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와의 7일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생 소년 쓰키자와 리쿠마는 도서관에서 이상한 체험을 한다. 어떤 여자가 멀리서 작은 공을 굴려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막고,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당황한 리쿠마에게 언제 비가 그칠 테니 그때 도서관을 나서라고 말해준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전직 경찰관인 리쿠마의 아버지가 강가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아버지 이외에 가족이 없는 리쿠마는 혼자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숨겨온 어떤 비밀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일전에 도서관에서 만난 이상한 여자와 재회한다. 그 여자의 이름은 우하라 마도카. 평범한 여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인데...


<마녀와의 7일>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 3권이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 시리즈' 제3권에 해당한다. 어쩌다 보니 시리즈 1,2권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3권 <마녀와의 7일>부터 읽었는데 이 <마녀와의 7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일단 도입부가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시리즈 1,2권을 읽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주인공 우하라 마도카가 가진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주인공이 우하라 마도카인지조차 몰랐다. 사실상 리쿠마와 다르지 않은 상태에서 마도카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초반에 제시되는 현대 일본 경찰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정보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찰 수사에 필요한 정보 수집 및 처리는 물론이고 수사 과정 자체에도 인터넷, 모바일, AI 등이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이 줄어들어 수많은 경찰이 자리에서 밀려나고 인간 특유의 감이나 지혜 같은 것이 발휘될 여지가 줄어들었다. 이것이 지금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아니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작가가 예상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 소설에 따르면 경찰과 최신 과학 기술의 만남은 긍정적인 면만큼 부정적인 면도 많은 것 같다.


리쿠마의 서사도 감동적이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다가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잃은 중학생 소년 리쿠마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당장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가 걱정이다. 이런 와중에 경찰과는 다른 방식으로 범인을 찾아내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나선 우하라 마도카라는 여성을 만나 이런저런 모험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며칠 전에 아버지를 여읜 소년이 이런 일들(카지노에 간다든지 여장을 한다든지)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유흥이나 현실 도피 목적이 아니라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리쿠마 자신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시리즈 1권 <라플라스의 마녀>와 2권 <마력의 태동>에서는 뇌의학을 통해 슈퍼컴퓨터에 상응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우하라 마도카를 통해 의학 또는 과학의 우수성 또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시리즈 3권 <마녀와의 7일>에 이르러서는 의학 또는 과학이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나 잠재력을 보여주는 식으로 입장이 변화한 점도 인상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자신이 공학도 출신이기도 한 만큼 과학 지식을 활용하는 범죄 수사물을 다수 발표해 왔는데, 자신의 100번째 작품인 <마녀와의 7일>에 이르러서는 과학의 한계를 역설하니 놀랍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력의 태동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는 젊지만 침술 실력은 상당한 침구사 구도 나유타는 스키점프 선수 사카야 유키히로를 돕는 스태프 중 한 명이다. 최근 들어 성적 부진이 이어져 이번 대회를 마치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사카야 선수가 그의 어린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대회에서는 부디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지만, 구도로서는 최선을 다해 침을 놓는 일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안타까운 상태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한 대학교수의 연구실에서 우하라 마도카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이 소녀와의 만남이 구도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마력의 태동>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 3권이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 시리즈' 중 2권이다. 시리즈 1권 <라플라스의 마녀>의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책 소개에 나와 있어서 <라플라스의 마녀>의 주인공인 우하라 마도카와 아마카스 겐토의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아마카스 겐토 이야기는 없고 마도카가 <라플라스의 마녀>에 나오는 온천 마을 사건 이전에 어떤 식으로 자신의 마력을 활용해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며 살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후반에 이르러 각각의 이야기가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되고 <라플라스의 마녀>와도 연결되는 등 구성적인 재미가 상당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단연 구도 나유타이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기능적으로 만든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이 인물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오고 심지어 <라플라스의 마녀>에 나온 어떤 사건과도 관련이 있음이 드러나면서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마도카가 아니라) 나유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소설 초반에 마도카가 보이는 기이한 행동부터 나유타의 직업이 침구사인 것, 심지어 나유타라는 이름마저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소설 후반에 이르러 밝혀질 때 느낀 전율이 상당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는 무엇 하나 허투루 나오는 것이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한 온천 마을에서 육십 대의 영화 프로듀서가 사망한다. 사인은 황화수소 중독. 경찰은 온천 마을에서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 보고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나카오카 형사는 피해자의 젊은 아내가 남편의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범죄로 보고 단독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나카오카는 수사를 위해 지구화학 전문가인 아오에 교수의 도움을 청하고, 아오에 교수는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 다른 온천 마을에 갔다가 우연히 한 소녀를 만난다. 우하라 마도카라는 이 소녀는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여자아이 같지만 초능력에 가까운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의 데뷔 30주년이기도 했던 201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자 2025년 현재 3권까지 나온 '라플라스 시리즈'의 1권이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우하라 마도카는 그야말로 초인에 가까운 능력자이다. 마도카가 가진 능력은 날씨, 온도, 습도, 풍향 등 수많은 데이터를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수집하고 처리해 필요한 정보를 추출해내는 '슈퍼 컴퓨터'와 비슷한 능력이다. 어릴 때 재난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천재 뇌의학자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지금의 능력을 가지게 된 마도카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온천에서 일어난 연쇄 사망 사건의 범인을 밝혀낸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마도카의 능력을 초능력처럼 여기고 마도카가 하는 말을 예언이나 예지처럼 받아들이지만, 마도카는 항상 사실에 기반한 정보와 과학적 추론에 근거해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이런 모습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갈릴레오 시리즈'의 주인공 유카와 마나부와 비슷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유난히 '부성(父性)' 또는 '부정(父情)'을 다룬 것이 많은데 이 소설도 그렇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마도카의 아버지 우하라 젠타로와 천재 영화 감독 아마카스 사이세이, 이렇게 두 사람이다. 두 아버지의 유형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쁨의 황제
오션 브엉 지음, 김지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감정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경험을 통해 조금은 안다.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오션 브엉의 장편 소설 <기쁨의 황제>는 주인공인 열아홉 살 소년 하이가 죽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철교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죽은 지인이 있는 나로서는 이 장면을 읽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하이는 우연히 그 광경을 본 80대 노인 그라지나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라지나의 집에 얹혀 살면서 그대로 삶을 마감했다면 절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을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된다.


하이의 어머니는 베트남 이민자로 네일숍에서 일하며 혼자 힘으로 아들을 키웠다. 삶에 낙이 없어 약물에 의존하는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하이는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했지만 주류 사회의 벽을 넘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하이는 어머니에게는 보스턴에 있는 의대에 합격해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조용히 삶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결심을 실행하려고 한 순간에 그라지나의 눈에 띄었고, 그녀의 만류를 뿌리치지 못해 다리에서 내려왔다. 알고보니 그라지나는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독거 노인이었고, 그녀에게 동정심을 품은 데다가 어차피 갈 곳도 없는 하이는 그녀의 집에서 지내며 손발이 되어주기로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내며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하이는 집 근처 레스토랑 '홈마켓'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장은 아니지만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으며 안정적인 보수를 받는 직업에 종사하며 하이는 더없는 풍요로움을 느낀다. 배경이나 출신은 다르지만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공통의 화제를 가지게 된 동료들에게 깊은 소속감도 느낀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하루 빨리 탈출해서 성공해야 하는 곳 또는 탈출만 해도 성공인 곳으로 여겼던 자신의 집, 고향을 긍정하게 된다. 세상은 그와 그의 동료들을 패배자로 규정할지 몰라도, 하이에게 지금의 삶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된다.


이 소설은 미국이 배경이고 베트남계 미국인이 주인공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아온 한국인인 나도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많았는데, 그건 아마도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특수한 이야기인 동시에 현대인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 또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과 그러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책망, 적당히 먹고 살 수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조차도 힘든 현실에 대한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는 것은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더 아프고 힘들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은 전세계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든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오프라 윈프리, 리베카 솔닛 같은 명사, 작가들이 이 소설에 찬사를 보낸 것에 수긍이 가고, 뉴욕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 이해가 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작가 오션 브엉은 김혜순, 이상, 한강, 차학경 등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언급하는데, 일상을 비일상적으로 인지하는 감각이나 소설보다는 시를 닮은 표현들이 어쩐지 그가 언급한 문인들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괴인 랩소디 2
스기토 아키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치로는 평범한 청년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최강의 괴물이다. 그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인간 사회로 가출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인간처럼 살고 있는 하치로. 하지만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괴물들은 호시탐탐 그를 노리며 언제라도 그를 사로잡아 괴물들의 세상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2권에서 하치로는 예상 밖의 인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데, 정작 하치로는 공격을 당하고도 그것이 공격인 줄을 모른다. 오히려 공격한 쪽이 당황해서 공포에 사로잡히는데, 이런 식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점이 이 만화의 매력이다.


하치로를 괴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이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원망하며 지냈던 하치로는 사실 내심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아버지와 딸의 다정한 모습을 보게 된 하치로는 마음이 약해졌고, 그 틈을 타 괴물들이 그를 납치한다. 그리하여 시작된 대결에서 하치로는 살기 위해... 서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초반에는 유머러스한 만화였는데, 하치로가 자신을 만들어준 아버지에 대해 품고 있는 애증이 더 자세히 그려지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그린 가족 드라마의 느낌이 강해졌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