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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지난 며칠에 걸쳐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었다. 4년 전 처음 읽고 이번에 두 번째로 읽은 것인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이 소설이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와 마찬가지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만 주의를 기울인 나머지, 작가가 소설에서 표현한 제주 4.3 사건의 참혹한 진상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 사이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시고, 이를 계기로 한강 작가님의 등단작부터 최근작까지 다시 읽어 보면서 한강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다시 만난' 지금은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이 사뭇 다르다.
소설가인 경하는 오랫동안 우울에 시달리며 차라리 죽기를 소망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에서 목공 일을 하는 친구 인선이 작업 도중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간다. 인선은 경하에게 당장 제주로 가서 집에 혼자 남은 새의 먹이를 챙겨 달라고 부탁하고, 다친 친구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경하는 그 길로 제주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경하가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폭설이 내려서 중산간 깊은 골짜기에 따로 떨어져 있는 인선의 집까지 가는 길이 천리만리다.
소설은 우울증으로 인해 혼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경하가 인선의 연락을 받고 제주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가는 여정을 내 기억보다 훨씬 오랫동안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경하가 내내 머릿속에 담고 반복해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언젠가 경하가 꿈에서 본 장면으로, 눈 내리는 벌판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마치 묘비처럼 심어져 있는 모습이다. 때마침 발 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나무들이 바다에 쓸려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경하는 무의식적으로 나무를 '구해야' 한다고 느끼고 하나라도 더 뭍으로 옮기려고 하지만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언젠가 경하는 인선에게 이 꿈에 대해 말했고, 인선은 꿈속의 장면을 영상으로 구현해 보자고 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인선의 집으로 향하는 긴 여정 동안 경하는 인선과 친구가 된 과정과 인선이 들려준 어린 시절 이야기, 인선의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인선의 집에 머물렀던 추억과 인선과 함께 자신의 꿈을 영상으로 구현하기로 했던 약속 등을 떠올린다. 고생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한 후에는 인선의 혼처럼 느껴지는 존재와 대화하며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이 감내해야 했던 각자의 삶의 진상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을 다루지만, 사건을 사건 자체로 그리기 보다는 사건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더욱 중심적으로 그린다. 이는 <소년이 온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소년이 온다>는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 자체를 입체적, 종합적으로 그리는 반면, 이 소설은 인선의 가족이 대대로 겪은 수난과 고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사건 자체에 대한 묘사의 밀도는 낮은 대신 사건의 지속성과 비극성을 강조한다. 이는 실제로 4.3 사건이 1948년 한 해에 잠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학살이며, 최근까지도 정확한 진상이 공개되지 않았던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에 주목하는 관점은, 4.3에 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에 (4.3과 무관한) 경하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경하는 개인적으로 힘든 사건을 겪은 듯 보이는데 그 사건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사건이 남긴 고통을 혼자서 오래 앓기만 한다. 그러다 인선의 연락을 받고 제주에 가면서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고통을 혼자서 오래 앓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거칠게 표현하면) 나만 아픈 게 아니라 너도 아프고 우리 모두 아프다는 인식을 통해 아픔을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소설이 아픔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는 것은, 인선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경하가 병원 곳곳에 붙어 있는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볼지 말지, 인선의 다친 손가락과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을 제대로 볼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상처를 보는 행위 자체가 상처를 치료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상처를 보지 않으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인선의 손가락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역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