. 그러면서 상념에 빠지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심리를 포착하여 기술해서 소설을 씁니다. 이 소설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로 읽다보면 작가 자신의 경험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에서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거의 첫번째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설에는 아예 직접적으로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의 율리시즈 (Ulysses, 1922) 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당시로서는 최신의 영문 소설로서 일제의 지배가 본격화된 경성의 도심 한 귀퉁이 카페에서 일본 유학생 출신 주인공들이 먼 아일랜드 소설가의 이야기를 하는 건 웬지 현실감이 떨어지게 느껴집니다.
흔히 알려진 폐병쟁이 문인들의 초상도 쉽게 엿볼 수 있는데 박태원이 사사했던 소설가 이광수도 건축가 출신 천재 시인인 이상도 모두 결핵을 앓았습니다. 해방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한국에서 문인들의 모습은 박태원 선생이 소설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폐병에 걸려 있거나 마음이 심약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로 각인되었던 것 같습니다.
구보씨가 돌아다니던 산책구간은 저 역시도 한때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녔던 곳으로 광화문에서 남대문으로 그리고 한국은행을 지나 소공동을 끼고 조선호텔을 지나 종로로 그리고 종로3가에서 을지로를 통과해 충무로를 거쳐 명동으로 가던 코스였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겹치는 코스가 많아 놀라웠습니다.
서울 사대문 안에서 역사적 흔적과 더불어 도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동선으로 1930년대 당시 경성의 이 지역은 경성의 근대경관을 대표하는 곳으로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의 총본산이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시간적으로도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미국의 세계지배가 최초로 공식화 되었던 시기로 20세기의 국제관계를 규정한 파리강화회의 (1919)가 제1차세계대전 (1914-1918)이후 개최됩니다. 한국의 3.1운동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고종의 장례식을 맞아 조직되었던 저항운동이었고,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 단체와 사회주의 무장조직들이 상해와 연해주 러시아 등지에 나타나게 됩니다.
1917년 발생한 러시아 혁명은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2 세를 폐위시키고 소비에트 공산 정권을 수립했지만 러시아의 내전으로 1922년까지 이 지역은 안정화되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사회주의 혁명에 가담하고 러시아 내전에 참전한 조선인들도 상당했습니다.
이책에 나오는 사회주의 운동가 한위건도 그중 한사람으로 일본 유학후 신문 기자를 하다가 상해로 망명한 이로 이후 사회주의 혁명가가 되어 일제의 감시를 받는 인물입니다. 일본에서부터 알던 의사인 이덕요와 결혼했지만 잠깐의 신혼생활이후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이후 중국에서 만난 부부는 중국 북경에서 보건 교사로 일하던 아내가 출산 도중 사망하는 불운을 경험합니다. 잠깐의 신혼생활과 망명 그리고 출산도중 사망이라니. 정말 기막힌 삶입니다. 이후 한위건의 자식은 박태원의 집에서 자라게 되고 한위건은 혁명을 위해 가정의 행복을 포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뜻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상황인데 납득이 쉽게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1930년대 많이 배운 일본 유학생들 중에는 조선 독립 투쟁을 위해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 이들이 많았는데 이는 일본 당국에서도 인지했던 상황으로 제국대학 출신 조선 유학생들은 대체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혁명가의 길을 가거나 반대로 철저하게 일본제국주의의 협력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어릴 적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3.1운동 당시 상황을 이야기 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 어릴적 당시의 이야기로만 기억합니다.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기 전 평안도에서 피난 오기전 집안의 살림이 어떠했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 시간이 지난후 역사적으로 평안도 땅이 경제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지역이라는 걸 안 이후에는 아버지께서 생전 언급하셨던 말씀이 조금 수긍이 갑니다.
근래에 19세기와 20세기 초를 설명하는 여러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이 시기가 지금 21세기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문물에 직접적 영향을 준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된다는 점입이다.
한국의 현재는 가깝게 보면 1945년 해방이후의 정치사와 직접 연관이 있겠지만 당시 의사결정권자들의 개인사는 제2차세계대전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혁명,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과도 떨어뜨려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준 세 명의 열강 정상들은 모두 제1차세계대전과 대공황, 러시아 혁명을 겪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를 다시 들여다 보는 이유는 현재의 기원을 알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케이스를 찿을 수 있다는 장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래룰 대비하기 위해 과거를 복기하는 것만큼 유용한 대비책은 없겠지요.
이책을 보고 나서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책은 구보 박태원의 소설들입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입니다.
이전에 문학과지성사판으로 보려 했으나 끝내 읽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Ulysses’ 입니다. 어릴적부터 난해한 소설로 영어 선생님들마다 언급하셨던 책입니다. 요새 영문 소설을 거의 읽지 않지만 기회가 되면 보려 합니다. 영미권에서는 이 책은 수많은 독자들이 읽고 또 읽는 그리고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과연 그런지 눈으로 보고 싶네요. 과욕일수도 있지만 도전은 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