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격 한중일 세계사 3 - 일본 개항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3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19세기 이후 한국과 중국, 일본의 역사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굽시니스트의 역사 만화 시리즈 제3편 <본격 한중일 세계사 3 일본 개항>을 읽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3 일본 개항>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는 2권에 이어 1850년대 중국을 휩쓴 태평천국 운동의 결과와 당시 서구 열강들의 사정에 관한 설명이다. 중국에서 태평천국 운동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반응을 보였다. 청나라 정부의 부패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계급을 철폐한다는 태평천국 운동의 목적이 당시 서구 열강들이 추구하던 정치 철학과 잘 맞았고, 무엇보다도 태평천국 운동이 (서양 종교의 포교를 엄금하는 청나라 정부와 달리) 기독교 사상을 옹호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사상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이 서구 열강들의 호감을 샀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평천국 운동이 추구하는 기독교 사상이 서구 열강들이 믿는 기독교 사상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는 더 이상 태평천국 운동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고, 태평천국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으로 몰려가 내륙 수로 개방, 통상과 선교의 자유, 공사관 개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불평등 조약을 잇달아 체결했다(여기에 러시아도 가세했다). 이렇게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4개국은 자기들끼리 중국을 어느 정도 '나눠 먹은' 후 목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곳이 바로 일본이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3 일본 개항> 후반부에는 개항 전후의 일본 국내 사정이 자세하게 그려진다. 이 시기의 일본 역사를 이해하려면 일본의 정치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예부터 일본은 상징적 권력을 지닌 일왕과 실질적 권력을 지닌 쇼군이 공존하는 형태의 정치 구조를 유지해 왔다. 17세기에 이르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랜 전란을 종결짓고 에도 막부를 세웠고, 막부의 수장인 쇼군의 지위에 올랐다. 이후 250년 동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들이 안정적인 통치를 해왔으나, 19세기 중반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이 개항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국내 반응이 엇갈리면서 정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정치를 양분한 세력은 쇼군을 정점으로 하는 막부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막부파'와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일왕파'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일왕파는 도쿠가와 가문이 주도하는 막부를 없애고 상징적 권위에 불과한 일왕을 다시 중앙 정치의 정점으로 복귀시킬 사상적 명분으로서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는 '국학'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요시다 쇼인 같은 이들은 막부에 맞서 싸울 명분으로서 조선과 만주 침략을 내세우기도 했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 중에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같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많다.
요시다 쇼인을 비롯한 양이지사들이 막부파를 타도하고자 마음먹게 된 것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부터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전국시대 일본 각지에 있던 다이묘들이 각각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대결을 벌인 전투를 일컫는다. 전투 결과, 도쿠가와 가문이 이끄는 동군이 승리했고, 모리 가문이 이끄는 서군이 패했다. 이후 250년 동안 일본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대조되는 평화로운 날들을 보냈으나, 서군의 영지, 그중에서도 서군을 이끌었던 모리 가문의 영지인 조슈번은 와신상담하는 날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시다 쇼인을 비롯한 양이지사 대부분이 조슈번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 역시 과거 조슈번에 해당하는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위에 기술한 대로 요시다 쇼인은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등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된 인물들의 스승이며, 정한론을 비롯한 일본 제국주의의 기틀이 되는 사상을 주창한 바 있는 인물이다. 아베 신조는 과거 "요시다 쇼인의 사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라고 공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요시다 쇼인이 어떤 인물인지 모른다면 아베 신조의 발언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터. 일본의 역사를 알면 현대 일본 정치를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인이 일본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