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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지음, 서제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8월
평점 :
산다는 건 뭘까. 비비언 고닉의 산문집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를 읽으면서, 나는 어쩌면 사는 일이란 사람을 만나는 일, 결국에는 상처받고 멀어질 걸 알면서도 가까이 다가가 기꺼이 마음을 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는 일곱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저자는 각각의 글에서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사는 일, 기자로 일할 때 우연히 페미니즘을 접하고 페미니스트 공동체와 깊이 교류했던 일, 대학 시절 방학마다 지방의 호텔에서 합숙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 흠모하는 여성 작가와 친해져서 한동안 그와 함께 생활했던 일 등에 관해 서술한다. 각각의 글은 다른 시기, 다른 경험을 다루지만, 경이로운 만남과 잇따른 권태, 허무한 파국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읽힌다.
저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면서, 관계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 관계에나 시작이 있고 끝이 있기에, 사람은 언제든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평생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면 외로움을 없애줄 누군가를 갈구하느라 몸과 마음이 고생하고, 알면 외로움을 없애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아 고립되기 쉽다. 남을 탐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가까이 두는 상태를 찾으면 좋겠지만 쉬울 리 없다.
마지막 글에서 저자는 편지의 가치를 옹호하는데, 나는 편지를 포함한 글쓰기가 '남을 탐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가까이 두는 상태'에 다다르는 데 있어 좋은 도구이자 수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많은 일을 해보고 많은 공부를 해봤지만, 결국 글쓰기가 - 정확히는 매일 꾸준히 글 쓰는 노력이 - 자기 자신을 덜 외롭게 만들고 세상과 더욱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고 설명한다. 오래 꾸준히 글 써온 사람으로서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