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백수린 지음, 주정아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랫동안 소설을 읽었다. 장편, 단편, 한국소설, 외국소설, 순수문학, 장르문학 등등 다양한 길이와 국적, 종류의 소설을 읽었다. 그렇게 계속 소설을 읽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두 종류로 보였다. 하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 다른 하나는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 소설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쓰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어떤 소설을 쓸지도 궁금하다.


소설가 백수린이 2019년에 발표한 소설집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를 읽었다. "이 책에 실린 짧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라는 작가의 말 그대로 이 소설집에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담겨 있다. 아이들과 해변으로 놀러 나온 젊은 엄마, 공원에서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 커플과 그들을 지켜보는 어른, 전기세 무서워 에어컨 바람 시원한 공항으로 피서를 떠난 부부,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에 유학 중인 딸을 만나러 가는 아버지, 캠퍼스 커플이었다가 오랜만에 재회한 남녀 등등 나 같기도 하고 내 가족이나 친구 같기도 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연이어 나온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하고 어쩌면 시시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좋다. 소설 속 인물은 분명 내가 아닌데 나도 이랬어, 나도 이래, 나도 이럴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들. 이 소설집에서는 엄마와 딸의 프랑스 여행을 그린 <비포 선라이즈>와 대학원 조교와 (아마도) 강사의 짧은 대화를 그린 <언제나 해피엔딩>이 특히 그랬다. 나는 프랑스에 가본 적이 없고 대학원에서 조교로 일해본 적도 없지만, <비포 선라이즈>를 읽으면서는 엄마와 일본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 떠올랐고, <언제나 해피엔딩>을 읽으면서는 대학 시절 언어교육원 선생님이 해주셨던 생각났다. 이런 식으로 비슷할 수도 비슷하지 않을 수도 있는 추억들을 환기하게 해주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는 소설들이 나는 좋다.


경험해본 적 없지만 언젠가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들을 미리 경험하게 해주는 이야기들도 좋다. 이 소설집에서는 나이 들어 혼자서 외국으로 딸을 만나러 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여행의 시작>, 임종을 앞둔 노인을 돌보는 간병인의 이야기를 그린 <아무 일도 없는 밤>이 그랬다. 연애의 설렘보다 연애가 끝난 후의 아쉬움, 미련에 대한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가는 건 역시 내가 이런 나이여서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종료된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요즘 다시 듣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오와 광인 문보영 의 낯선 언어로 쓰기(G. 문보영 시인)> 편을 듣고 뒤늦게 이 책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을 샀다. 이 책은 문보영 시인이 2023년 가을부터 3개월간 미국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IWP)에 참가하며 경험한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일단 이 책은 일기 형식이라서 매일 틈틈이 읽기 좋다. 날마다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했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자세히 적혀 있어서, 나도 함께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인, 소설가, 번역가 등을 초청해 아이오와 대학교 내의 같은 호텔에서 머물며 창작과 토론, 낭독회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행사라고 한다. 문인들을 위한 행사라고 해서 내향적인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의외로 외향적인 활동이 많아서 놀랐다. 거의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것도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해야 한다니. 내향적이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나로서는 상상만 해도 두렵다(시인님 대단해요!).


아이오와 자체도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라고 하고 시인님이 머문 호텔도 다운타운에서 떨어져 있어서 날마다 들판을 거닐고 나무를 관찰하며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날들을 보내신 줄 알았는데, 프로그램 종반에 이르러 함께 프로그램에 참가한 작가들이 마치 '불화하는 가족'처럼 싸웠다는 대목을 보고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었다. 시인님이 쓴 일기만 보면 나도 아이오와에 가고 싶고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좋아 보이는데(참가자들에게 매일 식비 및 용돈을 준다는 점이 너무 좋아 보인다), 함께 프로그램에 참가한 작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아이오와를(그리고 프로그램을) 떠나고(끝내고) 싶어했다니. 시인님 멘탈이 엄청 좋으신가 싶기도.


아무튼 이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문보영 시인님의 또 다른 책 <일기시대>도 사고, 이 책에 자주 언급되는 최승자 시인님의 아이오와 체류기 <어떤 나무들은>도 샀다.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해 검색하다 난다에서 김유진 작가님의 아이오와 체류기 <받아쓰기>가 나온 걸 알게 되어 이 책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체스트넛맨
쇠렌 스바이스트루프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스트넛맨>을 재미있게 봤다. 초반에는 배우들도 낯설고 내용이 복잡해(보여)서 몰입을 잘 못했는데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빠져 들어서 세 번 정주행 했다. 원작 소설이 있길래 구입해서 읽었는데 역시 재미있다. 배우들의 대사나 연기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인물들의 심층적인 심리를 알 수 있어 좋았고, 소설을 영상화 하는 과정에서 수정 또는 삭제된 장면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이 맛에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 있으면 가능한 한 구해서 읽는 편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주택가에서 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건에 투입된 형사는 코펜하겐 경찰 살인수사과의 나이아 툴린과 유로폴에서 좌천되어 살인수사과에 임시 발령된 지 얼마 안 된 마르크 헤스. 이들은 현장에서 절단된 시체와 시체 뒤쪽에 매달아 놓은 밤 인형(chestnut man) 외에 눈에 띄는 특징을 찾지 못한다. 그런데 얼마 후 또 다시 여성의 절단된 시체가 발견되고 현장으로 달려간 툴린과 헤스는 다시 한 번 밤 인형을 마주친다. 밤 인형이 중요한 단서임을 짐작한 두 사람은 과학수사대에 감식을 의뢰하고, 그 결과 각각의 밤 인형에서 일 년 전 실종되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회부 장관 로사 하르퉁의 딸 크리스티네의 지문을 발견한다.


소설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사건을 수사하는 툴린과 헤스의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실종된 아이 크리스티네의 부모인 로사와 스텐의 서사다. 툴린과 헤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처음 만났고, 툴린은 부서 이동을, 헤스는 유로폴 복귀를 원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건 해결에 대한 열의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계속해서 피해자가 발생하고, 피해자들이 전부 (남편이 있든 없든 간에) 아이를 완벽하게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엄마들이라는 사실이,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아이 양육에 헌신하고 있지 못하는 싱글맘 툴린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나중에 밝혀지지만) 비슷한 사연이 있는 헤스의 내면에도 파문을 일으킨다. 


로사와 스텐은 각자 사회부 장관과 건축가로서의 업무에 복귀해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둘 다 딸의 실종과 죽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잇달아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단서에 크리스티네의 지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크리스티네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일 년 전에 이미 크리스티네를 살해한 범인을 지목해 구속시킨 경찰은 크리스티네의 생존 가능성을 부정하고, 로사와 스텐은 시체도 찾지 못한 딸을 마음에 묻어야 할지 말지 고민한다.


드라마 <더 체스트넛맨>을 재미있게 본 이유 중 하나는 범인을 찾는 과정 자체도 흥미롭지만 사건을 둘러싼 네 사람(툴린, 헤스, 로사, 스텐)의 입장이나 심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툴린과 헤스에게 이 사건은 형사라는 직업인로서 해결해야 할 업무에 불과했지만, 점차 개인적인 감정(죄책감)이 개입하면서 나중에는 다음 커리어를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잘 처리하고 싶은 과제가 된다. 로사와 스텐은 사회적으로 어서 사적인 문제는 잊고 공적인 임무로 복귀하라는 압박을 받고 그들 또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자신의 정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늘어나 결국에는 알코올 중독 증세까지 보인다.


범인의 경우 처음 살인을 한 연령과 살해 방법의 잔인한 정도 등을 참작했을 때 사이코패스로 볼 여지가 크지만, 살해 대상을 매번 여성으로, 그것도 자녀가 있는 여성으로 택한 점을 생각하면 여성혐오자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범인으로서는 양육을 제대로 못한 어머니를 처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왜 양육 책임은 어머니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지, 왜 부재하는 아버지나 폭력적인 아버지는 처벌하지 않는지 - 애초에 자기가 뭔데 남을 처벌할 자격이 된다고 믿는지(who do you think you are?) - 이해하기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수 한계 시간
율리 체 지음, 남정애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율리 체 소설 처음인데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세상의 끝'으로 불리는 스페인의 라호라 섬. 이곳에서 파트너 안톄와 함께 살면서 잠수 강사로 일하는 스벤은 욜라와 테오라는 한 쌍의 독일인 커플에게 2주 간 잠수를 가르치기로 한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배우이기도 한 욜라와 그보다 열두 살 연상인 작가 테오는 겉보기엔 완벽한 커플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에게 남들이 모르는 문제가 있다는 걸 스벤이 알게 되고, 잠수 강사로서 그들을 내버려둬야 할지 아니면 개입해야 할지 고민하던 스벤은 결국 이 커플의 관계에 깊이 개입하게 된다.


줄거리만 보면 이 소설은 흔한 삼각관계 치정물로 보인다. 일차적으로 이 소설이 잠수 강사 스벤의 시점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그렇게 읽기 쉽다. 하지만 스벤의 시점과 교차해서 등장하는 욜라의 일기를 읽어보면 꼭 그렇기만 한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벤은 스벤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서술하고, 욜라는 욜라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일기를 썼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같은 여성인 욜라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욜라가 완전무결하게 결백한지 잘 모르겠다. 최종 결말을 보면 더더욱 아리송하고...)


책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글'도 흥미롭게 읽었다. 이 글에 따르면 저자 율리 체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판이 자자한데 이 소설에서는 사회 참여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잠수 한계 시간>이라는 제목과 실패한 법학도였던 스벤이 독일을 떠나 잠수 강사로 살다가 욜라-테오 커플을 만나 일련의 사건을 겪고 더는 '잠수'하며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독일로 돌아가는 줄거리 자체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내 생각에는 이 소설에 여러 번 나오는 몽테스키외가 '삼(3)권분립'의 주창자인 것도 이 소설을 해석하는 하나의 키(key)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매 문학동네 플레이
유은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문화인류학과 무당'으로 불리는 혜린은 예부터 부산 지역에 내려오는 마을 제사에 대해 조사하는 민속조사단에 합류한다. 민속조사단에는 혜린의 대학원 동기인 형섭과 학부생 성진, 유정이 속해 있다. 혜린은 부산에 온 김에 부산에서 교사로 일하는 친구 민경을 만나러 간다. 오랜만에 만난 민경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 주변에서 자살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는 말을 전하고, 혜린은 민경이 근무하는 학교 주변이 자신이 곧 조사할 예정인 마을인 걸 깨닫고 두려움을 느낀다. 혜린은 어릴 때부터 부적처럼 간직해 온 말 모형이 달린 목걸이를 민경에게 건네지만, 혜린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민경은 의문의 죽음을 맞고 목걸이 또한 사라진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유은지의 소설 <귀매>는 2024년 크게 히트한 영화 <파묘>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이른바 '신기'를 가진 젊은 여성과 그를 보좌하는 젊은 남성이 짝을 이뤄 사건에 대응하는 점, 궁극적으로 사건의 배후에 일제 강점기 식민 지배 역사, 한국의 무속 신앙과 일본의 무속 신앙 간의 대결, 여태 남아 있는 친일파 후손 문제 등을 다룬 점이 그렇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소설이 <파묘>가 개봉되기 22년 전인 2002년에 처음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유은지 작가는 이 소설을 대학교 1학년이던 스무 살 때 썼으며(참고로 유은지 작가는 당시 이공계 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민속학에 매료되어 그 후로 아예 전공을 민속학으로 바꾸고 현재도 민속학 연구자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도 소설 같다.)


22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낡은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부산 다대동이라는 지금도 존재하는 지역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점, 실제로 그 지역에서 행해졌던 마을 제사나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설화, 풍습 등을 차용한 점 등 후배 작가들이 본받았으면 싶은 미덕들이 있는 점이 좋았다. 그러고 보면 옆 나라 일본은 호러, 오컬트 소설이 지금도 활발히 창작되어 일본의 민속이나 전통 문화에 대한 지식이 일반인들은 물론 나 같은 외국인 독자에게도 전해질 정도인데, 한국은 호러, 오컬트 소설이 일본만큼 활발히 창작되지 않아서 한국의 민속, 전통 문화 또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나라도, 이제부터라도 한국의 호러, 오컬트 소설을 눈여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