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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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황현산 선생의 책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를 선물 받았다. 2014년 1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그러니까 저자가 영면에 든 2018년 8월이 되기 두 달 전까지 트위터에 쓴 글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책장을 천천히 넘기다가 문득 이 짧은 문장들을 길고 깊은 사유로 발전시켜 책으로 쓰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문학자인 저자는 평생 다수의 불문학 서적을 집필 또는 번역한 반면, 일반 대중을 위한 책으로는 <밤이 선생이다>, <사소한 부탁> 등을 비롯한 몇 권의 책만 냈다. 저자의 책을 모두 읽자니 나의 불문학 지식이 일천하고, 저자가 나 같은 일반 대중을 위해 쓴 책만 읽자니 그 수가 너무 적어 아쉬운 마음이다.


<밤이 선생이다>는 저자가 1980년대부터 2013년에 이르는 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추려 엮은 책이다.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치하에서 학자로 살아가는 어려움에 관해 쓴 글도 있고, 보수 정권을 보면서 역사가 후퇴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쓴 글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박정희 정권 시절 외국에서 책 한 권을 들여오려면 서대문 국제 우체국에 가서 '미스 아무개'의 통관 허가를 받아야 했다는 글이다. 지금은 국내에서 외국 책 구하기도 쉽고, 외국 서점에 책을 주문하면 짧으면 하루, 길어야 일주일 안에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선편으로 오기 때문에 주문 후 몇 달은 지나야 한국에 도착하고, 도착하더라도 행여 '불온한' 내용이 있는 건 아닌지 검열을 거친 후에야 받아볼 수 있었다.


어떤 책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으며 여간해선 책을 내주지 않는 미스 아무개에게 "내가 공부를 하는데 국가가 왜 방해를 하느냐"라고 항변했다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웃플' 수 있는 지금은 행복한 시절일까. 지금은 국가가 나서서 내가 무엇을 읽든 어떤 생각을 하든 방해하는 일이 없으니 다행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읽고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바보 취급 당하고 위험 분자로 여겨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유학 경험 없이 오로지 한국에서만 공부해 교수가 되고, 평생 다른 길에 한 눈 팔지 않고 교육과 학문에만 전념한 저자와 같은 선생을 앞으로 한국에서 또 볼 수 있을까. 저자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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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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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의 주인공 미코시바 레이지는 십 대 시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가 있는 인물이다. 다행히 소년원에서 좋은 간수를 만나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열심히 공부해 사법시험에 패스하고 변호사가 된다. 하지만 세상은 미코시바가 속죄를 하고 변호사가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전과가 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하고, 미코시바가 무슨 일을 하든 색안경을 끼고 본다. 그때마다 미코시바는 말한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짓지 않은 사람과 다른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죄란 속죄를 했다고 씻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말이다.


야쿠마루 가쿠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도 비슷한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다. 40대 중반의 평범한 가장 무카이는 어느 날 뜻밖의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편지에는 15년 전 무카이가 한 노파에게 한 약속을 지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5년 전 사연은 이렇다. 무카이는 사실 전과가 있는 몸이다. 전과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우연히 억울한 사연으로 딸을 잃고 슬퍼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무카이에게 자신이 무카이의 신분도 바꿔주고 새 삶을 시작할 돈도 줄 테니 자기 딸의 인생을 망가뜨린 놈들을 찾아가 대신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가 복수를 부탁한 놈들은 당시 무기징역 형을 받고 감옥에 있는 상태였다. 무카이는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할머니한테 돈도 받고 신분도 바꿨다. 그리고 그대로 잠적했다.


무카이는 그 때로부터 15년이나 지났으니 할머니가 그때의 약속을 잊었거나 세상을 떠났을 줄 알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할머니로부터 15년 전의 약속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약속대로 놈들을 죽여달라는 말을 들으니 황당하다. 무카이는 없던 일로 하고 평소처럼 지내보려 하지만, 무카이의 가족들이 위험에 빠지며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15년 전의 약속을 지켰다가는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갇힐 것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가는 15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 얻은 것들이 전부 사라질 상황. 과연 무카이는 어떤 선택을 할까.


무카이는 신분을 바꾸고 전보다 열심히 살면 과거에 지은 죄가 덮어질 거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고 모두가 그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다. 하지만 무카이가 신분을 바꾼 후 얼마나 열심히, 선량하게 알았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를 용서하고 감싸준다. 과거의 악행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선행 또한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니 죄가 있는 사람은 그 죄를 없애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행동으로 속죄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 작가가 쓴 일본 소설인데 정작 일본 정부나 우익은 이런 책을 읽지 않는 건지. 부디 이런 책을 읽고 깨닫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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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플레이리스트 4 - 상 - 드라마 원작소설
안또이 지음, 이슬 극본, 플레이리스트 제작 / 대원앤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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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로 유명한 배우 김새론이 투입되면서 화제를 모은 인기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 소설판 제4권이 출간되었다. 1권에선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대학교 1, 2학년이었는데 4권에선 3, 4학년에 되거나 군대에 가고 없다. 그 대신 빈자리를 채워주는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3권에서 처음 등장한 푸름과 하늘, 그리고 4권에서 처음 등장하는 지민이다.


지민은 재수를 해서 서연대학교에 들어온 신입생이다. 지민이 재수를 불사하며 서연대학교에 들어온 건 고등학교 시절 서연대학교에 캠퍼스 투어를 하러 왔다가 첫눈에 반한 '수시남'을 만나기 위해서다. 아직까지 수시남을 찾지 못한 지민은 선배들에게 남학생들이 많이 듣는 교양 수업을 알아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수강 신청에 성공한다. 수업의 제목은 '현대 사회의 사랑'. 대체 수시남은 누구이며, 과연 지민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짝사랑했던 수시남을 만날 수 있을까.


한편 나의 연플리 최애 캐릭터 재인은 4학년이 되어 졸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 시각 디자인학과이다 보니 졸업 전시도 준비해야 하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하고 이래저래 바쁘기 때문에 연애에 정신을 팔 겨를이 없다. 그런데 이 와중에 강윤이 제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벌써 1년 이상 지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강윤의 이름을 들으니 가슴이 세차게 뛴다. 재인은 자신이 신청한 수업을 강윤도 듣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수강 신청을 철회하고 다른 수업을 신청한다. 그 수업의 제목은 '현대 사회의 사랑'. 설마 재인과 안 좋게 헤어진 강윤이 이 수업을 듣지는 않겠지?


지민이 재수까지 하면서 서연대학교에 들어오게 만든 수시남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는데 알고 나니 너무 안타까웠다. 이미 수시남에게는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도 수시남을 좋아한다는 걸 독자인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지민이 수시남을 만나기 위해 공강 시간마다 다른 단과대를 누비고, 동기들한테 '미(팅에 미)친'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가능한 한 많은 남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이 더 아팠다(게다가 지민 역의 김새론 배우, 왜 이렇게 예쁜가요 ㅠㅠ 이제까지 소설만 읽었는데 이러다 드라마 정주행 갈지도 ㅎㅎㅎ).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잘 돼가는 커플 방해하는 밉상 캐릭터로 전락할 줄 알았던 지민에게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최애 캐릭터 재인과 강윤도 이 정도면 괜찮은 결말인 듯. 완결 같지만 완결 아니길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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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플레이리스트 3 - 드라마 원작소설
안또이 지음, 이슬 극본, 플레이리스트 제작 / 대원앤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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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들의 풋풋한 사랑과 성장을 그리며 글로벌 통합 조회 수 4억 뷰를 달성한 초대박 인기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의 소설판 제3권이 출간되었다.


3권은 연플리 공식 커플 현승과 지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교제를 이어왔던 현승과 지원은 한 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도 사이가 여전히 좋지 않다. 처음 사귈 때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연애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더 커서 상대의 흠이나 단점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 번 헤어졌다가 다시 사귈 때는 상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연애에 대한 갈망도 별로 없어서 상대적으로 상대의 흠이나 단점이 전보다 잘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둘은 사소한 일에도 말다툼을 일삼다 '진짜 이별'을 하기로 한다. 과연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한편 준모는 남몰래 좋아하고 있는 도영에게 먼저 고백할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다. 괜히 먼저 고백했다가 차이면 서로 민망하고 어색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남자에게 1도 관심 없어 보였던 도영이 소개팅에 나간다는 소문이 퍼진다. 준모는 도영이 소개팅에 나가는 게 싫지만, 남자친구도 아니고 아는 선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주제에 소개팅에 나가지 말라고 말하는 게 주제넘는 짓이라는 걸 잘 안다. 결국 준모는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도영이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작전을 준비한다.


연플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플은 재인과 강윤이다. 재인이 워낙 당차고 씩씩한 캐릭터인 데다가 재인과 강윤이 연플리에서 유일한 연상 여자 - 연하 남자 커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잘 사귀는 줄 알았던 재인과 강윤이 연애 시작 100일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ㅠㅠ). 재인은 이제까지 몇 명의 남자와 사귀었지만 한 번도 100일을 넘기지 못한 것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재인의 고민을 들은 후배 푸름은 재인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진짜 한재인'이 아니라 '짝퉁 한재인'을 보여주기 때문에 연애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거라고 말한다.


이번 3권에선 정푸름과 박하늘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푸름과 하늘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 외향적인 성격의 푸름은 하늘을 처음 보는 순간 마음에 들어 바로 말을 걸었고, 그때부터 친구가 되어 대학교까지 함께 진학했다. 사람들은 친해도 너무 친한 두 사람을 연인 사이 또는 썸 타는 사이로 보지만, 그때마다 푸름은 자신의 이상형은 마동석이고, 하늘의 이상형은 수지라며 극구 부정한다. 기존 커플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이 둘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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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타라북스
노세 나쓰코.마쓰오카 고다이.야하기 다몬 지음, 정영희 옮김 / 남해의봄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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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업계나 대량 생산이 일반적이고, 이는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도에는 여전히 대량생산이 아닌 핸드메이드 방식을 고수하는 출판사가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그림책상과 아동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타라북스'다.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는 일본의 편집자 노세 나쓰코, 사진작가 마쓰오카 고다이, 북디자이너 야하기 다몬이 인도에 있는 타라북스를 직접 취재한 내용을 담아 펴낸 책이다. 이들은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2년여간 인도에 방문하며 타라북스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타라북스는 1995년 인도 타밀나두주의 가장 큰 도시인 첸나이에서 어린이책 전문 독립 출판사로 시작했다. 인도는 전체 인구가 13억이 넘는 거대한 나라라서 어린이책, 그림책 시장도 클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인도는 여러 민족과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민족과 부족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그래서 공용어는 힌디어와 영어지만, 힌디어와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엄청 많다. 그러다 보니 인도에서 한 해 동안 출판되는 책이 약 9만 권에 달해도 이 중에 공용어인 힌디어와 영어로 된 책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약 120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되어 있다.


타라북스는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더 불리한 길을 택했다. 다수의 독자들에게 도달할 수 없다면 소수라도 책의 가치를 확실히 알아봐 주고 분명히 구입해줄 독자들을 공략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핸드메이드다. 타라북스의 책은 발주하고 받아보기까지 평균 9개월, 아무리 빨라도 반년은 걸린다. 일단 발주하면 종이 만들기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얼마나 걸릴지 예상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전 세계의 수많은 서점과 독자들이 타라북스의 책을 주문하고 기다린다. 온라인 서점에 책을 주문하면 당일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시대인데도 반년은 걸려야 받을 수 있는 타라북스의 책을 찾는다.


저자는 이러한 생산 방식을 보면서 일본의 상황을 돌아본다. 일본의 서점에는 '도서정가제', '반품제도'가 있어서 재고가 생겼을 때 가격을 내려서라도 팔아치울 수 없고 고스란히 반품된 책은 출판사의 손해로 돌아간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도서정가제와 반품제도라는 시스템을 바꾸기 어렵다면 타라북스처럼 확실히 팔릴 수량만 고품질로 소량 제작하는 방식을 시도해보면 어떨지 제안한다. 요즘 유행하는 독립출판이나 텀블벅 등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출판 방식과 비슷한 접근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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