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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평점 :

저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관해 자유롭게 쓴 글이 에세이라면, 이 책은 에세이 그 이상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장애인이면서 변호사이고 무용수이기도 한 자신의 삶을 장애의 역사, 법의 역사, 무용의 역사와 교차하며 서술한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사고의 흐름, 지식의 깊이가 너무나 흥미로우면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리베카 솔닛, 율라 비스 등의 책을 읽으며 부러워했던 마음이 이 책으로 해소되었다. 저자의 다음 책이 벌써 기대된다.
1980년대 강원도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릴 때 장애 때문에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냈다. 만화 <슬램덩크>를 보면서 자신도 강백호, 서태웅처럼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활발하게 운동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그의 주변 사람들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몸을 움직이고 운동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특수학교에 진학한 저자는 자신처럼 신체적 장애가 있지만 각자의 몸을 잘 활용하고 운동 능력도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일반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몸의 차이를 뛰어넘어 우정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이후 서울대 사회학과,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되었고, 오래 전부터 꿈이었던 무용수가 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무용원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이 책은 저자가 한예종 입학 실기 시험을 치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다른 대학의 무용과가 아닌 한예종의 문을 두드린 건, 한예종의 교풍이 다른 학교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롭고 진보적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 무용은 기존의 무용이 완벽한 몸을 추구하고 엄격한 훈련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탄생한 장르이기 때문에 장애가 있고 오랫동안 무용 훈련을 받지 않은 자신도 지원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이 경험을 통해 저자는 현대 무용이 내세우는 자유로움, 다양성 포용 같은 가치가 자신과 같은 장애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현대 무용뿐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스스로를 계몽적이고 문명화 되었다고 여겼던 근대의 유럽인, 미국인들이 아프리카, 아시아의 문화를 배타적, 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프릭 쇼(freak show)'라는 이름으로 전시하여 돈벌이를 했던 역사를 소개한다. 실제 장애인은 춤은커녕 집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인데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흉내내어 춤을 추는 '병신춤'은 계승해야 할 전통 문화로 칭송받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를 하기도 한다. 어느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장애인 공연자를 보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장애인이 공연을 보러 가는 것부터가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2부는 장애를 가진 몸과 무용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3부는 사회와 법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독일의 저명한 법학자인 칼 슈미트의 사례를 읽으며 정상적인 몸, 이상적인 몸에 대한 편견 그리고 집착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나치즘 같은 위험한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떠오른 인물이 미시마 유키오인데, 그 또한 완벽한 육체에 집착한 극우주의자였다. 몸을 차별의 근거가 아닌 연대의 계기로 삼을 순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