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싸랑한 거야 특서 청소년문학 12
정미 지음 / 특별한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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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지원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인 아버지가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큰 빚을 지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집에서 쫓겨나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된 지원과 언니 지혜는 로또 판매점 앞을 서성이며 로또를 살 방법을 모색한다. 로또를 사서 당첨이 되면 아버지가 진 빚도 갚고 원래 집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현행법상 미성년자인 지원과 지혜는 로또를 구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원에게 사랑이 찾아온다면 어떨까. 작가 정미의 장편소설 <사랑을 싸랑한 거야>는 경제적인 문제로 갑자기 가정이 무너지면서 위기에 처한 여고생 지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지원이 사랑하게 된 사람은 새로 사귄 동네 친구 찬진의 형 찬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든 학교에서 친한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지원은, 갑자기 새로운 동네로 전학을 와서 친구도 하나 없고 마음 붙일 일도 없어 우울하다. 그러다 우연히 강가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의 자상한 태도와 친절한 말투에 자기도 모르게 사랑을 느낀다. 알고 보니 그 남자가 찬진의 형이었고, 그렇게 지원은 매일 조금씩 찬혁을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간다. 하지만 사랑에만 푹 빠져 있기에는 현재 지원이 처한 상황이 너무 안 좋다. 할아버지는 원래부터 형편이 넉넉지 않았고,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러 다닌다.


보다 못한 지원은 언니 지혜와 함께 돈을 벌 방법을 찾는다. 길가에서 직접 탄 커피를 팔아보기도 하고, 노래방 도우미를 하기도 한다. 위험천만한 일들이지만 아직 성인이 안 된 고등학생이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가 안 된다. 그나마도 시급이 너무 낮아서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한 지원이네 가족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지원의 유일한 낙은 찬혁에 대한 사랑이다. 몇 번 만난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를 사랑하는 낙으로 살아가다니. 엉뚱한 소리 같지만, 당장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인 지원에게 찬혁을 생각하는 시간은 유일하게 힘든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지원이 찬혁을 생각하는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가고, 급기야 찬혁 때문에 그동안 절친했던 언니와의 사이에서도 트러블이 생긴다. 작가는 이런 지원의 어린 마음을 사랑이 아니라 '싸랑'이라고 부른다.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사랑'이라면, 내 마음이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정붙일 데를 찾는 마음이 '싸랑'이다. 지원은 자신이 찬혁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사랑'이 아니라 '싸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을 통해 지원은 한 뼘 더 성장한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지만,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적지 않은 재미와 감동, 교훈을 주는 작품이다. 지원, 지혜 자매의 미래를 그린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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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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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전세 계약에 따라 몇 년에 한 번씩 집이나 동네를 옮겨 다닌 까닭이다. 그래서 고향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 태어난 곳에서 쭉 자라지는 않았어도 한곳에 오래 정착해 살아서 그곳을 떠난 후에도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그곳에 돌아가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 그런 고향에 관한 소설을 읽었다. 폴란드를 대표하고 이제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작가가 된 올가 토카르추크의 장편 소설 <태고의 시간들>이다.


소설의 배경은 '태고'다. 태고의 북쪽에는 바깥으로 향하는 도로가 있고 남쪽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동쪽에는 백강과 흑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목초지와 작은 숲이 있다. 태고 사람들은 웬만해선 태고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태고에서 태어나 태고에서 자라고 태고 사람과 결혼해 태고에서 살면서 죽음을 맞는 것이 태고 사람의 일생이다. 그런 태고에 위기가 닥친다. 때는 1914년 여름. 러시아 군인 둘이 총을 차고 태고로 와서 젊은 남성들을 데리고 떠난다. 전쟁이 일어났으니 참전하라고 전한다.


방앗간 주인 미하우도 군인들을 따라 떠난다. 아내 게노베파의 뱃속에 아이가 들어선 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게노베파는 남편의 생사 여부도 모른 채 딸 미시아를 낳고 키운다. 마을 남자들은 아직 젊고 예쁜 게노베파에게 호시탐탐 추파를 보낸다. 게노베파도 속이 끓고 몸이 달아오르지만 그 때마다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남편을 생각한다. 미시아가 

자라는 동안 마을 숲에 사는 크워스카도 출산을 한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크워스카는 고아로, 마을 여기저기를 떠돌며 구걸해서 배를 채우고 술집에서 몸을 팔아 이제까지 살아온 여자이기 때문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크워스카는 숲속에서 혼자 아이를 낳는다.


전쟁이 일어났다 끝나고 또 한 번 전쟁이 일어났다 끝나는 동안 태고에선 바람 잘 날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어느 날은 독일군이 들어와 포피엘스키 집안이 대대로 살았던 성과 영지를 빼앗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유대인을 색출해 학살한다. 어느 날은 볼셰비키가 들어와 마을 사람들의 식료품을 빼앗고 마을을 병영 상태로 만든다. 어느 날은 독일군과 볼셰비키 간에 전투가 일어나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고 시체가 마을 곳곳에 쌓인다. 어느 날은 러시아군이 들어와 미하우와 게노베파의 집을 빼앗고 미시아를 향해 음흉한 눈길을 보낸다. 미시아의 딸 아델카는 미하우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폴란드군은 언제 오나요?" 미하우는 손녀에게 이제 더는 널 구해줄 조국은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딸이 필요한 것 같네요. 다들 딸만 낳기 시작한다면, 세상이 한결 평화로워질 텐데 말이죠." (13쪽)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동안에도 여자들은 사랑을 하고 생명을 만든다. 게노베파는 미시아와 이지도르를 낳고, 미시아는 아델카, 안테크, 비테크에 쌍둥이 딸까지 낳는다. 크워스카도 딸 루타를 얻는다. 여자들은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지지 못하고 자기 몫의 재산도 형성할 수 없다. 한 번 결혼한 남자와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 도리라고 믿고, 그러한 도리를 따르지 않는 여자는 창녀 취급을 당한다. 그래서 어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도 맺어지지 못하고, 어떤 여자는 따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매를 맞고 겁탈을 당한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계속 살아간다. 마치 삶이라는 선택지밖에 없다는 듯이.


전쟁 전에 태고 사람들은 태고에서 벗어난 삶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전쟁 후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태고를 떠난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떠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 위해 떠나고 어떤 사람은 그저 태고가 싫어서 떠난다. 그들처럼 태고를 떠났다가 오랜만에 다시 태고를 찾은 아델카는 태고가 많이 변한 것을 확인한다. 그 많던 가족과 친지 중에 남은 사람도 아버지뿐이고, 어릴 적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도 거의 다 떠났거나 죽었다. 거의 십여 년 만에 고향을 찾아와 애써 살갑게 구는 딸에게 아버지가 하는 말이란 고작 이런 것이다. "왜 아들을 낳지 않았니?" 아버지의 무심한 말에 아델카는 내가 이래서 집을 떠났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아델카가 집을 떠나면서 훔치듯 가져온 물건이 있었으니, 오래전 미하우가 전쟁에 끌려갔다가 돌아올 때 가져온 커피 그라인더다. 아마도 아델카는 두 번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기다릴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델카는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커피 그라인더를 만질 것이다. 커피 그라인더를 만질 때면 전쟁터로 간 남편 대신 고향을 지킨 외할머니와 대가족을 거두어 먹였던 어머니와 다정했던 자매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제 아델카의 고향은 아버지의 집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아니,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차마 깨닫지 못했다. 나의 태고는 어머니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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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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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남들이 나에게 잘못한 일을 곱씹는 경우가 많았다. 스무 살 언저리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일. 십 년 넘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알고 보니 뒤에서 나를 흉보고 다녔던 일. 아버지 어머니가 나에게 상처 주었던 일. 그런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착한데 남들이 나쁘다고, 나는 무고한데 남들이 나에게 죄를 짓는다고 믿었다.


언제부터인가 남들이 나에게 잘못한 일보다 내가 남에게 잘못한 일을 더 자주 곱씹게 된다. 친하다는 이유로 연락을 소홀히 했던 일. 나를 변호하느라 남의 입장은 살피지 못한 일. 잘못을 하고도 제대로 용서를 구하지 않았던 일. 그런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내가 생각만큼 착하지도 않고 무고하지도 않음을 새삼 확인한다. 더 이상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말을 삼가게 되고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이런 나를 두고 어떤 사람은 소심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겁쟁이라고 한다. 후회를 늘리지 않으려고 행동의 속도를 부러 늦추는 내가 이상한 걸까.


"지나고 나면 슬픔은 더러 아름답게 떠오르는데, 기쁨은 종종 회한으로 남아 있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고, 기쁨이 남은 자리에는 내가 돌아보지 못한 다른 슬픔이 있기 때문이리라."

(한지혜, <참 괜찮은 눈이 온다>, p.6)


소설가 한지혜의 산문집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다가 처음으로 밑줄 그은 문장이다.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걸 통해 얻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반대로 아무리 기쁘고 즐거운 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후회스러운 점이 있다. 저자가 이런 깨달음을 얻은 건 결코 순탄했다고 말할 수 없는 어린 날의 경험 덕분이다.


저자는 사 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부모는 애가 둘이라고 속여 셋방을 구했다. 이사 당일 애가 넷인 걸 보고도 집주인은 놀라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일이 허다했던 탓이다. 여섯 식구가 한 방에 뒤엉켜 자다 보니 언니의 생리혈이 저자의 속옷에 묻어 초경을 했다고 착각한 적도 있다. 남몰래 좋아하던 선생님이 집까지 바래다준다는데도 초라한 살림을 보여주는 게 싫어서 거절한 적도 있다. 그때는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못 사는 것 같았다. 돈도 없이 애를 넷이나 낳은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얼마 전 저소득층 아이들이 생리대가 없어서 신발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기사를 봤다. 아무리 가난해도 생리대가 없어서 고생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무능한 부모라도 딸 셋이 쓸 생리대 값은 벌어다 줬다. 그동안 가난 운운하며 자신의 불행만 헤아리고 남의 불행은 돌아보지 못한 게 너무나 미안했다. 부모를 원망했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놀기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공부까지 잘하니 주변 어른들의 평판이 좋았다. 어린 마음에 그런 평판에 취해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국민학교 시절의 일이다. 같은 반에 행색이 초라하고 성적도 낮아서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던 아이가 있었다. 구구단을 못 외우는 그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섰다. 순수하게 그 아이를 돕고 싶어서가 아니라 똑똑한 아이가 착하기까지 하다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였다. 그때는 그런 마음이 위선인 줄 몰랐다. 그 후로는 아동 후원 같은 자선 행위를 할 때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행위를 하는지 살핀다. 오만과 치기를 선의로 포장하는 법을 아는 영악한 아이가 아직도 내면에 있을지 몰라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희생시킨 적도 있다.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학교 밖에서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혼나는 것도 무섭고 모범생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도 두려워 당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다른 학생의 핑계를 댔다. 덕분에 혼나지 않고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름이 오른 학생은 선생님에게 불려가 심한 곤욕을 치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자신이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거나 상처를 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잘하는 거라곤 공부뿐인 힘없고 가난한 어린 여학생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선 약한 자신도 강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남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후로는 약함과 강함, 선함과 악함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속성임을 알아서다. 


한 편의 성장소설 같은 산문집을 읽으며 어쩌면 성장은 못난 사람이 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못난 사람이 더 못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저자는 열심히 발버둥 치며 배우고 있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 인문학적으로 사고하는 아이에게는 어른들이 간과하고 있는 공정이란 가치를 배웠다. 로자 파크스의 동화를 통해서는 "정해진 차별의 자리를 지켰지만 하차당했"던 소수자들의 역사를 배웠다. 미투 운동을 보면서는 아무리 약한 사람도 서로 힘을 합치고 어깨를 나란히 하면 세상을 뒤집고 바꿀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전에 몰랐던 것을 지금 안다고 해서 함부로 발언하거나 섣불리 행동하지는 않으려 한다. 알기 때문에, 가 아니라 알기 위해서 말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려 한다.


이 책을 읽으니 사람들이 나를 두고 소심한 겁쟁이라고 놀렸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후회를 늘리지 않으려고 행동하지 않는 건 못난 사람이 되든 말든 발버둥치지 않는 것과 같다. 저자가 안다고 말하기 전에 알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남의 잘못을 흉보기 전에 자신의 잘못부터 살피는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영영 못난 사람으로 남지 않는 법을 알려준 이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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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1-14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신 분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돌아보고나서 리뷰를 쓰시네요. 도대체 이 책이 어떻길래 그런가 싶어 저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mira 2019-11-1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이야기 많이 들려서 장바구에 넣어야 겠어요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 - 현실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지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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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면 어떨까.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의 저자 이원지는 여행이 좋아서 여행을 하다가 여행 유튜버가 되고 여행 크리에이터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저자가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한 건 대학교 때의 일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판잣집에서 살아야 했던 저자는 전공으로 건축학을 택할 만큼 공간에 대한 욕망이 유난히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에서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을 본 순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이 꽉 막힌 작은 집에서 벗어나 드넓은 초원을 달리고 싶었다.


교내 도서관 아르바이트와 백화점 구두매장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여 몇 달 만에 800만 원을 모았다. 여행 경비를 줄이려 노력한 끝에 인천에서 남아공까지 단돈 24만 원이면 갈 수 있는 최저가 티켓을 구했다. 마침내 떠난 여행은 91일 동안 이어졌다. 남아공을 시작으로 나미비아, 보츠와나, 잠비아, 말라위,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순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일정이었다. 소원대로 2박 3일 동안 세렝게티 초원을 달리며 야생 동물만을 찾아다니는 경험을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풍경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것도 좋았다. 전에는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여행을 하는 줄 알았다. 막상 여행을 떠나보니 저자처럼 당장 생계가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확실한데도 용기를 낸 여행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중에는 그동안 모은 월급과 퇴직금으로 여행하고 있다는 서른 살 언니도 있었다. 그때는 그저 그 언니가 대단해 보였을 뿐, 몇 년 후 자신이 그 언니와 같은 상황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만 해도 여행을 마치면 학교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취업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획대로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하니 즐겁기는커녕 하루하루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웠다. 결국 저자는 딱 1년만 하고 싶은 걸 해보겠다고 선언하고 퇴사했다. 퇴사 후 도전한 일이 모두 잘 된 건 아니다. 청년창업에 도전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 외국 회사로부터 취업 제안을 받았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사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답게 즉시 영상을 제작해 업로드했다. 그 후로는 전공이 아닌 영상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약 6만 5천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원지의하루'로 활동 중이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강연도 하고 방송 출연도 하고 이렇게 책도 냈다. 좋아하던 여행이 일이 되니 힘든 점도 있다. 여행이 더 이상 예전처럼 설레지 않고 휴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프리랜서이다 보니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고 미래도 불확실하다.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할 때보다는 훨씬 즐겁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적성과 재능도 알게 되었다. 부디 당차고 씩씩한 저자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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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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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지식이나 교양을 쌓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고, 재미를 얻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복잡한 세상만사로부터 떨어져 숨기 위한 도피처 또는 내면의 소란함을 애써 잠재우기 위한 안정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페터 한트케의 소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의 중심인물인 '탁스함의 약사'에게 독서는 후자에 가깝다. 약사는 잘츠부르크의 위성 도시 탁스함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인물이다. 집안 사업인 약국을 물려받아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약사는 날마다 점심때가 되면 탁스함과 잘츠부르크 공항 사이에 있는 숲으로 가서 점심 식사로 싸온 샌드위치를 먹고 중세 기사와 마법사들에 대한 서사시를 읽는다. 이때가 약사의 일상에서 거의 유일한 휴식시간이자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다.


날마다 숲속을 거닐고 중세 서사시를 읽는다고 해서 약사의 삶 또한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건 아니다. 오히려 약사는 외적인 안정과 내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않는 척하고 층층이 쌓여가는 고독을 무시한다. 약사는 오랫동안 아내와 별거나 다름없는 동거를 해왔다. 약사의 집은 약사의 영역과 아내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둘은 결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약사의 딸은 물리학도와 사귄다며 떠났고, 약사의 아들은 약사가 오래전에 내쫓았다. 아들이 집을 떠난 후 어떻게 지내는지 - 살아는 있는지 - 알고 싶어도 알 길이 없다. 약사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도 거의 없다. 달콤한 말을 속삭여주고 사랑을 나눌 애인도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그런 약사에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이마에 생긴 조그만 검은 혹 하나를 도려내고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날, 약사의 집 근처에서 바로 어제까지 없었던 집 한 채를 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집 정원 탁자 위에 내려와 앉은 까마귀 한 마리가 인간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 마치 중세 서사시에서나 볼 법한 "원초적인 상황"에 약사는 황당해 한다. 며칠 후에는 공항 지하식당에서 주문을 하려다가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을 할 수 없는 실어증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식당을 빠져나온 약사는 한동안 식당 밖 차 안에서 괴로워하다가 식당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두 사람 - 시인과 올림픽 영웅 - 을 보게 된다. 마침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약사는 두 사람을 차에 태워주고, 세 사람은 긴 연휴가 곧 다가온다는 핑계로 갑작스럽게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하는 동안 약사는 평소에 하지 않았던 진기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평소와 달리 카 레이스를 하듯 급정거와 커브 돌기를 해보기도 하고, 얼마 전 남편을 잃은 여관 주인에게 이유 없이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시인의 사생아를 만나러 간 마을에서는 그동안 옷 속에 넣어놓고 차마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편지를 마침내 꺼내 읽어본다. 그 편지에는 아내가 약사를 떠난 이유와 과거에 약사가 지은 죄의 내용이 적혀 있다. 마을 축제에서 집시들의 행렬과 마주친 약사는 행렬 속에서 아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집시들과 어울려 즐겁게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아들을 보며 약사는 오랫동안 집시들을 혐오했음을 인정하고, 어쩌면 그 혐오의 연장선상에서 아들의 비행을 용서하지 못하고 지은 죄에 비해 지나치게 엄한 벌을 내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침묵은 결코 침묵이 아니에요. 비록 처음 얼마간은 당신의 의식을 확대시켜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혼자 있을수록 당신의 실어 상태는 위험해지고, 급기야는 생명까지 위협할 거예요. 실어 상태가 계속되면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그토록 의미 있어 보이는 현재가 실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모든 체험들까지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며 파괴될 거예요." (197쪽)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여행 끝에 약사는 이젠 제발 입을 열고 말을 하라는 여자 - 정확히는 여자의 그림자 -의 음성을 듣는다. 그렇다면 약사의 실어증은 자발적인 선택이었단 말인가. 확인할 순 없지만, 실어증에 걸리기 전에도 하루 동안 하는 말이 겨우 몇 마디밖에 되지 않았던 걸 감안하면 말하는 능력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포기한 것일 수 있다. 약사의 아들조차 "아버지가 절 쫓아내신 게 아니"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건 저"라고 한 걸 보면, 침묵의 실체는 자동적 방어가 아니라 수동적 공격일 수 있다.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하고 내면에 침잠하는 기쁨을 모르지 않으나, 오로지 자기 내면만 돌보고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인간을 좋아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약사가 보는 자신의 내면은 약사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내면에 한정된다. 약사는 아내에 대한 무관심이나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 과거에 대한 회한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을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가장하며 애써 괜찮은 척한다. 그 결과 약사는 앞뒤가 맞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빌려야 겨우 자신의 진실된 내면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여행은 사전적 의미의 여행이 아니라 약사의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을 들춘 상징적 의미의 여행으로도 볼 수 있다. 실어증에 걸린 약사를 데리고 함께 여행을 다녔던 두 남자 - 시인과 올림픽 영웅 -는 약사의 내면에 있는 두 개의 자아를 상징하고, 약사를 때리며 이젠 제발 입을 열고 말을 하라고 했던 여자는 사실 약사의 아내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여러 나라를 떠돌며 도둑질을 일삼는다고 알려진 집시들의 행렬을 보면서 오래전 도둑질을 하다 잡혀 집에서 쫓겨난 아들의 모습을 떠올린 것도 우연은 아니리라.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약사는 전에 읽던 책을 이어서 읽어보지만 전처럼 수월하게 읽지 못한다. 결국 약사는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글로 받아쓰게 한다. 한 마디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기적을 보면서,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책으로 이야기로 도피하기 일쑤였던 내가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동안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나를 원망하고 질책하는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을까. 남이 쓴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에 취해 정작 나의 단어로 나의 문장을 짓고 나의 이야기를 쓸 책무를 잊지는 않았을까. 꿈을 꿔야만 자신의 실체를 만날 수 있는 헛똑똑이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읽는 만큼 듣고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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