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기 민주주의 - 알고리듬이 선거가 되고 고양이가 정치인을 대체한다
나리타 유스케 지음, 서유진.이상현 옮김 / 틔움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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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정치외교학 관련 서적을 전혀 읽지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 서점에서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알고리듬의 선거가 되고 고양이가 정치인을 대체한다"라는 문구에 호기심이 동해 바로 구입했다. 막상 읽은 건 최근인데, 책을 샀을 때 바로 읽지 않고 최근에 읽은 게 차라리 잘 되었다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더 이상 정치인(人)이 필요하지 않게 된 세상을 상정하는데, 이 책이 나온 2024년보다 인공지능, 즉 AI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그 내용이 훨씬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의료 기술이 발달해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 인구 구조상 젊은 사람들은 영원히 약자, 소수자이고 나이 든 사람들은 영원히 강자, 다수자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무의식 데이터 민주주의'이다. 무의식 데이터 민주주의란 쉽게 말해 민의를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민의를 수집해 사실상의 직접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 정치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정당은 인간 대신 고양이처럼 귀여운 동물이나 캐릭터를 후보로 내세워 민의를 대표하게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남은 수명에 따라 투표 가중치를 부과하는 '남은 생애 투표', 조세 피난처처럼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 제도를 가진 나라로 이민하는 '민주주의 피난처'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엉뚱한 생각 같지만, 민주주의 피난처는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머지 증강현실을 이용해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보면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장강명 작가의 소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에 나온 상황과 유사하다. 민주주의 피난처처럼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기술을 활용해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니. 어쩌면 저자가 상상한 '22세기 민주주의'는 훨씬 빨리 실현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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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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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호러,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무서웠던 책은 이 책이다. 이 책은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바둑 AI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패배한 사건 이후 바둑계의 변화를 르포 형식으로 보여준다. 솔직히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패배한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고, 최근 들어 AI,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약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정도였는데, 이 책을 읽고 위기감을 넘어 공포, 절망감, 무기력감을 느꼈다. 대체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나...


이 책에 따르면 알파고 이후 바둑계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바둑인들은 프로기사가 아닌 인공지능에게 의지하기 시작했고, 프로기사들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권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스승의 문하로 들어가 하루 종일 기보를 외우고 다른 문하생들과 대국을 치르며 프로기사로 성장하는 식의 '성공 코스'도 불필요해졌다. 바둑은 이제 예술이 아니라 누가 빨리 점수를 많이 내서 승리를 거두는 지를 겨루는 스포츠가 되었다. 바둑기사 개인의 스타일이나 철학은 중요하지 않고, AI의 수를 최대한 많이 암기하는 것만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울거나 웃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AI 이후의 세계를 먼저 경험한 바둑계의 변화를 통해 다른 분야 및 전체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소설을 사람처럼 잘 쓰는 인공지능, 혹은 사람보다 더 잘 쓰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문학계는 어떻게 될까.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의 일부가 AI를 활용해 집필된 걸로 밝혀진 것처럼, 실제로 작가들이 AI를 활용해 집필하는지 또는 그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AI 활용 여부를 독자가 판별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과 소설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앞으로도 계속 유의미한 행위일 수 있을까. 


AI, 인공지능의 도입은 이미 진행 중이고 아마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보편화될 텐데, 이것이 인간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알파고 이후 바둑 기사들은 인간 스승의 기보 대신 AI의 기보를 암기하느라 전보다 더 바쁘다. 출판계의 경우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 입사한 직원들이 출판사 유튜브, 출판사 SNS를 운영, 관리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호소한다. AI가 도입되면 출판사의 업무도 달라지거나 더 늘어나지 않을까. 그것이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 변화 혹은 발전일까.


저자가 최근 힘을 쏟고 있는 STS(Science Technology Society) SF 집필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내용이 현실화 되지 않은 것은 조지 오웰의 예측이 틀려서가 아니라 조지 오웰의 예측이 실현되지 않도록 후대 사람들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저자는 예언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예방으로서의 문학을 지향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직접 창안한 장르인 STS SF를 집필하고 있다고. 저자의 STS SF 소설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저자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아내분 꼭 쾌차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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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의 인류 문화 오디세이
마틴 푸크너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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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랜 취미 중 하나는 팟캐스트 청취이다. 팟캐스트를 언제부터 듣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보다가 <이동진의 빨간책방>(이하 '빨책')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빨책을 제작한 출판사의 독자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빨책의 존재를 초창기부터 알았고 방송에서 소개되는 책들을 열심히 따라 읽으면서 책을 고르는 안목도 높아지고 독서 생활도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했다. 빨책이 종영된 후에는 다른 도서 팟캐스트를 찾아 들었는데, 최근에는 빨책의 진행자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추천하는 책들을 꾸준히 구입해 읽고 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처럼 신뢰할 만한 독서가가 추천하는 책을 따라 읽는 것의 장점은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 장르, 작가의 책만 찾아 읽는 것을 피하면서 나보다 높은 식견과 넓은 취향을 가진 독서가의 안목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읽은 마틴 푸크너의 책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가 대표적이다. 하버드대 교수인 마틴 푸크너가 쓴 이 책은 인류의 역사를 문화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총 열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의 내용이 분량에 비해 깊고 방대해서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마치 대학교의 역사 문화 교양 강의를 한 학기 동안 수강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역사를 소개해줄 뿐만 아니라 잘 안다고 생각한 역사의 뒷면을 알려주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플라톤은 원래 연극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거리에서 하는 말을 우연히 듣고 바로 제자로 들어갔다. 그는 스승 플라톤이 자신의 저작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까워하며 직접 스승의 가르침을 담은 책을 집필하고, 학교를 설립해 가르침을 전파했다. 아틀란티스는 플라톤이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높이기 위해 지어낸 것인데, 지금은 아틀란티스가 실존한 적 없는 전설 속의 섬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어 있지만, 전설 속의 섬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남아서 여러 소설과 영화, 만화 등에 영감을 주었다.


최근에 읽은 영국 작가 조지 엘리엇의 소설 <미들마치>에 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조지 엘리엇의 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로, 그는 당대의 여성들과는 다르게 어릴 때부터 공부와 독서에 열중했고 특히 역사학에 관심이 많았다. 역사학 중에서도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던 사상을 받아들인 그는 자신의 견해를 보다 많은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고 더 쉽게 이해하는 소설의 형식을 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의 소설 <미들마치>는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고전 문학 작품으로 남았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어떤 예술 작품이나 문화가 생겨난 배경을 소개함으로써 그 어떤 예술 작품이나 문화도 다른 예술 작품 또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환경의 영향 없이 탄생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어떤 문화도 특정 개인이나 단체, 국가의 소유 또는 자산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이런 식으로 독점적,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문화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발전 가능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로 K-POP이 나오고 BTS 멤버 뷔의 퍼포먼스와 일본의 전통 예술인 노의 유사성에 관한 설명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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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세계사 - 세계를 뒤흔든 결정적 365장면 속으로!
썬킴 지음 / 블랙피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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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이다.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에 이미 지나간 과거의 중요성을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1986년생인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독재 정권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한국의 대통령은 전두환이었고 내가 유치원생일 때 한국의 대통령은 노태우였다. 영화 <서울의 봄>에 나왔듯이 이들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 출신 정치인들로, 만약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실패하고 1993년 김영삼 정부가 하나회 척결로 군사 정권 종식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도 군사 독재가 계속되었을지 모른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안 했을 일이지만, 2024년 12월 3일 계엄 사태 이후로 상상보다 더한 일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처럼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역사 공부를 새로 시작하는 분들이 요즘 들어 많은 것 같은데,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역사 스토리텔러 썬킴의 신작 <그날의 세계사>이다. 이 책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일 년 동안 해당 날짜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령 내 생일인 12월 6일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펼치면 '1877년 12월 6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사 중 하나인 <워싱턴포스트>가 창간됐다.'라고 나온다.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는 역사에 큰일을 하나 한 신문사로, 바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언론사이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주연의 <더 포스트>이다. 좋아하는 영화인데 내 생일과 관계가 있다니 기쁘다.


이 책의 제목은 <그날의 '세계사'>이지만 한국사 내용도 나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6일의 다음날인 1월 7일은 1895년 고종이 종묘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홍범 14조를 발표한 날이다. '근대적 헌법'이라고 하면 좋게 들리지만 실상은 다르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조정을 친일파로 채우고 조선을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조치들을 추진했다. 그 중 하나인 홍범 14조의 제1조는 '청나라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국을 만들자'인데, 이 문장은 언뜻 들으면 조선에 이익이 되는 내용 같지만 실제로는 청나라와 손절하고 일본의 속국이 되라는 내용이다. 이때 득세한 친일파들이 대대손손 이어져 지금도 나라를 좀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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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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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금서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수천 권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금서가 아직 유효한 이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김유태의 <나쁜 책>은 동서고금의 금서를 소개하는 책이다. 어떤 책이 금서로 지정되는 이유는 다양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어떤 책을 금서로 지정할 만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에 손상을 입힐 만한 책에 대해 주로 금서라는 딱지를 붙인다. 아이리스 장 <난징의 강간>, 팡팡 <우한일기>, 옌롄커 <딩씨 마을의 꿈> 등이 대표적이다. 


때로는 그 권력이 정치 권력이 아닌 종교 권력, 젠더 권력인 경우도 있다. 주제 사라마구 <예수복음>, 니코스 카잔차키스 <최후의 유혹>, 미셸 우엘벡 <복종> 등은 특정 종교의 경전 내용에 위배되거나 종교적 갈등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 넬리 아르캉 <창녀>, 필립 로스 <포트노이의 불평>, 마광수 <운명> 등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독서가 금지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금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책이 금서로 지정된 배경과 이후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덕분에 금서가 된 책뿐 아니라 그 책을 쓴 작가, 그 책을 금서로 지정한 나라의 역사와 정세까지 알 수 있는 점이 유익하다.


재미있는 점은 (금서를 지정하는 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금서가 금서 지정을 통해 더 유명해지고 책의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팡팡의 <우한일기>이다. 중국 작가 팡팡이 코로나 19 확산 초기 봉쇄된 우한의 일상을 솔직하게 기록한 이 책은 중국 정부로부터 출간 금지 조치를 당하고 중국작가협회에서 작가를 제명하는 등 온갖 수난을 겪었지만,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큰 관심을 받으며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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