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브러더스 ( Lehman Brothers)라는 미국의 투자은행은 2008년 발생하여 2009년까지 계속된 미국의 경제위기 ( The Great Recession)를 상징하는 회사입니다. 이 경제위기는 1929년 발생한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이후 최대의 경제 위기로서 주류 경제학의 존재 이유를 뒤흔든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이책은 22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중 상당량을 리먼 브러더스의 역사에 할애하고 있고 150년이 넘는 이 기간 중 미국의 경제 발달과 관련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간략하게 살핍니다.
19세기 말 남북전쟁이후 산업화 되는 미국 경제의 발전 과 뉴욕 금융시장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고찰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미국 경제의 호황이 1929년의 대공황으로 큰 영향을 받고 미국 조야는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선회합니다.
이후 철저하게 구별되었던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사업영역을 그 장벽이 1980-9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하에 거의 유명무실하게 완화됩니다. 철저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옹호한 미 연준 의장 알란 그린스펀( Alan Greenspan)의 저금리 정책으로 미국 경제는 2000년대 초 dot.com 버블이후 다시 자산 가격이 폭등하게 됩니다. 경제가 금융화 (Financialiation)되고 따라 자산담보부 채권들은 증권화(Securitization)되어 금융기관 간 거래가 활성화됩니다.
2000년대 초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 ‘The Age of Turbulence’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신봉자인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이 미국의 부동산 자산버블의 한 원인이라는 주장은 거의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독일에서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Alabama)주에 19세기 중반 이주하여 초기에는 금융이 아닌 잡화상으로 자본을 축적한 이민자들인 리먼형제들이 창업한 회사로서 미국의 남북전쟁 (The Civil War) 을 전후한 시기에 면화중계업 ( Cotton Brokerage)으로 큰 돈을 벌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의 중심지 뉴욕에 진출합니다.
처음에는 면화와 같은 농산물 중계로 사세를 키워나갔지만 19세기 말 일어난 미국의 산업화의 흐름을 타고 점차 금융으로 그 영역을 넓혀갑니다.
초기에는 가족경영으로 일관한 이 회사는 가족들간 합자회사 (Partnership)형태로 운영 되다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가족 외의 인물들에게 파트너쉽을 개방하고 그 이후에야 주식회사로서 면모를 일신합니다.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이 그렇듯 이 회사도 초기에 굉장히 보수적인 경영기조를 이어왔으나 1960년대 진행된 IPO와 이를 통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후 경영의 기조가 상당히 바뀌게 됩니다.
Trader 출신 최고 경영자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High Risk High Return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단순 거래 중계를 통한 커미션 영업을 점차 경시하게 됩니다.
이 회사는 트레이더 출신 CEO Dick Fuld가 무려 20여년을 최고경영자로 회사를 이끌어 거의 제왕적 위치에서 단독적 의사결정을 해왔고 채권 (Bond) 트레이너 출신답게 회사의 수익을 위해 회사 자본이 위험에 처할 수 있음에도 눌 과감한 배팅을 하는 공격적 스타일의 경영자로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모기지 담보부 채권 발행을 선도하는 투자은행 중 하나였습니다. 신용 위험을 인식했을 뿐 아니라 당연시했기 때문에 채권 부도의 위험이 높은 후순위채인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인수해 이를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금융시장에 판매해 높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지 않는다면 손쉽게 돈을 절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 채권자들이 재무적 여력이 없어 모기지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서 리먼의 장부상 기록된 모기지 담보부 채권 가치가 폭락해 순식간에 자본이 잠식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부도 당시 160여년 역사의 유서깊은 투자은행으로 미국의 Top5 에 들었던 리먼은 허망하게 문을 닫고 맙니다. 당시 미 연준과 재무성은 선별적으로 대형 금융기관을 지원했는데 큰 상업은행인 Citi와 대형 보험사 AIG가 세금을 투입해 구제를 받았고 모기지 담보부 채권을 보증했던 공공 금융기관 성격의 Fannie Mae, Freddie Mac도 구제를 받았으나 리먼은 불확실한 이유로 규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투자은행 CEO 출신이던 당시 재무장관 Paulson이나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출신으로 대공황 전문가인 당시 미 연준의장이던 Bernanke 는 당시의 막대한 미 정부 재정투입으로 사실상의 ‘정부개입’을 용인해서 많은 보수인사로부터 ‘사회주의’정책을 시행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2008년 발생한 대공황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는 부동산 자산과 연관된 자산담보부 채권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 투자에 베팅을 한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들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한때 M&A와 적대적 인수를 통해 공격적 성장세를 보였던 미국의 투자은행은 부동산 시장 폭락으로 인한 자산담보부 채권의 부실화로 자본 잠식에 들어가 독자적인 힘으로 생존이 불가능하게 되어 거대 상업은행에 매각되어 투자은행 시대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투자은행들은 다음과 같이 인수되어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의 시대가 저뭅니다: 다섯번째로 큰 Bear Stearns 는 JP Morgan애 인수되었습니다.
미국 3대 투자은행인 Merrill Lynch도 부동산 자산담보부 채권 기반 파생상품 투자로 큰 손실을 보고 독자 생존이 어려워지자 거대 상업은행인 Bank of America와 지분 인수협상을 벌여 결국 BOA의 투자은행 부문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Barclays는 Lehman의 자산중 건전한 일부와 투자은행 부문을 인수하기로 협상을 벌여 영국 Financial Service Authority의 승인을 얻었고 2008년 9월 15일 Lehman의 파산은 공식화되었습니다.
리만의 파산으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은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었고 거대 보험회사 AIG에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고 이회사는 결국 국유화되었습니다.
미국 금융시장이 붕괴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미 연준과 재무부의 노력은 당시 연준 의장이던 Ben Bernanke의 자서전에 역시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책결정자의 한사람으로 미 의회에서 정책 자금을 얻어내기 위해 직접 청문회에서 증언을 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수익에 눈이 먼 경영자들은 자신들 결정의 위험성을 인지하였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과도한 투자위험을 취함으로써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세금으로 수혈한 자금으로 재기하게 된 거대 금융기관들은 그들의 평소 신념과는 반대로 자유시장경제의 작동에 본인들이 결정에 따른 결과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단지 거대하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때문에 파산시킬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Too Big To Fail’노선은 신자유주의를 자처했던 미국 조야의 파워엘리트들과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은행가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이율배반적이고 모럴헤저드가 심각한지 스스로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란 실체가 없는 망상이라는 점이 명확해진 것입니다.
수학적 모델링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런 초유의 경제위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해 실천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의 존재 이유마저 의심스럽게 되었습니다.
물리학적 이론적 정합성이 경제학을 필요로 하는 경제위기에 아무런 처방도 내리지 못한 셈입니다.
이 책 자체는 금융위기가 지난 지 얼마되지 않은 2010년 발행된 것으로 미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점쳐지기 이전으로 미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어떤 신호도 보내기 전입니다.
현재 미 경제가 회복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저금리에 의한 인위적 부양 (Artificial Growth)의 결과로 보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으며 금융 위기 이후 10여년이 지났어도 수익만을 우선시하며 엄청난 금액의 스톡 옵션을 가져가는 최고 경영자들의 행태도 거의 바뀐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준이 금리를 조금만 올리려 해도 신용발작( Tapering)과 같은 이전에 볼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지난 30여년간 시행해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부적절한 부산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