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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의 귀향.꿈의 노벨레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7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모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N22072
"행운과 여자는 억지로는 안되는 법이죠."
언제나 첫 만남은 설렌다. 어제 읽은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작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처음 들어본 작가였다. 게다가 흔하지 않은 오스트리아 작가인데다 츠바이크의 친구라고 한다. 그래서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호기심 차원에서 이 책을 선택해서 읽었다. 결론은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는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두 작품이 실려있는데, 간단히 리뷰해 보자면,
1. <카사노바의 귀향>
카사소바, 카사노바 말은 들어봤는데 누군지 정확히 몰라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자코모 카사노바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성직자, 모험가, 시인, 소설가를 자칭한 인물이다. 프랑스어식 이름인 자크 카자노바 드생갈(Jacques Casanova de Seingalt)로도 알려져있다.
일반적으로 잘난 바람둥이의 대표격이자 난봉꾼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는 인물로 20세기 중후반에 잠깐 재평가가 시도된 적이 있었으나, 난봉꾼 정도를 넘어 불법 매춘과 강간, 사기 행각이라는 범죄 행위가 밝혀져 재평가가 취소되었다.]
이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카사노바의 귀향>은 베네치아에서 탈옥하여 추방된 50대의 노인 카사노바가 고향으로 복귀하기 전에 경험한 몇일간의 이야기를 작가가 재구성한 작품이다.
자유롭고 방탕한 생활을 끝내고 이제 고향인 베네치아로 돌아가고 싶었던 노년의 카사노바는 의회에 자신의 사면을 요청했고, 만토바라는 지역에서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고향에 돌아가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운명이 그에게 요구하는 희생중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보잘것없이 퇴락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도시를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확신도 없이 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P.66
그러던 중 거리에서 옛 친구인 올리보를 만나고, 카사노바는 내키지 않았으나 올리보의 간절한 부탁에 의해 마지못해 올리보의 집에 간다. 올리보가 이렇게 간청한 이유는 카사노바의 경제적 도움 때문에 아말리아라는 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사노바의 경제적인 도움은 그냥 선의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카사노바는 올리보가 아말리아와 결혼하기 이전에 먼저 그녀를 차지했었고, 경제적인 도움은 그 댓가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세 딸의 엄마이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카사노바를 잊지 못했던 아말리아는 그를 보자마자 뜨거운 욕정에 쌓인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더이상 아말리아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그는 올리보의 집에 잠시 머물러있던 올리보의 조카딸 마르콜리나에게 첫눈에 반해버리고 젊은 시절의 성욕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그녀에게 추근댄다.
["그렇다면 아말리아, 내가 그녀를 얻도록 주선해주오. 그게 당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오. 그녀에게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주오. 내가 당신네를 협박했다고 말해요. 내가 당신 집 지붕에 불을 지를 사람이라고 말해줘요. 내가 바보라고,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위험한 바보지만, 처녀의 포옹이 나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오. 그렇소,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요."] P.37
하지만 더 이상 젊은 시절의 매력이 사라져 버리고 노인이 된 카사노바는 마르콜리나를 유혹할 수 없었고, 오히려 마르콜리나의 냉대를 받는다. 예전에는 자신의 유혹에 모든 여자들이 무너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이상 카사노바는 자신이 생각하던 카사노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노인이 된 카사노바는 이제는 열정을 버리고 현명함을 갖춰야 하지만 자신의 신화를 버리지 못한다.
["사람들이 철학과 종교라고 부르는 게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보여요. 다른 모든 것보다 물론 고상하기는 하지만 또한 더 무의미하기도 한 말장난요. 우리는 무한과 영원을 붙잡지 못할 거예요. 우리의 길은 출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져요. 우리 각자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법칙에 따라 살거나, 법칙에 거슬러 사는 것 외에 달리 뭐가 남아 있을까요? 순종과 반항은 똑같이 하느님에게서 나오니까요."] P.83
마르콜리나는 남성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그녀는 젊은 로렌치 소위와 비밀 연예를 즐기고 있었고, 로렌치 소위는 카사노바의 젊은 시절과 닮아있는 난봉꾼이었다. 카사노바는 두 사람의 비밀 연애를 목격하게 되고, 게다가 도박판에서 큰 빚을 진 로렌치 소위에게 큰 돈을 준다는 제안을 한다. 제안에 대한 카사노바의 요구사항은 다름 아닌 마르콜리나와 잠자리를 주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이제 늙고 추한 욕망만이 남아있는 카사노바. 과연 그의 추락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나는 그 당시처럼 욕망의 온갖 격정과 청춘의 모든 활력이 혈관을 통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나는 그 당시와 같은 카사노바가 아닌가? 그리고 바로 내가 카사노바인데, 그 보잘것없는 늙음의 법칙이 왜 내게도 적용돼야 하는가. 남들이 그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고 해서?] P.122
2. <꿈의 노벨레>
위의 작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론 <꿈의 노벨레>가 더 인상적이었다. 영화 <아이즈 와이즈 셧> 의 원작인 이 작품은 읽는 내내 꿈속을 걷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건지 모호한 경계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어둡지만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의사인 프리돌린과 아내 알베르티네는 가면 무도회를 다녀오게되고, 무도회의 야릇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두 부부는 자신들이 그동안 감추어둔 성적 욕망을 털어놓게 된다. 그런데 알베르티네와는 다르게 프리돌린은 아내가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묻지 마세요." 남겨진 여자가 프리돌린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무엇에도 놀라지 마세요. 제가 그들을 속여볼게요. 하지만 당장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그럴 수는 없다는 점이에요. 너무 늦기 전에 도망쳐요. 지금도 도망치기에는 늦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당신의 흔적을 추적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 누구도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서는 안 돼요. 걸리면 당신의 평온함, 당신 삶의 평화는 영원히 끝날 거예요. 가세요!"] P.203
두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프리돌린은 현실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자를 찾아 나서지만 꿈과 같은 현실 세계에서 결정적인 기회가 올때마다 주저하게 되고, 반면 알베르티네는 현실과 같은 꿈속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의 체험과 꿈을 또한번 털어놓는다.
["운명에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가 온갖 모험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으니. 현실에서의 모험과 꿈속에서의 모험에서 말이에요."] P.260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프리돌린)과 꿈에서 이룬 욕망(알베르티네)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꿈과 현실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그리고 누가 더 배신감을 크게 느낄까? 부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감춰두었던 욕망을 서로가 알아버렸기 때문에 아마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꿈도." 그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완전히 꿈은 아니야."] P.263
꿈이라는게 현실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라고 한다면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건 어쩌면 의미가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Ps. 주말에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을 찾아봐야 겠다. 가면무도회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