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여신님 신장판 16
후지시마 코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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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이치 가(家)에 페이오스를 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었던 마족 뵐루스파가 또 다시 나타난다. 여전히 고양이의 모습으로. 여신 자매들에게 복수 겸 괴롭힘을 당하는 뵐루스파를 보다 못한 베르단디가 힐드에게 도움을 청한다. 힐드는 뵐루스파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조건으로 베르단디에게 대결을 제안한다. 대결 내용은 베르단디가 지닌 스트링 펠로 빗자루와 자신이 지닌 글뤼엔데스 헤르츠 빗자루의 속도 겨루기. 빗자루를 타고 속도를 겨루는 모습이 오토바이 레이싱 경기처럼 보인 건 나뿐일까. 레이싱 경기 특유의 속도감과 스릴을 작화로 구현한 솜씨가 엄청나다. 


한편 여신 자매의 맏언니인 우르드는 이제까지 2급신으로 지냈는데 1급신 시험을 보라는 연락을 받는다. 베르단디와 스쿨드는 언니라면 반드시 합격할 거라고 응원해주지만, 우르드는 사실 1급신 시험을 보는 것을 주저해 왔다. 동생들의 응원도 있고 해서 일단은 시험에 응하고 실력자인 만큼 시험 과정을 잘 치르는데, 시험 도중 1급신의 능력을 잠시 가지게 된 우르드가 베르단디와 케이이치의 데이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어떤 일'을 벌인다. 덕분에 오랜만에 베르단디와 케이이치의 다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동생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우르드의 선택도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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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코스트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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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게리첸. 이 소설로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영미권에서는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읽어보니 과연 그럴 만하다. 잘 읽히고 재미있다. TV 시리즈 제작이 확장되었다는데 너무 기대된다. (참고로 테스 게리첸의 대표작 <리졸리 앤 아이스>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총 7시즌에 걸쳐 드라마가 제작, 방영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볼 수 있다고. 이 작품도 미국 북동부가 배경이며 여성 형사와 검시관 콤비가 범죄를 해결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재밌겠다.)


미국 북동부 메인 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닭을 키우며 조용히 살고 있는 육십 대 노인 매기 버드의 전직은 CIA 요원이다. 지금은 옆집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거나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하는 정도의 일정 밖에 없지만, 예전에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누비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서 놀다 온 매기는 집에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음 날 그 침입자는 시체가 되어 매기의 집 앞에서 발견된다. 신고를 받고 매기의 집으로 달려온 경찰 서장 대행 조 티보듀는 집 앞에서 시체가 발견된 노인 치고는 지나치게 침착한 매기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긴다. 


한편 매기는 자신의 집 앞에 시체가 놓여 있다는 건 전적들이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아낸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들 중 누가 자신을 죽이러 온 건지 알아내려고 한다. 매기는 '시라노'라는 작전명으로 유명한 그 사건의 범인이 사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자신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매기를 돕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들도 모두 전직 CIA 요원이다)은 문제의 사건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듣고 싶어하고, 결국 매기는 오랫동안 자신의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CIA 요원직을 그만둘 마음을 먹게 할 정도로 매기가 사랑했던 남자, 대니의 이야기를.


테스 게리첸이 한때 로맨스 소설을 많이 썼다는데 그래서인지 이 소설도 로맨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존 르 카레의 소설 같은 정통 스파이 소설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나는 만족하면서 읽은 편인데, 일단 주인공이 여성이라서 일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황에 공감이 많이 되었고, 남자를 사랑하지만 믿을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생기는 서스펜스가 참 스릴 넘치게 그려져 있다고 느꼈다. 현재 시점에서 등장하는 메인 주의 겨울 풍경과 이상할 정도로 추리를 잘하는 노인들의 장면도 좋았다. 빌런의 정체도 좋았는데, (빌런의 정체상) 후속편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을 느끼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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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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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 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솔직히 이 소설은 절반만 이해했다. 변명 비슷한 걸 써보자면, 일단 이 소설은 화자인 닐이 엘리자베스 핀치라는 여성 교수와 맺은 길고도 깊은 인연에 대해 다룬다. 이혼과 직업적 실패를 겪고 정신적 공허감을 느끼던 닐은 성인 대상 강좌를 듣기 시작한다. 강좌를 진행하는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는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실력은 상당한 인물로, 첫 강의 때부터 닐은 핀치 교수의 열렬한 신봉자가 된다. 닐이 하도 핀치 교수를 좋아해서 당시에 사귀었던 네덜란드인 여자친구 안나가 화를 낼 정도였지만, 그래도 닐은 계속해서 핀치 교수를 따랐다.


닐은 강좌가 끝난 후에도 핀치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고, 결국 닐과 핀치 교수는 핀치 교수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기적으로 만남을 이어 갔다. 핀치 교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퍼하던 닐에게 어느 날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진다. 핀치 교수가 생전에 유언장을 쓰면서 평생 보관한 책과 직접 쓴 서류, 노트 전부를 닐 앞으로 남긴 것이다. 핀치 교수의 남자 형제로부터 책과 서류, 노트 일체를 전해 받은 닐은 그 때부터 열심히 그것들을 읽어 나간다. 그렇게 읽다 보면 그렇게 오랫동안 만났지만 여전히 미스테리어스한 핀치 교수의 실체를 알아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닐의 이야기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고 잘 읽힌다. 문제는 율리아누스 부분이다. 소설 속에서 핀치 교수는 접두사 '모노(mono)'가 들어간 단어 중에 좋은 게 없다며 그 예로 일신교, 일부일처제, 단조로움, 단종 재배, 단일 문화, 독점 등을 든다. 일신교 중에서도 기독교는 수많은 전쟁과 내란, 박해, 순교의 원인이 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종교로서 죄가 많다. 핀치 교수는 만약 '배교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 율리아누스의 치세 기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며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인데, 문제는 내가 로마 기독교 역사를 잘 모른다는 거...


그래도 영국 내 기독교 신자 수가 엄청나게 줄었다고 해도 기독교 문화권 내에 있는 나라인 건 맞는데, 기독교의 핵심인 일신교 사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의 소설을 줄리언 반스 급의 작가가 쓰다니. 작가나 독자들이나 대단하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계속 읽기는 읽었는데, 읽다 보니 이 소설의 핵심은 핀치 교수의 주장이 어떻다는 게 아니라 어떤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의 위험성 또는 허무함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닐이 네덜란드에서 재회한 (옛 여친) 안나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고. 어렵지만 계속 생각날, 언젠가 다시 읽고 싶어질 것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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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 사는 숲 오늘의 젊은 작가 43
장진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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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상큼하고 표지도 초록초록해서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 같은 느낌의 치유계 작품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근데 그래서 실망한 건 아니고, 어떻게 보면 흔히들 싱그럽고 즐거운 분위기로 상상하기 쉬운 청소년 시절이 사실은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지겨웠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제목과 표지의 배신(?)이 소설의 의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나'는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남아 있는 2003년에 중학교에 입학한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빠와 집에서 불법 시술소를 운영하는 엄마는 딸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도 모를 만큼 부모 역할에 무관심하다. 언니는 공부를 아주 잘했지만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기업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고 있고 집에는 좀처럼 안 온다. 사실상 방치 상태인 '나'는 배치고사를 잘 봐서 선생님들의 기대를 받지만 공부를 잘해도 어차피 언니처럼 될 거라는 생각에 공부를 등한시한다. 그렇다고 친구 달미처럼 예뻐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니 성적 매력이라도 어필해 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소설 초반은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2000년대 초중반이 떠올라서 즐거웠다. 월드컵, 평준화, 배치고사, 러브장 같은 단어들도 반갑고, 학교 본관에서 수업받는 아이들과 별관에서 수업받는 아이들 사이에 있었던 은근한 기싸움 같은 것도 나와서 내가 다닌 학교만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ㅎㅎ). 그러다 갑자기 '차장님'이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아니 사실은 예상했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랐던) 전개가 이어지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와 차장님의 관계는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 관계인데, '나'가 폭력을 애정이나 사랑으로 착각할 정도로 '나'를 방치하고 학대한 가족과 학교, 사회는 과연 죄가 없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장님(님은 무슨...) 만큼 기분 나빴던 인물이 또 있는데 언니의 남편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나'의 언니가 딸 서빈이에 이어 아들 호떡이를 출산하는데, 호떡이를 보던 형부가 '나'에게 이모가 된 소감이 어떤지 묻는다. 서빈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이모가 되었건만. 아들만 자식이냐. '나'의 언니도 복잡한데, 표면적으로는 '나'의 주변 인물 중에서 '나'에게 물심양면으로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건 맞지만, 어떻게 보면 언니도 '나'를 이용해서 소위 말하는 팔자가 달라진 것도 맞지 않나. 근데 또 '나'를 제일 많이 도와준 것도 맞고... 어렵다, 가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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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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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 여러 의미로 대단한 작가다. 이번에 읽은 <푸른 들판을 걷다>를 비롯해 내가 읽은 그의 책이 총 세 권인데(한국에 소개된 책이 세 권이니 당연하다), 세 권 모두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특히 <푸른 들판을 걷다>는 총 일곱 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소설집이라서,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나서 느낀 아쉬움(좋은데 너무 짧다, 더 읽고 싶다)을 덜 느껴서 좋았다. 이 책을 필사하거나 원서로 다시 읽는 독자들이 많다는데 나도 그래 볼까. 영미권 작가의 소설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든 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맨 처음에 실린 <작별 선물>이다.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날 채비를 바쁘게 하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엄마와 오빠는 슬픈 기색을 비추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성심성의껏 소녀를 배웅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정하고 평온한 가정의 이별 장면 같지만, 이들이 숨기고 있는 사연은 다정함이나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다. 클레어 키건은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가족이나 이웃, 종교 등의 공동체가 공동체로서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공동체의 결속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약자를 착취하거나 약자에게 학대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를 솜씨 좋게 고발해 왔는데 이 소설도 그렇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이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 사는 평범한(혹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반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극찬했다는 <물가 가까이>는 미국의 한 부유층 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주인공 청년은 폭력적인 (새)아버지와 방관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서 <작별 선물>의 주인공 소녀와 처지가 결코 다르지 않다. <작별 선물>의 소녀는 결국 집을 떠나기라도 하지만 <물가 가까이>의 청년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불분명한 채로 소설이 끝이 났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인 결말도 상상 가능하다. 


(집을) 지키는 남자들과 (집을) 떠나는 여자들이라는 모티프는 이 책에 실린 다른 소설에서도 반복된다. 표제작 <푸른 들판을 걷다>를 비롯해 <검은 말>, <삼림 관리인의 딸>, <굴복>, <퀴큰 나무 숲의 밤> 모두 그렇다. 우리말에서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일컫기도 하고 영어에서 주부를 'housewife'라고 부르는 것처럼, 보통 집은 여성과 연결되는 데 반해 이 책은 집을 남성과 연결한 점이 흥미롭다. 이때의 집은 '가부장' 할 때의 집[家]인가 싶다. 집으로 상징되는 남성 권력에 대한 저항이 잔잔히(혹은 절절히) 깔려 있는 책이라서 더욱 공감하며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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