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 1 - 조운선 침몰 사건 백탑파 시리즈 4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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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가 소설 <목격자들>을 쓰기 시작한 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로부터 한 달 후의 일이다. 참사가 있은 지 한 달 동안 작가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써야 할 글이 있었지만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랬던 작가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다른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기록하고 슬픔을 표현하고 애도하는 마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다. 화가는 그림으로, 가수는 노래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작가로서 소설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백탑파> 시리즈를 위해 찾아둔 소재 중에 정조 때 일어난 조운선 침몰 사고가 있어서 이를 소재로 쓴 소설이 <목격자들>이다.


이야기는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그의 절친 김진이 각각 정조와 영의정 조광병의 명을 받아 전라도 밀양과 영암에서 일어난 조운선 침몰 사고를 조사하러 떠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이명방은 짙은 해무 때문에 일어난 단순한 해양 사고라고 여기는데, 사건 관련자들은 물론 의금부 도사들까지 줄줄이 살해당하면서 여간 심각한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다. 한편, 조정에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조운선 침몰 사고가 새로운 왕조의 출현을 기대하는 '정감록' 일파들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관련된 인물이 출현하고, 여간해선 여인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았던 김진이 웬일로 한 여인과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걷잡을 수없이 복잡해진다.


세월호 참사가 계기가 되어 집필된 소설답게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많다. 선장과 선원들은 대부분 목숨을 건진 반면 일반 백성들은 대다수가 사망한 점이 그렇고, 사건을 면밀히 조사해야 할 관원들이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한 점이 그렇고, 사건의 배후에 당대 권력자들이 관여되어 있으나 끝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점이 그렇다. 특히 아홉 살 난 아들 차돌을 사고로 잃은 어머니 선영이 한양까지 와서 원통함을 호소하는 장면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밀양에서부터 맨발로 걸어왔건만 관원들은 돌아가라고 막아서고 때리고 사람들은 괜한 소란을 피운다며 돌을 던지는 장면은 당시 정부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홀대했던 것과 일부 보수단체 사람들이 유가족들을 욕하고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을 하던 비인간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 작품의 절정은 조사를 마친 이명방이 정조에게 조사 결과를 고하며 사고로 목숨을 잃은 백성들을 한 사람씩 호명하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공교롭게도 이 장면은 2017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5.18 당시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열사들을 한 사람씩 호명하던 모습과 겹친다(참고로 <목격자들>은 2015년에 발표되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름의 주인을 기억하겠다는 것이고, 기억한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격자들>은 누구를 기억하고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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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 8세, 18세, 22세에 찾아온 암과의 동거
손혜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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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다. 하지만 여기, 살면서 세 번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의 저자 손혜진이다. 1987년생인 저자는 8세에 소아암, 18세에 희귀암, 22세에 희귀암 재발을 겪었다. 세 번의 암과 세 번의 수술을 겪으며 저자는 그야말로 '세 번 죽었다'. 삶을 알기에도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알게 된 저자는 현재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저자가 처음 암의 존재를 안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 학기가 채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는데 배가 아팠다. 병원에 가봤지만 병원마다 진단이 달랐다. 복통이 몇 달째 지속되고 급기야 학교에서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토하는 일이 생기자 부모님은 저자를 큰 병원에 데려갔다. 검사 결과 배에 암으로 의심되는 혹이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검사를 위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그랬다.


어린 나이에 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저자를 힘들게 한 건 병원 밖에서의 생활이었다. 사람들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낼 때마다 저자는 그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자꾸만 나를 '불쌍한 아이' 취급하는 게 불편했다. 학교에 가도 반 아이들이 말을 걸지 않고 다가오지도 않았다. 어쩌다 친구가 생겨도 반이 달라지면 헤어지는 얕은 이별이 반복되었다.


이후 학교생활에 적응해 평범한 학생으로 지나다가 18세에 암이 재발해 또 한 번의 수술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대입을 준비해 원하던 대학에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했다. 이제는 취업도 하고 평범한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학 졸업을 앞둔 22세의 어느 날 또 한 번의 암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치료와 회복을 반복하며 어느덧 삼십 대에 접어들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니 이런 삶도 있구나 싶고, 다시는 죽음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쾌유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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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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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필립스의 <우물과 탄광>은 1930년대 미국이 배경인, 미스터리가 가미된 가족 소설이다. 한 여자가 어느 집의 뒷마당 우물에 아기를 버리고, 그 모습을 그 집의 둘째 딸 테스가 목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테스가 가족들에게 낯선 여자가 우물에 아기를 버렸다는 말을 전하자 가족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튿날 우물에서 퉁퉁 불은 아기 시체가 발견되고, 테스는 밤마다 죽은 아기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린다. 보다 못한 테스의 언니 버지는 테스와 함께 우물에 아기를 버린 여자를 찾으러 나선다.


소설의 도입부만 보면 우물에 아기를 버린 여자가 누구인지 추리하고 탐문하는 과정을 담은 미스터리 소설일 것 같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1930년대 미국 탄광 마을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반영한 가족 소설에 가깝다. 테스는 물론, 테스의 아버지 앨버트, 어머니 리타, 언니 버지, 남동생 잭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당시 미국 탄광 마을의 평범한 백인 가정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테스의 아버지 앨버트는 근면하고 성실한 가장이다. 어릴 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돈을 벌었고, 리타를 만나 결혼하여 자녀 셋을 두고 제법 괜찮은 가정을 이뤘다. 평일에는 광산에서 일하고 휴일에는 목화밭을 일구고 농사를 짓느라 몸이 남아나지 않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잠시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테스의 어머니 리타 역시 밤낮없이 요리와 빨래, 청소는 물론 농사일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다. 큰딸 버지는 그런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어린 테스와 잭은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좋다.


그림처럼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소설인가 싶지만 당시로서는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법한 생각이나 장면들도 많이 나온다. 가령 테스의 아버지 앨버트는 탄광에서 함께 일하는 흑인 광부들을 차별하지 않고 친하게 지낸다. 지금으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1960년대까지도 흑백 분리 정책이 시행되었음을 감안하면 앨버트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동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앨버트인데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기 안에 흑인을 차별하는 생각이 남아있었음을 깨닫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테스의 언니 버지는 마을에서도 손꼽히는 미인이라서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성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버지는 연애나 결혼보다 취업과 독립에 더 관심이 많다. 이 또한 지금으로선 당연한 생각이지만 이 시절만 해도 여자는 '혼기'가 차면 적당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에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당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었던) 교사가 될지 간호사가 될지 고민하는 버지에게, 메릴린 이모가 너는 국회의원도 될 수 있고 의사도 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장면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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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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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1985년에 발표한 단편을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의 그림으로 각색해 만든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 있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그저 좋다'(=나)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오래된 작품을 새롭게 재해석한 이 책이 반가울 것이다.


이야기는 '양 사나이'가 크리스마스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에어컨을 사지 못할 만큼 가난한 양 사나이는 어떻게든 이 일을 해내서 돈을 받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 데다가, 세 들어 사는 집에선 주인 할머니의 성화로 피아노를 칠 수 없다. 크리스마스가 나흘 앞으로 다가오자 양 사나이는 약 박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양 사나이가 선물한 도넛 몇 개를 홀랑 먹어치운 양 박사는 양 사나이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 사나이가 지금 저주에 걸려 있으며, 저주를 풀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라면 이 작품 곳곳에 '하루키적인' 요소가 널려 있음을 간파했을 것이다. 일단 양 사나이가 그렇고, 도넛이 그렇고, 나중에 등장하는 구멍이 그렇고, 외딴 집이 그렇고, 쌍둥이가 그렇고... 주인공이 한바탕 꿈같은 일을 겪고 그로 인해 예전과 비교해 미세하게 다른 사람이 되는 결말도 지극히 '하루키적'이다. 이 작품을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대단한 재미를 느꼈다, 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연말연시에 짬을 내 읽으면서 머리를 식히기에는 괜찮았고, 오랜만에 '하루키 월드'를 체험하니 즐거웠다.


그나저나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도넛이란 뭘까. 책 읽는 동안 도넛(&꽈배기) 먹고 싶어 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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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
슛뚜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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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때 처음 일본에 갔다. 6박 7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는 그 여행을 통해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전에는 일본어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는데, 여행을 하면서 일본어가 통하지 않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부터는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고 결국 원어민과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 덕에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도 해보고, 일본인들을 상대하는 일도 해봤다. 이 정도면 여행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내가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를 여행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인기 유튜버 슛뚜의 여행 에세이집 <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를 읽는 동안 머릿속에 문득 든 생각이다. 저자는 이십 대 초반부터 영국을 시작으로 덴마크,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아이슬란드, 인도네시아 등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4년 동안 저자의 발길이 닿은 도시만 21개에 이른다. 여행기를 엮어 두 권의 책도 냈다. 첫 번째 책이 2016년 독립 서적으로 출판한 <낯선 일상이 반복되는 곳>이고, 두 번째 책이 이 책이다.


여행을 통해 저자는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수차례 했다. 여행을 할 때 매 순간이 행복하고 매번 일이 잘 풀렸던 건 아니다. 지도를 잘못 보는 바람에 엉뚱한 곳에 내린 적도 있고,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불쾌한 경험을 한 적도 있고,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리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배우는 것이 꼭 있었다. 낯선 곳에 도착해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그 지역 사람들만 아는 명소였다거나, 나누어준 음식을 거절해서 언짢았는데 알고 보니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거나, 가방을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줬다거나.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저자는 용기가 생기고 시야가 넓어지고 가치관이 바뀌었다.


평범한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방법도 배웠다. 평소에는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도 잘 안 가는데, 여행을 할 때는 숙소 근처에 있는 공원에 누워 뒹굴뒹굴하기만 해도 행복했다. 한국에서는 럭셔리한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어야 남한테 자랑할 만한 식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행을 할 때는 강가에 철퍼덕 주저앉아 주먹밥을 먹고 캔맥주를 마셔도 근사한 한 끼가 되었다. 여행할 때처럼 일상을 산다면 삶이 한 뼘은 더 여유롭고 행복해질 거라는 저자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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