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애 - 명화와 함께 읽는 ‘진정한 우리 왕’ 이야기
찰스 디킨스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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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예수의 생애>인데 저자가 찰스 디킨스라니. 찰스 디킨스가 왜 예수에 관한 책을 썼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서 이 책을 구입해 읽었다. 책에 나와 있는 답부터 알려주자면, 이 책은 찰스 디킨스가 출판을 목적으로 집필한 책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누구보다 "선하고 친절하며 온화한 분"이셨던 예수의 삶에 관해 알려주기 위해 이에 관한 글을 썼고, 그의 사후에 글의 존재를 알게 된 출판사가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서 이 책을 출간했다. 다시 말해 한 명의 작가로서가 아니라 자녀들의 아버지로서 쓴 글인 셈이고, 그래서인지 내용이나 문장이 왠지 모르게 더 진솔하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내용은 예수의 탄생부터 죽음 그리고 부활을 다루고 있으며, 성경을 읽었거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을 내용이지만 그런 내용이라도 한 권의 책으로 (그것도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시선으로) 정리된 것을 읽으니 느낌이 색달랐다. '동방박사'의 '동방'이 고대 페르시아를 뜻한다는 걸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바리새인은 유대인의 한 분파이며,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든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든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처럼,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일상 생활이나 소설, 영화 등을 통해 접해본 적이 있을 표현들의 일화가 나와서 일종의 인문 교양을 쌓을 목적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에는 그림도 많이 실려 있다. 알다시피 예수의 생애는 수많은 예술가와 창작자들의 영감이 되었고, 특히 화가들이 그에 관한 그림들을 많이 남겼다. 이 책은 예수의 생애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장면들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들의 작품이 매 장면마다 실려 있다. 그 화가들이 무려 푸생, 엘 그레코, 들라크루아, 고흐, 렘브란트, 다빈치, 카라바조 등이라서 눈도 즐거웠다. 같은 인물, 같은 장면, 같은 이야기를 각각의 화가들이 서로 다른 풍으로 그린 것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반 고흐가 (특유의 붓터치와 색채로) 그린 <선한 사마리아인>과 <나사로의 부활>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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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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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마다 천착하는 주제나 소재가 있는 것 같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존 밴빌의 경우도 그렇다. 2005년 맨부커상 수상작 <바다>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그의 다른 책 <오래된 빛>이 자주 떠올랐다. 말년에 접어든 남성이 가까운 가족(<오래된 빛>에서는 딸, <바다>에서는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소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시절 그는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여성을 사랑했고, 그것이 그가 또래 소년들보다 성숙하다는 증거라고 착각했다.


<바다>의 주인공 맥스는 아내 애나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어떤 사람의 죽음이 그에게 이토록 큰 고통을 준 건, 50년 전에 있었던 어떤 사건 이후로 오랜만이다. 50년 전, 열 살 남짓의 소년이었던 그는 '시더스'라고 불리는 저택으로 여름 휴가를 보내러 온 그레이스 가족과 마주쳤다. 얼마 후 쌍둥이 남매인 클로이, 마일스와 가까워졌고, 하루가 멀다 하고 어울리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맥스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대상은 나이가 비슷한 남매가 아니라 그들의 엄마인 그레이스 부인이었다. 클로이, 마일스와 어울리는 척하면서 그레이스 부인을 훔쳐보는 맥스.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그레이스 부인은 어느 날 맥스가 보는 줄도 모르고 대담한 행동을 하고, 오해가 쌓이면서 결국 바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


이 소설은 미성숙한 존재(어린이)의 무지와 오해로 인해 등장 인물들의 운명을 바꾸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를 연상케 한다. 낮은 계급의 소년이 높은 계급의 가족과 어울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을 닮았다. 무엇보다 먼저 읽은 존 밴빌의 소설 <오래된 빛>과 이야기 전개나 내용 면에서 상당히 유사해 작가가 깊이 몰두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 듯했다. 다른 소설도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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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ㅣ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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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적, 다양한 시대의 작가들의 소설을 읽어왔지만 조선족 출신 작가의 소설을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이다. 재일교포 작가로는 유미리가 있고 재미교포 작가로는 이민진이 있지만, 이들은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 영어로 글을 쓴다. 그에 반해 금희 작가는 한국어로 글을 쓰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발표한다. 그만큼 한국과 가깝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도 그랬다.


이야기는 주인공 '상아'가 남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상해로 오면서 시작된다. 뜻밖에도 20년 전에 친하게 지냈던 '정숙 언니'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마침 정숙 언니가 상해에 살아서 둘은 결혼식이 끝나고 만나기로 한다. 그 때부터 시작되는 20년 전의 이야기. 때는 1998년. 연변의 조선족 마을 남산촌에서 나고 자란 상아는 어린 시절 친구인 '무군'과 약혼 후 천진으로 간다. 상아가 무군과 약혼한 건 무군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천진에서 일하는 무군의 누나가 둘이 함께 천진으로 오면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혹해서이다. 약혼하지 않고 천진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딸의 장래가 걱정이 된 상아의 부모는 두 사람이 약혼이라도 하기를 바랐고, 두 사람은 따랐다. 


그렇게 시작된 상아의 '천진 시절'은 어떠했나. 천진에서 상아는 난생 처음 대도시를 경험했고, 직접 돈을 벌었고,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놀랍고 신나고 행복한 순간들도 분명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도시의 뒤편을 목격하고 환상이 깨진 적도 있었고, 뭔가를 포기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질 뻔하기도 했다. 무군은 착하고 성실한 남자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아는 그의 착함과 성실함이 두 사람의 미래를 발목 잡는다고 느꼈다. 그 때부터 상아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클리셰 같은 상황이지만 어떤 것이 클리셰가 되었다는 건 그만큼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고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것 아닐까.


상아처럼 지방에서 도시로 온 여자가 노동자로 일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면을 경험하는 이야기가 예전에는 많았는데 근래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있다 해도 대부분 사무직 아니면 서비스직이고(최근에는 프리랜서, 자영업자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그나마도 개인 서사에 그칠 뿐 한 시대 또는 한 사회를 담아내는 이야기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1990년대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기와 조선족 사회의 변화 등을 담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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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라, 기억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오정미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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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이 완벽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 기억이 어린 시절의 것이라면.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자서전 <말하라, 기억이여>는 제목에도 '기억'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듯이 작가 자신의 기억을 주로 담고 있다. 40대의 나이에, 그것도 고향(러시아)에 더 이상 방문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어린 시절 기억을 회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 일인지(가능키나 한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읽어보니 과연 <롤리타>를 쓴 작가답게 훌륭히 해냈다.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문장들이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답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식으로 자신의 기억을 재조립하고 간직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원하지 않을까.


나보코프는 18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유복해 어릴 때부터 가정교사와 하인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집안 환경만 보면 차르를 지지했을 것 같지만,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아버지가 개혁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차르의 전제정치에도 반대하고 볼셰비키 독재에도 반대했다. 결국 1917년 러시아혁명 때 피난길에 올라 영국, 독일, 프랑스를 거쳐서 1940년 미국에 정착했다. 이 책은 그가 미국에 도착한 후부터 틈틈이 써온 에세이를 엮어서 만들었다. 1951년 <결정적 증거>라는 제목으로 초판이 출간된 이후 여러 차례 수정 및 보완을 거쳐 1967년 <말하라 기억이여 - 다시 쓴 자서전>으로 완성되었다.


책에는 그의 집안, 부모님, 형제들, 가정교사들, 이웃과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아버지가 영어 교육을 중시해 그와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웠고, 러시아어보다 영어로 말하고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고 한다(결국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했으니 미래를 예견한 것일까). 어머니는 색채에 대한 감각이 유난히 뛰어났는데 아마도 이것이 아들에게 유전되어 남다른 감각과 묘사, 표현력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의 가족은 집안 소유의 저택이 있는 장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이것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하루종일 자연에서 뛰놀며 꽃과 나무, 벌레와 동물을 관찰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비에 푹 빠져 표본을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이 책을 보면 그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이야기를 짓거나 읽는 일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고, 그렇다 해도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질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러시아혁명이 없었다면 아버지의 뒤를 따라 군인이나 법률가 또는 외교관이 되어 돈 걱정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이 편안한 여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광풍에 휘말리면서 생계를 위해 글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이 책이나 <롤리타> 같은 명작이 나왔으니 불행 중 다행이랄지, 운명의 장난이랄지...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시대를 연결 짓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니 에르노의 <인생>이 떠오르기도 했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대작가의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생각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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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것 - 삶과 영화에 대한 고백들
오정미 지음 / 무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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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영화'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 상의 신조어 사전에 따르면 "한 사람의 삶에서 특히 깊게 남았거나 큰 영향을 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영화 <버닝>의 각본을 쓴 오정미 작가의 첫 책 <내 모든 것>은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인생 영화를 담은, 영화를 매개로 한 인터뷰집이다. 영화인의 인터뷰집이라고 해서 영화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 등 그의 주변 영화인들을 취재한 줄 알았는데 예상과 전혀 달랐다. 보육교사인 친구, 미국 유학 실패 후유증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 온라인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강사, 배우 지망생 출신인 인플루언서 마케터, 요가 학원 강사, 뮤지션, 크로키 모델, 구두수선집 사장님, 노숙인 등등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사람들의 인생 그리고 영화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각각 한 편의 소설 같고 영화 같다. 


한 편의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었는지를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은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본,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다. <걸어도 걸어도>,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디 아워스>, <라라랜드>, <엑스맨>,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모가디슈> 등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주제나 줄거리를 익히 아는 것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의 인터뷰이들이 기억하는 영화의 명장면이나 명대사, 이 영화가 그의 삶에서 특별하게 기억된 이유 등은 짐작을 비껴가는 것이 많다. 많은 분량이 할애된 건 아니지만, 가끔 등장하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좋았다. 사실 저자의 이름과 이력을 모른 채 이 책을 읽었고, 읽은 후에 우연히도 병렬 독서 중이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책 <말하라 기억이여>의 역자인 걸 알았다. 러시아 문학 번역도 하고 영화 각본도 쓰신다니. 너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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