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한 농담 - 죽음을 껴안은 사랑과 돌봄과 애도의 시간
송강원 지음 / 유유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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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원 작가의 존재는 팟캐스트 <비혼세>를 통해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송강원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진 건 팟캐스트 <거북목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뒤늦게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를 보고 그가 쓴 책 <수월한 농담>을 읽었는데 그러고 나서 든 생각은, 그가 이렇게 부드럽고도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엄마 '옥'이 그를 그렇게 키워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송강원의 책 <수월한 농담>은 그가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엄마와 함께 보낸 마지막 3년의 시간을 기록한 산문집이다. 그는 몇 해 전 아버지로부터 엄마가 폐암 4기라는 연락을 받았다. 엄마는 머나먼 미국에 사는 아들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그는 인터넷에서 5년 생존율 8.9 퍼센트라는 암울한 수치를 보자마자 바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부모가 아픈데 자식이 보러 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한국 사회에서 온갖 차별과 혐오를 겪고 20대 초중반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에게 그동안 쌓은 기반을 모두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이 사연은 저자의 실제 삶을 찍은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에 자세히 나온다).


그러나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끝내 떠나보낸 것에 비하면 그 결정은 쉬운 편에 속했는지도 모른다. 주변에 폐 끼치는 걸 끔찍이 싫어했던 엄마는 병 앞에서도 자기 자신보다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더 걱정했다. 아들은 엄마가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라는데, 엄마는 아들 앞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다 어느 날에는 극단적 시도를 하기도 했다. 엄마가 차라리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사람, 하루라도 더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이었다면 덜 괴로웠을까. 그는 죽고 싶어 하는 엄마 때문에 슬프고 화가 나고 답답하고 우울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엄마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엄마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었듯이, 자신도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걸 천천히 배운다.


이 책에 그려진 저자와 엄마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처럼 아름답고 애틋하다. 특히 엄마가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에 대한 묘사가 기억에 남는다. 엄마는 평소에는 수수하고 검소한, 평범한 엄마 그 자체인데 의상실에만 들어가면 누구보다 당당하고 화려했다. 손님들은 물론이고 어린 아들이 보기에도 색채와 선을 매치하는 감각이 남달랐다. 그렇게 엄마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아끼지 않고 살았다. 그런 엄마였기 때문에 죽음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아들은 그런 엄마를 기억하기 때문에 놓기가 힘들었을 테고.


예전에는 부모와의 사별을 다룬 책에 깊이 공감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감정 이입을 심하게 한다. 나의 아버지도 암 3기 투병 중이고, 어머니는 아직 건강하지만 언제 몸이 나빠져도 이상하지 않은 연세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멀리 있다고 믿고 싶은 부모의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까. 지금으로서는 농담은커녕 울음을 참기도 수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 그런 순간은 가능한 한 늦게, 그저 느리고 더 느리게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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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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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도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과거를 반복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존 밴빌의 소설 <오래된 빛>을 읽고서 든 생각은, 인간은 역시 과거의 노예라는 것이다. 


주인공 앨릭스 클리브는 환갑을 넘긴 연극배우다. 앨릭스는 아내 리디아와의 사이에서 캐스라는 딸 하나를 두었는데, 캐스는 십 년 전 이탈리아의 절벽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 그 후 리디아는 한밤중에 집 안을 뛰어다니는 몽유병에 시달리고, 앨릭스는 그런 아내를 돌보며 흘러가는 시간을 하릴없이 보낸다. 이따금 앨릭스는 열다섯 살 소년 시절에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여인을 떠올린다. 여인의 이름은 실리아 그레이. 그가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 빌리 그레이의 어머니이다. 열다섯 살 소년과 서른다섯 살 유부녀의 연애는 당시에도 도덕적,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고, 이를 잘 알고 있던 두 사람은 서로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며 강렬한 사랑을 나눴다.


자신이 열다섯 살 때 친구의 어머니와 불륜 사이였다는 사실을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밝힌 적 없는 앨릭스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어쩌면, 아니 높은 확률로, 자신의 딸 캐스에게도 그런 비밀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캐스가 임신한 채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앨릭스의 생각은 확신으로 변하고, 그로서는 처음 도전하는 영화의 상대 배우인 돈 데번포트와 가까워지면서 그는 더욱 자주 딸에 대해 생각한다. 외적으로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유명한 배우이지만 내면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연약한 여인에 불과한 돈을 보면서 앨릭스는 캐스를, 그리고 실리아를 떠올린다. 그들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그들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전형적인 중산층 기혼 유자녀 여성이었던 실리아에게 앨릭스는 단조롭고 무거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일탈의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앨릭스 역시 실리아를 성숙한 인격으로서 진지하게 사랑했다기 보다는, 미성숙한 소년의 성적 호기심을 채워주고 부족한 자의식을 높여주는 대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사랑을 한 대가로 앨릭스는 타인을 보이는 그대로 믿지 못하는 성격이 되었고, 그러한 성격 때문에 자신의 딸에 대해서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과연 금지된 사랑뿐일까. 과거에 일어난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사람은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은 채로 남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앨릭스가 실리아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했더라도, 사랑 같은 건 아예 안 했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캐스 역시 다른 형태의 죽음을 택했더라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앨릭스의 삶은 어떤 영향을 받았을 터. 그러니 과거를 인식하되 과거 때문에 현재를 잃어버리지 않는 방향으로 살아야 할 텐데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랑이 떠나고 암흑만 남은 삶에는 오래된 빛도 빛이기에 의식하지 않기가 더 어려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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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물 열전 1 - AI의 토대를 놓은 사람들 AI 인물 열전 1
김경달 지음 / 이은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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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이 책을 읽으면 AI가 보다 친근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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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담쓰담 마음 읽기 - 나를 지키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청년을 위한 상담 치유서
남기숙 지음 / 이은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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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의 비혼 여성으로서 앞으로 혼자 살면서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기대도 많고 불안도 많습니다. 이 책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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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영혼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9
정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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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좋아하지만 신간 위주로 읽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인 2000년대 이전에 나온 작품은 읽은 것이 많지 않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화제가 된 한강 작가의 초기작들이나 양귀자의 <모순>, 은희경의 <새의 선물>처럼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찾는 책이 아니면 굳이 찾아 읽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3년에 등단한 소설가 정찬이 1992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집 <완전한 영혼>을 읽은 건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다.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 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작가가 정찬인데, 정찬의 책 중에서도 <완전한 영혼>이 가장 자주 눈에 띄었다(최근에 알라딘에서 공개한 정희진이 독자들에게 권하는 11권의 책에도 <완전한 영혼>이 포함되어 있다)이 책은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201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개정판이 나와서 현재는 새로운 표지와 현재의 표기 기준에 맞게 다듬어진 문장으로 만날 수 있다. 


책에는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완전한 영혼>은 출판사에 다니는 '나'가 '장인하'의 부고를 들으면서 시작된다. 장인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로, 군인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해 청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피해자들처럼 절망이나 증오의 감정을 비치는 일이 전혀 없다. '나'는 그런 장인하를 보면서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장인하와 같이 생각을 버리고 감정을 지우고 식물처럼 존재하는 것이 어쩌면 이런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장인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말은, 역으로 이런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내는 방법 따위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패랭이꽃>은 대학 시절 실연하고 찾아갔던 오이도로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놀러간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때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나'는 그사이 새만금 개발이 이루어져 예전과 크게 달라진 풍경에 놀란다. 그러다 '나'는 문득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고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근대화, 산업화 또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집단 기억 상실'을 겪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상태인 건 아닐까. 이런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알 리 없는 아이는 기대와는 다른 삭막한 풍경에 실망하고 옛날 이야기 같은 건 듣기 싫다며 '나'를 보챈다. 충격을 속으로 삭이고 서둘러 귀가하는 '나'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저항하지도 못하는 현대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권력이나 돈이 가진 힘 앞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 내지는 비판은 이어지는 두 편의 소설에서도 보인다. <신성한 집>의 '나'는 집이란 '신과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거룩하고 신성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그동안의 믿음을 배반하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혹해 재개발을 앞둔 달동네에 직접 가서 투자 가치가 있어 보이는 집을 산다. <길 속의 길>의 '나'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아내 덕분에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서, 실천 없이 관념만으로 글을 쓴다는 비평가들의 말에는 가슴 아파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글이나 예술은 그러한 욕망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다.


<영산홍 추억>은 <완전한 영혼>과 마찬가지로 고문 피해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 작품은 모두 식물적 인간을 지향한다. 식물은 겉보기엔 무력하고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땅의 양분과 공기를 뿌리로 빨아들여 그 어떤 동물이나 인간보다 오래 생존한다는 점에서 본받을 만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식물에게 삶의 자세를 배운다는 점에서 김수영의 시 <풀>과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영산홍 추억>에서 고문 피해로 숨진 아버지의 시체에 발이 없었다는 대목에서 정찬 작가가 2022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발 없는 새>가 연상되기도 했다.


<얼음의 집>은 고문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발표 당시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던 문제작이다. 주인공은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에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관동대지진을 겪고 극심한 고문에도 살아남은 결과, 고문 기술자 하야시 세이카의 눈에 들어 그의 제자가 되고 최후의 후계자가 된다. 브래디 미카코의 책을 통해 알게 된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 나와서 반가웠다. 가네코 후미코는 가족, 사회, 국가 등 자신을 억압하는 권력 일체를 거부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반대로 주인공은 극도의 고통과 죽음을 피하려다 권력에 순응하는 정도를 넘어서 권력과 한몸이 된다. 어쩌면 이것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제3자가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되지만 당사자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본능적인) 논리가 아닐까. 정희진 선생님이 이 책에서 이 단편을 특별히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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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26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희진샘때문에 읽어야지 하던 책인데 또 깜박하고 있었네요. 키치님 리뷰를 보니 빨리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키치 2026-08-26 09:32   좋아요 1 | URL
저도 책 사놓고 미루다 미루다 이제야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님은 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으실지 궁금하네요. 덧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