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의 주인공 미코시바 레이지는 십 대 시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가 있는 인물이다. 다행히 소년원에서 좋은 간수를 만나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열심히 공부해 사법시험에 패스하고 변호사가 된다. 하지만 세상은 미코시바가 속죄를 하고 변호사가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전과가 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하고, 미코시바가 무슨 일을 하든 색안경을 끼고 본다. 그때마다 미코시바는 말한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짓지 않은 사람과 다른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죄란 속죄를 했다고 씻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말이다.


야쿠마루 가쿠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도 비슷한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다. 40대 중반의 평범한 가장 무카이는 어느 날 뜻밖의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편지에는 15년 전 무카이가 한 노파에게 한 약속을 지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5년 전 사연은 이렇다. 무카이는 사실 전과가 있는 몸이다. 전과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우연히 억울한 사연으로 딸을 잃고 슬퍼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무카이에게 자신이 무카이의 신분도 바꿔주고 새 삶을 시작할 돈도 줄 테니 자기 딸의 인생을 망가뜨린 놈들을 찾아가 대신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가 복수를 부탁한 놈들은 당시 무기징역 형을 받고 감옥에 있는 상태였다. 무카이는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할머니한테 돈도 받고 신분도 바꿨다. 그리고 그대로 잠적했다.


무카이는 그 때로부터 15년이나 지났으니 할머니가 그때의 약속을 잊었거나 세상을 떠났을 줄 알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할머니로부터 15년 전의 약속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약속대로 놈들을 죽여달라는 말을 들으니 황당하다. 무카이는 없던 일로 하고 평소처럼 지내보려 하지만, 무카이의 가족들이 위험에 빠지며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15년 전의 약속을 지켰다가는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갇힐 것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가는 15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 얻은 것들이 전부 사라질 상황. 과연 무카이는 어떤 선택을 할까.


무카이는 신분을 바꾸고 전보다 열심히 살면 과거에 지은 죄가 덮어질 거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고 모두가 그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다. 하지만 무카이가 신분을 바꾼 후 얼마나 열심히, 선량하게 알았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를 용서하고 감싸준다. 과거의 악행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선행 또한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니 죄가 있는 사람은 그 죄를 없애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행동으로 속죄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 작가가 쓴 일본 소설인데 정작 일본 정부나 우익은 이런 책을 읽지 않는 건지. 부디 이런 책을 읽고 깨닫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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