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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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70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왜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국내문학에 손이 잘 안가는데, 아마 너무 주변에 있는 이야기 같아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애장하는 작가님이 몇 분 있는데 그 중 한분이 최은영 작가님이다. 지금까지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은 전부 읽어봤는데 다 좋았다.


이번에 나온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집 <애쓰지 않아도> 역시 너무너무 좋았다. 마치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마음속 이야기를 작가님이 대신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최은영 작가님도 ENFJ인 걸까?


모든 단편들이 다 좋았지만 몇편에 대한 감상평을 써보자면, (너무 짧아서 줄거리는 생략)



1. <애쓰지 않아도>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그런걸까? 주인공인 ‘나‘의 감정이 낯설지가 않았다. 나도 그런적이 몇번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친하고 좋아했었는데 어느순간 멀어져 버린 사람들.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노력하였지만 그럴수록 거리감만 커졌던 순간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의 내 마음을 돌아봤다. 나는 유나의 공감을 바라서 그 말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유나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유나가 나를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라서 그런 말을 했다.] P.23



잊기 위해 원망도 하고 미워하려고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아쉬움만이 남았다.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어느정도 괜찮아 질 수 있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이런건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잊혀지는걸까?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올릴수 있다는걸 알았다면 조금 더 편했을까?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 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P.32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그 사람들은 그때 어떤 마음이었고, 지금은 또 어떤 마음인지...



2. <꿈결>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 가끔 꿈에 나올때가 있다. 어쩌다 생각이 나서 추억을 떠올리다보면 그날 밤 꿈에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꿈을 기억하고 싶어도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사람의 뇌가 원래 그런걸까, 아님 내 무의식이 지워야 한다고 강박해서 그런걸까?

[우리는 네 꿈에서 자주 만났어. 알잖아, 꿈을 기억할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었다는 거. 넌 깨어나기 전에 선택할 수 있었어. 그리고 매번 기억하지 않는 걸 선택했고.] P.67



차라리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말을 안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하곤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젠가는 시들해지고 그래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면, 차라리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오랫동안 함께 하는 것이 좋은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만.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모든 게 수월했을 텐데. 내가 너를 조금만 덜 사랑했더라도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 거야.] P.62




3. <무급휴가>

다른 작가의 작품 리뷰에서도 비슷하게 썼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지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그 사람에게는 당연한게 아닐 수도 있다. 말하지 않는다면 절대 알수없는 보이지 않는 사실들.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오해하기도 하고, 말을 해주더라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공감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다가감을 멈추어야 할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다가가서 조금이라도 이해하는게 필요하다. 그게 바로 사랑이니까.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P.220




쓰다보니 리뷰가 아니라 감성 에세이(?)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하여튼 이 책은 많은걸 생각하게 해줘서 좋았고, 선물로 받은 책이어서 그런지 더욱 좋았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필요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ps. 2022년 오늘 기준으로 70권을 읽었다. 이 추세라면 올해 독서 목표인 150권이 가능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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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5-19 09: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써주신 감상과 최은영 작가님의 글들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예요^^* 작가님도 ENFJ맞을듯ㅋㅋㅋ

새파랑 2022-05-19 07:31   좋아요 3 | URL
마침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책이 옆에 없어어 막 썼어요 😅 이 책 너무 좋았습니다 ^^

bookholic 2022-05-18 1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기세라면 150권 이미 초과달성~~^^
목표 상향 조정 요망^^

새파랑 2022-05-19 07:32   좋아요 3 | URL
아닙니다 ㅋ 후반기에는 좀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페넬로페 2022-05-19 16: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이 좋은 이유는 뭔가 제목만 들어도 그 느낌이 느껴지는걸요.
특히 최은영작가의 소설이라 더 그런것 같아요~~~
벌써 70권이라니!
정말 초과달성 하실거예요^^

새파랑 2022-05-19 17:40   좋아요 5 | URL
일단 이번달 15권 채우는걸 목표로 달려보겠습니다~!! 최은영 작가님 너무 좋습니다 ^^

mini74 2022-05-19 17: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문학소년 ㅎㅎ 넘 좋은데요. 150권!!! 새파랑님 대단 👍

새파랑 2022-05-19 17:40   좋아요 4 | URL
이제 더이상 소년이 될 수 없다는 ㅜㅜ 미니님은 저보다 더 많이 읽으셨을거 같아요~!!

희선 2022-05-20 0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쓰지 않아도 되면 좋을 텐데, 애써도 잘 안 되는 게 많기도 하네요 사람 마음은 더 그런 듯해요 애써도 마음이 맞아야 그걸 알지 마음이 안 맞으면 잘 모르겠습니다 안 맞으면 그런가 보다 해야 할 텐데...

새파랑 님 벌써 책 일흔권이나 보셨군요 2022년에 백오십권 다 보시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05-20 07:13   좋아요 3 | URL
전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ㅋ 희선님도 시집까지 하시면 70권 읽으셨을거 같은데~! 한번 세어보세요 ^^

그레이스 2022-05-20 1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합니다

새파랑 2022-05-20 11:17   좋아요 3 | URL
읽고 리뷰남겨주세요. 그레이스님은 아주 좋아하실거 같아요 ^^

책읽기.com글쓰기 2022-06-03 0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까지 상반기 읽은 책 결산해봐야 겠네요ㅎㅎ 저도 소설은 잘 안 읽는데
이책은 오늘 바로 결제해보겠습니다!!!!

새파랑 2022-06-03 06:53   좋아요 0 | URL
전 읽는 책의 90퍼센트가 소설입니다 ㅋ 나머지 10퍼센트는 시집이랑 에세이? 😅 짧아서 금방 읽으실꺼에요. 혹시 최은영 작가님 책을 아직 안보셨다면 <내게 무해한 사람> 을 추천합니다 ^^

책읽기.com글쓰기 2022-06-03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감사해요~~!!!!!
 

N22069

˝인간이 음양화합의 성과를 올리는 일은 머지않아 다가올 음양불화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에가나 명암은 있다. 아무리 밝아 보이더라도,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밝힐 수 없는 어둠은 있다. 그런데 그 어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당신은 옆에 있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소세키의 마지막 작품이자 현암사 소세키 소설 전집의 마지막 작품인 <명암>은 미완성 작품이다. 만약 완성되었더라면 소세키 작품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 역시 그동안 소세키가 주로 다루었던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있는데, 겉으로 들어나는 밝은 ˝명˝과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어두운 ˝암˝을 평행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책을 읽어나갈수록 도대체 감추고 있는 어두운 ˝암˝이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몰입감이 대단했다.



이 책의 줄거리는 복잡하지는 않다. 주인공인 ˝쓰다˝는 직장이 있지만 풍족한 삶을 위해 부모님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고 살아가는 젊은이이고  그에게는 이제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부인 ˝오노부˝가 있다. ˝쓰다˝는 처음에는 연말 보너스 같은게 나오면 부모님께 돈을 갚는다고 약속을 하고 생활비를 받았지만, ˝쓰다˝는 부모님이 그냥 주는 돈이라 생각하고 돈을 갚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처럼 그냥 물쓰듯이 돈을 쓴다. (조크 입니다.)

[˝올케언니하고 결혼하기 전의 오라버니는 좀 더 정직했어요. 적어도 좀 더 솔직했어요. 근거도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싫으니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겠어요. 그러니까 오라버니도 제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오라버니는 올케언니하고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한테 이번 같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나요?˝]  P.299



이에 열받은 ˝쓰다˝의 아버지는 생활비 송금을 끊어버리는데, 하필 이때 ˝쓰다˝는 치질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당장 돈이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부인인 ˝오노부˝는 이러한 상황을 크게 염려치 않고 평소의 풍족한 삶을 이어나가려 한다.

[이 육체는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 아니, 지금 바로 이 육체안에 어떤 변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P.18

[정신세계도 마찬가지다. 정신세계도 전적으로 마찬가지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변하는 것을 본 것이다.]  P.19



하지만 ˝쓰다˝는 자신의 불편한 속내를 결코 부인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와 결혼할때 자신의 부를 과장해서 표현했고, 그녀에게는 언제나 과도하게 자신만만한(무심한?)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부인에게는 언제나 밝은 ˝명˝ 만을 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인에게 결코 말할 수 없는 ˝암˝이 분명히 있었다. 과연 그 ˝암˝은 무엇일까?

[오히데의 입에서 새어 나온 뜻밖의 문구 중에서 맨 처음 오노부의 귀를 때린 것은 ‘사랑‘ 이라는 말이었다. 이 진부하고 흔해빠진 한마디가 얼마나 오노부 앞에 복병처럼 새로운 정취를 느끼게 했는지는 전후의 맥락 없이 단독으로 돌발했다는 것이 주요 원인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두 사람 사이에서 아직 대화의 소재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P.376



사실 ˝오노부˝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 고모부인 ˝고바야시˝ 집에서 자랐지만 어릴적부터 풍요롭게 성장했던 그녀는 특출난 외모는 아니지만 총명함으로 인해 주위로부터 선견지명이 있고 사람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칭찬을 듣고 자랐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했던 ˝쓰다˝ 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명˝ 만 있을 것 같은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결혼해서 반년 넘게 살고 있는 지금, 쓰다에 대한 오노부의 생각은 변했다. 하지만 쓰다에 대한 쓰기코의 생각은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쓰기코는 어디까지나 오노부를 믿었다. 오노부도 이제 와서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할 여자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선견지명으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소수의 행운아로서 쓰기코 앞에 자신을 내세우고 있었다.]  P.197



하지만 ˝오노부˝는 결혼을 하고 나서 ˝쓰다˝에게도 ˝암˝이 존재함을 느끼게 되지만, 언제나 뛰어난 선견지명이 있다고 주위의 칭송을 받던 그녀는 자신의 결혼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남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남편에게 어떤 ˝암˝이 있는지 예상조차 못한다. 그리고 남편 주위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자신만 모르는 무언가의 비밀이 남편에게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아무도 그녀에게 속시원하게 이야기 해주지 않고 자신이 없을때 뒤에서만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묻지도 못한다. 과연 ˝쓰다˝가 가진 ˝암˝은 무엇일까?

[˝제발 저를 안심시켜주세요. 도와준다 생각하고 안심하게 해주세요. 저는 당신 말고 기댈 데가 없는 여자니까요. 당신이 떠나면 저는 그것으로 무너져야 하는 불안한 여자니까요. 그러니 제발 안심하라고 말해주세요.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까 안심하라고 말해주세요.˝]  P.451



겉으로 보이기에는 너무나 잘어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하는 부부이지만 사실 서로에게 안좋은 면은 철저히 숨기고 솔직하지 못한 그 둘의 관계,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서서히 두사람을 압박해가면서 두 부부 사이에, 그리고 주변사람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길래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은 다 알면서도 나만 몰라야 하는 사실이 존재해야만 하는 걸까?

[자기 일밖에 생각할 수 없는 오라버니하고 올케언니는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친절을 받아들일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다시 말해 남의 호의에 감사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절하되었다는 뜻이에요. 오라버니하고 올케언니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어디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자신들한테 엄청나게 불행한 일이 될 거예요. 인간답게 기뻐하는 능력을 처음부터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이거든요. ]  P.325



치질 수술을 마친 ˝쓰다˝는 어떻게든 과거의 아픔인 ˝암˝의 세계로 돌아가서 이를 해결하려고 하고, ˝오노부˝는 자신의 선택이 옮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쓰다˝를 ˝명˝의 세계로 끌어 올리려고 한다. 과연 두 부부의 미래에는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까?

[˝자네한테는 너무 여유가 많다고. 그 여유가 자네를 너무 사치스럽게 만드는 거라네. 그 결과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자마자 곧바로 다음 것을 원하게 되지. 좋아하는 것을 놓쳤을 때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하는 거고.˝]  P.488





소세키의 <명암>은 독자에게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어려운 인간의 마음,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밝은 ˝명˝만 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절반도 채 모르는거다. 언제나 드러나는건 아주 일부분이니까.

[˝러시아 소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을 거네. 사람이 아무리 미천해도, 또 아무리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때로는 그 사람의 입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만큼 고마운, 그리고 조금도 겉으로 꾸미지 않은 지고지순한 감정이 샘물처럼 흘러넘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거네. 자네는 그걸 허위라고 생각하나?˝]  P.106



소설이 미완성이다보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도대체 소세키가 그린 <명암>의 결말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파국이 아니었을까? 소세키의 작품중에 해피엔딩인 작품이 별로 없었으니까. 누군가가 소세키가 끝내지 못한 이야기의 끝을 맺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Ps. 드디어 현암사 소세키 시리즈를 완독했다. 이제는 아직 못구한 책 세권을 구매하고, 종합 페이퍼를 써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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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5-17 1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통하지 못하는 부부를 통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이야기네요. 미완성이라 ‘암‘은 결국 밝혀지지 않나요?
새파랑님 현암사 시리즈 다 읽으신거 축하드리고 대단하세요.
저도 이 작품 맘에 드네요.

쓰다 조크 웃겼습니다. ㅋ

새파랑 2022-05-17 13:08   좋아요 2 | URL
뒷부분에 약간 밝혀지는데 그러다가 끝나버려서 아쉬웠습니다 ㅜㅜ 역시 사람 이름은 잘지어야 하나봅니다~!! 갠적으로 좋았는데 미완이다 보니 읽으시면 아쉬움이 남으실수도 있습니다 ^^

미미 2022-05-17 1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명암이 이런 의미였군요? 첫 발췌문에 압도되었습니다.👍 미완성 작품이라니 사람마다 이 책을 읽으면 떠올리는 결말이 다 다를것 같아요. 드러난 건 극히 일부분이란 말씀에 공감해요. 그래서 서로들 오해도 많이하고 상처도 받겠죠. 그래서 또 그걸 다 포용하는 사람은 더욱 빛나나봅니다.ㅎㅎ

새파랑 2022-05-17 13:11   좋아요 3 | URL
첫문장 맘에 드시는군요. 생각해보면 다 그런거 같아요. 소세키는 정말 철학가 같아요 ㅋ 다 읽고 나서 화도 좀 났습니다. 아니 여기서 끝나는거야? 이런 마음~ 소세키 작품은 후반기로 갈수록 더 성숙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

거리의화가 2022-05-17 13: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새파랑님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려요^^
인생의 명암. 사람의 명암. 여러 생각이 들게 합니다. 가까이 붙어 사는 사람들도 서로를 다 알지 못하죠. 자기 자신도 잘 모를 때가 많잖아요~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을지... 어려운 일 같습니다. 통합 페이퍼 기다려지네요^^ㅎㅎ

새파랑 2022-05-17 13:13   좋아요 2 | URL
예전에 읽은 책들이 몇권 있어서 금방 읽었습니다 ㅋ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게 사람 마음인거 같아요 ^^ 제가 언제 날잡아서 한번 써보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2-05-17 1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의 작품은 현암사 것이 최고 최고!!!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라는 문장을 최근 저도 썼었네요. 그런데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지요.

새파랑 2022-05-17 13:34   좋아요 2 | URL
소세키 읽으시려면 현암사가 최고 맞습니다 ^^ 저도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지 하다가도 보이는것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

mini74 2022-05-17 17: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쓰다의 동생 완전 촌철살인의 대가인데요 ㅎㅎ 새파랑님 축하드리옵니다. 소세키완파 도장 꾸우욱 😊

새파랑 2022-05-17 17:23   좋아요 3 | URL
어디 스티커 같은 거 주면 좋을텐데 ^^ 주인공인 ˝쓰다˝는 자신이 지식인인지 아는데, 주변 사람들이 더 똑똑한거 같아요. 냉철하기도 하고 ㅋ

페넬로페 2022-05-17 19: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명과 암에 대해 이렇게나 포인트를 잘 살려주시다니. 역시 소세키 완독자 포스가 넘쳐 흐르십니다**
저는 여자라서 그런지 오노부가 안되어 보이더라고요.
오노부 주변에 적이 너무 많고 쓰다는 좀 우유부단한 남자같았어요.
말 그대로 쓰다? ㅎㅎ
마지막에 온천으로 떠나는것도 그렇고^^
현암사 전집 완독!
감축드리옵니다^^

새파랑 2022-05-17 19:32   좋아요 3 | URL
잘쓰려고 해봤는데 막상 쓰려니까 힘들더라구요 ㅋ 등장인물도 많았는데 다 빼먹었습니다 😅 저도 오노부가 안타까웠어요. 마지막 온천이야기는 거기서 딱 끝나니 많이 아쉬웠어요 ㅜㅜ

파이버 2022-05-18 0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혼 전 연애 시절에 밝은 모습만 보여주는건 이해가는데 결혼하고나서도 ‘ 암‘을 숨기는건 답답하네요 결말이 나지 않은 소설이라 두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을지 더 궁금해집니다

새파랑 2022-05-18 08:10   좋아요 2 | URL
아마 알면 큰일날까봐 그런거 아닐까요?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ㅋ 저 혼자만의 이야기 결말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

희선 2022-05-20 0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썼다면 쓰다와 오노다는 헤어졌을지... 끝까지 못 쓰다니...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르죠 밝아 보여도 그건 그저 보이는 것이기만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어둠이 있을지 그것도 모르는 거죠 있을지도 없을지도...

새파랑 님 소세키 책 다 보셔서 좋으시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05-20 07:15   좋아요 2 | URL
다 읽어서 좀 아쉽습니다 ㅋ 더 읽을 책이 없어서요 ㅜㅜ 아직 단편집이 한권 더 남아있긴 하지만요~!

그레이스 2022-05-20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 👏 👏 👏 👏 👏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2-05-20 11:18   좋아요 1 | URL
먼저 다 읽으신 그레이스님을 선배님으로 모시겠습니다 ^^
 
오늘을 잡아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N22068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솔 벨로의 1956년 발표작품인 <오늘을 잡아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주인공 "토미"의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하루를 정밀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배우로서 실패하고, 가장으로서 버림받았으며, 아버지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을 살아온 "토미"에게 과거는 악몽일 뿐이었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잘 가거라, 청춘이여! 오, 잘 가거라, 경이로웠지만 어리석게 허송세월한 나날들이여! 나는 그때 얼마나 철없는 멍텅구리였던가. 지금도 그렇지만,"]  P.52



그나마 호텔에서 알게 된 자칭 의사인 "탬킨" 박사에게 정신적인 의지를 하게 되고, 의사의 제안에 따라 무리하게 주식에 투자하여 한탕을 꿈꾼다. 투자의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 책임이긴 하지만 "템킨" 박사마져 사기꾼으로 밝혀지고, "토미"는 또한번 좌절을 경험한다. 과연 "토미"에게 희망이란 어울리지 않는 사치인 걸까?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그의 노력은 소용없었다. 목구멍에 맺혔던 커다란 비탄의 응어리가 부풀어 올라와 그는 완전한 포기 상태에서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는 마음껏 울었다.]  P.197



아니다. 희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유일하게 공정한 것이다. "토미"가 오늘 하루에 경험한 좌절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연히 들어가게 된 장례식장에 죽음을 맞닥드리게 되고, 이를 계기로 다시한번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는 오늘의 좌절을 통해 진정으로 '오늘을 잡은 것(Seize the day)' 이었다.

[오라, 슬픔이여! 감미로운 슬픔이여!
내 아기처럼 그대를 품에 안으리!]  P.153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다시 오늘은 올테고, 그 오늘을 잡으면 되니까.

[상상력을 앞세우면 안 되네. 현재 속에 있어 봐. 이 시간을, 이 순간을, 이 시점을 잡아 봐.]  P.154



Ps. 투자는 역시 몰빵하면 안되고, 다른 사람 말 듣고 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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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5-16 09: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은 것 같은데 왜 새로운 느낌이 들죠? 아... 다시 읽어봐야할듯.

루나 화폐 소식 듣고 PS 글 보니 뭔가 묘하게 겹쳐집니다^^; 옆지기도 주식과 코인을 하는데 여기에 투자했을까봐 식겁했다는.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고 하네요ㅠㅠ 투자는 정말 현명하게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처럼 잘 모르는 사람은 안전하게 저축으로 가는게 나은 듯요.

새파랑 2022-05-16 09:55   좋아요 3 | URL
투자(?)가 주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왠지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ㅋ 이 책이 상당히 오래된 책이더라구요. 전 처음 읽은 작가였어요 😅 요새 통장 열어보는게 무섭습니다 ㅜㅜ

미미 2022-05-16 12: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템킨 박사 마지막에 얼마나 얄밉던지요! 그런데 묘하게 템킨 박사가 명언도 간간히 해주어서
신기했는데...저는 이 책 리뷰에 횡설수설했던거 같은데 새파랑님 중요한 부분을 탁탁 찝어주셔서
즐겁게 회상하며 읽었습니다^^*

새파랑 2022-05-16 13:05   좋아요 5 | URL
이 책을 금요일에 다읽었는데 너무 시간이 지나고 써서 잘기억이 안나네요 ㅋ 우주점 갔다가 이 책이 중고로 있길래 냉큼 구매해서 바로 읽었습니다 ^^ 미미님 아니었음 이 책 구매 못했을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2-05-16 13: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절판된 솔 벨로우의
책이네요.

일단 수배는 해두었으나...
과연 언제나 읽게 될런지요.

맛만 사알짝 보고 갑니다.

새파랑 2022-05-16 15:29   좋아요 2 | URL
우주점 가면 절판된 책을 득템하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솔 벨로우 처음 알았습니다 ^^

mini74 2022-05-16 16: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지막 글귀에서 빵 터졌습니다.~

새파랑 2022-05-16 16:45   좋아요 3 | URL
이제 저도 다른 사람 말 안듣고 책투자에만 몰빵하겠습니다 ^^

페넬로페 2022-05-16 18: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꾸 벼랑으로 몰리는 사람은 뭔가 한번에 역전 될 수 있는 것에 유혹을 받는 것 같아요.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다시 오늘이 온다
아자아자^^

새파랑 2022-05-16 18:47   좋아요 5 | URL
실패해도 그것에서 무언가를 배우면 실패는 아닌거 같아요. 어차피 내일은 오늘로 오니까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

희선 2022-05-17 0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이 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좋지만, 좋은 말만 들으면 안 될 듯해요 사기꾼은 좋은 말만 하는... 다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아요 좌절해도 살아 있다면 살아야죠


희선

새파랑 2022-05-17 07:49   좋아요 1 | URL
역시 주변 말보다는 자신이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가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좋은 말은 듣기만 좋을뿐~!!
 

N22067

˝내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건 그럼으로써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기위해서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일이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고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네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인 <솔로몬왕의 고뇌>는 그의 실질적인 마지막 작품은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가 꿈꿨던 노년의 삶, 그리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사랑이라는 감정. 로맹가리는 이 책을 통해 나이는 단지 숫자일뿐 감정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사랑Amour (회화) 풀이 잘 묻을 수 있도록 새 캔버스에 일으키는 보풀

사랑 Amour (석고 작업) 석고를 만지고 난 다음 손가락에 남는 미끈거림 같은 것

사랑Amour 자신보다 상대방의 안녕을 원하고, 그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경향

사랑Amour 어떤 가치에 대한 사심 없고 깊은 집착
‐------------------



어느날 25살의 택시기사이자 수리공인 화자 ˝장˝의 택시에 84살의 기성복 바지 사장(진짜로 입는 바지이다)인 ˝솔로몬˝이 타게 되고, ˝장˝의 얼굴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발견한 ˝솔로몬˝은 ˝장˝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한다. 그가 제안한 일은 ‘우정의 구조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일로, ˝솔로몬˝은 ‘우정의 구조회‘ 회장이었다. ˝솔로몬˝은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신을 대신하여 그들을 돕는다. 구조회의 주요 임무는 절망에 찬 사람들의 도움전화를 받는 일이었지만, ˝솔로몬˝은 ˝장˝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는 일을 맡긴다.

[그가 보기에 솔로몬 왕은 신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신이 수치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 그를 대행하고 있었다. 솔로몬 씨의 관점에서 그런 일은 당연히 신이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여력이 있는 자신이 대신해 그 일을 한다는 것이다.]  P.51



여기에 추가해서 ˝솔로몬˝은 ˝장˝에게 자신과 오래전에 아는 사이였던 샹숑가수 출신인 65살의 ˝마드무아젤 코라˝의 집을 방문하기를 부탁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솔로몬˝과 ˝코라˝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 있었던 걸까?

[˝젊고 아름다웠던 때의 습관, 상대의 마음에 들려는 습관 같은거 말이야. 모든 것이 지나가 버렸지만 그것만큼은 놓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  P.64



얼굴에는 세월의 흐름이 비껴나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젊은 시절의 감성과 행동을 가지고 있었던 ˝코라˝에게 ˝장˝은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의 연인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장˝이 느낀 감정은  남여간의 사랑이 아닌 보편적인 사랑이었고, 이 사랑을 통해 ˝코라˝는 행복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무려 40살의 나이차이가 나는 관계였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은 ˝코라˝의 기쁨을 위해 헌신한다.

‐------------------
˝내가 그 여자에게 데이트하자고 했어.˝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누군가는 그럴 필요가 있잖아.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북극 같을 테니까.˝
˝북극?˝
˝그런 게 없다면 세상은 빙산과 공허뿐인, 영하 백 도의 얼음땅이 될 거라고.˝
‐------------------  P.98



이후 ˝장˝은 ˝솔로몬˝이 일부러 자신을 ˝코라˝에게 접근시킨 사실을 알게 된다. 젊은 시절 ˝솔로몬˝은 ˝코라˝와 연인관계 였으나 ˝솔로몬˝은 독일 통치시절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샹젤리제 거리의 지하실에서 4년 동안이나 숨어 지냈어야 했고, ˝코라˝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 그를 떠났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젠 너무 늦었다는 자각, 삶이 결코 우 리의 빚을 갚아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는 때가 오는거야. 마드무아젤 코라의 경우처럼 말이야. 그래서 고뇌가 시작되지.]  P.236



하지만 ˝솔로몬˝은 그녀를 잊을 수 없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화장실 마담으로 일하던 ˝코라˝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녀를 물질적으로 돕게 된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던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전할 수 없었던 ˝솔로몬˝은 그저 멀리 서서 그녀를 도와줄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대리인인양 ˝장˝을 그녀의 곁에 두게 했다.

[˝그 여자의 천진함과 서민적인 쉰 목소리, 백치 같아 보이는 작은 얼굴을 사랑했소. 그 여자는 줄곧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서 구해주고 보호해주고 싶은 본능을 자극했소. 그 여자처럼 자기 삶을 망치는 걸 겁내지 않는 사람도 없소. 하지만…… 난 때때로 그 여자가 감탄스럽다오. 연인을 위해 자기 삶을 망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말이오.˝]  P.377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 ˝코라˝는 ˝장˝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코라˝는 ˝솔로몬˝의 물질적 도움이 과거에 그를 버린 자신에 대한 복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코라˝는 누구와 사랑을 하게 될까? 보편적인 사랑의 ˝장˝일까, 아니면 과거의 사랑이자 미안함이 남아있는 ˝솔로몬˝ 일까?

[그들이 떠난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두 번 니스에 갔다. 지금 내 귀에는 내 아들이 소리를 지르고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젠가 그 아이에게 솔로몬 왕 이야기를 해주리라 기성복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큰 키로 당당하게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던 그의 웃음 소리에 대해 말해주리라.]  P.399





<솔로몬 왕의 고뇌>는 1979년에 발표되었고, 1년 뒤인 1980년에 로맹가리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 책에서 로맹가리는 노년의 꿈같은 사랑을 이야기 했는데 현실에서는 어째서 그렇게 스스로 마지막을 선택했던걸까? 그가 써내려간 솔로몬의 이야기는 단지 환상일 뿐이라는걸 깨달아서 였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방법만이 불멸이라고 생각했던걸까?

[˝불멸, 이 단어는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한다. 그 말이 거기, 사전 안에 있는 걸 확인하면 마음이 놓인다.˝]  P.76



이야기 자체도 좋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로맹 가리식 위트 역시 유머러스했지만, 그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으니 그렇게 재미있게만 읽을수는 없었다. 그래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알지 못한 채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올 수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내가 그녀 곁을 떠나는 순간 그녀의 모습은 점점 더 커졌다. 나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정도로 그녀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사랑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기에, 모든 이들이 그로 인해 죽을 지경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았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사랑 덕분에 죽을 지경에서 벗어나 삶을 살기 시작했다.]  P.230




Ps. 에밀 아자르의 네 작품을 다 완독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순위는 아래와 같다.

1. 자기앞의 생
2. 솔로몬 왕의 고뇌
3. 그로칼랭
4. 가면의 생 (개인적으로는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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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5-11 09: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에밀 아자르 하면 역시 <자기앞의 생>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일까요? 떠나고 나서 그녀의 모습이 더 커졌다는 표현이 와닿습니다.

새파랑 2022-05-11 09:34   좋아요 4 | URL
<자기앞의 생> 모모가 커서 겪는 이야기가 이 작품인거 같아요 ㅋ <자기앞의 생> 성인버젼? ㅋ 이 책도 추천합니다~!!

페넬로페 2022-05-11 09: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에밀 아자르의 작품을 다 완독하셨네요, 역시~~
자기 앞의 생도 좋지만 새파랑님의 리뷰로 본 이 책도 좋네요.
소설속 요소가 많은 것 같아요.
아모르에 대해 여러 해석이 좋아요^^

새파랑 2022-05-11 09:36   좋아요 4 | URL
이 책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아요~! 페넬로페님은 이 책 좋아하실거 같습니다 ^^

미미 2022-05-11 10: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꼭 읽어야겠네요 발췌문들이 진한 에스프레소같아요.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라하셔서 자전적 삶의 요소를
여기저기서 느꼈어요.아마도 코라는 진 세버그?
https://blog.naver.com/zeilism/221096849990 로맹가리의 드라마틱한 삶을
잘 정리한 포스팅 놓고 갑니다.^^*

새파랑 2022-05-11 10:38   좋아요 3 | URL
에스프레소 맞는거 같아요~! 이책 이미 미미님 서재에 있을테니 언젠가 읽어보세요 ㅋ
저 포스팅 들어가보겠습니다 ^^

얄라알라 2022-05-11 12: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최근 ˝파친코˝(책이 아니라 우선은 드라마로) 접하면서, 주인공 한수가 선자를 꼭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더 큰 의미의 사랑 대상 삼았다는 리뷰 글을 읽었어요 한수 역시 선자가 나이 들었어도 소녀처럼 보았다는 묘사, 멀리서 물질적으로 도왔다는 대목, 등등

[솔로몬 왕의 고뇌]에서 소개해주시는 관계와 짝패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바지사장이 아닌) 진짜 ˝바지사장˝은 알겟는데, ˝화장실 마담˝은 무슨 일인지 처음 들어봤어요. 부끄...모르는 게 참 많네요 저는

새파랑 2022-05-11 13:55   좋아요 4 | URL
아 <파친코>가 이 책이랑 좀 비슷한 내용이 있나보네요 ㅋ 갑자기 급 궁금해집니다~!! 바지는 진짜 pant입니다 ㅋ
저도 ‘화장실 마담‘은 잘 모르겠습니다 😅 책에 그렇게 써있더라구요 ㅋ

얄라알라 2022-05-12 11:30   좋아요 1 | URL
오늘 새벽부터, 드디어 ˝드라마˝가 아닌 ˝원작 소설˝로 파친고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파친코 전용 단어장이 필요하더라고요.

몇 장 안 읽었는데, 완전 좋아요!!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지만 즐독하려고요
새파랑님께서라면 금방 읽으실 듯요

새파랑 2022-05-12 12:09   좋아요 0 | URL
오늘부터 중고책 검색해보겠습니다~! 전 중고책이 정이 가더라구요 ^^

mini74 2022-05-11 18: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지 사장ㅎㅎ 새파랑님 설명 넘 재미있어요 ~~ 두번째로 좋은 작품이시라니 솔깃합니다 새파랑님 *^^*

새파랑 2022-05-12 07:09   좋아요 1 | URL
바지사장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해서요 ㅋ 저는 이 작품이 상당히 마음에 들더라구요 ^^

얄라알라 2022-05-12 11:32   좋아요 2 | URL
mini74님께서는 ‘화장실 마담‘ 아실까요? 몸통, 줄기는 말고 잎사귀 하나 두고 계속 질문하는 제가 부끄럽지만 궁금하네요...^^:;

mini74 2022-05-12 15:48   좋아요 1 | URL
저는 화장실 앞에서 돈 받는 여자? 아님 청소하시는 분?

그레이스 2022-05-11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솔로몬왕의 고뇌가 2위네요
책 한권 또 추가요 ^^

새파랑 2022-05-12 07:10   좋아요 3 | URL
어차피 네권중에 2위이지만 ㅋ 자기앞의 생과 비슷한 감동이였어요 ^^ 꼭 읽어보세요 ~!!

희선 2022-05-12 02: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밀 아자르 하면 《자기 앞의 생》밖에 몰랐어요 네 작품이나 있었군요 로맹 가리 소설도 못 읽었지만... 바지 사장 설명 보고 저도 좀 웃었습니다 아무도 그 바지 사장 생각하지 않을 텐데...


희선

새파랑 2022-05-12 07:12   좋아요 3 | URL
신기하게 로맹가리가 노린건지 진짜 바지 사장이었습니다 ㅋ 이 작품도 괜찮아요~! 한번 읽어보세요 ^^
 
달려라 메로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욱송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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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65

˝아름다움에 무슨 내용이 필요한가! 순수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무의미하고 무도덕적인 것이다.˝


내면의 바탕이 고독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잠깐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 평소에는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내면을 숨기기 위해, 내면을 극복하기 위해 지나치게 활달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 <달려라 메로스>를 읽고 그런 사람이 떠올랐다. 다지이 오사무 역시 밝게 써보자고 마음먹고 글을 썼지만 고독을 숨길 수 없었던 작품집이 <달려라 메로스>가 아닐까 한다. <인간실격>, <사양> 처럼 완전 어둡지는 않고, 오히려 <만년>, <쓰가루>와 가까운, 좀 밝은 고독이 작품속에 골고루 담겨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작품에서 자전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는데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귀향>, <동경팔경>, <후지산 백경>, <고향> 역시 자전적인 느낌이 대단히 강한 작품들이다.

[나는 십 년 만에 고향 땅을 밟았다. 쓸쓸한 땅이었다. 동토의 느낌조차 들었다. 매년 지하 깊숙한 곳까지 얼기 때문에 흙은 부풀어올라 황량해진다. 집도, 나무도, 흙도 바랜 느낌이다. 길은 하얗게 메말라 있어 걸어도 발바닥에는 아무 느낌이 없다. 너무 메마른 느낌이다.]  P.34 귀향



특히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과 작가로서의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 자신의 문제로 인한 가족에게의 피해, 가족에게의 경제적인 의존 때문인지 가족에 대한 부채의식이 대단히 크다. 그래서 작품속에어 자신의 열등성을 자주 보이는데 이 단편집에도 그런 부분이 많다.

[많은 육친들 가운데 나 혼자만이 비열하고 가난한 근성을 지닌, 열등하고 보기 흉한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혼자서 쓴웃음을 지었다.]  P.36  귀향





자전적인 이야기 이외에도 <유다의 고백>, <달려라 메로스>처럼 성서나 신화를 모티프로 해서 다자이 오사무가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은 왠지 그답지 않으면서도 신선하고 좋았다. 특히 표제작인 <달려라 메로스>에서 죽음을 무릎쓰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메로스, 그러면서도 한순간 갈등에 휩싸이기도 하는 메로스를 보면서 나약하지만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싶어했던 다자이 오사무가 느껴지기도 했다.

[누가 있어 나의 이 진심 어린 사랑을 제대로 이해해줄 것인가. 아니,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지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기 위한 얄팍한 사랑이 아니다. 나는 영원히 다른 사람들의 원망을 사겠지. 그러나 이 순수한 사랑의 욕심 앞에서는 어떤 형벌도, 어떤 지옥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P.105 유다의 고백

[˝그러니까 달리는 것이다. 믿고 있으니까 달리는 거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 늦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목숨도 문제가 아니다. 나는 엄청나게 큰 무언가를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P.234  달려라 메로스





하지만 가장 좋았던 작품은 여학생으로 빙의하여 써내려간 <여학생> 이란 작품이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여성으로 태어났더라면 이런 감성이었을까? 겉으로는 발랄하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많은,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데 있어서도 남들과 다른 엉뚱함을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 밝아서 더 슬프게 느껴졌다.

[여자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는 웃음 한 번이면 충분하다. 정말 놀랍도록 무서운 일이다. 앞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P.171  여학생

[물끄러미 꽃을 바라보며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꽃을 사랑할 수 있다니 인간에게도 좋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175  여학생




어떤 작가의 대단한 작품을 읽고나면 ˝와,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하고 감탄을 하는데, 또 어떤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을 읽고나면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하는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다자이 오사무는 후자에 딱 맞는 작가다. 저렇게 예민해서, 저렇게 약해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대작가의 걱정을 한다는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다만...)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 더 애정이 가는 것 같다. 다른 분들에게 추천하기는 좀 꺼려지지만 나에게는 너무 좋았던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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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08 19: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밝게 써보자 맘먹었지만 고독을 숨길 수 없었단 새파랑님 글 읽으니 급 관심이 생깁니다 ~~ 다자이 오사무가 써내려가는 여학생이야기라니 그것도 관심가고요. 새파랑님 잘 읽었어요 *^^*

새파랑 2022-05-08 19:59   좋아요 4 | URL
밝은듯 하면서도 슬픈 느낌이 나는 책이었어요 ㅋ 이 책 전체 보다는 도서관에서 <여학생>만 읽어보셔도 좋을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2-05-08 19: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민음북클럽 에디션으로 며칠전 받았습니다 ^^

새파랑 2022-05-08 20:00   좋아요 4 | URL
신기하게 제가 읽으려고 하니 북클럽 에디션에 달려라 메로스가 있더라구요 ㅋ 전 이번에 북클럽 패쓰했습니다 😅

미미 2022-05-08 2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다의 고백>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있던 책에서 추가로 담겨있어서 본것 같아요. 그의 글에는 열등한 인간의 고뇌가 밑바닥까지 잘 드러난것 같아 저도 좋더군요.단편모음이라니 기대됩니다.^^*

새파랑 2022-05-08 21:31   좋아요 4 | URL
아 인간실격 뒷부분에 있었군요 ㅋ 전 처음 읽었는데 좋았어요 ㅋ 뭔가 뻔한거 같으면서도 색다른 느낌이 들더라구요 ^^ 고뇌하면 다자이 오사무~!! ㅋ

페넬로페 2022-05-09 20: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메로스가 사람 이름이군요.
뭘까 하고 궁금했거든요~~
사양보다 밝고 단편이라 작가의 또다른 글의 취향을 알 수 있을것 같아요.
새파랑님은 전 세계 소설을 섭렵하십니다^^

새파랑 2022-05-09 21:41   좋아요 3 | URL
무슨 신화? 에 나온다는데 전 처음들어봤습니다 😅 전세계까지는 아니고 아주아주 좁은 국가들 책만 읽고 있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